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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그거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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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문화방송 <선덕여왕>이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삼개월 넘게 버티고 있고,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20%가 넘는 시청률로 시작한 한국방송 <아이리스>는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두 작품과 같은 시간에 방영되는 드라마는 ‘불운한 대진표’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게 꼭 대진표의 문제일까? <10 아시아>(10asia.co.kr)의 최지은 기자(사진 왼쪽)와 위근우 기자가 한국방송 <천하무적 이평강>(이하 <이평강>)과 문화방송 <히어로>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설정들의 뒤죽박죽,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들 ‘천하무적 이평강’
서민과 삼류의 이상한 조합, 백윤식 매력으로 상쇄하는 ‘히어로’
위근우 (이하 위) <이평강>은 코미디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작품이다. 처음 전쟁 장면에서는 사투리를 쓰는 온달 장군을 등장시키는 등 비틀기를 통한 웃음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 비틀기가 너무 눈에 보인다. 시점이 현대로 돌아왔을 때는 넘어지면서 웃기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주는데, 웃기려는 장면에서 갑자기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는 등 ‘이건 웃기는 거야’ 하면서 대놓고 연출하는 것도 너무 눈에 보인다.
웃기기도 대놓고 하면 싱거워져
최지은 (이하 최) 온달(지현우)과 평강(남상미)이 전생에서 어떤 인연이었는지를 사극으로 보여주고, 또 어떻게 재회하는가를 현대극에서 보여준다. 문제는 너무 많은 요소가 무질서하게 엉켜 있다는 거다. 정확하게 뭘 얘기하려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휴먼 코미디인지, 로맨틱 코미디인지, 아니면 캐디와 리조트 후계자 간의 신데렐라 러브스토리인지, 골프선수의 스포츠 드라마인지, 아니면 상속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을 다루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드라마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불균형하다.
위 온달은 평강을 만나면 닭장에서 잠을 자는 등 진상을 떨다가 새어머니인 제왕후(최명길)와 붙는 장면에서는 갑자기 심각해진다. 톤이 일정하지 않다. 온달이 바보가 아니라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연출에 있어 중간중간에 웃음 욕심이 많아서인지 평강만 만나면 캐릭터가 무너질 만큼 주접을 떤다.
최 지현우의 매력은 허허실실하면서 잠재력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메리대구공방전>에서는 무협소설을 쓰는 작가 지망생인 백수로 그 특유의 매력이 살아났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이미 많이 봐온 지현우의 모습을 다시 보여준다. 예측 가능한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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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과 현재를 넘나들며 온달과 평강의 사랑을 그려내는 드라마 <천하무적 이평강>(위)과 거대 언론에 맞서는 작은 신문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준기의 드라마 복귀작 <히어로>. 한국방송·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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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평강도 너무 예측 가능한 캐릭터다.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것도 왈가닥 처녀라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라는 게 눈에 보인다. 여기에서 사투리는 듣기 재미있어서 넣는 일종의 코미디 장치 정도에 그친다. 심지어 사투리를 쓰던 평강이 진지한 장면에서는 갑자기 표준어를 쓴다.
최 남상미는 <불신지옥> 등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달콤한 스파이>에서는 캔디형 캐릭터를 했지만 전형적이지 않게 연기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남상미가 연기하는 이평강이라는 캐릭터는 배우를 이해하기 쉽지 않게 만든다. 아무리 자기 아버지가 만든 골프코스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걸 무시한다며 갑자기 사람의 뺨을 때리는 건 뒷수습 안 되는 행동이다. 90년대 캔디들이 했던 그대로 하고 있다.
위 200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캔디’라고 쓰고 ‘민폐’라고 읽는 캐릭터들이 많아지고 있다. <스타일>의 이서정도 그랬고,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도 그랬다.
최 이 드라마는 골프장과 리조트라는 배경에 맞춰서 돌아간다. 골프장과 리조트에 집착해야 하는 이유는 제작지원 때문이라는 걸 모두가 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그 지점이 유난히 드러난다. 보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배경에 맞춰진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사건을 겪으면서 느끼는 것들이다.
위 온달이 리조트의 이미지를 살리고 변태로 낙인찍힌 자기 이미지를 상쇄하려고 골프대회 참가를 선언한다. 그런데 피지에이 투어도 아니고 리조트에서 하는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얘는 알고보니 변태가 아니었어. 리조트를 물려받아도 마땅해’라고 끄덕이는 게 말이 안 된다. 골프장과 리조트라는 공간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니 발생하는 필연적인 문제다.
최 잘 만든 드라마와 거기까지 못 가는 드라마의 차이는 드라마라서 봐줘야 하는 게 얼마나 많으냐다. 이 드라마에서는 드라마니까 넘어가주는 게 너무 많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 재미있는 건 전생을 다룬 사극 부분이다. 평강이 온달에게 애착을 갖고 있는데 온달은 공주에게 찌질하게 군다. 관계가 전복됐을 때 살아나는 코미디를 보여준다.
위 <히어로>는 오랜 시간 기획됐는데 방송을 앞두고 사건 사고가 많았다. 작가가 교체됐고 여자 주인공도 바뀌었다. 그래도 이준기의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는 허점이 많다. 이준기가 맡은 도혁이라는 캐릭터는 거시적인 시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 아직까지 그저 오지랖 캐릭터에 머무르고 있다. 윤소이가 연기하는 경찰 주재인은 정의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그 정의가 추상적이다.
최 삼류 찌라시를 만들던 사람이 거대 언론에 대항하는 작은 신문을 만들어 그들의 이중성을 파헤친다는 것 자체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깊게 가보자는 제작진의 의도는 알겠지만 신문이 드라마에서 다뤄질 때 정형화되는 것들이 여기에서도 발견된다. 삼류 매체를 만든 사람들은 단지 많이 못 배웠을 뿐 그들의 인생이 삼류는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못나긴 해도 마음가짐과 생각은 멀쩡하다고 강조한다.
위 친근한 서민 캐릭터를 삼류 매체를 만드는 이들에게 부여한다. 서민과 삼류는 엄연히 다르다.
최 진도혁이 왜 먼데이서울에서 목숨을 걸면서까지 가십기사를 취재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 사람이 이 일을 해야 하는 당위성이 단지 바른 기자였던 아버지 때문이라는 걸로 나오는데, 과연 정말 그런가. 드라마 주인공들이 부모의 삶에 의해 영향을 받는 건 이미 지난 얘기다. <하얀거탑>의 장준혁에 열광했던 것은 그가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캔디’라고 쓰고 ‘민폐’라고 읽는 캐릭터 추가요
위 아버지가 가졌던 기자로서의 신념을 존경하고 따르는 거라면 이해는 가지만, ‘먼데이서울’에서 파파라치 같은 일을 하면서 기자라는 직업 자체에만 집착하는 건 유치한 발상이다. 신념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라서인지 갑자기 ‘우리는 삼류니까 삼류 인생을 쓰겠다’고 할 때 뜬금없다는 느낌이 든다. 삼류이기 때문에 삼류를 잘 안다는 것과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건 다른 문제인데 여기에서는 혼용된다. 못살기 때문에 진정성이 있다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
최 결국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인데 이 좋은 구도가 완성도를 가지려면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언론의 힘이 어떻게 쓰이며 싸움이 어떤 관계에서 이뤄지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신문의 속성을 간과하고 있다. 누구네 집 강아지를 찾아주는 얘기는 미담이지만 뉴스는 아니다. 이 드라마는 그 정도에서 출발한다.
위 진도혁 아버지의 죽음과 대세일보 최 회장의 관계, 이렇게 커다란 사건을 상정해놓고 가면 용덕일보가 할 수 있는 건 특종밖에 없다. 치명적인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면 이길 수 있다는 건 너무 단순하고 순진한 희망이다. 현대의 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의 발언권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는 현실이 무서운 거지 누구를 죽이거나 하는 게 무서운 시대는 아니다.
최 현대사회의 문제를 얘기하는 데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사회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빠르게 찾아내 속도감을 맞추는 거다. 이제 본격적인 2막에 들어갈 차례니까 단점들이 개선됐으면 좋겠다.
위 이준기는 과장하지 않고 연기를 잘하고 있다. 오지랖 캐릭터라 조금만 어긋나면 비호감이 되기 쉬운데 지금까지는 잘해내고 있다.
최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이준기가 비현실적인 생김새라서 그런지 현실적인 얘기에 들어가면 캐릭터가 살짝 뜬다는 거다. 캐릭터로 보이기보다는 이준기로 보인달까. 연기력의 기본이 되어 있어서 쉽지 않은 주인공 역을 잘 끌고 가고 있다.
위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는 용덕 역을 맡은 백윤식이다. 잘하는 배우 한 명이 드라마를 어떻게 살리는지를 보여준다. 말이 별로 없지만 배우의 장력이 느껴진다. 눈빛과 미묘한 표정만으로도 사연이 있구나 짐작하게 한다. 그런 사연이 이 드라마의 떡밥이다.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힘이 백윤식을 통해 생긴다. 백윤식은 절제된 연기의 대가다.
최 백윤식이 나와 드라마에 무게감이 느껴지고 코미디가 우습지 않게 된다.
<내조의 여왕>에서 배우라
위 <이평강>과 <히어로>를 보면 상반기 대표작 <내조의 여왕>이 얼마나 잘 만든 드라마였는지 새삼 생각하게 한다. 코미디가 잘 짜인 사내 정치와 함께 가면서 요소요소를 잘 건드려 웃음이 공허하지 않았다. <내조의 여왕>은 <꽃남> 방영 중엔 시청률이 5% 정도였지만 <꽃남>이 끝나자마자 시청률이 치고 올라왔다.
최 결국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 건 대작들과 붙어서가 아니라,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 문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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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웃었다
“<히어로>에서 공연장에 잠입할 때 여기자가 가수인 척 분장만 하고 뻔뻔하게 들어가는 장면. 경비가 삼엄한 공연장에 은근히 허점이 많다. 이런 발상은 소소하지만 재미있다.”(최지은)
“<이평강>에서 이평강의 엄마가 돈을 많이 벌어 오겠다면서 애잔하게 딸의 사진을 쓰다듬다가 열쇠가 뚝 떨어지자 바로 돈을 다 털어가는 장면. 이런 엇박자의 재미가 있는 웃음은 좋다.”(위근우)
■ 여기서 굳었다
“<이평강>에서 온달이 조폭에게 발가벗겨진 다음 변태로 몰려서 닭으로 얻어맞는데 사람들이 막 사진을 찍는 장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이 한 사람을 변태 취급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걸 웃음의 소재로 선택했다. 소통 부재로 인한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던 건 알겠지만 그런 웃음이 괜찮다는 생각 자체가 불편했다.”(위근우)
“<히어로>에서 용덕일보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사람을 협박해 공짜로 인쇄를 하고 사무실도 얻는 장면이. 코믹 코드로 쓰려고 했던 건 알겠는데 그 과정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이야기를 위해 캐릭터의 개연성이 희생됐다.”(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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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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