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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그거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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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친구의 주선으로 마련된 소개팅 자리에서 마주 앉은 여자의 속마음을 알고 싶다면? 정답은 티브이엔 <러브 스위치>에 있다. 소개팅이 순조롭게 진행돼 상대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그런데 여자친구, 이상하다. 매번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싸움을 건다. 내 여자친구가 왜 이러는지 알고 싶다면? 역시 티브이엔 <재미있는 티브이 롤러코스터-헐!>을 참고하면 된다. 케이블 티브이적인 화법이 보편화되면서 티브이는 점점 더 솔직해지고 있다. 티브이 속 남녀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 속내를 내보인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사진 오른쪽)씨와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씨가 솔직한 프로그램 <러브 스위치>와 <롤러코스터-헐!>을 들여다봤다.
‘러브 스위치’ 요즘 싱글녀들의 가치관 실감나게 전달
‘롤러코스터-헐!’ 여친이 화내는 갖가지 상황에 공감
정석희(이하 정) <러브 스위치>는 30명의 싱글 여성들이 한 명의 남성을 두고 호감 여부를 스위치로 표현해 3단계를 통과하면 커플이 되는 단순한 데이팅 프로그램인데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먼저 개인적으로는 요즘 젊은 여성들이 남자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를 알 수 있고,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다.
차우진(이하 차) 여성들 중심의 프로그램이다. 여러 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의 남성을 두고 진행하는 건 199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이나 한때 유행했던 노예팅을 생각나게 한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방송으로 세련되게 잘 풀어낸다. 거부감이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게 특이하다.
정 남성에 대해 알게 되는 과정이 현실적이다. 가장 먼저 외모를 본다. 동시에 그 남자가 고른 음악으로 취향을 알 수 있다. 그다음에는 녹화된 화면으로 그 남자의 직업이나 주변 환경, 재산, 취미 등을 차례로 보여준다. 처음에 외모만 보고 불을 껐다가 나중에 직업이나 재산 등을 보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더라. 화면에는 남성의 단점도 나오는데, 그런 부분에서도 대부분의 남성 출연자들은 당당하다. 실제 3단계가 다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불이 다 꺼져서 바로 퇴장하는 남성 출연자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맞는 것도 같다. 특히 다들 호감을 표현했던 남성이 당구를 좋아한다고 하자 불이 많이 꺼지더라. 새로운 가치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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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규와 신동엽이 진행하는 데이트 버라이어티 〈러브 스위치〉와 여자들의 화법을 집중관찰하는 〈롤러코스터-헐!〉.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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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나이·능력 개의치 않는 여자 출연진도 많아
차 한가지 재미있었던 건 한 출연자가 보증금 500만원에 월 45만원짜리 월세방에 산다고 했더니 불이 많이 꺼졌다. 그런데 사실 여성들이 불을 끈 건 월세 때문이 아니라 화면에 나온 그 남자의 집이 너무 지저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웰빙을 강조했던 출연자인데 말이다. 남성에게서 능력을 가장 많이 요구하긴 하지만, 능력이 없는 것보다 일관성이 없는 게 더 마이너스였던 것 같다.
정 출연한 30명의 여성들을 보면 직업이 다들 다양하다. 나이도 20대부터 40대까지 폭이 넓고, 직업도 회사 임원부터 아나운서, 모델까지 있다. 이들이 스스럼없이 속내를 드러내더라. 방송을 의식해서 일부러 조절을 하거나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차 남성 출연자들은 30대 정도로 어느 정도 직업이나 경력이 있다. 번듯해 보이는데 취향은 어리거나 겉은 노는 것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면 합리적인 이들도 있더라. 또 남성 출연자나 여성 출연자나 서로의 나이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여성 출연자들 중에 자기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남자친구의 능력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었다. 요즘 트렌드로 여겨지는 남녀관계가 당연하게 재확인되는 것 같더라.
정 진행자인 이경규와 신동엽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들이 왜 베테랑인지 이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다. 신동엽은 여성 출연자를, 이경규는 남성 출연자를 담당한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멘트를 친다.
차 그 둘이 함께 있는 그림을 이전에 상상해본 적은 없는데, 생각보다 잘 맞더라. 신동엽이 여성 출연자들 쪽으로 몸을 기대고 얘기하는데, 스타일이 좋다. 이경규가 남성 출연자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농담하는 모습도 자연스럽다. 진행자들 때문에 자칫 불편할 수도 있는 이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고 재미있다.
정 이경규는 요즘 완전히 살아났다. 지금 이경규는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을 상대하는 프로그램을 두루 하고 있다. <붕어빵>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하고,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서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한다. <육감대결>이나 <해피버스데이>도 시청층이 다 다르다. 잠시 주춤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한번 트렌드를 쫓아가니까 또 금세 따라간다.
차 신동엽을 보면 미국 프로그램 진행자를 보는 것 같다. 점잖으면서도 짓궂은 농담을 던질 줄 안다. 신동엽만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 <롤러코스터>는 ‘남녀탐구생활’을 중심으로 연상연하 커플을 다루는 ‘내 속을 태우는 구려’와 여자친구의 일방적인 공격을 받는 남성을 다룬 ‘헐!’ 코너로 구성된다. <롤러코스터>는 남녀 심리에 관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아 코너들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최근에 ‘헐!’에 대해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남녀탐구생활’처럼 공감 간다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헐!’에 나오는 대사를 똑같이 들어봤다는 남성들이 많더라. 생각해 보니까 그 대사 중에 몇 개는 나도 해본 거더라.(웃음)
차 나는 크게 공감하지는 않았다. 소소하게 재밌는 정도였다. 매회 여자가 화를 내는 걸 보면 과대망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코너에 편집의 묘미를 살려 조금 더 리듬감 있게 짧게 치면서 가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대사의 속도감도 너무 떨어진다.
정 이 코너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공감이다. 공감하면 재미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세 질린다.
차 이 코너에서 오히려 주목하게 되는 건 싸우는 두 남녀보다 그들 뒤의 배경이다. 연인이 싸우는데 저 멀리서 할머니 한 분이 롱테이크로 쭉 걸어오다가 마지막에 남자 어깨를 토닥인다. 화면이 단조롭고 심심하니까 집어넣는 작은 설정일 텐데 이런 게 은근히 재미있다. <롤러코스터>는 아이디어가 좋아 재미있는 면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옛날식 코미디 구성이다. 촌스럽기도 하지만, 그게 <롤러코스터>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리잡아 계속 변형을 하면 장수하는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
여성은 거의 노출 의상… 티브이엔의 보수성 반영
정 이 코너를 보고 있으면 남녀관계라는 게 생각보다 지루하고 심심해 보이기도 한다. 만나서 하는 일이라고는 차 마시거나 영화 보는 것밖에 없으니까 더 자주 싸우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차 ‘헐!’에서는 항상 여자친구는 집에서 어깨를 반쯤 드러낸 상의나 핫팬츠를 입고 빈둥거리고, 남자친구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할 일 없는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이유 없이 트집을 잡는 것처럼 보인다. 또 여성들은 항상 어느 정도 노출한 옷차림이다. 이런 장면은 보수적인 티브이엔의 시각을 반영한다. 티브이엔은 그만의 선정성이 있다. 그건 케이블 티브이 심야 방송 같은 선정성이 아니라 잘 노는데 천박하지는 않은 느낌의 선정성이다. 약간 옛날식 코미디를 보여주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게 티브이엔만의 색깔이 됐다. 티브이엔이 분기마다 <롤러코스터>나 <러브 스위치> 같은 히트작을 낼 수 있는 것도 자기만의 색깔이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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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위치> 이 설정 괜찮다
“남성 출연자가 직접 선곡한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주는 설정은 좋다. 취향을 간접적으로 알게 해준다. 비슷한 설정을 조금 더 넣어도 괜찮을 것 같다. 남녀가 만날 때 상대의 조건이 대부분 싫어도 취향이 하나 맞으면 금세 마음이 통하기도 한다. 이런 설정을 통해 자기만의 매력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정석희)
“남성 출연자에 대해 ‘외모-직업-취미-단점’을 순서대로 보여주고, 여성 출연자는 한번 불을 끄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설정이 재미있다. 낙장불입이랄까. 상대에 대해 한번 포기하면 아무리 후회를 해도 돌아갈 수 없다. 실제 남녀관계도 그렇다. 속도감 있는 진행도 프로그램을 더 긴장감 있게 만든다.”(차우진)
<롤러코스터-헐!> 이 대사 기억난다
“이 코너를 보다가 내가 남편에게 했던 말이 그대로 나와서 놀랐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남자친구에게 이런 대사를 던진다. ‘친구가 간 이식이라도 해줄 줄 알아?’ 나도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남편에게 간에 문제라도 생기면 친구들이 간 이식이라도 해줄 것 같으냐고, 간을 떼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정석희)
“여자가 남자친구에게 전화로 ‘오빠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해?’라고 따지자 남자가 ‘하루에 100번 할게’라고 했다. 여자가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에 전화를 100번 하려면 몇 분 만에 한 번씩 해야 하는지 계산하면서 따지고 있더라. 그것도 소파에서 스트레칭하면서. 정말 짜증 났다.”(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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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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