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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14 22:13 수정 : 2010.04.18 08:58

수목드라마 시청률 경쟁에서 1위를 선점한 〈신데렐라 언니〉(한국방송 제공)와 손예진·이민호 두 톱배우의 출연에도 그만큼의 시너지 효과를 보지 못한 〈개인의 취향〉(문화방송 제공).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설득력 뛰어난 캐릭터로 수목 주도권 잡은 ‘신데렐라 언니’
인물은 없고 진부한 설정과 사건만 난무하는 ‘개인의 취향’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티브이 앞에 앉은 시청자들의 손이 바쁘다. 한국방송 <신데렐라 언니>(이하 <신언니>)를 볼까, 아니면 문화방송 <개인의 취향>(이하 <취향>)을 볼까, 에스비에스 <검사 프린세스>(이하 <검프>)는 재미있을까? 같은 날 첫 방송을 시작한 세 편의 드라마가 나란히 방송 3주차를 맞았다. 이리저리 돌아가던 채널은 제법 제자리를 찾았다. 지금까지의 시청률 승자는 문근영과 서우가 자매로 나선 <신언니>. 손예진과 이민호가 등장하는 <취향>은 <신언니> 다음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주에는 <10 아시아>(10asia.co.kr) 최지은(사진 오른쪽) 기자와 위근우 기자가 <신언니>와 <취향>을 들여다봤다. <검프> 얘기는 지면 관계상 다음주로 한 주 미뤄둔다.

너 어제 그거 봤어?

최지은(이하 최) 오랜만에 방송사 간 수목드라마가 제대로 된 경쟁을 시작했다. 1년 정도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한 문화방송은 손예진과 이민호라는 흥행카드를 준비했고, 한국방송은 문근영·서우·천정명·옥택연을 묶어 기대감을 높였다. 에스비에스는 <찬란한 유산>의 작가와 감독이 다시 한번 손을 잡은 드라마로 결정했다.

위근우(이하 위) <신언니> 초반은 문근영이 맡은 은조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삶에 대한 신뢰가 없고 소통이 잘되지 않는 까칠한 은조는 충분히 극적인 인물이다. 반면 서우가 연기하는 효선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효선의 연기가 어색해 보이는 이유는 서우의 연기력 문제라기보다 아직까지 충분한 설명이 없어서다.

문근영의 연기+김규완의 대본 ‘시너지 작렬’

5회부터 극중 내레이션이 은조에서 효선으로 바뀌기 때문에 앞으로는 겉으로는 해맑아 보이기만 하는 효선에 대한 설명이 더 될 거라고 본다. 은조의 캐릭터가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문근영의 연기와 김규완 작가의 대본, 김영조·김원석 피디의 연출이라는 삼박자가 잘 맞았기 때문이다. <피아노>와 <닥터깽>, <봄날> 등을 쓴 김규완 작가는 복잡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가족이 되는 설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줄 안다. 폭력과 가난에 노출되면서 살았을 은조의 상처를 초반에 잘 잡아서 이후 전개까지 힘을 받을 듯하다.

은조의 내면을 보여주는 절묘한 대사가 많다. 대사가 연기를 보완해주는 부분도 있다.


주인공들의 갈등이 더 힘을 얻는 건 효선 아빠인 김갑수와 은조 엄마인 이미숙 때문이기도 하다. 소모되는 중년 멜로가 아니라 뿌리 내릴 수 있는 가정을 갖고 싶은 여자와 외로움을 달래고 싶은 남자를 통해 공감할 수 있는 욕망을 잘 보여준다. 이미숙은 억척스러운 엄마로서의 모습과 남자 앞에서 여자이고 싶은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김갑수의 호적에 오른 다음에 기뻐하는 이미숙의 모습이 마냥 밉지만은 않다. 김갑수도 이미숙에게 쩔쩔매지만 가족을 보살피겠다는 가장으로서의 풍모는 잃지 않는다. 반면 천정명이 연기하는 기훈과 은조가 만나는 부분은 극적인 설정이라는 게 눈에 보인다.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은 은조의 마음을 여는 사람이 출생의 비밀이 있고 잘생기고 은조의 상처마저 공감하는 백마 탄 왕자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건, 우연이라기엔 지나치다.

기훈이 초등학교만 졸업한 일꾼이었다면 결코 성사되지 않았을 멜로다. 이러한 멜로의 전형성은 이 드라마가 피할 수 없는 지점이다.

<취향>에는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캐릭터들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여자주인공인 박개인(손예진)은 밑도 끝도 없는 민폐 캐릭터다. 개인의 만행은 일일이 다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전진호(이민호)와 처음 만나는 버스 안 장면에서도 개인은 진호를 성추행범으로 오인한 다음 결국 그의 모형을 망가뜨리고 도망간다. 의도한 성추행이 아니라는 걸 버스 안 승객들까지 모두 동의하는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박개인에게 도저히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다.

칠칠맞지 못하고, 옷도 제대로 차려입지 않는 개인의 모습은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민폐도 이해한다고 치자. 문제는 그런 일을 저지르고 난 다음의 내면 상태다.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민폐에 대해 가책이나 부끄러움이 없다. 이건 개인이 인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캐릭터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원작이 로맨스 소설이다. 주인공을 사랑할 준비가 돼있는 로맨스 소설의 독자와 드라마 시청자는 다르다. 주인공을 무조건 사랑해야 할 의무가 없는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로맨스 소설의 인물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않은 캐릭터를 던지고 사랑스럽지 않으냐고 묻는 건 근본적인 고민의 부족이다. 이 드라마는 로맨스 소설 원작 작품이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빠져 있다.

드라마가 가져가야 할 최소한의 리얼리티가 없다. 인물끼리 서로의 감정에 대한 고민이나 공감이 없이 사건만 일으킨다.

기본적인 설정은 심하게 진부하다. 피치 못하게 동거를 시작해 필연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전혀 참신하지 않다. 제작진은 여자가 남자를 게이로 오인한다는 게 신선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것마저 너무 헐겁다. 드라마가 나오기 전부터 걱정했던 게이에 관련된 전개가 실제 드라마를 보니 더 심각하더라.

드라마에서 게이는 그냥 무성적인 존재로서만 존재한다. 동성애자와 관련된 맥락을 다 지우고 여자에 관심없는 거세된 존재 정도로만 그려진다. 개인이 자기 친구에게 ‘저 남자 한번 꼬셔봐, 저 남자 게이야’라는 대사를 던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건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적인 커밍아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인 커밍아웃을 일종의 코믹한 상황으로 만든다. 오해받을 상황에 처하면 ‘저 남자 게이예요’라고 말하는 여자주인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게이라고 오해를 받는 진호는 자신이 그런 오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굉장히 불쾌해하면서 부정한다.

방송심의위원회가 심의해야 하는 건 ‘빵꾸똥꾸’가 아니라 이런 문제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이런 장면이 공중파 드라마에 나온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진호의 동료가 방에서 진호에게 약을 발라주면서 신음소리를 내자, 방 밖에서 듣고 있던 개인의 친구가 좋아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성애물에 열광하는 10대 같은 유치한 반응도 문제고, 방 안의 장면을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직업적 전문성도 없고 배경인 한옥조차 매력없어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등장하는 ‘게이 남자친구’에 대한 판타지를 맥락 없이 가져왔다. 같이 쇼핑을 해주고 남자 얘기도 하는 게이 친구라니. 애완동물이나 액세서리 정도로 게이 친구를 취급하는 이런 판타지는 심지어 몇 년 전에 유행이 끝난 얘기다.

개인이 진호에게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달라는 것도 게이는 꾸미는 데 능할 것이라는 편견에서 나온다. 물론 앞으로 개인은 예뻐질 거다. 손예진이니까. ‘안경을 벗으니 미인이더라’는 클리셰일 게 뻔하다.

까칠했던 남자주인공 진호가 여자주인공이 전 남자친구에게 당하는 걸 보면서 화를 내고, 그렇게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클리셰도 있다. 이 드라마는 얼핏 보면 전문직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건축가에 가구 디자이너까지 모든 인물들이 실제 직업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대단한 건축물처럼 묘사되는 한옥 ‘상고재’조차 매력이 없다.

진호가 칸딘스키 얘기를 하는 것도 배운 남자라는 걸 얄팍하게나마 보여주려는 얕은 설정이다. 이 드라마는 거대한 가상의 세계다. 동거하는 무성적인 남녀와 친구의 애인을 가로채 결혼까지 하는 캐릭터, 직업적 전문성은 전혀 없는 인물들까지 모든 것들이 맥락 없이 엮여 있다. 드라마에서 존중받아야 하는 건 작가의 취향이 아니라 시청자의 취향 아닐까.

작가의 취향을 존중하고 싶어도, 그러기에 그 취향은 너무 폭력적이다.

<신데렐라 언니> 성패, 여기에 달렸다

“신데렐라인 효선의 캐릭터. 이 드라마에서는 효선과 은조, 두 명의 갈등 축이 중요하다. <태양의 여자>에서 이하나와 김지수 두 사람을 이해하게 되면서 처절하고 슬픈 이야기가 만들어졌던 것처럼 은조뿐 아니라 효선이라는 캐릭터도 시청자를 설득시켜야 한다.”(위근우)

“성인이 된 은조의 변화한 모습. 은조가 고등학생에서 어른이 되는 그 시간 동안 일어났던 변화를 문근영이 어떻게 연기로 보여줄까. 또 이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처음 연기를 하는 옥택연이 천정명에 맞설 만큼 매력이 있을지도 중요하다.”(최지은)

<개인의 취향>, 이 취향은 못참겠다

“놀이터 같은 직장. 건축사무소가 등장하는 <결혼 못하는 남자>와 비교될 만하다. <결못남>에서는 뚜렷한 직업관을 중심으로 인물들이 배치됐다. 이 드라마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냥 설정이나 상황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진호가 건축가라는 것도 결국 건설사 사장이었던 아버지가 당한 배신에 복수하기 위한 설정 정도로만 사용된다.”(위근우)

“성적인 코드가 들어 있는 코미디. 개인의 친구인 원호(봉태규)가 모텔에서 개인에게 덤비는 듯한 장면은 위험한 상황인데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만 소화된다. 진호의 동료가 진호에게 약을 발라주는 장면도 불편하게 사용되는 성적 코드일 뿐이다.”(최지은)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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