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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09 22:18 수정 : 2008.07.12 16:10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Q 전 매부리코라서 어릴 때부터 코주부라고 불렸습니다. 좋아하는 별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성형수술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회사 여직원들끼리 ‘코 때문에 옷 입을 때 걸릴 것 같지 않니’ 하는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라는 걸 알았지만 그 이후 여직원들 앞에서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이후 회식자리에서 취한 여직원 하나가 저보고 코주부라고, 고등학교 이후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별명을 불렀고 모두들 웃었습니다. 그 날 이후 성형을 결심했습니다. 제 여자친구도 처음엔 괜찮다고 하다가 제가 심각하게 고민하자 결국 병원도 알아봐 주고 날도 잡았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 막상 성형수술을 하려니 이번에는 남자가 성형수술을 했다고 놀릴 걸 생각하니 그것도 쉽지가 않네요. 남자가 성형수술 한다는 건 좀 웃기잖아요. 더구나 바로 제가 성형수술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당사자가 될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제가 너무 소심한 걸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하시라.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만들려는 자신의 스타일은 있는가

1. ‘아도니스콤플렉스’란 책이 몇 해 전 미국에서 화제가 된 적 있다. 아도니스 - 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꽃미남인데 ‘어떤 넘’인지는 직접 찾아보시고 - 는 자신의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우울증까지 겪는 현대의 남성 군상을 상징하는데 그런 자들이 요즘 미국에서만 수백만이란다. 과거엔 여성들만의 스트레스라 간주되던 이 사회병리 현상의 배경으로 여권 신장, 남성 연성화, 유니섹스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그런 풍조만으로 시대적 콤플렉스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그냥 유행이 될 뿐이지.

이 남성 콤플렉스의 본질은 트랜드가 아니라 가치관의 혼란이다. 강한 남자는 시시하게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남성성의 신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배적 가치관이었다. 힘이 질서였던 시대에 남성에게 요구되는 건 근육이지 미감이 아니었으니까. 10세기 유럽의 왕위 선출권자들은 이 동물적 힘을 신봉한 나머지 식욕이야말로 국왕의 자질이라고까지 했다. 신성로마제국의 오토황제는 많이 먹어 위대하단 소릴 들었고. 푸하. 정말 그랬다. 그렇게 근력이 아니라 외모 따위에 신경 쓰는 걸 나약한 여성성의 징표로 여기도록 사회화되어 왔던 남성이, 어느 순간 외모에 집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느끼는 남성 젠더로서의 정체성 혼란, 그 자기부정의 당혹감이 사람을 우울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2. 그 변화가 워낙 급격하고 생소해 현대 남성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지만 사실 그런 치장 본능은, 통념과는 다르게, 역사적으로 남성들에게 생소한 게 결코 아니다. 원시전사들의 문신, 중세기사들의 갑옷, 나치 장교들의 제복 등 남성들이 유사 이래 치장에 들여 온 공이 여성들에 견주어 전혀 뒤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외박 직전 바지 주름 잡느라 밤새는 군바리들의 심정, 데이트 직전 여성들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다만 과거엔 치장보단 사냥을 성공시키는 것이 자신의 효용을 이성에게 어필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었을 뿐이다. 치장욕구 자체가 여성성의 상징일 수는 없다는 거다. 더는 먹이사냥이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가 되자 이제 남성들의 치장욕구는 자기연출과 이성유혹이란 목적에 복무하기 시작했다. 성역할에 따른 치장의 목적과 기능이 그렇게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적 성은 엄마아빠가 결정하는 거지만 사회적 성역할과 그걸 드러내는 구체적 방식은 사회와 시대가 결정하는 것이니까.

이 조류, 혹자는 외모 지상주의가 남성들까지 좀먹는다 개탄하지만, 오히려 남성 일반을 전통적 남성성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동물적 남성성의 집단규범에서 벗어나 하나의 개인으로 타고난 본연의 욕망에 더 솔직하게 호응하는 개인들이, 지금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조폭처럼, 스스로를 전체의 한 조각으로만 인식하는 집단 정체성이 유난한 대한민국에서, 근대적 인디 비주얼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식의 전환이기도 하다. 여성의 주체성 획득이 결국 남성 해방과도 연결된다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맞는 소리였던 게다. 성형과 남성성, 그렇게 아무 관계가 없다. 성형, 하시라.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 덧붙임 : 횡행하는 성형수술 일반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문제는 외모 지상주의가 아니다. 사실 외모 지상주의 아니었던 시대, 없다. 내 불만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곧 자신인 이 시대에, 과연 그렇게 해서 만들어 내고자 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은 분명하게 있는 것인가. 자신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고서 그런 결정을 내려도 내리는가 하는 거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건 그거다. 성형수술을 하든, 옷을 만들어서만 입든, 온몸에 문신을 도배하든, 그것이 자신의 고유한 미의식과 스타일을 위한 조처라면, 문제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진짜 문제는 성형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만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방식을 오로지 성형에서밖에 찾지 못하는 그 문화적 몰개성, 그저 대세만 추종하는 그 천박한 미적 감수성, 그게, 진짜 문제다. 길거리 넘쳐나는 똑같이 생긴 눈·코·입이 끔찍하지도 않은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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