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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09 18:27 수정 : 2009.12.10 08:01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스타 부부들의 전성시대다. 예전에는 아침 프로그램 등에서 주로 다뤄졌던 스타 부부의 결혼 이야기는 문화방송 <세바퀴(세상을 바꾸는 퀴즈)>와 에스비에스 <자기야> 등을 통해 예능화되더니,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변신해 케이블 티브이에서 다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우리 결혼했어요>의 실제 부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엠비시 드라마넷 <부엉이(부부가 엉켜사는 이야기)>와 <자기야>의 리얼리티판 에스비에스 이티브이 <결혼은 미친 짓이다>(이하 <결혼>)를 꼽을 수 있다. 티브이엔 <미세스타운-남편이 죽었다>(이하 <남편>)는 한국판 <위기의 주부들>을 표방한 드라마로 케이블에서 결혼을 어떻게 드라마 소재로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사진 오른쪽)씨와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씨가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케이블 티브이 속 결혼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리얼리티 있지만 부부 미덕 안보여 ‘부엉이’ ‘결혼은 미친 짓이다’
한국판 ‘위기의 주부들’ 표방하지만 재치가 없네 ‘남편이 죽었다’

정석희(이하 정) 요즘 공중파에서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은 그 형식을 그대로 케이블로 가져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든다. 문화방송 <무한도전>이 엠비시 에브리원 <무한걸스>로, 한국방송 <1박2일>이 케이비에스 조이 <미녀들의 1박2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렇게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서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차우진(이하 차) <부엉이>와 <결혼>도 비슷하다. <자기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쌍방종신노예계약’ 맞는 말일세


세 부부의 결혼생활을 리얼리티 형식으로 보여주는 엠비시 드라마넷 <부엉이>(위)와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죽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 티브이엔 드라마 <미세스타운-남편이 죽었다>. 엠비시 드라마넷· 티브이엔 제공

이 두 프로그램에 나오는 부부들은 이미 여타 토크쇼에서 익숙해진 부부들이다. 토크쇼에서 했던 얘기를 드라마로 재구성하는 정도다. 흥미로운 점을 꼽자면 부부관계가 구성원에 따라 다양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보여준다는 점이다.

말 없는 부부, 남편이 잡혀사는 부부, 모범적으로 사는 부부 등등 서로 다른 부부생활을 하는 커플들이 나온다.

성대현 부부는 만약 공중파에서 그런 장면이 나갔다면 욕먹느라 정신없었을 것 같더라. 남편이 오죽 철이 없으면 저럴까 싶기도 하지만, 남편이 자식도 아닌데 그렇게 구속하고 압박하는 건 너무했다 싶다. 남편이 그렇게 야구를 좋아하는데 그 야구장비를 내다버리더라.

그런 것들은 프로그램 이야기 진행을 위해 들어간 에피소드처럼 느껴진다. 관계에 있어서 어긋난 부분들을 확대해서 보여준다.

그래도 전혀 없는 얘기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또 설정이긴 하겠지만 차를 두 대나 가진 집에서 김치찌개만 300일을 먹는다는 데 할 말이 없더라. 부인이 현명한 여자로 보이는데 그런 면에서 잘 납득이 안 간다.

그래도 그 부부가 그렇게 잘 산다면 그건 또 궁합이 잘 맞는 건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확실히 길들여졌다고 할까.

성대현 부부에게만 유독 문제가 있어 보이는 건 아니다. 살다 보면 어디에든 완벽하게 모범적인 부부는 없더라.

같이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두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다. 잡혀사는 남자들을 보면 더 그렇다.

조헤련 부부를 보면 남편의 경제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남편에게 충분한 경제력이 없어서 부인에게 잡혀사는 건 아닌가 싶다. 남자든 여자든 한쪽이 기운다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건 아니다.

역시 돈을 벌어야겠구나, 집에 있으면 안 되겠구나.(웃음)

조혜련 부부는 그런 관계가 어느 정도 설정이겠지만 조혜련이 남편에게 ‘당신도 남일 뿐이야’ 등의 얘기를 막 하는 것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

화를 내는 것도 부부관계에서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조혜련 남편은 화를 내도 될 만한 상황인데 참고 말을 안 한다.

조혜련의 모습과 아버지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자기가 피곤하면 ‘내가 더이상 어떻게 더 잘해주냐’면서 ‘뭐가 불만인지 말을 하라’고 한다. 항상 자기만 화를 내도 괜찮은 사람이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뒤바뀌긴 했지만 어쩌면 그 모습이 가장 보편적인 우리나라 가정의 모습이 아닐까. 대부분의 부부가 서로에 대해 잊은 것처럼 무심하게 산다. 이외수 부부가 결혼에 대해 행복을 담보로 한 쌍방종신노예계약이라고 했는데, 그건 맞는 말인 것 같다.(웃음)

남편의 죽음은 아내들의 로망?

부부가 서로 싸우다가 30년 정도 살면 이외수 부부처럼 저렇게 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이외수 아내가 남편에 대해 왕이라고 얘기하는 건 약간 의아하다. 요즘 세대와 다른 가치관이라서 그럴 거다.

<부엉이>와 <결혼>을 보면서 딱 한번 ‘아, 저래서 부부지’ 했던 게 이외수 부부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이외수가 라디오 프로그램을 그만두는 순간에 부부가 함께 있더라. 마음이 허전한 순간에 함께 있어주고 도닥여주는 게 부부다.

아직 결혼을 안 해서인지 두 프로그램을 보면서 계속 나의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심각한 판타지라면 이 두 프로그램은 너무 반대쪽에 서있다. 처음 시작할 때 결혼식 비디오를 보면서 서로 ‘풋풋하네’ ‘귀엽네’ 그런 얘기를 한다. 그랬던 그 부부가 10년, 20년이 지나면서 관계가 변하고 서로에 대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 그래서 또 ‘결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재미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진솔하게 잘 사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내는 데 실패하는 건 아닌가 싶다. 결혼한 부부가 모두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제대로 잘 사는 부부들도 분명히 있다. 물론 내가 젊은 나이로 돌아간다고 해도 결혼에 대한 두려움은 생길 것 같기는 하지만.

<남편>은 설정의 틀이 재미있다. 남편이 죽는다는 건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라고 하지 않나.(웃음)

많은 아내들이 한번쯤은 저 인간이 없어지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볼 거다.

이 드라마에서 기대했던 것은 적나라한 얘기들이었다. 제목도 세고 채널도 티브이엔이니까.(웃음) 적나라한 부부관계를 보여주면서 남편이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을 풍자적으로 그려주길 기대했다. 그런데 기대만큼은 아니다.

시도와 기획은 좋지만 아쉽게도 그런 면에서는 평이한 편이다. 사건사고는 많은데 어디서 본 듯한 얘기를 엮어놓았다는 인상이다. <위기의 주부들>과 내레이션 등의 형식은 비슷하지만 이야기가 힘이 없고 아쉬운 점이 많다.

‘남편이 죽었다’라는 이야기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얼마나 많은가. 사소한 이야기로 촘촘하게 끌고 나가도 좋을 텐데 사건이 너무 거창하다. 인물 간의 관계도 복잡하다.

서로 그릇을 빌려주거나 하는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보통일들이 잘 그려지면 좋을 것 같다. 신문에 날 법한 사건들의 연속이 되니까 현실감이 없다. <위기의 주부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스터리한 사건을 하나 깔아놓았는데 문제는 그게 뭔지 궁금하지 않다는 거다. 남편들이 죽었는데 무슨 사연인지 궁금해하기보다 그냥 ‘다 죽었나 보다’ 정도로 넘어가게 된다.

유머가 없다. 보통 제목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내용은 역설적으로 결혼은 그래도 할만하다는 얘기를 하기 마련인데, 여기에서는 이게 정말 결혼을 하지 말라는 의미인지 뭔지 헷갈린다.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몰라서인지 설득력이 없다. 그래도 케이블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아현이나 오현경 같은 배우들이 나와서 좋다. 오현경은 특히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과 맞물려 정통연기를 보여주니까 재미있다. 이야기가 좀만 더 받쳐주면 좋을 텐데.

최송현이 연기하는 대담한 장면들이 많다. <위기의 주부들>에서 에바 롱고리아 정도의 역을 맡고 있다. 문제는 연기는 잘하는데 이미지가 도발적이지 않아서 전혀 야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어도 그런 아우라가 없어서인지 그다지 맡은 역과 어울리지가 않는다.

공중파는 아직도 손만 잡고 잔다네

공중파 티브이 드라마나 라디오에서는 부부관계나 결혼생활에 대한 태도가 항상 긍정적이고 아름답다. 남편이 매일 술 마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인데도 상담을 받고 서로에게 편지를 쓰면서 울고 나면 손을 잡고 나간다. 그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해결됐다는 식으로 보여준다. 케이블에서는 다른 시점에서 관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좋다.

공중파에서는 남녀가 함께 멀리 놀러 가면 아직도 따로 잔다.(웃음) <남편>에서는 아니더라. 케이블 티브이의 시각으로 남녀 혹은 부부관계나 결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아직까지는 공중파 프로그램이나 인기 프로그램을 비슷하게 흉내내는 데 급급해 보여서 아쉽다.

■ 이 말에 상처받았다

“조혜련이 남편에게 ‘당신과 둘이 있으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을 부른다’는 얘기를 한다. 누구에게 들어도 상처받았을 얘기인데 그걸 남편에게 들었다면 정말 상처가 될 것 같다.”(정석희)

“성대현이 아끼는 야구 용품을 아내가 말도 없이 버린 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그다음 아무 말도 없이 돈을 주고 슈퍼에 갔다오라는 심부름을 시킨다. 성대현은 또 심부름을 할 것처럼 나가서 야구를 한다. 저러니까 둘이 사는구나 싶긴 하지만, 남편이 아끼는 물건을 정리해서 치워버리는 건 납득이 안 간다.”(차우진)

■ 이 장면에 공감간다

“<남편>의 오현경은 여배우로 성공해서 결혼한 잘나가는 여자다. 보통 그런 여자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캐릭터를 만들기 마련인데 오히려 자기 아이를 아끼는 엄마로 나온다. 그려지는 비주얼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식적인 여자로 나오는 게 좋다.”(차우진)

“<남편>에서 이아현은 아이들에게 대학교수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바람둥이 남편과 이혼하지 않는다. 능력 있는 기자로 나오는 여자도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람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는 그런 점에 공감이 가더라. 물론 그렇게 억지로 살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래야겠지만.”(정석희)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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