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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18 21:18 수정 : 2010.08.22 16:26

‘나는 전설이다’ 에스비에스 제공

[매거진 esc] 티브이로 사우루스

에스비에스의 월요일·화요일 저녁 9시가 살아나고 있다. 9시대 드라마의 부활을 알린 이는 김정은이다. 김정은이 ‘원톱’으로 나서 이끄는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가 시청률 15%를 넘겼다. 이혼을 하고 자아를 찾는 ‘아줌마 드라마’이자 밴드가 등장하는 ‘음악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법정이 나오는 ‘법률 드라마’인 <나는 전설이다>(이하 <전설>)를 놓고 티브이평론가 김선영씨(사진 오른쪽)와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씨가 찬반양론을 펼쳤다.

이혼소송 벌이며 밴드 시작하는 아줌마 이야기 ‘나는 전설이다’ 둘러싼 찬반토론

티브이로 사우루스
김선영(이하 김) 우리나라에서 아줌마 드라마는 하나의 장르다. 결혼생활에서 구박받던 아줌마가 이혼을 하고 새로운 로맨스에 빠진다는 내용이고, 보통 그 정당성은 남편의 외도에 있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는 진부해지기 쉽다. 실제 비슷한 구조를 답습하다가 사라졌고, 아침 드라마나 가족 드라마 안에서 그런 드라마의 특징만 남아 이혼녀의 재기 이야기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아줌마 드라마의 재기를 알리는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아줌마 드라마는 클라이맥스가 이혼이었지만 <전설>은 신데렐라 드라마의 후일담처럼 이혼을 선언하고 시작한다. 뻔한 드라마라기보다 더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꿈을 찾아가는 드라마라는 얘기다.

계급갈등, 진부 vs 설정은 흥미로워


차우진(이하 차) 지금까지는 아줌마 드라마에서 아줌마가 외도한 남편에게서 독립했다면, 이 드라마는 주인공 전설희가 잘나가는 변호사인 남편과 잘나가는 시댁에서 구박받고 고생하다가 그들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하면서 독립을 해나간다. 그런데 전설희가 벗어나려고 하는 남편과 시댁은 안하무인에 잔인하고 인간성이라고는 없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계급적인 증오감이 보이기도 하고, 법률가들에 대한 불신도 깔려 있다. 반대로 밴드 멤버들을 포함한 전설희의 주변인들은 희망과 꿈을 가진 서민으로 나온다. 이런 식의 단순한 구조는 지금까지와 다른 얘기를 하기에 부족해 보인다.

‘나는 전설이다’ 에스비에스 제공
오히려 이혼소송을 통해 전설희가 남편과의 갈등이 남녀 성의 차이뿐 아니라 계급적인 갈등도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 절대적 약자의 위치에 처한 여성이 점점 공적인 발언을 하게 되면서 소수자로서의 아줌마가 성장하는 가능성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설정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혼소송이 복수극의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면 밴드 활동기는 자아찾기와 로맨스가 들어간 이야기다. 아줌마가 밴드를 통해 꿈을 찾아간다는 드라마의 소재는 새롭다.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중년 남자들의 자아를 찾는 전유물로 여겨졌던 밴드라는 소재를 아줌마들의 얘기로 끌고 왔다. 그것만으로도 <전설>은 아줌마 드라마 계보 안에서도 다른 지점에 있다. 밴드는 여러 사람들의 얘기를 보여주기에 좋은 소재다. 주인공뿐 아니라 밴드 멤버들 각각의 연대기를 보여줄 수 있어 이야기의 수평적인 확장이 가능하다. 여자들의 유대감이라는 면을 다룬다는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음악을 소재로 쓴다는 점은 새롭지만 막연하게 어디에선가 봤던 음악 영화와 음악 드라마, 여성의 자아찾기 이야기의 전형을 가져와 겉만 바꿔놓았다는 건 문제다. 아줌마들이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서 있는 것까지는 새로운데 막상 하는 음악은 전형적이다. 악기를 다루는 세밀함은 넘어간다고 해도 이 드라마를 보고 공감할 만한 30대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것들을 살리지 못하고 애매한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밴드라는 설정을 통해 설득하기보다 밴드라는 소재만 끌고 가는 것으로 보인다. 설정은 좋은데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떨어진다.

소재에 비해 이야기가 원활하지 않은 건 맞다. 이혼소송과 밴드라는 두개의 구조가 드라마 안에서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직까지 밴드를 하면서 전설희가 어떻게 나아갈지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아직까지는 밴드로 성공하겠다는 목표도 없고, 단지 스트레스 해소 차원이다. 그렇지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1970년대 중후반 태생인 지금의 30대 여성들이 밴드라는 꿈을 꾸게 된 데에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는 거다.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란 지금의 30대는 음악이라는 도구에 자신의 꿈을 투영하며 여성이라는 성 역할에 한정되지 않은, 다른 꿈을 꾸면서 청춘을 보냈다. 그런 그들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찾는 꿈이 문화적인 맥락 안에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고등학교 때 밴드 이름인 ‘마돈나 밴드’와 지금 다시 구성한 ‘컴백 마돈나 밴드’ 사이에 어떤 얘기가 있었는지 생각해볼 만하다.

주인공의 열정은 있는데 세밀함은 떨어져

커트 코베인을 좋아해서 왼손으로 기타를 쳤다는 전설희의 대사를 통해 지금 30대의 문화적인 맥락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음악은 커트 코베인에게 영향을 받은 음악이 아니라 하드록이나 메탈 같은 음악이다. 마돈나 밴드와 컴백 마돈나 밴드 사이에 밴드 멤버들에게 일어난 일들은 반영했는지 몰라도 그사이에 음악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음악적 감수성은 커트 코베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오래된 감수성이다. 밴드를 디렉팅하는 장태현은 몰락한 ‘메탈 키드’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문화예술인에 대한 동경과 음악에 대한 우월의식 같은 것들이 낭만적으로 그려지면서 또다른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아무리 아줌마들이 스스로 밴드를 만들어도 디렉팅을 하고 곡을 써주는 건 장태현이라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나는 전설이다’ 에스비에스 제공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 의도적이든 아니든 공부를 안 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대중적인 곡을 연주하면서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장태현이 밴드의 정체성에 있어 위험한 인물인 것도 맞다. 그렇지만 이 밴드를 볼 때는 문화 코드로서의 음악보다 이들이 갖고 있는 주변자적인 코드를 보여주기 위한 음악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이들은 상업고등학교에서 밴드를 결성해 연주를 해왔고, 전설희는 의사인 여동생을 위해 희생한 부분도 있다. 다시 밴드를 결성해 처음 선 무대도 시장이었다.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보다 열정에 주목하고 주변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보면 좀더 이 드라마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정을 보여주는 데 있어 세밀함이 너무 떨어진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에는 상업고등학교 등 인문계가 아닌 여자고등학교에 밴드가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찾아보고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세밀함이 살아 있는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밴드 음악과 아이돌 그룹과 기획사, 클럽 등에 대한 상식적인 구분도 없다. 밴드를 통해 뭔가를 이뤄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설득력이 너무 부족하다. 꿈을 이루는 걸 보여주면서 긍정적인 것을 제시하겠다는 의도는 알겠지만 이 드라마는 현실을 탈색시키거나 외면하는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는 표피적으로 그려진 밴드 멤버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파고들면서 이들이 왜 꿈을 버리지 않고 음악을 하는가를 보여주면 이 드라마가 진일보한 드라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전설>은 김정은이 혼자 끌고 가는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은은 이 드라마에서 기존에 갖고 있던 신데렐라의 이미지와 김정은만이 할 수 있는 장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 얘기는 다시 말해 김정은이 보여주는 모습이 지금까지 해왔던 다른 역과 계속 겹친다는 말이기도 하다. 각자 배우마다 자신만의 연기 패턴이 있고 그걸 존중해야겠지만, 김정은은 표정이나 몸짓에 있어 몰입도가 떨어질 만큼 다른 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타를 잡고 연주하는 장면은 여전히 어색하다. <전설>에서 이 드라마의 이야기보다 김정은의 패션이나 스타일에 관심이 쏠린다는 점도 문제다.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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