등록 : 2009.04.22 17:49
수정 : 2009.04.2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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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기도 연애’ 비열한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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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esc] 그까이꺼 아나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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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김어준·임경선씨 만나서 얘기하죠!
〈esc〉 100호를 맞아 김어준·임경선씨가 대면 상담에 나섭니다. 평소 상담 글을 읽으면서도 해결되지 않았던 궁금증을 직접 만나 풀어보세요. 신청하신 분들 가운데 20대 남성 독자 3명, 여성 독자 3명을 추첨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상담 주제는 ‘20대, 남과 여’로 대한민국 이십대로 살아가면서 겪는 일과 사랑, 남녀 역할과 갈등문제 등을 자유롭게 묻고 토론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고민 메일로 신청하세요.
⊙ 신청 자격 : 대한민국 20대 남성과 여성
⊙ 신청 방법 : 고민 메일(gomin@hani.co.kr)로 이름, 나이, 현재 하는 일, 상담하고 싶은 고민, 연락처를 정확하게 적어서 보내주세요.
⊙ 신청 마감 : 4월 23일까지
⊙ 당첨자 발표 : 4월 24일 개별 통지
⊙ 상담 일자 : 4월 마지막주 중 추후 결정
⊙ 대면 상담 내용은 5월 7일치 〈esc〉 100호에 게재됩니다. 비밀 상담을 원하거나, 얼굴 노출을 원치 않는 분들은 신청이 어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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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양자역학적 고찰-간섭도 없고 애정표현도 피하는 그와의 관계, 뭔가요?
Q 20대 후반입니다. 4살 연상 남친과의 관계가 문제입니다. 7개월 전 한 모임에서 만났는데, 몇 차례 술자리에서 코드가 맞는 것 같단 그의 애매한 멘트로 관계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고 우리 이제 사귀는 거냐고 물어도 그는 매번 답을 이리저리 피합니다. 한번은 용기를 내서 우리 그냥 엔조이냐고 물었는데 꼭 형식적인 말로 해야 하느냐며 내용인 행동을 보라고 얼버무리더군요. 성격이 무뚝뚝해 그런 건가 싶다가도 제가 먼저 연락하기 전에는 완전 무소식이고, 제가 뭘 하든 어떤 간섭도 않는데다, 제가 애정을 표현하는 말이라도 할라치면 바로 화제를 돌려버리니 대체 이게 무슨 관계인가 싶습니다. 이게 지난번 이야기하신 ‘제목 없는 관계’인가요? 답답합니다. 답이 뭘까요.
A 0. 당신 관계가 일전 <연애, 디지털이 아니다>에서 언급한 바로 그 ‘제목 없는 관계’냐. 삐~, 아니요. 당신 관계는, 제목 있다. 뭐냐. 오늘은 그 이야길 해보자.
1. 스킨십 없지만 연인 이상으로 소통 연대 집착하는 관계, 있을 수 있다. 반대도 가능하다. 그런데 우린 그런 관계, 연인이거나 혹은 연인이 아니거나, 양단간에 하나로만 판정하려는 조바심 있다 했다. 왜. 적확한 제목, 명료히 안 떠오르니까. 불편해서. 두려워서. 그러나 그렇게 낯설다 해서 관계가 실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이유만으로 그 관계가 불완전하거나 비정상이 되는 건 더욱 아니다. ‘제목 없는 관계’는, 그저 제목만 없을 뿐, 그 나름의 내재적 논리와 생명 가진 하나의 완성된 관계라 했다.
그럼 당신은. 제목 이전의 문제다. 왜. 당신은 관계 성립의 기본 전제부터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뭐냐. 상호합의. 누구 접근이 먼저냐 따위, 중요치 않다. 그 합의가 암묵적이냐 명시적이냐 하는 것도 크리티컬하지 않다. 오로지 관건은 상호 인지 가능한 방식으로 관계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느냐, 하는 거다. 당신 문제의 본질은 바로 그 합의가, 부재하다는 데서 비롯되는 거다. 제목 없는 관계도 묵시적 상호동의, 전제된다. 여기서 묵시란 양자 공히 굳이 구두 확인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거지, 당신 경우처럼 어느 일방의 확인요청을 의식적으로 회피, 거부하는 게 아니다. 요는 제목 무관하게 관계 실재하나, 당신 경우는 관계 자체가 불확정이란 거다. 연애, 하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하여, 본인, 그런 관계, ‘같기도 연애’라 한다.
2. 양자역학의 역설을 지적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란 사고실험이 있다. 뚜껑 달린 상자에 든 고양이가 한 시간 내 죽을 확률이 절반이다. 뚜껑 열기 전엔 그 생존 여부를 확률로밖에 말할 수 없다. 이걸 양자역학에서 죽은 고양이와 산 고양이가 중첩되어 있다 표현한다. 어느 쪽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다 개봉 순간, 그 순간에야 비로소 삶과 죽음이 확정, 관찰된다는 거다. 오잉, 그건 아니지. 어떻게 개봉이 결과를 정하나, 이미 결정된 결과를 확인할 뿐이지. 이 반론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직관엔 맞다. 근데 양자역학에선 아니다. 개봉이 결과를 정한다.
그 맥락에서 연애는 양자역학적이다. 둘 다 불확정성 원리가 지배하는 공간이니 뭐 이상할 것도 없다. 여하튼, 어떤 연애 관계의 존재는, 그것이 연애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 뚜껑을 여는 순간, 확정된다. 그 전까진 짐작과 추정에 기반하는 염모일 뿐. 확률의 영역이라고. 그러다 개봉 순간에야 비로소 모호함의 파동함수는 붕괴된다. 고백은 상대에게 통보일 뿐 아니라 스스로 자기확인이기도 한 거다. 개봉의 방식이야 무진장이나 효과는 그렇게 동일하다. 그런데 같기도 전략을 구사하는 씨바들은 바로 이 뚜껑 개봉을 완강히 거부하는 족속들이다. 관계의 불확정성을 어떻게든 유지코자 한다. 상대는 물론 자신에게도.
3. 그들 뻐꾸기는 언제나 작업멘트인지 소셜스킬인지 애매하다. 허나 애매한 소셜스킬이란 효용가치가 없는 법이다. 애매하면, 실제 속내는 언제나 작업이라고. 그 목적은 물론 자기보호와 간보기를 동시 수행하는 데 있다. 당근 비겁하다. 허나 여기까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이들이 구사한다. 서툰 연애기술의 문제로 오인되기도 하는 건 그래서다.
진짜 문제는 그 후다. 상대의 명백한 긍정 후에도, 그들은 자신의 퇴로 확보와 감정적 자산 관리에만 몰두한다. 바로 그 지점부터, 비겁한 게 아니라 비열한 게 된다. 상대의 애정으로부터 자신의 생물학적·정서적 필요만 삼투하며 제 양분은 결코 내놓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어떤 빌미도 제공하지 않으려 한다. 먼저 연락도 않고, 간섭도 않는 건 그 이유다. 같기도 전략이, 그 일방적 삼투압이 사악한 건 그래서다. 상대 연애감정에, 기생하는 거다. 여기서부턴 기술이 아니라 온전히 품성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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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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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형식이 아니라 내용을 보라고? 닥치라고 해라. 연애에선 형식이 내용이다. 손이 아니라 달을 보라고. 꼬추로 달을 가리키는데 그럼 꼬추를 보지 뭘 보나. 무뚝뚝한 거 아니냐고. 무뚝뚝한 자들, 제 감정 안다. 이슈는 그저 표현의 정도일 뿐. 그리고 아무리 무뚝뚝해도 상대 고백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허나 그들은 불확정 상태를 애써 유지한다. 당연하다. 그래야 죄책감 덜고 상시퇴각 가능하니까. 하여 상대 고백도 싫다. 그 관계, 언제까지고 당신이 진다. 그런 게임을 우린 사기라 한다. 쌍욕 거하게 한 번 퍼붓고, 이별하시라. 그게 답이다.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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