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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8 18:51 수정 : 2009.02.01 11:35

당신 낙오공포부터 다스리시라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Q 아이 사교육비 문제로 큰 부부싸움까지 했지만 남들만큼 못해줄까 걱정됩니다

30대 엄마입니다. 올해 첫째가 중학교 들어가고, 둘째는 초등학교 입학합니다. 그렇잖아도 빠듯하던 교육비가 선을 넘어서겠더군요. 그렇다고 뭐 대단한 과외를 시킨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학원 두세 군데 정도. 하지만 수입은 뻔하고 십년 전 경력은 소용이 없고, 해서 며칠 전 식당보조를 알아봤는데 하나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노래방 도우미라도 해야겠다는 말에 남편과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자존심 상한 남편이 아이들 숙제까지 전부 대신 해주는 제가 오히려 아이를 망친다고 소리를 지르고. 결국 각방 씁니다. 저도 사실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남들만큼 못 해줄까봐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또 그러면서도 대학까지 다 보내고 나면 내 나이 오십인데 하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하구요. 대안학교도 생각해 봤지만 왠지 불안하고. 정말 어떤 게 옳은 걸까요.

A 0. 이 고민, 대한민국 부모 9할이 한다. 실제 초등생 9할이 사교육 받고. 통계청 수치다. 개별 부모의 품성이나 의지 문제가 결코 아니란 소리다. 잘라 말하면, 이거, 행복지수 세계 최저 수준의 대한민국 군상들이 겪는, 집단 정신질환이다. 당신 스토리는 그 흔하디흔한 예후고. 야박한가. 글쎄, 보자.

1. 대한민국 교육열, 세계사적 레벨에서 독보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사교육비 1위. 스웨덴의 열 배도 넘는다. 이 사교육 강박은 대체 뭐냐. 한반도 거주민들 자식사랑이 각별해서냐. 천만에. 제 자식 안 예쁜 인종, 없다. 이건 자식사랑이 각별해서가 아니라 자식사랑을 그렇게밖에 못해서다. 왜? 그거밖에 몰라서. 학벌자산의 취득 이외 대체 뭐가 아이의 삶을 행복하게 할지, 부모 자신도 모르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도 모르니, 남들 하는 건 다 할 수밖에 없다. 혹여 자기만 뒤처질까봐. 그러니까 이 강박의 정체, 각별한 자식사랑이 아니라 유난한 낙오공포다.

얼마나 유난하냐. 영국에 서머힐이란 유명 대안학교가 있다. 이곳 입학생 중 유독 한국 학생들만 2, 3년 내 자퇴한다. 부모들이 다시 거둬가서. 아이들을 왜 다시 불러들이느냐. 애초 자연 속에서 제대로 된 인성교육 받으며 하다못해 영어라도 익히겠거니 보냈건만, 정작 아이들은 몇 년이 지나도록 수업 한 번 안 들어간다. 나무 위에 집이나 짓고 놀기만 하는데, 그걸 뭐라는 선생도 없다. 거기 방침이 그렇다.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기 전엔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렇게 놀기만 하는 데는 복잡한 언어도 필요 없는지라 몇 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영어문장 하나 구사 못한다. 그렇게 서머힐 2년차 아이의 영어가 국내 학원 두달 된 아이의 영어보다 못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부모들은 무너진다. 대안의 삶을 말하다, 구구단 늦다고 주저앉는 셈이다. 아이들을 거기까지 피신시킨 부모들조차, 그렇다.

2. 이 유난한 낙오공포, 식민과 전쟁과 독재와 궁핍의 한 세기를 겪어내며 국가가 아니라 가족이 마지노의 사회안전망이었던 곳에서, 생존본능으로 습득한 걸 게다. 더구나 우리네 공교육, 1등 이외 모두에게 열패감과 조바심을 체계적으로 학습시키는 시스템이고 보면, 그로 인한 집단 상흔,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어떤 낙오도 겪지 않게 하겠다며 대학생 된 자식의 수강신청까지 대신 하는 작금의 세태는 그런 과거로 변명할 수준이 아니다. 거기서부턴 이미 질환이다. 아이들이, 부모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도구일 순 없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로 하여금 오직 최선의 경로만 걷게 하겠다며 모든 선택을 대신 하는 거, 사랑도 아니다. 오늘은 다른 이야기 다 접고 이 대목만 강조하자. 그거 결코, 사랑, 아니다. 오히려 자식의 삶에서 모든 실수를 제거하겠다는 시도는, 아이가 그런 오류를 통해 스스로 배울 자신의 삶, 그 자체를 박탈하는 거다. 그건 존재에 대한 폭력이라고. 그런 권리, 누구에게도 없다.

아이들을 사랑 말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세상을 상대하는 법은 아이 스스로 배워갈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억지로 그 속도를 조절하고 통제하려는 노력, 멈춰야 하는 거다. 그 인내가, 진짜다. 그렇게 아이들을 자신과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바라보는 거, 그게 진짜 사랑이라고. 그리고 그게 존재에 대한 예의다.

3. 드물게 서머힐에 남겨진 소수의 한국 아이들이 그 이후 겪는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더 재밌는 놀이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위해선 더 세련된 언어가 필요하다는 걸 스스로 깨닫는 순간, 언어능력은 급속도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아이들과 관계를 맺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제 관심이 가는 분야를 찾게 되는데, 공부는 그때부터 스스로 시작한다. 그 아이들이라고 세상에 나와 모두 유명인사가 되거나 하는 건 물론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다른데, 자신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언제나 정확하게 안다는 거다.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를 아는 거다.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결국, 그러자고, 사는 거 아닌가.

PS - 다만 대안학교 환상은 갖지 마시라. 지금 당신에게 대안교육은 그저 또다른 방식의 엘리트 교육일 뿐이다. 당신 낙오공포부터 다스리시라. 마지막으로, 행복은 적금 들 수 없는 거다. 30대 유예한 행복, 50대에 인출할 순 없는 거라고. 아이 학원비의 적어도 절반은, 당신의 행복에 투자하시라. 그래도, 된다.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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