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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그거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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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요즘 직장인들 셋이 모이면 꼭 하는 얘기가 있다. “‘남녀탐구생활’ 봤어?” 조카가 미처 끝내지 못한 방학 숙제 얘기가 아니다. 케이블 텔레비전 티브이엔의 <재미있는 티브이 롤러코스터>의 ‘남녀탐구생활’ 꼭지 얘기다. 남녀 각각의 특징을 상황별로 정리한 ‘남녀탐구생활’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반면, 결혼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시작한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는 시청자들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롤러코스터>와 <우결>을 들여다봤다.
백수, 군인, 회사원 걸치기만 하면 정형돈 맞춤옷이네
어정쩡한 커플들, 태생의 딜레마일까 ‘우리 결혼했어요’
최지은(이하 최) <롤러코스터>는 케이블 티브이 채널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고 별다른 홍보를 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재미있다고 소문났다. 예능은 케이블뿐 아니라 공중파에서도 성공하기 힘든 장르인데 <롤러코스터>는 빠른 시간에 해냈다. <롤러코스터>를 띄운 꼭지가 ‘남녀탐구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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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했어요〉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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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의 예능 버전쯤
백은하(이하 백) 지상파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제작된다. 연애나 남녀관계의 세밀한 부분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케이블 채널이었고 엠넷 <러브파이터>, <아찔한 소개팅>이나 올리브 <연애불변의 법칙> 같은 프로그램이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들은 드라마화된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나 지금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만나서 연애를 하는가에 대해 과장된 방식이나 몰래카메라 등의 형식을 통해 인류학적 보고 같은 방법으로 보여준다.
최 <연애불변의 법칙> 등이 특수한 경우의 이야기를 센 방법으로 보여줬다면, ‘남녀탐구생활’은 좀더 일상적인 경우를 상당수의 사람들이 할 것 같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 속의 남녀가 꼭 나는 아니라고 해도 그런 모습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백 ‘남녀탐구생활’은 많은 경우를 모아서 약간의 가공을 더해 종합편으로 만들고 그것을 상황별로 정리하는 방식이다. 학문적으로 정리한 자료 같기도 하다. 부담 없이, 부끄럽지 않게 시청할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직업이나 지위를 떠나 남자와 여자라는 동물이 드러내는 사회적인 반응의 공통점을 빠르게 잡아낸다. 정형돈의 역할도 크다. 정형돈은 그리 못나지도 잘나지도 않은 대한민국 표준 남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양복을 입히면 회사원 같고, 캐주얼한 옷차림을 하면 백수 같고, 군복을 입히면 군인 같다.
최 ‘남녀탐구생활’은 무리한 코미디를 하지 않는다. 선을 넘지 않고 잘 지킨다. 넘친다는 느낌이 안 든다. 이 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과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성우의 내레이션이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처럼 큰 목소리의 성우가 나왔다면 그냥 그랬을 거다. 이 프로그램은 ‘여자는… 해요’라는 건조한 말투로 얘기를 한다. 중간중간 ‘이런 젠장’, ‘이건 별로네요’ 이런 말도 들어간다. 이런 게 하나의 ‘남녀탐구생활체’로 인식되고 있다.
백 예능에 맞는 성우의 목소리 톤은 보통 정해져 있다. 발랄하고 과장된 목소리, 코믹한 목소리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대한늬우스’나 ‘격동 50년’ 등 진지한 목소리의 성우가 끼어드는 순간이 있다. 그게 웃음을 유발하는데 그런 방식의 극단에 이른 것이 ‘남녀탐구생활’이다. 멀쩡하고 차가운, <엑스파일>의 스컬리 역을 맡았던 서혜정 성우가 그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은 마치 외계인이나 지구를 탐험하러 온 조사원이 지구에 있는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에 대한 보고서를 쓰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는 상황을 진지하게 설명하면서 웃음을 배가시킨다. 하나를 더 뒤집는 방식이다.
최 <롤러코스터>의 다른 꼭지인 ‘불친절한 경호씨’나 ‘여자가 화났다’도 재미있다. ‘불친절한 경호씨’는 신문 사회면 모퉁이에서나 지적될 법한 모습들을 하나의 상황극으로 만들어서 보여준다. 남녀의 데이트 상황을 보여주고 여자가 왜 화가 났는지를 맞히는 ‘여자가 화났다’도 아이디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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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 공중목욕탕 편(위)과 공중화장실 편. 박재정과 유이가 커플로 출연하는 <우결 시즌 2>(왼쪽 아래 사진).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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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다큐와 예능을 결합시키면서 케이블 나름의 재치를 집어넣으니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묘한 맛의, 새로운 것이 만들어졌다. 케이블이라서 할 수 있고, 케이블이라서 자유로운 부분이다. ‘남녀탐구생활’은 ‘부부탐구생활’ 등 다른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기에 충분하다.
최 지상파에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 얼마나 사소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이며 얼마나 사소한 것이 사람을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 김병욱의 시트콤 말고는 사소한 욕망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사랑에 대해 얘기할 때 드라마는 항상 상황에 밀려 헌신하지 못할 뿐 서로를 향한 마음은 한결같다고 얘기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녀탐구생활’ 군대 편은 남녀가 어떻게 소소하고 가끔은 치사스럽게 서로의 관계를 이어가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게 남녀로 나누는 것이 성별을 유형화시킨다든지 불공평하다든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비판이 없다. 태도와 시선 때문이다. ‘남녀탐구생활’은 그 어느 쪽도 나쁘다고 하거나 경멸하거나 하등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 다 이러고 산다’는, 인간에 대한 관용을 갖게 해준다. 그래서 전혀 불편하지 않다.
백 ‘남녀탐구생활’의 원조라면 <개그콘서트>에서 강유미와 유세윤이 함께했던 ‘사랑의 카운슬러’가 있다. 그 꼭지 역시 오랫동안 사소한 것들을 관찰하고 조사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개그를 만들었다. ‘남녀탐구생활’은 그런 것들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준다. 케이블에 ‘남녀탐구생활’이 있다면 지상파에는 문화방송 <우결>이 있다.
‘부부탐구생활’ 업그레이드는 어때?
최 <우결>은 실제 커플인 김용준과 황정음 커플을 투입한 뒤 <일밤>에서 독립편성되면서 시즌 2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우결>은 1기 커플의 인기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백 처음에 <우결>은 ‘결혼탐구생활’ 같은 형식이었다. 남녀가 만나서 연애가 아닌 결혼이라는 상황에 들어갔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였다. 그런데 리얼리티를 강조하면서도 무리하게 드라마를 만들고 캐릭터를 잡아가면서 실질적으로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결혼생활의 리얼한 상황을 막아왔다. 이벤트 위주의 단발성 상황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진정성도 재미도 없는 프로그램이 됐다.
최 1기의 대표 커플인 ‘알렉스-신애’나 ‘크라운제이-서인영’ 커플은 뚜렷한 개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 투입된 커플에게는 강렬한 매력이 없다. 제작진들이 새 커플을 투입할 때 얼마나 고민을 하는지, 어떤 것들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예전처럼 이 커플이 다음주에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하지 않다. 새로운 커플에 대한 관심도도 많이 떨어졌다. 아주 흥미로운 신인도 아니고, 유명세를 갖춘 스타도 아닌 이들이 계속 들락날락할 뿐이다.
백 ‘남녀탐구생활’의 화살표 끝이 다큐를 가리키고 있다면 <우결>의 화살표 끝은 드라마를 가리키고 있다. ‘남녀탐구생활’의 방향성이 얼마나 자료가 방대하며, 그 자료에 얼마만큼의 신빙성이 있는가라면, <우결>의 방향성은 얼마나 드라마가 독창적일 것인가다. 다큐가 좋고, 드라마가 나쁘다가 아니라 각 프로그램이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이끌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우결>은 드라마틱한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데 게으르게 커플을 다큐로 풀어놓고 이벤트만 강요한다. 진행방식도 계속 바뀐다. 지금은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방식인데 그게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정체성이 없는 프로그램은 제작진도 헷갈리지만 시청자도 헷갈린다.
최 <우결>은 초반에 정체성을 잘 쌓아가다가 방향을 바꾸고, 또 방향을 바꾸더니 지금은 리얼리티를 강조한 건지, 아니면 시트콤을 찍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지금의 <우결 시즌 2>는 김용준-황정음 커플이 귀여워서 본다는 것 이상의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
백 박재정과 유이 커플은 자수성가한 남자와 좋은 집안에서 잘 자란 여린 여자의 결합 같다. 너무나 드라마를 만들려는 결합인데, 그 자체에 있어서 우선 불편함이 있다. 그들은 연결하는 공통점이라고는 <선덕여왕>의 ‘사다함의 매화’ 커플이라는 것밖에 없는데, 그런 식의 공통점만 갖고 급조한 커플이라는 느낌을 준다.
드라마도 아니고 리얼리티도 아니고
최 <우결>은 리얼리티로 시작해서 드라마로 갔다. 그런데 리얼리티를 표방했기 때문에 또 드라마로 가는 데 한계가 있다. 실제 결혼을 시킬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결혼 전의 적나라한 갈등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태생적인 딜레마 안에서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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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 베스트
“공중목욕탕 편. ‘남자’ 정형돈이 다른 사람이 쓰던 때수건을 득템하고 좋아하는 장면과 목욕을 끝내고 나와서 전국의 목욕탕에 공통으로 비치된 남성을 위한 화장품을 바르는 장면. ‘낯선 남자에게 익숙한 향이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어요’라는 성우 내레이션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백은하)
“공중화장실 편. ‘여자’ 정가은이 세균 17종이 71만 마리나 우글거린다며 변기를 닦고 휴지를 깐 다음 기마자세로 볼일을 보는 장면과 그렇게 세균을 조심했지만 결국 화장실에서 손을 씻지 않고 나온 남자 ‘정형돈’이 손으로 집어준 김밥을 여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먹는 장면. 디테일의 끝이다.”(최지은)
<우결 시즌 2>의 잘못된 선택
“커플끼리의 균질함은 유지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진짜 커플과 가짜 커플이 동시에 나오니까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모르겠다. 생활 안에서 드라마를 찾지 않고 박제된 드라마의 틀에 주인공을 맞춘다.”(백은하)
“<우결>은 우유부단한 남자 같다. 놓아야 할 때 놓지 않고 질질 끈다. 지금 <우결 시즌 2>는 프로그램 자체에 어느 정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상태인데, 새 커플을 투입해 추진력을 갖추려고만 한다. 독창성마저 떨어진다.”(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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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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