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9.16 09:31 수정 : 2010.09.19 14:30

‘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에스비에스 제공

[매거진 esc] 티브이로 사우루스
‘환상의 커플’의 홍자매 작가가 쓴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둘러싼 갑론을박

신선한 캐릭터와 재치있는 대사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드라마 작가 홍자매(홍정은·홍미란)가 ‘500살 넘은 구미호’를 몰고 수목드라마 전쟁에 뛰어들었다. 신민아와 이승기가 합류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이하 여친구)는 10%대 초반 시청률에 머무르며 〈제빵왕 김탁구〉의 독주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제 중반기를 넘어선 〈여친구〉를 놓고 티브이평론가 김선영씨(오른쪽)와 조민준 객원기자가 찬반양론을 펼쳤다.

티브이로 사우루스

김선영(이하 김) 홍자매 작품은 트렌디 드라마의 탈을 쓰고 있지만 적어도 사랑에 대한 접근 방식은 고전적이다. 그것이 홍자매표 드라마가 꾸준히 마니아를 양산하는 전략이란 생각이 든다. 많은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물이 포장에만 신경쓰는데 홍자매 작품은 낭만적 사랑의 원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처음엔 유쾌하게 이야기를 시작해 비극적 장치를 끌어들여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더욱 단단하게 완성시킨다. 요새 구미호가 타자에 대한 성찰을 의미하는 소재로 이야기되지만, 작가가 그런 면을 의도하진 않은 것 같다. 비극적 소재를 찾다 보니 인간과 다른 존재인 구미호를 가져왔는데, 홍자매가 지금까지 그려온 낭만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이 작품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조민준(이하 조) 그건 100% 동의한다. 홍자매 드라마에는 항상 특정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될 여자가 나타나면서 문제가 생기지 않나. 사기꾼 주유린(〈마이걸〉), 부자 나상실(〈환상의 커플〉) 캐릭터와 비교해, 사람 세계에 나타난 구미호는 홍자매 작품 속에서 남자 주인공과 가장 크게 대비를 이룬다. 그런데 〈여친구〉에선 구미호와 사람 간의 갈등이 별로 도드라지지 않는다. 극 중 미호가 여우라는 생각도 거의 안 들지 않나. 나상실에게는 허세가 있듯, 미호는 괴력의 소유자인데도 그 힘을 안 보여주는 게 갑갑하다. 홍자매 캐릭터는 특유의 대사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소 먹자” 정도밖에는 기억이 안 난다.

‘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에스비에스 제공

구미호와 인간 사이의 갈등 안드러나

캐릭터로만 보면 분명 퇴행이다. 그런데 사랑의 판타지 측면에서 보자면 진전을 일궜다. 홍자매는 사랑에 대해 유치한 대사를 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유치해지지 않나. 차대웅과 미호는 둘 다 애들 같은 캐릭터다. 특히 미호는 초딩같이 행동하고 ‘유아틱’하게 말한다. 이런 화법이 사랑을 더 순수하게 그려낸다. 그런 데서 오는 절절함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여성 시청자들이 공감하게 된다.

조 처음에는 캐릭터에 대한 기대가 컸다. 차대웅은 기존 홍자매 드라마 속 남자들과 분명 다른 부분이 있었다. 대웅은 누나들이 보기엔 귀엽고 애들이 보기엔 오빠인 이승기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그것 자체가 일단 신선했다. 구미호도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면서도 세상에 나와선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이런 특성은 홍자매의 다른 작품에서 본 선명한 캐릭터들과 구분된다. 그런데 지금은 선명하지 못한 게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나 싶다. 대웅은 매회 생각이 바뀌는 등 길을 잃고 있다. 작가가 해보지 않은 캐릭터를 하다 보니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여성 시청자들이 홍자매 멜로에 동화되는 건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녀 조연이 등장해 사각관계를 형성하긴 하지만 트렌디 드라마의 전형적인 사각관계는 결코 아니다. 남녀 주인공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한곳만 본다. 주변인들은 주인공의 사랑을 공고화하기 위해 시련을 주는 역할에 그치는데 〈여친구〉 같은 경우 그게 더 강화됐다. 대웅과 미호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관계가 시작되고 비밀 공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둘 사이의 밀착도가 더욱 높아졌다.

조 홍자매 작품에서 남녀가 대놓고 연애를 하는 장면은 별로 없다. 대신 두 남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상당히 재미있다. 그런데 〈여친구〉에서는 그런 점이 상당히 부족하다. 미호가 현대 생활에 적응하는 에피소드가 상당히 재밌을 텐데 많이 생략됐다. 남자 인간과 여자 여우가 서로 갈등하는 게 아니라 대웅이 일방적으로 미호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매회매회가 거의 같아 보인다. 미호가 사실은 강한 힘이 있는데 은혜인의 모략에 빠지는 것도 납득이 잘 안된다. 게다가 8회는 한회짜리 광고였다. 간접광고가 벌써부터 등장하는 건 작품에선 위험한 신호가 아닌가 싶다.

캐릭터에 몰입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구미호라는 소재를 끌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호는 예쁘고 힘세고 순정을 바쳐 사랑한다는 특징 외에 무엇인가가 없다. 대웅도 이승기가 지닌 기존의 이미지를 가져왔을 뿐 홍자매식으로 풍부하게 덧붙여진 점이 별로 없다. 그러나 구미호라는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사랑에 대한 은유나 중의적 대사가 가능해졌는데 이 부분이 재밌다. 미호는 멀리서도 대웅이의 말을 들을 수도 있고 누군가가 대웅이를 들먹거리면 귀가 번쩍 뜨인다. 이건 여우가 가진 능력이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의 특징이기도 하다. 사람이 연애감정에 빠지면 상대에게 온 감각이 향하지 않나. 또 몸에서 여우구슬이 빠진 뒤 대웅이 느끼는 허전함도 사랑에 대한 은유다. 어떻게 보면 유치하지만 주인공들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다.

남녀주인공 밀착도 높여 멜로에 집중

홍자매는 남녀 주인공 이외의 캐릭터엔 신경을 덜 쓰는 편인데 이번엔 그게 더 심한 것 같다. 여자 조연인 은혜인은 대웅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왜 대웅을 뺏으려고 하는지 극적 맥락이 없다. 대웅은 액션배우를 꿈꾸고 영화제작 현장이 자주 등장하는데 드라마 속 영화가 별다른 재미를 주고 있지 못하다. 대웅과 미호만 무대에 올려놓고 뭘 하려다 보니 소꿉놀이가 됐다. 윤유선은 단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성동일과 코믹 멜로연기를 선보이는데 상당히 재밌다. 그런데 전체 극에서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다. 홍자매의 대사는 연출 타이밍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코믹하고 과장된 연기는 오래 보여주면 굉장히 이상해진다. 빨리빨리 치고 넘어가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환상의 커플〉만한 작품이 없었다.

7~8회부터 홍자매가 극 중에서 〈인어공주〉 모티프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홍자매의 장기인 비극적 허구를 가미한 멜로에 치중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걸 잘 활용하면 결말까지 무난하게 갈 것 같다. 인어공주의 멜로 자체가 홍자매가 보여주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압축한 동화다. 사랑의 판타지를 좀더 깊은 감성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인어공주 이야기를 대웅과 미호의 멜로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조 남녀 주인공 캐릭터에 기대할 게 없기 때문에 남자 조연인 동주 선생의 역할에 이야기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본다. 동주 선생이 적절한 긴장감을 조성한다면 이야기가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동주 선생은 매력적이진 않지만 아직까진 망가지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신민아는 〈여친구〉를 통해 덕 본 것 같다.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못 받았지만 흥행쪽박 배우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기존엔 어딘가 모르게 가라앉은 이미지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천진난만한 초딩이었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는데 신민아 본연의 모습과 맞아떨어졌다. 배우의 재발견이라기보다는 스타의 존재감을 확인했다. 홍자매의 대사가 어렵지 않고 유아적인 말투이기 때문에 연기력이 부족한 두 배우한테는 적합했다.

정리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티브이로 사우루스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