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못하는 모든 처자들에게 고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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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Q 혼자 사는 데 지쳐가지만 연애도 두려워요. 제대로 된 사람 만나 바로 결혼할 수는 없을까요? 27살인데 연애 경험 전무합니다. 대학 때는 남자에 대한 두려움과 부모님께 죄짓는 것 같아 연애를 안 했습니다. 20살 때부터 대학과 직장 때문에 혼자 사는데 한번씩 아버지가 약주 드시고 전화하실 때 제가 밖에 있으면 “너 연애 하냐?”고 물으시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오그라들고 꼭 죄지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게 저를 먹여 주시고, 학비 대 주신 부모에 대한 충성심에 기인한 건지, 일 년 절반 정도를 취해 사시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인지, 아버지든 동생이든 주위에서 제대로 된 남자를 못 봐 남자를 불신해 그런 건지, 이런저런 추잡한 꼴 겪지 않고 제대로 된 사람 만나 바로 결혼하고 싶다는 저의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사는 것에 지쳐갑니다. 뭐가 잘못된 걸까요? A 0. 안타깝도다. 세상엔 대체할 수 없는 게 있다. 연애가 그중 첫째다. 연애가 북돋는 몸과 정신의 활력, 비할 데 없나니 인류 문명도 결국 그 에헤야 디여 에너지의 부산물이라. 하여 난 제대로 연애 못해본 자들,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자들로 친다. 어쩌다 일이 그 지경이 됐나. 따져 보자. 1-1. 먼저 일반론 몇. 우리 모두는 부모에게서 선악 시비의 원형을 학습한다. 특히 유사 이래 딸 교육의 지향점은 결혼시장에서의 교환가치 극대화. 모든 문화권에서 딸은, 자산이었으니까. 그리하여 시대를 초월해 딸 훈육의 골자 커리큘럼은 순결과 정절. 이 학습과정서 아이가 부모로부터 과도한 도덕적 억압을 내면화하는 수, 생긴다. 그런 아이들, 그 엄격한 준거에 평생을 죄의식으로 괴롭다. 심지어는 결혼해 배우자와 섹스할 때조차 부모가 떠오른단 사람 있어요. 이거 프로이드 식으로 말하면 종양처럼 비대해진 초자아와 왜소한 이드의 분열로 애꿎은 에고가 고생하는 거라. 1-2. 하나 더. 아이가 세상과 맺는 모든 관계는 결국 태어나 첫 번째로 경험했던 정서적 유대, 바로 부모와의 관계를 복습하는 거다. 소위 애착이론. 부모와 안정적 애착 경험한 아이는 친구와 연인으로 그 관계가 확장, 전환되어 갈 때도 긍정적으로 대처한다. 반면 그러지 못한 아이는 사랑받지 못할 거란 공포에 아예 관계를 맺지 못하거나, 과도하게 집착하는 강박적 연애에 빠지기 쉽고. 부모가 메우지 못한 실존적 불안에 대한 보상을 연인에게서 찾는 거지.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 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되는 셈이다. 1-3. 세 번째. 여자들, 연애에 있어 남자들보다 보수적인 거, 생물학적 정합성 있다. 애니타임 방사가능-무한리필 정자공장 수컷에 비해 임신과 육아로 연애시장에서 장기 퇴출되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그들의 방어적 경향성은 진화적 관점에서 당연한 귀결이라고. 괜찮은 상대를 놓치는 데 따르는 비용보단 나쁜 상대를 잘못 택해 치를 대가가 훨씬 크니까. 수컷의 사랑을 과소 추정하고 상시 의심하는 인지적 편향성을 갖는 게 유리할밖에. 이 경향성이 소녀 감수성이나 자의식 과잉 따위와 어설프게 결합하면, 이제 일이 커진다. 소설 쓰고 자빠져 있거나 지 혼자 선녀도 등장하고, 때로 선택 오류가 두려운 나머지 아예 중간 생략하고 바로 결혼하려는 처자들도 출현한다. 결혼이, 결론인 줄 알고.2. 이제 당신 이야기. 당신, 전술한 일반론 모두에 일정 정도 해당될 게다. 당신 삶의 디테일 모르면서 그리 말하는 건 일반론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당신 같은 사람 사실은 무지 흔하단 소리다. 27 아니라 37에도 수두룩하다. 그들 수만큼이나 사연 다양하나, 실은 다 그게 그거다. 하여 그들 모두에게 하고픈 이야기 역시 일반론이다.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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