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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31 19:39 수정 : 2010.04.04 10:22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화려한 캐스팅을 뽐내며 쏟아지는 신작 드라마들 속에서 캐스팅 없이도 믿음이 가는 두 작품이 있다. 에스비에스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와 문화방송 월화드라마 <동이>다. ‘작가 김수현’, ‘연출 이병훈’이라는 다섯 글자만으로도 어느 수준 이상을 기대하게 되는 드라마 대가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10 아시아>(10asia.co.kr) 최지은(사진 오른쪽) 기자와 위근우 기자가 이제 막 방송을 시작한 두 작품을 들여다봤다.

대가족 설정에도 과감히 동성애 다룬 ‘인생은 아름다워’
‘동이’는 새로운 사극 시청자들의 눈높이 맞출 수 있을까

최지은(이하 최) 전설적인 작가 김수현과 사극의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은 이병훈 감독이 각각 신작을 내놓았다.

위근우(이하 위) <지붕 뚫고 하이킥>과 <추노>가 끝나서 마음 둘 곳 없는 시청자들이 기대할 만한 작품들이다.


지난한 세월을 몇마디 대화에 녹이는 솜씨

이병훈 감독은 칠순을 바라보는 연세에 현장 연출 감독을 한다는 게 대단하다.

<동이> 제작발표회 때 문화방송 사장도 이병훈 대선배라는 호칭을 쓰더라.

지금까지 김수현 작가의 주말 가족극은 저녁 8시대가 많았는데, <인생은 아름다워>는 10시다. 홍보도 크게 하지 않았고, 아직까지 초반 폭발력도 강하지 않지만 ‘김수현’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인 건 확실하다.

다른 가족극이 극단의 캐릭터와 말도 안 되는 설정으로 일관한다면, 역시 김수현의 드라마에서는 납득 가능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게 정석인데,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시어머니가 예정보다 20분 먼저 비행기 타고 내려서 14분 동안 며느리를 기다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사소한 상황에서 몇 마디 대화로 캐릭터를 풀어내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한 지난 세월을 보여준다. 거장의 솜씨다.

거장 김수현 작가의 솜씨가 잘 드러나는 <인생은 아름다워>와 칠순을 바라보는 이병훈 감독이 현장을 뛰며 연출하는 <동이>. 에스비에스·문화방송 제공

삼대가 한집에서 같이 사는데 그냥 단순하게 같이 사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각 세대와 인물이 하나의 사건을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이는가를 보여준다.

김수현 작가는 항상 대가족이라는 설정으로 가족의 정을 이야기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동시대적인 이슈로 환기시킨다.

한국의 정상적인 가족 이데올로기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작가다. 늘 설정이 새롭다.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신은경이 이혼남에 애 딸린 남자와 어떻게 가족이 되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대부분의 가족 드라마가 가족이 되는 과정은 없애고 부딪히고 갈등하는 모습만 부각시키는 반면, 김 작가는 갈등을 포용하는 성숙한 가족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재혼 가족이 중심이다. 재혼을 해서 행복하지만 그로 인한 어려움도 있다.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 간의 미묘한 거리감도 있고, 자기가 낳지 않은 아들을 어려워하는 거리감도 있다. 이런 갈등이 모두 보인다.

초반에는 할아버지가 30년 동안 바람나서 5명의 첩과 살다가 뒤늦게 본처가 있는 집으로 들어와서 살겠다고 우기는 설정이 극을 끌고 간다. 쉽게 이해하기 힘든 설정이지만, 할아버지의 태도에 설득력이 있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면목이 없으니까 뻗대는 게 보인다. 그에 대한 할머니의 반응을 보면 지나온 삶이 보인다. 평생 학교에서 양호선생님 하면서 아들 셋 혼자 키워낸 어머니의 강단이 보통은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장손을 게이로 설정한 것부터 파격적

김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대화를 보면 서로 소통해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보인다. 성숙한 어른들의 드라마다.

인간을 바라보는 통찰력의 깊이가 확실히 남다르다. 할머니가 보청기를 빼는 건 세상과 잠시 차단하겠다는 표시인데, 이런 세세한 설정에서도 할머니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어른들을 천박한 인간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가장 큰 파격이라면 김수현 작가가 주말 가족극 주인공으로 동성애 커플을 등장시킨 거다.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처럼 동성애를 코드로 이용하는 드라마는 있었지만 동성애 커플의 삶을 보여준 드라마는 노희경 작가가 10년 전에 쓴 특집극 <슬픈 유혹>밖에 없었다. 실제 동성애 커플을 시리즈 드라마에서 깊이 있게 보여주는 건 이 드라마가 사실상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드라마의 중심 가족의 장남인 태섭을 게이로 설정했다는 것부터 파격적이다. 집안의 장손이 여자가 아닌 남자를 좋아한다는 데에 대한 가족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김수현 작가의 힘은, 불륜 얘기를 하면 처음에 바로 불륜을 드러내고 그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데 있다. 거장이지만 늘 새로운 걸 이야기하고, 새로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박제된 명성에 기댄 사람이 아니다. 또 동성애 커플의 깊은 고민도 포착해낸다. 사진작가 경수는 자기가 게이라는 걸 숨기고 살다가 결혼해서 애까지 낳았다는 데 죄책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사귀는 사람인 태섭은 그 전철을 밟지 않기를 원하는 인간적인 고민이 있다.

흥미 위주의 설정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한 총체적인 얘기를 이 두 인물에 넣었다. 경수를 ‘괴물’이라며 배척하는 부모님과 겉으로 여자를 만나는 척하는 태섭 등을 보여준다. 이 둘은 지금까지 게이 캐릭터에 대한 편견처럼 여성스럽게 그려지지 않는다. 태섭은 멀쩡한 의사다. 동성애혐오증에 기반한 동성애의 왜곡이나 모독을 넘어선다. 또 이들의 성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대사를 보면 김수현 작가가 대담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수현 작가는 동시대적인 문제를 가져오면서 우리가 가진 고민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준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쓰고 싶은 걸 끝까지 쓸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도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지, 갈등을 어떻게 보여주면서 어떤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지 궁금하다. 김수현 작가와 이병훈 감독은 다르다. 이 감독은 자기 세계를 고집하는 장인이다. 밑바닥에 있던 인물이 모든 미션을 이뤄내고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허준>과 <대장금> 등에서 보여준 ‘이병훈 월드’라고 할 만한 형식이 있다. 그것 때문에 호불호도 갈린다.

이번 작품으로 히트 작품들의 대를 이을 것이냐, 아니냐의 판가름이 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미 시청자들이 지난해와 올해 <선덕여왕>과 <추노>라는 새로운 사극을 봤다는 거다.

이병훈 감독에게도 어느 정도의 변화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대로 있다는 게 퇴행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시기다. <선덕여왕>에는 주인공과 함께 성장하고 타협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나왔다. 주인공의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과정을 보여주는 사극이었다. 그래서 주인공의 반대자인 미실의 세계관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이병훈 감독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주인공의 조력자, 아니면 반대자다. <동이>가 아직 몇 회 진행되진 않았지만, <선덕여왕>의 시청자들이 <동이>에서 뭘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천민들의 울분과 ‘검계’를 어떻게 그려낼까

이병훈 감독의 드라마를 아르피지(RPG·롤플레잉게임) 사극이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초반에 아역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운명이 변한다. 그런데 그런 장치들이 단지 주인공의 성공을 위한 장치로서가 아니라 드라마에 숨을 불어넣는 구실을 해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하다.

<동이>에서 가장 걱정이 되고, 또 그만큼 기대가 되는 건 검계라고 불리는 천민 집단의 얘기다. 천민들의 울분과 검계라는 조직이 어떻게 엮이는지가 중요하다. <선덕여왕>이 궁 안의 정치가 저잣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줬고, <추노>는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저잣거리에 중심을 뒀다. 숙종이라는 절대 군주의 품 안에서 성공하는 인물과 천민의 목소리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가 <동이>의 중요한 지점이다. 그걸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면 과거의 반복에 그치지 않을까.

이 장면, 김수현 작가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김해숙이 연기하는 엄마가 냉장고에 붙여 놓은 메모지를 멀리 쥐고 들여다보는 장면이 있다. 노안이니까 그렇다. 이렇게 사소한 디테일이 김수현 작가 드라마에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단순한 장면이지만 할머니를 생각나게 한다.”(위근우)

“김해숙이 연기하는 엄마와 송창의가 연기하는 장남 태섭이 결혼을 두고 부딪히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 벽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이 둘을 두고 누가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없으면서도 둘이 느끼는 갈등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런 장면이 김 작가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다.”(최지은)

이 장면, 이병훈 감독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다

“드라마 초반에 천민 아이들과 양민 아이들이 달리기 대회를 한다. 동이가 먼저 들어왔는데 양민 아이들이 승리했다고 판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달리기가 아니다. 천민이라 차별받는 동이가 대거리를 할 줄 아는 당돌한 아이라는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이병훈 감독의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위근우)

“동이가 문안비가 되려고 양반집 마님 앞에서 글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동이가 더듬으니까 마님이 글을 잘 모르냐고 다그치는데, 동이가 거꾸로 글씨가 틀려서 그렇다면서 틀린 부분을 지적한다. 비범함과 영특함을 보여주는 이런 장면, 꼭 있다.”(최지은)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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