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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23 22:06 수정 : 2009.09.26 19:47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캐리비안의 해적’에 꿀리지 않는 한국식 판타지의 완성 ‘탐나는도다’
웃자고 만든 시트콤과 격이 다른 김병욱 월드 ‘지붕 뚫고 하이킥’ 역시나!





몇몇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는 요즘, 방송계도 이별의 아쉬움과 만남의 반가움이 교차하는 환절기를 맞았다. 호평을 받은 문화방송 드라마 <탐나는도다>는 갑작스럽게 조기 종영을 맞게 됐고, 문화방송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은 10회를 지나가며 점차 ‘김병욱표 시트콤’의 저력을 드러내고 있다.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왼쪽)과 최지은 기자가 이 두 작품을 들여다봤다.

백은하 (이하 백) <탐나는도다>는 사전 제작을 왜 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완성도 높은 드라마였다. 24부작으로 기획됐지만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결국 16부에서 조기 종영됐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속상하다.

최지은 (이하 최) 시청률이 낮으면 16부로 조기 종영한다는 계약 조건이 있었다. 시청률이 약세일 수밖에 없는 시간대였고 방송사에서도 예측을 했던 부분인데 추석도 끼어 있는 바람에 조기 종영됐다. 운이 없었다. 문제는 조기 종영해서 작품 가치가 훼손됐다는 점이다. 10부까지는 제주도 배경, 11부부터 20부까지는 한양이 배경인데, 조기 종영되다 보니 이야기가 생략됐다. 11부부터 쳐나가더니 13, 14부는 뚝뚝 잘려나갔다. 아쉬움이 크다.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때문에 16부로 조기종영을 하게 된 〈탐나는도다〉. 문화방송 제공

소재는 과거지만 세계관은 미래적

<탐나는도다>는 한국식 판타지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콜럼버스 같은 발견이었다. 제주라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지역 홍보 드라마가 많았고, 지방에서 찍기만 하면 특산물 소개, 관광 장소 홍보가 대부분이었다. <탐나는도다>는 제주라는 공간이 따로 떨어진 섬이어서 소식을 늦게 받고 남녀 성 역할이 전복된 곳이라는 점을 활용해서 판타지적인 공간으로 재창조했다. <캐리비안의 해적> 이상의 판타지가 만들어졌다.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었고 컴퓨터그래픽이나 음악도 좋았다.

만화가 원작이어서 발상의 전환이 가능했다. 원작자의 아이디어가 좋았고 다양한 자료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지금 방송되고 있는 <태양을 삼켜라>의 제주는 골프장과 리조트가 있는 소비적 공간일 뿐이다. <탐나는도다>의 제주는 고유의 문화가 있는 공간이다. 버진이 남자 주인공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빙떡을 만들어 주고, 감을 빻아서 갈옷을 만들어 준다. 윌리엄은 커피를 끓여 준다. 문화와 문화가 만났을 때의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주는 대목이 많았다. 요즘 드라마들은 새로운 이야기 하는 걸 두려워하고 재탕하는 경우가 많다. 막장으로 새로운 것들만 많아지고 있다. <탐나는도다>는 남들이 하지 않았던 지점을 내다봤고, 보는 사람들에게 많은 쾌감을 줬다.

과거 사극이라고 하지만 세계관은 미래적이다. 눈이 파란 윌리엄, 조선인인데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얀, 제주도에서 태어났지만 물질도 못하는 여자, 서울에서 내려온 남자, 모두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하나의 공간에서 코즈모폴리턴적으로 움직인다. 지금까지 그 어떤 드라마에서도 본 적이 없는 국가를 뛰어넘는 러브스토리였고 그 어떤 드라마보다 제대로 된 성장 이야기를 들려줬다. 누군가에 대한 관심과 연애가 한 인간의 인격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주었다.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때문에 16부로 조기종영을 하게 된 〈탐나는도다〉. 문화방송 제공

나중에 윌리엄이 한양으로 잡혀간다. 버진이는 내가 구하러 갈 테니 기다리라고 한다. 성 역할에서 탈피하는 거다. 그뿐 아니라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와 조금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인 셈이다.

우리는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단어를 자주 틀린다. 의식 깊숙한 곳에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버진의 아버지 변우민을 보자. 가정을 지키고 밥하고 그물 짜고 그런 것들이 그 사람 역할인데 그를 무능하게 그리지 않는다. 그냥 다른 것이다. 버진은 올해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 캐릭터였다. 의젓하고 대견하다. 칭얼대고 의존적이기만 했던 여자들에 비해 억세지 않은 방식으로 강한 여자란 무엇인가를 보여줬다.

신인 드라마를 신인들 중심으로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탐나는도다>에서 배우들은 자기 몫을 다한다. 서우라는 배우는 기본적으로 남다른 끼를 갖고 있다. <미쓰 홍당무>에서도 그랬는데 독특한 작품 속의 캐릭터를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실제 존재하는 인물처럼 만든다. 올해 최고의 남자 캐릭터는 박규다. 박규 역의 임주환은 그동안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비주얼적인 장점이 컸고 발음과 발성도 좋았다. 백인 금발이면서 한국말을 하는 윌리엄 역의 황찬빈에게서도 최대치를 끌어냈다. 서양인들의 감성이 풍부한 면을 잘 소화했다. 촬영이 시작된 건 작년 8월이었다. 뜨거운 제주에서 낮에는 3도 화상을 입고 밤에는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서 촬영을 했다. 편성도 안 되어 있었고 방송에 대한 확신도 없었을 때인데 모든 배우들이 좋은 작품을 알아보고 최선을 다했다. 음악도 너무 좋았다. ‘이어도사나’로 만든 오에스티는 촌스럽지 않고 얄팍하지 않으면서 작품의 격을 높였다.

전작부터 변함없는 건 결국 돈 얘기

<탐나는도다>가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낮은 시청률 때문에 조기 종영됐다면,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지만 편성시간 때문에 불안한 게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하이킥>)이다. 그래도 걱정 안 한다. 김병욱 감독은 큰 실망을 준 적이 없다. 김병욱 감독의 가장 놀라운 점은 똑같은 걸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새로운 걸 하고 있다는 거다. <지붕하이킥>은 이전에 보여줬던 ‘김병욱 월드’의 지붕을 뚫고 좀더 드라마틱한 극으로의 시도를 하려는 것 같다. 이전에는 캐릭터 만드는 데 시간을 많이 쏟았다. 캐릭터에 익숙해지는 데 한 달 이상 걸렸고 시청률도 천천히 올라갔다. 이번에는 캐릭터들이 처한 드라마를 던져놓고 시작했다. 시작부터 드라마가 세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김병욱표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문화방송 제공

정보석의 경우는 지적이고 중후한 이미지인데 <지붕하이킥>에서 세련된 재미를 주고 있다. 돈 계산도 못하고 야쿠르트 아줌마와 옥신각신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그의 코믹 연기는 <인어아가씨>의 마마준에서 빛을 발휘했는데 이번에도 너무 적절하다. 세경과 신애 자매는 서울에 와서 고생을 하다가 식모로 들어가게 되는데 돈으로 인해 계급이 나뉘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거다.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중에 가장 불편한 진실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현경 아들 준혁은 예전 과외 선생님과의 의리 때문에 관을 메주겠다고 약속하고, 엄마한테는 불쌍한 사람들 도와주지 않는다고 소리친다. 결국 자다가 운구하러 못 가는데 부모의 돈을 쉽게 생각하는 거다. 그리고 책임져야 하는 걸 쉽게 저버린다. 웃으면서도 불편하다. 결국 그런 싸움이 될 것 같다. 불편해서 그만두게 될 것이냐. 불편하고 찔리지만 공감이 가고 웃겨서 결국 붙들고 보게 될 것이냐.

김병욱이 <지붕하이킥>을 할 생각은 아니었고 그사이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결국 <지붕하이킥>까지 오면서 변함없었던 것은 돈 얘기였다. 돈 때문에 인간이 얼마나 치졸하고 치사해지느냐. 얼마나 많은 드라마가 나올 수 있느냐. 원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려고 했지만 세트 때문에 잘 안되고 결국 무대를 현대로 바꿨는데 아이러니한 건 현대와 1980년대가 다를 게 없다는 거다. 사회가 별로 바뀌지 않았다. 김병욱이 만든 시트콤이 다른 시트콤과 다른 이유는 그저 웃자고 만든 시트콤이 아니라는 거다. 웃는 건 마지막 행동 중 하나다. 웃을 수밖에 없지 뭐, 웃지 않으면 어쩌겠어, 하는 거다. 깊숙한 곳의 웃음을 끄집어낸다. 2주 방영됐는데 사람들이 알아챈다. 시청률도 13%다. 나쁘지 않다.

김자옥과 오현경의 ‘밀땅’을 기대해

김자옥과 오현경 이야기가 재미있다. 상하관계인데 말 막 던지는 오현경과 소녀 같은 김자옥이 맞붙으면서 험악해지는데, 두 사람 말고도 조직 생활, 인간관계, 돈 주는 사람과 돈 받는 사람의 관계 같은 미묘한 관계가 재미있다.

신세경은 어린 친구인데 보기 드물게 외모도 성숙했고 발육 상태도 좋다. 타고난 분위기도 플러스 요인이다. 신애는 워낙 똘똘하고 연기 잘하기로 유명한 아이다. 아이인데 중년 여배우 같은 얼굴이 있다.(웃음) 해리는 아이들의 잔혹함과 순진무구함을 보여주면서 뼛속까지 아이 같은 연기를 해준다. 대견하다. 가수로서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에이제이(AJ)도 기대된다. 최다니엘은 <그들이 사는 세상> 이후로 딱 맞는 역이 없었는데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것 같다. 정보석은 잘생기게 태어나서 그렇지 참 희극배우 같다.(웃음) 김병욱 감독이 감성의 무게중심을 나이 든 사람들에게 둔다는 게 재미있다. 이순재가 안정적인 무게감을 잡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탐나는도다>는 가지만 <지붕하이킥> 때문에 그래도 살 만하다.

<탐나는도다> 베스트

“윌리엄과 버진이는 처음부터 첫눈에 반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챙겨주는 연애를 한다.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둘이 서로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장면과 아껴주며 의심하지 않는 연애의 모습이 예뻤다.”(백은하)

“버진의 어머니와 박규는 서로를 인간적으로 존중한다. 제주도 해녀인 중년의 여자와 한양의 도련님은 절대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점이 좋았다.”(최지은)

<지붕 뚫고 하이킥> 베스트

“줄리엔 강과 신애는 <서울의 달> 같은 느낌이 있다. 서울에서 환영받지 못한 외국인과 이방인. 신애를 찾아서 업고 걸어가는 장면에서는 김병욱 감독 특유의 시니컬하지만 숨길 수 없는 따뜻한 본성이 느껴졌다. 보석 같은 장면이었다.”(백은하)

“신애는 언니를 잃어버리고 펑펑 울지만 뭔가를 계속 먹는다.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굶어죽지는 않는다. 울면서 쉬었다가 밥 먹고 또 울고, 그런 게 웃기면서도 짠했다. 단순히 웃기기 위한 웃음이 아니라서 좋았다.”(최지은)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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