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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9 17:49 수정 : 2008.11.02 11:13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Q 억지로 학원 등록, 골프 수업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늘 강요하는 여친에게 지쳤어요

1년 된 여친이 있는 30대 회사원입니다. 이라크 파병 때 부시를 위한 구국기도회에 갔다는 그녀 신앙관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매사 확신에 찬 그녀에게 끌렸습니다. 사귀면서부터 그녀는 저의 일상에 개입하기 시작했죠. 친구들과의 모든 술자리를 끊게 만들고 새벽 영어학원, 저녁 일어학원에 다니게 하더니 고급사교는 골프로 한다며 골프를 배우게 하고, 부는 하나님 사랑의 증거라며 각종 금융기법 설명회 참석까지 독려했죠. 처음에는 저에 대한 관심에 기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지치더군요. 그런 제게 그녀는 자기를 사랑한다면서 그 정도도 못하냐고 다그칩니다. 그게 다 오로지 저를 위해서라고 하면서. 그리고 그때마다 제 게으름을 악으로 규정하는 일장훈시를 덧붙이죠. 전혀 타협의 여지가 없더군요. 항상 저만 나쁜 놈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1년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젠 정말 몸이 피곤해서 말이 아닙니다. 그만하고 싶어요. 그녀의 저에 대한 사랑은 유지하면서 그녀로 하여금 이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요?

A 0. 음, 좀 뜬금없다만 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뭔 소리냐. 일단 보자.

1. 채식주의자 아니면서 개만은 먹으라고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진정성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 주장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 사고의 소산일 뿐이다. 그거 소한테는 문의한 적 없거든. 니들 실존의 목적은 등심이냐고. 개 못지않은 지능의 돼지와도 니들 하복부 좀 지져 먹겠다고 사전 협의된 거 아니거든. 이 동물은 되고 저 동물은 안 된단 사고 자체가 당사자 동물의 의지와는 하등 무관한, 일방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들만의 기준일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 주장의 정당성을 확신한다. 사랑이란 대의로 당당하기도 하다. 그들의 유난한 개 사랑이야 죄가 없다. 그들 착오는 그 각별한 사랑 자체에 기인하는 게 아니라, 그런 자신들의 기준이 모든 사람의 보편규범이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 일방적 자기중심성에서 비롯되는 거다. 이런 걸 가오잡는 말로 일종의 허위합의 효과라 한다. 자기 사고의 보편성을 과대평가하는 거라.

그런 착각으로 그들은 수캐를 거세한다. 발정나면 아무 암캐에게나 덤비는데다 집 나가 유기견 되기도 하기에 아예 거세해 그 성적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 개 자신의 복지에도 득이라는 거다. 한 개체가 타고난 본능을 자신의 편의를 위해 강제 제거하는 것도 잔인하지만 그 행위 자체보다 훨씬 더 무서운 건, 그걸 사랑의 소산이라고 아주 간단하게 합리화해 버린다는 점이다.


2. 즉자적 자기중심성이 위험한 건 그래서다. 그들은 스스로 가공한 명분에 기꺼이 설득되는 방향으로 세상을 본다. 석유를 위한 이라크 침공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해방전쟁이라 주장하는 부시의 기만이 미국 일반에게 그렇게 쉽게 통용되는 이유도 거기 있다. 그들에겐 미국이 일개 국가가 아니라 다른 모든 국가의 표준이자 보편이며 객관이다.

그런 에고센트릭이 불쌍한 이라크인 해방시키고 민주주의 전파한단 명분을 단박에 이해하게 한다. 표준이 불량에게 교정의 은혜를 베푸는 거니까. 여기서 이라크인들이 미국에 그런 요청을 결코 한 적이 없다는 건 고려 대상이 못 된다. 개가 성적 스트레스가 심하니 날 거세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는 게 고려 대상이 아닌 것처럼. 그런 판단은 주인이 알아서 하듯 미국은 이라크인들에게 뭐가 옳고 좋은 것인지 자신들이 대신 판단해도 된다고 여겨 버린다. 일이 결정적으로 틀어지는 건 그 지점부터다. 선악과 시비의 해석권한을 일방 독점하는 자기중심성 아래서는, 선의가 하릴없이 폭력이 된다.

3. 이제 당신 이야기 해 보자. 각오하시라, 좀 잔인하다. 사태의 심각성으로 보아 이 정도는 잔인해줘야겠다. 그녀는, 개 주인이다. 씨바, 말 해놓고 보니 생각보다 훨 미안하네. 그럼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부시다. 어째 이게 더 나쁜 거 같다. 여하간 할 수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그녀가 왜 그리 된 건지는 나도 모른다. 품성과 종교의 합작품이려나. 중요한 건 그녀가 지금 당신에게 하고 있는 거, 그거 사랑 아니라는 거다. 그거 사육이자 교정·교화다. 그녀는 사랑의 이름으로 은폐한 속물성과 자기중심적 교리로 당신을 거세하고 침공하고 있다. 목하 당신 개조중이라고.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그거 정말 사랑 아니냐. 어. 그 행위 속에 일정한 선의 존재한다 해서 그걸 사랑이라 한다면 수캐의 거세도, 이라크인의 죽음도 모두 사랑이라 해야 하는 거다. 해서 적어도 난, 그거 도저히 사랑이라 못 하겠다. 당신의 피로,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휴식을 허락지 않는 그녀, 나보다 백배는 잔인하다. 그러니 ‘저에 대한 사랑은 유지’ 했음 한단 당신 바람은 애초 그 전제부터 잘못된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사육에 대처하는 법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다. 주인이 흡족할 만큼 완전하게 사육당하거나, 거부하고 우리를 탈출 하거나.

생환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 고민상담은 go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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