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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16 19:11 수정 : 2009.12.18 11:05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2009년 드라마 이어달리기는 두명의 대표 꽃미남이 그 테이프를 끊으며 시작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10대 곱슬머리 구준표와 아이돌 출신 지후 선배는 각각 30대 곱슬머리 태봉씨와 내조의 여왕 천지애에게 바통을 넘겼다. 천상천하 유아독존형 계보를 따라 미실이 태봉씨의 뒤를 이었고, 여왕의 계보를 따라 선덕여왕은 내조의 여왕 뒤를 이었다. 다음 주자인 불꽃 카리스마 김현준과 정체불명 최승희가 달리기 대신 사탕 키스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거침없이 지붕을 뚫으며 등장한 마지막 주자 해리와 신애. 둘의 치열한 접전 끝에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나 뭐라나. <10 아시아>(10asia.co.kr)의 최지은 기자(사진 오른쪽)와 위근우 기자가 2009년 드라마를 정리했다.

2009년 드라마 총결산…예상 밖의 대박 ‘내조의 여왕’
‘돌아온 일지매’ ‘탐나는도다’ ‘시티홀’ 아깝다 아까워

최지은 (이하 최) 올해는 <꽃보다 남자>(이하 <꽃남>)가 강렬하게 문을 열었다. 이민호라는 스타를 만들어냈고, 김현중도 연기자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화제작이었지만 동시에 문제작이었다. 젊은 층이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편성에서 표류하다가 급하게 방송을 시작했다. 촬영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가다보니 대본과 연출 등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촬영 중 사고도 잦았다.

사람이 문제일까 시스템이 문제일까


위근우 (이하 위) <꽃남>도 그랬지만 올해에는 제작 단계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던 작품이 많았다. 2년 정도 기획된 <카인과 아벨>은 설정이 바뀌고 작가가 교체되고 캐스팅이 바뀌면서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이 됐다. 작가와 연출이 뛰어나도 기획에서 어긋나면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강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아예 제작이 무산됐다. 이윤정 감독의 <트리플>도 기획 단계에서 잡음이 많았다. 제작 시스템의 문제가 많이 드러난 한 해였다.

시청률 40%를 넘기며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이 된 <선덕여왕>. 문화방송 제공

시스템이 문제인지, 사람이 문제인지 혼란스러운 면이 있다. 방송사의 편성관계자와 제작자, 투자자들이 드라마 시스템 자체에 많은 영향을 끼치니까. 최근에는 방송사의 안목이 믿을 만한가 의문이 든다. 시청률에 들어가는 30대 이상 시청자 위주의 드라마가 주를 이룬다. 결과적으로 그저 그런 진부한 기획들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창작자들이 자기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예상 밖의 선전을 한 드라마는 <내조의 여왕>(이하 <내조>)이었다. <꽃남> 끝날 때까지 한 자릿수 시청률을 유지하다가 끝나자마자 시청률이 상승곡선을 그렸다. <내조>는 신인급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작가의 주제 의식이 분명했다. 권력보다 소중한 가정이라는 가치를 끈기 있게 밀고나갔다. <꽃남>에 밀릴 때 무리수를 뒀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거다.

두 달이라는 짧은 준비 과정을 거쳐 급하게 편성된 작품이었다. 내용도 세 커플이 얽히는 진부한 드라마 정도로 여겨졌지만 잘 만들었다는 것 하나 때문에 성공했다. 100억원이 넘는 투자비 없이도 잘 만든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 연출, 자기 몫을 다한 거품 없는 연기, 매력적인 캐릭터만 갖추면 충분히 하나의 드라마적인 세계를 완성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간접광고나 외부 의견 등에 흔들리거나 작가와 연출가가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면 드라마는 하루아침에 망가진다.

<돌아온 일지매>(이하 <일지매>)는 황인뢰라는 작가주의 드라마감독이 자기가 하고 싶은 원작을 풀고 싶은 방식대로 고집 있게 만들어낸 장인의 작품과도 같은 드라마였다. 뚝심 있는 작품이 인정받아야 창작자가 흔들리지 않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영상과 내용은 아름다웠지만, 시청자들이 책녀라는 존재를 뜬금없다고 받아들이기도 했고 화려한 액션 활극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드라마가 되었다. 지금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서 모든 문제는 시청률로 환원된다. 시청률과 별개로 작품에 대한 온당한 평가가 내려지는 시스템이 아니다. <일지매>는 그 의의가 얘기되지 않고 종영됐다. 다시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시청률은 개개인의 선택이 낳은 결과다. 대중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면도 작품 자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는 매체를 통해 제대로 내려져야 한다. <탐나는도다>는 열성팬이 많았지만 방송사가 외면한 경우다. 기획은 참신했고 얘기도 잘 만들어졌지만 어울리지 않는 주말 저녁 8시대 편성이 잡히고, 방송사가 시청률에 밀려 조기종영을 결정하면서 후반에 급하게 이야기가 진행됐다. 2주 먼저 내리고 새 드라마를 편성해 얻은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자사 드라마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드라마라는 생태계의 보전과 종 다양성을 위해서 필요한 드라마들, 존재 자체가 중요한 드라마들이 있다. <일지매>와 <탐나는도다>는 그런 드라마였다. 드라마에는 <아이리스> 같은 블록버스터 작품도 있어야 하고 <일지매> 같은 작품도 있어야 한다. 단지 투자 대비 수익만을 따진다면 <천사의 유혹> 같은 드라마만 만들어지지 않겠나.

<천사의 유혹>은 지난해 ‘뻔뻔함’으로 설명되는 막장드라마 트렌드를 만들어낸 <아내의 유혹>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다. 이런 막장 트렌드는 지나가는 물결 중 하나라고 본다. 정점을 찍으면 사라지지 않을까.

올해 상반기를 이끌었던 <꽃보다 남자>(위)와 <내조의 여왕>. 한국방송·문화방송 제공

올해에는 사회현상을 그린 드라마도 많았다. 법정드라마 <파트너>와 <남자이야기>, 방송중인 <히어로>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토대로 권력과 돈, 언론의 이야기를 그렸다. 하고자 했던 얘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한 것은 <시티홀>이었다. 스스로 정치드라마가 아니라고 했지만 방송 첫날 보궐선거가 있었고 방송 도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지금 우리 사회와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드라마였다. 우리가 체감하는 현실을 잘 보여줬다.

인주시라는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무원들 얘기를 통해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좁은 사회에서는 가능할 수 있다는 걸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보여줬다.

히트작 <선덕여왕>은 미실의 죽음 전인 초·중반과 죽음 후인 후반으로 나뉜다. 초·중반에는 <대장금>을 쓴 김영현 작가의 노하우와 기본기, <히트>부터 같이 작업한 박상현 작가의 장기인 장르적 재미가 팀워크로 어우러지면서 좋은 대본이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 미실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선덕여왕의 적으로 선정해 극의 재미를 더했다. 고현정의 연기력도 크게 작용했다. 고현정의 연기와 비담의 캐릭터는 젊은 여성들도 사극으로 끌어들였다. 덕만, 천명, 김유신 등 젊은 세대를 통해 동료애, 우정, 사랑 등을 다면적으로 보여줬다. 청춘사극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대작을 이끌 만한 배우는 따로 있나

미실의 죽음 이후 긴장감이 많이 떨어졌는데, 이는 덕만의 여왕 즉위 때문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정치세력인 미실과 덕만이 갈등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모순이 수정되는 과정이 채 끝나기도 전에, 덕만에게 왕으로서의 가치관이 만들어지지도 않은 것 같은데 미실이 죽고 덕만이 왕이 됐다. 후반에는 재미가 떨어졌지만 <선덕여왕>은 정치드라마로 지금 사회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가려운 데를 긁어줬다. <아이리스>는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성공했다는 점에서 꼭 분석해봐야 하는 텍스트다. 이전의 블록버스터 드라마였던 <카인과 아벨>과 <태양을 삼켜라>는 소리 없이 평이하게 끝났다.

초반의 힘은 이병헌이었다. 폭발신 등이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진 않았다. 공감 가지 않는 상황에 흡인력을 부여하는 이병헌의 연기 때문에 보기 시작한 이들을 시청층으로 주저앉혔다. <아이리스>는 진부하며 전통적인 서사 구조다. 그래서 모두가 장벽 없이 볼 수 있었다.

다른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은 뭐가 문제였을까. 단순한 서사 구조와 개연성 없는 인물의 등장 등으로 지적된 단점을 얘기할 때 <아이리스>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렇다면 결국 이병헌일까. 거슬러 올라가 <아이리스> 전의 블록버스터 히트작은 <올인>이다. 단 두 작품만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시사하는 바는 있다.

대작을 이끌 만한 배우는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초반에는 배우의 역량으로 가고, 그 이후에는 관성으로 간다. 그래도 <아이리스>의 성공 요인은 미스터리다. 김병욱의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은 시트콤보다 드라마에 가까운 구성으로 이야기 위주로 끌고가고 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웃긴 장면들 위주였다면 <지붕킥>은 시트콤과 드라마 사이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운명적인 사랑과 재산 상속이라는 거대담론에 묻힌 사람들의 고민을 잡아낸다. 신인 발굴과 중견배우의 재발견 면에서도 김병욱의 작품만한 것이 없다.

또다른 경지의 발견, 김병욱

<지붕킥>이 돈과 가족의 문제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냥 봐도 너무 웃긴다. 대중적인 재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김병욱은 시청률과 좋은 작품을 다 잡아냈다. 한명의 창작자가 자기 세계를 끈기 있게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김병욱의 작품세계가 흔들림없이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또 한번의, 또 다른 하이킥이 나올 수 있다. 다행이다.

■ 2009년 예상치 못한 ‘왕건이’

“<탐나는도다>. 제주도라는 낯선 땅에 낯선 인간이 들어와서 일어나는, 그만큼 낯선 이야기를 드라마로 잘 만들었다. 사전 제작 시스템이 얼마나 드라마를 잘 만들 수 있게 하는지 보여줬다.”(최지은)

“<내조의 여왕>. 마무리가 탄탄했다는 점에서 올해 보기 드문 드라마였다. 재미있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꽃남>에서 갈아타겠다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여론 면에서도 의미 있는 흐름이었다.” (위근우)

■ 2009년 기대 못미친 ‘쭉정이’

“<꽃보다 남자>. 유명했던 원작 덕에 팬들의 기대가 컸다. 이 드라마를 보겠다는 시청층도 명확했다.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기대 이하였다. 아쉽다.” (최지은)

“<남자이야기>. 송지나 작가의 복귀작이고 한류스타 박용하의 출연작이어서 기대가 컸다. 영웅 서사 그 이상을 기대했는데 눈에 보이는 커다란 적을 상정해놓고 그들을 없애는 데만 치중했다.” (위근우)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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