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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13 19:34 수정 : 2008.08.16 11:05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자본과 계약이 아닌 품성과 신뢰로 헤쳐나갈 의지가 선다면 함 해 보든가

내년에 대학 졸업하는 데 동기 2명과 창업을 하기로 하고 1년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업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졸업을 한 학기 남겨 둔 상황에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한 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취업 준비를 병행하자며 자기는 2학기에 일단 취업시험을 보겠다고 하고, 다른 한 명은 그래서는 둘 다 성공할 수 없고 사업하는 데 졸업이 뭐 중요하냐며 아예 마지막 학기 포기하고 당장 사업 시작하자고 하고, 저는 1년이나 준비했는데 지금에 와서 취업준비 하는 것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졸업을 포기하는 것도 아까우니 일단 졸업하고 시작하자는 쪽입니다. 시작시점을 놓고 벌써 한 달째 다투는데 결론이 안 납니다. 누가 옳은지 판정을 해주세요. 그리고 다들 동업은 어렵다고 하지만 저희는 아이템이 좋은데다 자본도 어느 정도 준비했고 미리 지분을 정확히 1/3씩 나눠 계약서까지 써뒀습니다. 이 정도면 준비는 충분히 된 거 아닌가요.

A 0. 어머, 오늘은 대따 실용적인 질문이네. 동업의 시작시점은 누가 옳은가, 계약서까지 썼으니 준비된 거 아니냐. 글쎄, 내 보기엔 질문부터 잘못됐다. 왜냐. 보자.

1. 삶의 불확실성을 스스로 맞서는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된다. 당신들은 지금 막 그 첫 번째 통과의례를 치르는 중인 게고. (일단, 파이팅!) 그럼 당신들 갈등의 본질은 뭐냐. 불확실성, 그게 무서운 거라. 그래 그 대처법이 갈리는 거라.

인간 욕망을 가장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주식시장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뭐냐. 바로 불확실성이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 가장 정교한 이 이기적 제로섬 마켓조차, 아무리 많은 애널리스트를 투입해도, 그 불확실성을 제거할 도리란 없다. 그러니 초짜 셋이 그 공포 앞에 갈등하는 건 당연하다. 갈등 자체는 문제없다.


그럼 누가 옳으냐. 답부터 말하자면 당신들 셋의 선택, 그 자체로는, 옳고 그른 게 없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그 공포에 어떻게 맞서느냐 하는 것은 각자가 어떤 사람이냐를 드러낼 뿐이다. 각자 리스크를 헷지하고 도전에 응전하는 방식이, 세계관이 그렇게 서로 다를 뿐인 거라고. 선제하고 잠그는 카테나치오는 틀리고 공격 일변도의 삼바축구는 옳은가. 그거 아니거든.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의 방식으로, 브라질은 브라질의 방식으로, 맞서는 것일 뿐이거든. 당신들은 각자가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일 뿐이라고. 거기엔 옳고 그름이, 없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시작시점이 아니라 실제로는 위험에 대해 서로가 다르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두고 다투고 있는 거다. 그게 다른 건 당연한 데. 결론이 안 날 밖에.

지금 물어야 할 건 그게 아니다. 뭐냐.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갈 차례다.

2. 1/3 딱 나눠 계약서까지 썼으니 준비 다 됐는가. 이건 수많은 동업들이 왜 실패하느냐,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간단한 예를 들자. 두 사람이 모든 걸 절반으로 나누기로 하고 동업을 시작했다. A는 매장 보고 B는 물건 조달한다. 그런데 파는 재주가 없으면 떼 올 물건도 없다, 이게 A의 생각이다. 애초 팔릴 물건을 떼 오지 않으면 판매도 없다. 이게 B의 생각이고. 그런데 A는 자긴 종일 매장에서 손님과 부대끼는데 B는 새벽만 일하고 밤엔 거래처와 논다 생각한다. B는 매일 밤 접대하고 새벽일까지 하는데 A는 낮에만 일하고 자기 시간을 가진다 생각하고. A는 B의 술값이 아깝고, B는 A의 자기시간이 부럽다. 각자 그렇게 자기 희생이 더 크다. 딱 반씩 나누는 게, A도 B도, 점점 억울하다. 그러다 경기가 나빠 매상이 준다. 6은 먹어야 평소 자기 몫이다. 말이, 나온다. 서로 욕심 많다며 대판 한다. A는 B를 종업원으로, B는 A를 동생으로 대체하리라 결심한다. 또, 싸우다 헤어지기로 결정. 재고와 거래처 나누다 또 한 판. 결국, 다시는 안 본다.

널린 게 이런 스토리다. 왜 그럴까. 충분히 친하지 못해서? 정확히 나누지 않아서? 천만에. 친하니 동업 한 거고, 절반만큼 심플한 건 없다. 그들이 몰랐던 건 두 가지다. 세상엔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게 사실은 별로 없다는 거. 노력과 열정이란 투자는, 경험과 명성이란 이익은 대체 어떻게 계량할 건가. 세상사 그렇게 나눌 수 없는 게 태반이다. 동업에서 가장 결정적 실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일어난다.

시작 전, 다들 내 지분이 얼마인지만 챙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내가 어디까지 가져갈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손해를 감당할 것인가를, 정하는 거다. 왜냐.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언제나 자기 손해가 커 보이는 법이다. 게다가 그 손해 대부분은 계량할 수가 없다. 그걸 계약서로 정할 방도란 없다. 하여, 이번엔 내가 손해 보지만 다음엔 상대가 알아서 그럴 것이고, 결국 그렇게 퉁 쳐서 장기적 균형이 맞춰질 거란 심정적 버퍼와 본질적인 신뢰 없이는, 어떤 계약서로도, 동업은 지속될 수가 없다.

3. 동업은 그렇게 자본과 계약으로 하는 게 아니라 품성과 신뢰로 하는 거다. 그런 품성과 신뢰가 서로에게 있는가. 자신의 손해를 어디까지 감당할 것인지, 진심으로, 곰곰이, 생각해 봤는가. 지금 진짜 필요한 질문은 그거다. 여기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면, 동업은, 안 하는 게 옳다.

건투를 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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