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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04 20:59 수정 : 2007.07.06 17:24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연적 콤플렉스거나 ‘시누이’ 유전자…박치기나 한번

Q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남친의 여동생과 사이가 안 좋아요. 그게 큰 문제냐 싶겠지만 여동생은 제 친한 친구였습니다. 과 동기인데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며 당시 사귀던 남자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친한 친구니까 그 남자 비난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때 사귀던 남친이 군대에 가서 헤어지려던 참에 마침 친구가 오빠 제대 기념으로 오빠 친구들과 우리 과 동기들 단체 미팅을 주선했습니다. 거기서 그 친구의 오빠를 알게 됐고 서로 호감을 가져 연인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오빠와 제가 사귀게 될 줄은 예상 못했나 봐요. 그래서 오빠가 친구에게 저에 대한 호감을 표시했을 때 “걔는 남자친구 있고, 전 남자친구한테 했던 걸 보면 오빠만 상처입는다”고 했대요. 이 문제로 오빠는 동생과 많이 다퉜지만 그래도 저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오빠는 친구와 다시 잘 지내는데 친구가 저와는 연락을 끊었습니다. 오빠와 사귀기 전에 친구와 상의하지 않은 점이 미안해서 여러 번 사과했는데 받아주지 않고 전화도 안 받고 제 편지에 답장도 없어요. 오빠를 만나면 행복하다가도 친구 생각이 나서 마음이 괴롭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친구가 응답할 때까지 계속 노력을 해야 하나요. 아니면 시간이 해결해 줄까요. 정말 답답합니다.

A 1. 음. 일단 욕부터 하자. 이런 나쁜 ×. 지가 뭔데. 지가 동생이면 당신은 연인이다. 동생이 벼슬인가. 그리고 누가 오빠와 눈 맞을 줄 알았나. 연애, 삶의 기획 바깥에서 벌어지는 불가항력 사변이다. 천재지변과 ‘다이다이’라고. 그걸 어떻게 사전에 상의해. 게다가 당신을 오빠와 사귈 주제가 못 되는 여자라 여긴 거라면 지가 친구 자격 없는 거지. 사과는 지가 해야지. 혹여 지 생각엔 오빠가 너~무 귀하신 몸이라 그런 거라면, 그럼 치료 받아야지. 둘 중 하나야. 나쁘거나 or 미쳤거나. 그러니 욕부터 먹어야지. 담에 보면 대뜸 헤딩 해버려. 콱. 왜. 거 뭐 치료 차원이라고 봐야지.

2. 근데 걔는 대체 왜 그냐. 우선 친구 ‘발작’이 오빠 애인을 연적으로 간주하는 브러더 콤플렉스일 가능성. 그런 예후는 통상 스스로 연애하면 자연치유되는데 만약 안 된다, 그럼 뭐 입원가료 요망이지. 다음. 당신을 자신의 관계 영역에 자신의 재가 없이 무단 침입한 타자로 인식한 경우. 분비물로 마크하는 동물의 영역 텃세처럼. 설마 사람이 그러겠나. 사람, 매우 그렇다. 당신의 연애는 그녀 가족 영역에 대한 침범이 아니라 당신과 오빠를 중심으로 하는, 전혀 별개의 관계범주가 새로 생성되는 거란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거지. 그러니까 그녀 히스테리는 영역 분비물. 이 경운 그녀 지성의 부재를 탓해야 하는 건데. 이건 또 치료도 안 돼요.

다음 혐의. 후천적으로 획득한 ‘시누이’ 유전자. 그게 뭐냐. 전통적 의미에서 우리네 고부갈등의 본질은 가부장 가족체제 아래서 육아에서 봉양까지 담당하며 착취당하던 여성들이, 가부장이 취하고 남긴 자투리 권한을 놓고 벌였던 권력투쟁이야. 그리고 그 쟁투에서 승리한 유사가부장-시어머니의 후광 업고 섭정 권력을 후천 학습한 이가 시누이고. 시누이의 가학성은 개인 품성이 아니라 그렇게 권력구조의 소산이라고. 그 구조가 유효한 한 그 가학성은 사회적으로 유전되어 왔고. 시누이는 그래도 되는 법이란 집단유전자가 후천 획득되는 거지. 그러니까 고부 올케시누이 갈등을 개인 품성 문제로 죄다 환원시키는 티브이 아침상담 프로들은 모다 쉣인 거고. 이건 탓해봐야 뭔 소린지도 몰라. 지가 당해보기 전엔.


마지막은 우리네 20세기 역사. 대한민국 20세기는 가족이 존재 방어의 마지노선이었어. 지역사회도 국가복지도 무기력했다고. 비빌 언덕은 오로지 가족. 가족 구성원 간 과잉감정은 그 자폐적이고 방어적 가족 결속의 필연이야. 서로가 서로에게 과도하게 기대하고 요구하며 그만큼 상처받고 배신당했다 여기면서 과잉의 감정비용을 지불해 왔어. 다른 가족 구성원의 삶에 그 정도 개입 권리가 있다 믿는 건 그렇게 과도 정산된 감정비용에 응당한 대가로 셈해서야.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데, 뭐 그런 거.

3. 그럼 어쩌나. 어른들 연애, 범죄 상황 아닌 한, 누구도 개입 권한, 없다. 그게 어른들 연애의 기본이야. 주변인들, 의견개진 조언권고 할 수 있어.

김어준 / 박미향 기자
때론 경고의무도 있고. 하지만 거기까지야. 분노 표출, 진도 방해, 이별 강요 누구도 못해. 그럼에도 관계의 중단이나 지속을 강제할 권리가 가족이란 이유로 천부인권처럼 자동부여 된다 오인하는 거, 우리나라에서 유난해. 전술한 이유로.

그러니 다 생까고 이것만 기억해. 당신, 죄, 없어. 그리고 그거 당장 당신이 고칠 수 있는 게 아냐. 그의 가족에게 수용되고 싶은 거 인지상정인데, 자기 잘못 아니고 자기가 해결할 수도 없는 일에 매달리는 거, 삶의 낭비야. 그 시간에 당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그 남자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즐거울까에 시간 써. 나머진 생까. 친동생인데… 아냐. 그래도 돼. 잘못한 건 걔야. 영 찝찝하면 박치기나 한 번 해주든지. 물론, 치료, 차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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