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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17 18:07 수정 : 2008.12.19 16:49

어른이 되자! 내가 누군지 알고 살자!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인터뷰

어른이 되자! 내가 누군지 알고 살자!

‘그까이꺼 아나토미’를 연재하는 김어준씨는 자칭 ‘야매’ 상담가다.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학 학위가 없는데다 상담 관련 서적을 탐독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의 경험과 삶의 방식을 기준 삼을 뿐. 그래서 그는 문득문득 궁금하다고 한다. ‘정통’은 뭐라고 할까?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야매’ 상담가 김씨는 ‘정통’ 상담가를 찾기로 했다. 김씨가 찾아간 상담실의 주인은 남성 심리 분석 등의 칼럼으로도 널리 알려진 저명한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다. 둘은 이미 서로를 잘 아는 사이. ‘레이지보이’라고도 하는 편한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상담을 시작했다.

김어준(이하 김) : 사실 상담하면서 어려웠던 적은 없다. 그냥 내가 생겨먹은 대로 말하니까.(웃음)

정혜신(이하 정) : 그게 문제네.(웃음)

김 : ‘그까이꺼…’를 보고 정통 상담가로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사실 ‘그까이꺼…’는 형식은 일대일 상담이지만 실제로는 그 독자가 보낸 사연으로부터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공통분모를 추출해내는 거니까,상담+칼럼이라고 봐야 한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어떤가? 칭찬 위주로 말해 달라.(웃음)

정 : 답은 맞다. 다시 말해 궁극적 지향점은 내가 하는 상담이나 ‘그까이꺼 아나토미’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실제 상담에서는 문제의 답을 알려 준다고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상담의 핵심은 그 답까지 가는 과정이다. ‘그까이꺼…’는 지면의 한계상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같은 결론이지만 본질적인 부분이 빠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김 : 정식 상담에서는 공감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건가?


사진 왼쪽부터 정혜신, 김어준
상담은 공감의 과정이 핵심

정 : 그러면서 문제를 느끼는 피상담자의 입에서 결론이나 답이 최종적으로 나오게 되는 거다. 그래야 치유적 힘이 생긴다. 상담 칼럼은 ‘외부 수혈’인 셈인데 가끔 오프라인 상담에서도 그런 식으로 카리스마 있게 쭉 끌고가는 상담자들이 있다. 그러다 보면 피상담자는 결국 비슷한 문제에 다시 봉착했을 때 또 상담을 하러 온다. 상담자와 피상담자 사이에 바람직하지 못한 심리적 의존 관계가 만들어지는 거다.

김 : 지면과 대면, 그리고 공개와 비공개 상담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정 :맞다. 김어준씨가 하더라도 만약 온라인상에서 쌍방 간으로 진행하게 된다면 훨씬 다이내믹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독자들이 ‘그까이꺼…’를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고 그걸 가지고 친구나 선배와 상담을 하면서 스스로의 문제를 소화해내기도 할 거다. 그런 과정도 큰 의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칼럼은 과정의 시작점을 던지는 것일 수도 있다.

김 :지면 한계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거 빼먹지 말고 넣어 달라.(웃음)

정 : 방어적인데? 책 팔려고 그러나? 김어준씨 이렇게 찌질한 모습은 처음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지.(웃음)

김 : 장사를 위해선 무너져도 된다.(웃음) <한겨레>뿐 아니라 다른 잡지에서도 오랫동안 상담을 하다 보니 사연들의 공통분모랄까 최소공배수가 도출되더라. 첫째로 질문이 틀렸다. 예를 들어 ‘돈이나 사랑이냐’의 변주 질문이 무수히 들어오는데, 돈이냐 사랑이냐는 둘 다 답이기도 오답이기도 하다. 사랑 부족해도 밍크로 보상되는 사람도 있고 밍크만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질문은 내가 언제 더 행복한가, 무엇을 견딜 수 있고 없나여야 하는 건데 엉뚱한 질문을 하는 거다. 둘째로 질문 대상이 틀렸다. 그걸 누가 답해 주나? 자기한테 물어봐야 하는 걸 친구한테, 완전히 허상에 가까운 연속극 보면서 답을 찾는다. 이건 사람들이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 몰라서 그러는 거다.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도 모른다는 게 나한테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남 이야기만 듣고 설득된 적 있수?

정 : 쉬운 거 같아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지.

김 : 하나 덧붙이자면, 자신이 너무나 중요하다. 물론 자기애라는 건 당연히 필요한 거다. 하지만 엄청난 일을 겪고 있다면서 A4지 열 장 넘게 보낸 사연 다 읽고 나면 이 정도 고민은 다 있잖아?(웃음) 허탈해진다. 소설 한 권이라고 풀어놓는 이야기가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인 거지.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다, 자기밖에 모른다 이런 비판 하지만 내 보기에는 이기적인 게 아니라 자기 객관화를 못 하는 거다. 예를 들어 내가 교통사고 난다면 괴로울 거다. 하지만 왜 하필 내게만! 이런 소린 안 한다. 안 났더라면 좋았을걸이라고 말하겠지.

정 : 나도 애들에게 가끔 말하는 게 엄마가 죽으면 슬프겠지만 너무 슬퍼하지 말고 에이, 엄마가 안 죽었으면 좋았을걸 이 정도로 생각하라는 거다.

김 :그런데 사연들 보면 온 우주가 무너진다. 자기가 곧 우주인 거다. 또한 불확실성이란 삶의 본질적 조건인데 거기 자기 힘으로 대처해 본 적이 없다. 스스로가 아니라 부모가, 늘 누군가가 대신 처리해 주는 데 익숙하니까 불확실성 자체를 문제 삼는다. 이 불확실성과 대면할 때 어른이 되는 건데, 늘 대신 해결해 줄 사람을 찾는다. 나이 먹고 늙어도 어른이 되지 못하는 거다. ‘정통’이 볼 때는 왜 그런다고 보나?(웃음)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그림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정 :당연한 거 아닐까? 나는 인간의 정신은 진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으로는 이전 세대가 이뤄놓은 게 후세의 생활에 편입되고 또 다음 단계에 올라가는 식으로 축적, 진화되지만 정신은 아니다. 부모의 학식이 자식에게 편입되는 게 아닌 것처럼. 모든 인간이 자기가 직접 체험해 보기 전에는 이해도 안 되고 설득도 안 된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직접 몸으로 부딪치거나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과정이 철저히 봉쇄된다. 겪은 만큼 성장하고 시행착오나 실수도 해보면서 이걸 해석하고 자기 확신으로 연결되는 순환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곳곳이 막혀 있다. 사회적, 문화적, 가정적으로 모두 말이다.

김 : 결국 공교육의 문제와 연결된다. 우리 교육은 상위 1프로를 뺀 나머지를 낙오자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패배의식을 체계적으로 내면화한다. 명품 유행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낙오자가 된 99프로가 비싼 가방 메고 잠시라도 일류라는 착각과 위로를 받는 거지. 그래서 명품은 우리나라에서 과소비가 아니라 정신적 위로다.

정 : 불안이 없으려면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를 느껴 볼 수 있어야 자기 확신도 생긴다. 연애 등의 인간관계나 여행, 예술적 체험 같은 게 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경험인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맨 뒤로 밀어놓는다. 인간관계만 해도 살아가는 데 그보다 중요한 재산이 없는데 학원 가고 칠판 보느라 관계맺기의 훈련도 당연히 밀린다. 흔히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도 내면적으로는 불행한 경우가 많은데, 대다수는 관계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건 제대로 관계 맺을 수 있는 각성된 개인, 즉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결혼의 갈등도 같은 거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른’이 아니면 사랑을 유지해나갈 수가 없다.

김 : 멋진 말이다. 이거 내 말로 써 달라.(웃음)

정 : 그래서 심리 상담을 다르게 표현해 보자면, 내게 물어봐야 할 나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엉뚱한 사람에게 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도록 돕는 과정인 거다. 스스로 생각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는 스몰 쇼크를 느낀다. 심리 관련 책을 읽으며 자기를 대입시켜 보면서 경험하는 지적인 깨달음과는 다른 유의 충격이다. 감성적 깨달음은 언제나 충격을 동반한다. 기업가들 상담을 할 때 ‘그때 당신은 뭘 느꼈나’ 물어보면 갑자기 사람이 멍해진다. 그러고는 느낌이 아닌 생각을 말한다. 그럼 재차, 생각 말고 당신의 느낌을 말해 달라고 하면 다시 블랙아웃이 된다. 그렇게 정지된 순간을 직접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다. 내가 이런 존재구나, 내가 느낌 하나 없이 살아왔구나 하는.

자신감과 자존감의 차이

김 : 그 말은 내 식대로 말하면, 사람들이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는 거다. 영화 <데어 데블>을 보면 주인공이 장님인데 소리가 공간에서 부딪혀 돌아오는 걸 감지해 그 윤곽으로 상황을 파악한다. 그처럼 자기가 했던 행동이나 결정 등이 반향을 일으켜서 내게 되돌아와 만드는 윤곽선이 바로 자신이다. 그중에는 맘에 안 드는 것도 있지만 그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다. 그걸 받아들이면서 자신에 대한 관심이나 잘 보이려고 과도하게 하는 노력이 사라지며 만들어지는 게 자존감이고.

정 : 관심이 없어진다기보다 자기에 대한 타인의 시선에 매달리지 않게 되는 거지.

김 : 같은 말이다.(웃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헷갈린다. 20대의 나를 생각하면 자신감은 있었다. 내 능력에 대한 신뢰. 하지만 그걸 남한테 입증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0대를 넘어가면서 나를 입증해 보이겠다는 강박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정 : 어떤 계기가 있었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도 마음의 변화 같은?

김 :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어느 날 문득 보니 내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남의 승인 필요 없이 그저 내가 생겨먹은 대로 즐겁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20대엔 내가 이 정도입니다, 봐 주세요 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그런 생각 자체를 깡그리 잊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그로부터 즐거움을 누리는 데 집중하고 있더라.

정 : 그런 확신을 스스로 했기 때문에 외부에 연연하지 않는 거다. 돈이냐 사랑이냐의 문제도 고명한 선생님한테 물어봐서 답을 얻는 게 아니라 총수처럼 ‘제대로, 또박또박’ 살다 보면 자명해지는 거다. 절대적으로 내가 나를 느껴서 얻는 게 자존감이라면, 자신감은 외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김 :자신감은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패배의식을 동반한다. 외부에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제시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 예를 들어 공부 잘해 남에게 인정받아 만들어진 자신감은 나보다 공부 잘하는 놈 앞에서 무너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스스로 구축한 자존감은 남의 승인이 필요 없다. 물론 남이 날 좋게 봐 줬으면 하는 거야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니어도 자존감이 튼튼하면 나는 그대로다.

정 : 그렇게 자존감이 내재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땐 내부 시그널도 금방 온다. 스스로를 견제하는 자아가 빠르게 작동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남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 보면 불행하게 살 가능성도 낮아진다. 외적 상황이 자신을 몰아가도 스스로 그렇게 안 살도록 결정하게 되니까. 많은 부부들이 관계가 안 좋아도 애가 결혼할 때까지만 참고 산다고 하는데,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애가 행복하게 살 가능성은 무척 낮다. 부모의 행복하지 않은 삶을 공기처럼 마주하며 자란 아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을 삶의 예외적인 상황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불행해져도 문제의식이 별로 없다. 불행을 쉽게 수용한다. 행복을 느끼고 사는 부모와 산 아이는 자기 삶이 그런 조건에서 벗어나면 자기 안의 경계경보가 빠르게 작동한다. ‘내 삶이 왜 이래? 이건 아니잖아’ 한다.

김 : 사연을 보다 보면 사회적 위치나 여러 외적 조건이 좋은데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정 :레지던트 1년차 때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 왜 모든 사람의 문제는 열등감이죠?” 상담을 하다 보면 모든 문제가 다 그리로 귀착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을 만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김 :나는 그런데. 이건 정신병일까?(웃음)

정 : 좀 정신병일 수도 있다.(웃음)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사람들 중에 의외로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많다.

김 : 전문가로서 자존감을 어떻게 키워야 한다고 보나?

정 : 자연을 느끼거나 사람 관계 안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느끼거나 그런 다양한 접촉 경로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느껴 봐야 한다. 인간관계만 해도 어떤 상대방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계가 형성된다. 소심한 남자와 만나던 여자도 마초를 만나면 기대고 의지하는, 약한 남자와 있을 때는 묻혀 있던 수동적인 면이 발현될 수 있고.

김 :그래서, 연애를 많이 해야 된다고 난 항상 주장한다.

정 :그렇지. 특히 연애는 굉장히 밀착된 관계니까 자기 욕망의 치졸함 등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자신의 감정의 바닥을 바라다볼 수 있는 경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감정의 바닥을 본 사람은 그런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식 위해 살다가 자식 불행하게 만든다

김 : 그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자기 객관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대체로 자기 인생 가지고 소설 쓰게 된다.

정 :신파를 만드는 거지. 자기 객관화는 망원경으로 멀리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건데, 정신분석 과정을 보면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쓴다고 말할 수 있다. 때로는 자기를 멀리서 내려다봐야 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아주 가깝게 줌인 해서 나를 들여다봐야 할 때도 있다. 망원경만 쓰다 보면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데, “다 그런 거 아닌가요? 다른 집 여자들도 그 나이 되면 다 그렇다던데…” 이런 식으로 과도한 일반화나 합리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인간의 개별성과 일반성을 렌즈를 당겼다 밀었다 하면서 적절히 봐야 한다.


김어준의 그까이꺼 인터뷰
김 : 연애나 부부 관계뿐 아니라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자기 객관화는 중요하다. 한국 사회가 특히 안 되는 부분이 이건데 우리는 부모가 보장자산이다.(웃음)

정 :부모 자식 간이건 연애건 자아 찾기 문제다. 일생을 투쟁해서 얻는 게 자아다. 부모 자식처럼 유난히 구속하는 관계일수록 자아 찾기 투쟁이 극대화된다.

김 :맞다. 가장 중요한 게 자기 공부다. 그래서 <건투를 빈다> 책을 참고서로 자기 공부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웃음)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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