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11.12 17:11 수정 : 2008.11.15 14:22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인간, 누구나 기대야 산다

Q 이혼했습니다. 그는 주변머리 없고 사회성 부족하며 소극적인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동등한 인격체로 대접받길 원하면서 남자는 나보다 우월하길 바라는 건 모순이란 자기검열도 있었고, 또 그가 날 이해해 주는 만큼 그의 단점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단 생각이었죠.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아이 같은 순수함의 이면은 지독한 자기중심성, 무책임함, 배려와 예의의 결여더군요. 남친으론 꽤나 ‘리버럴’했던 그가, 남편이란 위상에 기대 제게 ‘아내 의무’를 강요하는데, 모욕감과 경멸을 피할 수 없더군요. 평등의식으로 남자에 기대는 데 거부감이 있었던 전, 이 실패는 제 잘난 ‘독립성’이 중대 원인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근데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자는 자기보다 잘난 남자 만나 그 그늘에 기대는 게 행복하단 ‘통설’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님 무소의 뿔처럼 혼자 외롭게 살 각오를 해야 하나요?

A 0. 똑똑한 독립 여성들의 어리석은 연애 선택, 이런 사례, 무지 많더라. 대체 왜들 그러나? 아무리 지적 능력과 연애 지능이 무관하다지만 말이다. 그 참상이 애처로워 오늘 사연 택했다. 보자.

1. 일반론 한 자락부터 먼저. 결혼이란 게 그렇다. 결혼, 그 사람이 아니라, 아차 그 사람인 줄 안 자와 하는 거다. 제 욕망이 영사한 홀로그램에 지가 넘어가는 거지. 하여 사기당했단 결혼 후 원망은 애초 자신의 착시에 그 본원적 귀책사유 있는 거다. 기실 따지고 보면 그런 쌍방 오판 없인 결혼의 성사 빈도 자체가 현격히 낮아질 게다. 불완전한 인간이 제한된 정보와 시간 안에 다른 불완전한 인간 하나를 평생 동지로 간택하는 일대 도박을 감행하는 데 그 정도 착시조차 없다면 대체 어느 간 큰 인간이 결혼을 하겠나. (그 맥락에서 이 착오는 그저 실수가 아니라 어쩌면 종의 보존을 위해 전략적으로 진화된 인간 심리의 능동적 자기기만일지도 모른다.) 결국 제 수용한계 안에 있는 착시였냐 하는 문제만 남는 거다.

2. 이제 당신 이야기. 능력 있는 여자들, 으레 수컷들 긴장케 하는 법. 근데 그렇게 일반 수컷들이 그녀에게 위협 느끼며 가드 높일 때 그녀와의 전투가 엄두 안 나는 일부 식물 수컷들, 그녀 능력을 찬양하거나 아예 그녀 편에 서는 교제 전략을 택한다. 그녀 무장해제가 시작되는 건 그 지점부터. 각 세우는 수컷들에 지친 그녀, 남자에 대한 일반적 기대치와 투항한 그의 실제 능력치 사이의 갭을 스스로 알아서 타협, 절충한다. 어차피 남자의 사회경제적 부양 능력이 최우선 순위 아니기에 잘난 남자의 거절 리스크 감당하느니 그 편이 자존심도 서고 안전도 하다. 더구나 그녀는 남자에 기생할 생각 없는 독립적인 여자여야 하니까. 날 필요로 하는 모자란 남잔 날 버리지 않을 거란 잠재의식도 한몫하고.

양자, 그리 커플이 된다. 그러나 그 남자의 결혼 전 리버럴은 암컷을 제 뜻대로 제재하고 통제할 주제가 스스로 못 된다 여긴 수컷의 생존전략. 결혼 후 획득한 남편 지위의 전횡이 그 방증. 그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인 게지. 그녀, 그런 그가 배은망덕하다. 더구나 남편이란 지위로부터 나오는 부당한 압력에 굴종해야 하는 자신의 일상이, 독립적 여성의 삶이란 기준에 미달되는 게 스스로 수치스럽다.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부양 능력 없는 수컷으로 하여금 자기모멸감을 견디기 힘들게 하는 것처럼. 결국 파경.

어서 꼬인 건가? 먼저, 오만. 당신은 그의 약점까지 사랑한 게 아니라 그 정돈 감당할 수 있다 자신한 거다. 관계 우위에 선 자가 제 아량을 과대평가한 게지. 그런 권력의 불균형은 상대에 대한 통제력이 자신에게 있단 착각을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건 상대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자신의 대응뿐이다. 게다가 당신은 합리적이기만 했다. 연애가 언제 합리로 되던가. 그럼 소크라테스가 미스 그리스 얻었게. 마지막은 당신의 강한 여자 콤플렉스.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3. 내 생각은 그렇다. 미쳤다고 뿔 되나. 연애 해야지. 다만 지속 가능한 관계의 핵심은 균형이라는 거. 어떤 인간도 불균형을 평생 지탱할 정도로 강할 순 없다는 거. 그러니 체급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거. 기대지 말아야 한단 의식 따위 안 중요하다. 인간, 누구나 기대야 산다. 인간을 넘어서는 젠더는 없는 거다. 그리고 머리로 연애하지 말라는 거. 연애는 몸과 필로 하는 거다. 오늘은 내 책 광고해야 하니 다소 후다닥 끝낸다. 나도 먹고살아야지. 딱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섬세한 곰을 찾으시라. 행운을 빈다. 졸라.


P.S: 섬세한 곰에 대한 해설은 담편에.

딴지 종신 총수

| 김어준의 인생 매뉴얼 <건투를 빈다> 출간 이벤트 |

어준 엉아, 내 건투를 빌어줘

<건투를 빈다>
〈ESC〉독자 30분을 추첨해 김어준 상담집 <건투를 빈다>를 드립니다.

● 응모 방법: ① 한겨레 프리미엄 사이트 ‘하니누리’(www.haninuri.co.kr)에 로그인한다 ② 이벤트 메뉴로 들어가 <건투를 빈다>를 클릭한다 ③ 자신에게 건투가 필요한 이유를 쓴다.

● 응모기간: 11월 17일~12월 14일

● 발표: 12월 18일 ‘하니누리’ 사이트. 당첨되신 분은 김어준씨가 오프라인 행사장에서 실시간으로 사인해주는 책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주요기사]
▶ “이 대통령 ‘왼쪽 치우친 방송, 가운데 갖다 놔라’”
▶ 헌재재판관 9명중 4명, 종부세 ‘0원’ 된다
▶ 10만원권 보류 이유? ‘빨갱이 김구가 싫어’
▶ [한겨레21] 맨살의 욕망 ‘비너스와 비비안’
▶ [한겨레21] 혜원은 ‘여자 신윤복’을 어찌 볼꼬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