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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01 19:32 수정 : 2008.10.05 10:10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Q 부모님 뜻 거스르고 떠나려는 긴 여행, 죄책감이 발목을 잡아요

28살 여자 간호사입니다. 병원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서 소심한 제겐 무척 힘든 직업이죠.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습니다. 그 일엔 어학이 중요해, 재작년 사직하고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려 하자 부모님은 무조건 반대를 하셨죠. 넉넉한 집안 아니니 뜬구름 잡지 말고 빨리 돈 벌어 시집가란 거였죠. 아버지가 운동 나가시는 시간을 틈타 그야말로 야반도주를 해서 간신히 비행기에 올랐죠. 그때 어머니의 한숨, 무척 가슴 아팠습니다. 4개월 연수 끝에 한국에 돌아와 일단은 간호사 일을 다시 시작했고, 1년 6개월이 지나 이번엔 여행을 가려 합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하나씩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계획인데, 3개월 가량 동유럽과 중동을 여행하려고 합니다. 이미 사직서는 썼지만 집에는 아예 이야기조차 못 꺼내고 있어요. 괴롭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고 싶진 않아요. 어떻게 하면 제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할 수 있을까요?

A 0. 하고 싶은 걸 하려는데 부모 반대로 죄책감이 들어요. 괴로워요. 도와줘요. 이런 소린데. 죄책감이라. 만약 당신이 그 일로 부모와 다퉜다 했다면 이 상담은 없었을 거다. 다투라지 뭐. 동서고금 지천으로 널린 게 자식의 인생노선 놓고 벌어지는 부모 자식 간 분규 스토리다. 당신이 처한 국면 자체는 특별할 거 하나 없는 인류 가족사의 보편 갈등이라고. 그런데 그로 인한 당신의 과도한 죄의식은, 좀 많이, 한국적이다. 그 이야길 해보자.

1. 인간 윤리체계 중 가장 강한 구속력을 가지는 게 종교다. 그에 복속된 자들, 그 제단 앞에 시간과 재물은 물론 생명까지도 번제 삼는다. 이 속박의 주요 작동원리 중 하나가 바로 죄의식이다. 무슨 소리냐. 누구도 율법이 설하는 절대선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없다. 불완전한 인간이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결국 세상에 죄인 아닌 자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불가능한 목표로 모두가, 언제나, 죄인이어야 종교가 유지된다. 더 이상 속죄할 게 없는 종교는 존립할 수 없으니. 절대기준과 그로 인한 죄의식 그리고 그에 대한 속죄 행사의 무한루프, 성공한 종교의 필수 기획이다.

1-1. ‘효’가 딱 그렇다. ‘충’과 함께 가부장제와 봉건왕조란 지배구조의 운용을 위해 수입된 효는 단순한 윤리강령이 아니라 사회 통제수단이자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누구도 그렇게 제시된 수준의 효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원죄 안고 불효자가 되었다. 그렇게 모두가 속박되어 죄의식을 대물림했다. 명절날 부모를 보러 가는 것이,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이 자발적이고 유쾌한 감사와 축제가 아니라 부담스런 의무와 격식이 되어 죄의식 탕감 받으러 가는 날이 되고 만 건 그런 연유다. 우리 명절처럼 침통한 축제는 없다.

1-2. 그 우울한 성리학의 기획, 고스란히 우리네 고유의 국민 동원 방식이 되어 있다. 정말? 정말. 2002 월드컵 직후, 대규모 축구 부흥 캠페인이 있었다. “축구가 이렇게 큰 기쁨을 줬으니 국민 모두 K리그 찾아 그 고마움에 보답하자.” 이런 거 하도 익숙한 로직이라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엔 숨겨진 문장이 하나 더 있다. “안 그럼, 배은망덕”이 국민 독려, 본질적으로 빚 지우는 ‘죄책감 마케팅’인 게다. 감이 안 온다? 그럼 핸드볼 보라. 미안해서 보러 가자는 게 20년째다. 그러나 죄의식으로 관중을 만들어 낼 순 없는거다. 근육이 뒤틀리며 땀범벅이 된 채 사투를 벌이는 선수들, 그 격렬하고 섹시한 쟁투에 감정이입 되도록 월드컵 수준으로 카메라 대수를 늘렸어야 했다. 그렇게 슈퍼 슬로 화면으로 욕망을 자극했어야 했다. 월드컵 규모의 긍정에너지조차 죄의식 기획으로 이어가려 했던 게다. 우린 그 정도다.

2. 잡소리가 길었다. 이제 당신 이야기 해보자.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무엇이 자식의 삶에서 가장 유리한 노선인가에 대한 나름의 준거,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부모는 언제나 자식의 이익보다 손해에 예민한 법. 그게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마땅한 부모 역할이다. 그들은 자식에 관한 한 보수적인 게 정상이라고. 그럼 그거 뿌리치고 제 의지로 제 길 가보겠단 당신은. 역시 정상이다. 어른 됐단 소리다. 분쟁 없는 독립은 없다. 오히려 부모 기대에 자신 인생 몽땅 투입하고 나중 부모 탓하는 자들보다 백 배는 건강하다. 그러니 사실 부모도 당신도, 세련되진 못했을지언정, 각자 할 바 한 거다. 그럼 남는 건 부모의 불안감과 야속함. 그리고 당신의 죄의식.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부모 몫은 모든 부모된 자의 숙명이다. 할 수 없다. 그들 근심에 진심으로 감사하시라. 부모 뜻대로만 살지 못하는 거, 양껏 미안해하시라. 하지만 거기까지다. 당신이 느끼는 과한 죄책감의 상당 부분, 우리 사회가 과잉 증폭시켜 통제 이념으로 개개인에게 훈육, 조장한 거다. 하여 당신의 죄책감에 내가 해줄 말은 하나다. 당신 그렇게 나쁜 년 아니란 거. 그러니 부모와의 의견 불일치, 안타까워하고 그리고 당신 갈 길 가시라. 그래도 된다. 인생노선 스스로 선택했다는 걸 죄로 만들 권리는,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거다. 건투를 빈다.

PS - 대한민국은 죄의식-드리븐 사회다. 국민 죄다 죄인 만들어 동원한다. 행복지수, 세계 최하위권일밖에. 이 습속, 털어야 한다. 국민 행복엔 그게 747보다 백두 배는 긴요하다.

김어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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