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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24 19:08 수정 : 2010.03.15 16:43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이미 한국방송 드라마 <추노>가 선점해버린 수·목요일이지만, 천지호(성동일)가 황철웅(이종혁)을 쫓듯 천천히 그러나 의미심장하게 <추노>를 쫓는 이들이 있으니 문화방송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이하 <아결녀>)와 에스비에스 <산부인과>다. 2004년 방송된 명세빈 주연의 <결혼하고 싶은 여자> 후속편 격인 <아결녀>는 ‘아직도’ 결혼을 향해 달려가는 박진희, 엄지원, 왕빛나 이들 세 여자의 얘기다. 결혼에 골인하면 다음 코스는 바로 산부인과. 장서희가 ‘워커홀릭 골드미스 임산부 산부인과 의사’를 맡은 <산부인과>는 병원을 배경으로 노골적인 ‘비포&애프터 결혼’ 얘기를 풀어놓는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사진 오른쪽)씨와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씨가 <산부인과>와 <아결녀>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절박감 드러나지 않지만 솔직한 대사가 좋은 ‘아결녀’
왜 ‘산부인과’ 같은 메디컬 드라마에선 의사만 일하나

정석희(이하 정) <산부인과>는 <종합병원> 같은 드라마에서 산부인과만 떼어놓았다고 보면 된다. <산부인과>는 사석에서도 쉽게 하기 힘든 얘기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처음에는 너무 적나라해서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보다 보니 익숙해지더라.

차우진(이하 차) 비뇨기과와 산부인과 등이 얽혀 있는 에피소드가 생각보다 재미있다.

장서희가 산부인과 의사로 열연하는 <산부인과>(왼쪽)와 골드미스들의 결혼분투기를 다룬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에스비에스·문화방송 제공

야망과 품위의 포스, 현영의 재발견

메디컬 드라마의 단점은 만약 그 의사가 없었다면 그 병원은 어떻게 됐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상황이 주인공 의사에게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도 그렇다. 장서희가 마치 신의 손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격화되는 게 이상하다. 마치 <아내의 유혹>에서 모든 걸 척척 해내던 민소희를 보는 것 같다. 너무 똑 부러지게 모든 걸 잘하는 게 반복되니까 질린다.


소위 ‘막장 드라마’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장서희가 나와서인지 보는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드라마 분위기가 또 달랐을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이 모든 걸 도맡아 하니까 주변 인물들의 성격이 보이지 않는다. 의사들이 의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가 너무 장서희 중심이다. 주변 인물을 맡은 배우들은 연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각자 생활이 있어야 캐릭터가 생길 텐데 어떤 이야기를 가진 인물인지 배우가 스스로 상상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연이 너무 많다. 의사들이 술집에서도 환자를 만나고, 도망간 환자도 우연히 만난다. 출근길에 딱지를 뗀 경찰도 환자로 다시 만난다. 성지루가 등장한 에피소드도 ‘이런 운명이?’ 그 이상이 없다. 필요 없는 우연으로 시간을 잡아먹는다.

흥미로웠던 건 현영이었다. 현영의 재발견이다. 예능 등에서 보여주는 것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신기했다. 야망과 품위가 있는 여자 역할을 잘해낸다.

이 드라마에는 회마다 환자와 환자 부모들이 나온다. 모두가 연기를 잘하는 이들이다. 김미려도 인상적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불편한 것은 인물들이 편견에 있어서 너무 상식적이라는 거다. 그래서 보수적이다. 한 걸음만 더 나가면 괜찮은 세계관을 가진 드라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거기까지 가지 못해 결국 아침드라마라는 느낌이 든다. 의사로 나오는 송중기가 간호원 이영은과 궁합을 핑계로 헤어진다는 것도 이해가 잘 안간다.

남자들이 은근히 점이나 궁합 같은 미신을 잘 믿는다.(웃음)

장서희 캐릭터에 분명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을 살리지 못해 이 드라마가 전반적으로 아침드라마 분위기를 풍긴다. 갓난아기로 나오는 인형은 너무 티가 난다.

수술 장면에 대한 노하우가 별로 없는 느낌이다.

<산부인과>는 방영 초에 우려했던 것처럼 불륜이라든지 하는 막장 코드로 풀어가지 않는다. <종합병원>만큼은 아니지만 웬만한 드라마보다는 재미있다.

시청자들이 더 리얼한 장면 등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성지루가 나왔던 회 이후 그렇게 감동을 자아내는 쪽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시청률은 <산부인과>가 높아도 주변 20~30대 미혼 여성들은 <아결녀>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더라.

<아결녀>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 비하면 내용이나 구성이 좀 떨어진다. <아결녀> 세 명의 여자는 결혼을 못했다고 해도 안타까워 보이지가 않는다. 전편에서 명세빈이 맡았던 이신영은 엄마의 구박과 오빠 부부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절실하게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박진희나 엄지원은 왜 꼭 결혼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서른에서 서른한살 즈음에는 주변에서 결혼에 대해 압박하고 스트레스를 주지만 서른다섯 즈음이 되면 주변에서의 압박보다 자기 의지의 비중이 더 커진다. 극중에서 서른네살로 나오는 이들이 스스로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는 게 별로 공감되지 않는다. 다들 일에서도 성공했는데 말이다.

‘언제 결혼해?’라는 질문 때문에 결혼을 한다는 식인데, 결혼을 하고 나면 ‘아이는 언제 낳을 거야?’라는 질문을 받고, 그다음에는 또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사람들의 질문은 끝이 없다.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로 그런 주변의 질문을 얘기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상황은 설득력이 없지만 솔직한 대사나 표현은 좋다. 허영에 대한 욕망을 숨기거나 감추지 않는다. 연봉 좋고 능력 있고 잘생긴 남자친구를 원하지 않는 사람만 우리에게 돌을 던지라는 대사나, 엄지원이 짝이 없어서 괴로워하자 ‘키 180 이상에 명문대, 억대 연봉에 시누이 없는 차남, 인물 좋고 사투리 안 쓰고 머리숱 많고, 40평대 아파트를 가진 남자’ 중에 니 짝이 없는 거라고 직언하는 대사 등이 재미있다.

전편과 가장 다른 점은 박지영이 연기하는 유부녀 상미라는 캐릭터다. <조강지처클럽>의 오현경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박지영은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연하의 남자와 얽히기도 한다. 이 캐릭터는 결혼해봤자 이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걸 보여준다. 잘생긴 아들 김범을 낳는다고 해도 말이다.(웃음) 차라리 ‘결혼하고 싶지 않은 여자’로 끝나는 게 나을 것 같다. 산뜻한 드라마를 기대했는데 시청률을 의식해서인지 얘기가 점점 막장으로 가는 느낌이다.

김범에게 부여된 캐릭터가 말이 되나

김범은 이 드라마에서 시청률을 견인할 수 있는 나름의 기대주다. 그런데 이 캐릭터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디밴드를 하는 대학생이라면서 매일 방송국에 앉아 있다. 말이 안 된다. 김범에게 부여된 캐릭터라면 지금 보여지는 캐릭터와 생활하는 공간이 달라야 한다.

박진희도 도무지 기자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리포터에 가깝다. 다른 직업보다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좀더 가깝게 볼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박진희의 직업적인 부분이 설명이 되면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도 생길 것 같다.

제목을 ‘결혼하고 싶은 여자’로 정해놓고 내용을 거기에 끼워맞추는 것 같다. ‘연애하고 싶은 여자’도 아니고 무조건 결혼을 하는 길로 가야 한다는 식이다.

과장된 코미디가 재미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야기가 쭉 이어지면서 드라마 자체가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그 순간 엄지원의 표정이나 그때의 박진희 대사, 최철호의 연기가 재미있는 거다. 또 갑자기 인물들이 정색하고 진지한 얘기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전체를 해치는 것 같다.

이 드라마, 실용적이다

“남자들이 잘 모르는 산부인과 얘기나 여자들은 잘 모르는 비뇨기과 질환을 있는 그대로 얘기한다. 각 신체 기관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보여주거나 수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게 정보가 된다.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성교육 시간 같기도 하다.”(정석희)

“연애를 못해본 한의대생 최철호에게 김범이 여자를 대하는 실질적인 처세를 알려준다. 일종의 러브코치다. 최철호가 외국에 다녀오면서 박진희에게 초콜릿만 선물해 곤란해진다. 여자의 속물근성을 이해 못하겠다는 최철호에게 김범이 이렇게 얘기한다. 초등학생과 대학생이 바라는 선물의 수준이 다른 것과 같은 거라고. 완전히 설득력 있더라.”(차우진)

이 배우, 재발견하다

“엄지원의 재발견이다. 왠지 이 드라마의 인물이 엄지원 실제 성격일 것 같다. 생생하게 자기 느낌을 내면서 역할에 충실하게 연기를 한다. 본래 자기 모습에 가까울 때 연기를 잘하던데, 그런 게 아닐까. 실제 엄지원도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정석희)

“현영이나 성지루 등 카메오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한다. 기대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히려 이영은이나 송중기, 안선영 등 조연들은 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인데 그게 드라마에서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차우진)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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