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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14 22:14 수정 : 2009.01.15 11:06

의사 표현 모호한 그녀, 나를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어요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Q 의사 표현 모호한 그녀, 나를 좋아하는지 확신 없어 자존심만 상합니다

20대 후반입니다. 6개월 전 한 모임에서 그녀를 보고 반했습니다. 모임의 다른 남자들도 다들 상큼한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더군요. 그러다 3개월 전 우연한 기회에 둘이서만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고 이후 자연스럽게 매주 영화관이고 미술관을 갑니다. 문제는 만나고 있는 동안은 무척 즐거운데 헤어진 후 그녀가 먼저 전화를 하는 법이 없다는 겁니다. 매사가 그렇습니다. 은근한 제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줘도 뭔가 똑 부러지는 대답이 없고 웃기만 합니다. 손을 잡아도 빼진 않지만 그 이상의 적극적인 반응은 없어 3개월째 손만 잡고 있습니다. 게다가 모임의 다른 남자들이 전화를 하면 제가 옆에 있어도 반갑게 받는데, 공식적인 연인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고백했다가는 저 혼자 오버하는 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구요. 요즘은 저만 손해 보는 느낌에 자존심도 상합니다. 그녀 마음은 어떤 걸까요. 답답합니다.

A 돌쇠의 도는 땅에 떨어지고…

1. 이런 팔만대장경으로 빨래하는 소리를 들으면 전두엽이 다 까끌하다. 손 잡아도 반응이 없다고. 어떻게 콘돔헤어밴드하고 침이라도 뿜어주리. 공식 연인인지 불분명해요. 문광부 공인 연인3단 단증 만들까. 빼지 않는 게 반응이요 3개월 자체가 인증이지, 이 퐁퐁으로 가글할 자야. 근데 이런 사연, 요즘 부쩍 는다. 그러니까 이거, 사실은 개인이 아니라 세태가, 그런 거라. 하여, 오늘은 그 세태 이야길 좀 해보자.

2. 수컷들이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섹슈얼 드라이브, 한마디로, 무식하다. 몸에 꼬추가 달린 게 아니라, 꼬추에 몸이 달린 거라. 그 후안무치한 욕정의 사회적 순치, 문화와 종교의 담당이었으되 그 규범들의 태생적 한계 또한 자명했으니 그 역시 결국 수컷들의 작품이라. 수컷 지들끼리 사바사바 한 게 수컷 편향 아닐 도리 없다. 하여 유사 이래 성규범 일반은 그렇게 거의 일방적으로 수컷 이익에 복무해왔다. 갈비뼈로 암컷 만들어 미인대회에 세운 게, 암컷이었겠냐고.


그러나 어떤 작용에도 반작용은 따르는지라 그 무식한 근육중심 인류사 일정 시점에 하위문화 하나가 탄생하니, 기사도 따위의, 강하지만 부드러운 남성상이다. 기사들의 호전성을 통제 가능한 봉건 질서에 포섭해야 했던 정치적 필요와 야만적 기사계급 스스로의 얄팍한 명예욕이 버무려낸 판타지였지만, 그리고 실제 기사들의 보호 대상은 극소수 귀부인들이었을 뿐 일반 백성은 여전히 겁탈의 대상이었으나, 음유시인의 찬미와 궁정문학의 영웅 서사에 올라탄 이 기사도, 어느 순간부터 로맨틱한 연애 코드의 상징이 된다. 수컷다운 구애란 모름지기 일편단심 들이대며 선택권 일임하는 무조건적 여성 숭배여야 한다는 도식, 그리 탄생한다.

이 연애 프로토콜, 기실 우리 연애 시장에서도 나름 창궐하였더랬다. 먼저 들이대는 데 있어 유불리를 따지지 아니하고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그녀에게 영원히 있사옴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모든 자존심을 그녀 몫으로 기꺼이 헌납한 채 오로지 관계 자체의 황홀함을 탐닉하는 데 제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 그들, 마님을 경외한 나머지 주종관계로 복속됐던 마당쇠들과는 달리 아씨를 흠모하되 결코 관계 주체로서의 독립성을 놓지 않았던 근대적 연애자들, 틀림없이 존재하였으니 바로 돌쇠들이라. 서구에 기사 나부랭이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그렇게 돌쇠가 있었더랬다. 최근까지도.

그런데. 그녀 안위와 행복 위해 제 한 몸 초개와 같이 투척하던 연애 시장의 그 건아들이, 근자 들어 빛의 속도로 종적을 감추고 있다. 이제 뻐꾸기 시도 전에 도주로부터 확보하고 혹여 나만 손해 볼까 끊임없이 간을 보며 수시로 속도 조절 자행하는 밀당 수작까지, 온갖 잔기술 구사하는 수컷들이 갑자기, 사방에서, 동시다발로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3. 이 수컷들 연애 간땡이의 대규모 축소 현상, 경제력과 피임술 그리고 여권 신장이 구성한 새로운 권력 환경에, 수컷들 스스로가 자신을 맞춰가는 적응이라 할 수도 있겠다. 성은 언제나 권력의 문제였으니까. 그 지형이 변하면 새로운 사회적 진화, 진행될밖에. 그러나 그 해석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해서 그 현상을 바람직하게까지 만드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못 봐주겠다. 남자가 화장하고 성형하고 치마 입어도 괜찮건만, 이건 못 봐주겠다. 소통하고 연대하고 공감하는 여성성의 장점만큼이나 연애에 있어 남성성 고유한 미덕 존재하는 거다. 어설프게 변호했다간 마초로 몰려 뼈도 못 추릴까봐 먹물들마저 닥치고만 있더라만, 늠름하면서 인문학적으로 각성한 마초, 그거 가능한 거라고.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인간에 대한 예의 지키며 덤덤하게 세련된 수컷,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과묵한 열정, 단호한 감성, 있는 거라고. 왜들 그렇게 자잘해졌나. 아, 쪽팔려, 씨바. 땅에 떨어진 돌쇠의 도를 되찾을, 네오 마초가 필요한 시대다.

PS - 정작 당신한테 할 말 깜빡했다. 간단하다. 연애,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자존심, 그걸로 뭐하게. 전부 그녀 주시라. 자기연민 집어치우고 오로지 직선으로, 정면으로, 액면가로 들이대시라. 그들에게 복이 있나니, 여심은 결국 그들 것일지니. 연애에 임하는 마땅한 수컷의 자세에 그 이상이 없노라. 아멘.

김어준 딴지 종신 총수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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