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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05 17:44 수정 : 2009.08.09 17:46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모든 다큐멘터리에 스타가 필요한 건 아니다. 감동을 쥐어짜지 않는 평범한 이야기인데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비결은 무엇일까.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사진 오른쪽)씨와 시나리오 작가 신광호씨가 <인간극장>(한국방송)과 〈W〉(문화방송) 속 범인들의 ‘비범함’을 집중탐구했다.

아침 7시 50분으로 옮겨도 감동은 여전
31살 꽃미남 시장, 일본판 <시티홀> ‘W’

정석희(이하 정) 지난주엔 올봄 〈MBC 스페셜-사랑〉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주인공 두 명이 세상을 떠났다.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느낌이 들 만큼 애석했다. <사랑>도 그랬지만 평일 <인간극장>을 보면서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 그래도 이 세상엔 따뜻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극장>은 아침 7시50분으로 방영시간이 이동했다. 시간대 옮긴 걸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인간극장>이 없어졌나 착각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애매한 시간으로 옮겼을까?

신광호(이하 신) 밤새고 작업하던 날 아침에 <인간극장>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재방송인 줄 알고 봤다. 주부들에게 좀더 어필하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평일 저녁 시간이 <인간극장>과 더 잘 어울렸다.


아침 시간대로 옮긴 후에도 꾸준히 호평받는 <인간극장>(한국방송).

중독성 있는 다큐멘터리

이금희 아나운서의 내레이션과 시그널 음악, 저녁 시간대라는 세 가지가 <인간극장>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지금은 내레이션도 바뀌었고 시간대도 바뀌었고 새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내레이션이 예전만큼 감동을 주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는데, 단순히 음성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레이션보다 글의 문제가 아닐까? 사건의 장면을 설명하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사실 <인간극장> 안에는 나열할 만한 큰 사건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보통 우리가 존경할 만한 인물들이라고 생각했던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인간군상의 삶을 보면서 존경할 만한 이웃들을 만난다. 굉장한 능력과 자본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진지한 모습에서 경외감 같은 것마저 생기더라. 시간대가 바뀌면서 보기 더 힘들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1부를 보면 내리 5부를 보게 된다. 중독성이 있는 거다.

이번주 ‘아빠니까 괜찮아’ 편은 다발성 뇌경색으로 아내가 쓰러지면서 생긴 불행을 이겨내는 가족의 이야기다. 다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짜증 내지 않는 아빠의 모습, 대단한 모습을 보고 시청자들이 감동받고 있다.

이런 인물들을 제작진은 다 어떻게 찾는 건지 궁금하다. 제보로 되는 건가? 내 주변에서 보기 힘든 인물들인데, 다 어디선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아빠니까 괜찮아’ 편을 보면서 요양사 제도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알았다. 요양사가 와서 간호를 해주는 제도인데, 삶의 구체적인 면모를 들여다보면 세상 구석구석의 형편도 알게 된다. 특히 최근 2주간 소금밭 6형제 이야기와 어묵 파는 젊은 부부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다.

다소 힘든 여건에서 살아간다 해도 종국에는 부러워 죽겠더라. 칠판에 행복이라고 써놓고 그걸 강의하는 게 아니라, 그들 삶이 곧 행복인 것 같았다.

<인간극장>에 나오는 상황을 갖고 만약 상담 글을 게시판에 올린다면, 어쩜 다 부정적인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6형제가 소금밭에서 일하는 건 사실 집이 빚더미라 학업을 포기하고 도우러 온 거고, 어묵 장사 하는 젊은 부부의 경우도 정말 사랑 하나만 보고 서로 결혼한 거다.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오면, 벌떼같이 몰려들어서 이러쿵저러쿵 할 텐데 다들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전라도에서 소금밭을 하는 형제들과 경상도에서 어묵 장사하는 젊은 부부의 다큐멘터리는 유기농 같은 삶 그 자체였다. 당당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이라는 가치를 내가 엉뚱한 데서 찾은 게 아닌가 싶었다.

<인간극장>은 좋은 배우자, 좋은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다. ‘나의 소중한 당신’의 영겸씨가 일 마치고 고속도로를 달려오는데, 아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진다면서 우는 대목이 있었다. 이걸 보면서 나도 살면서 누군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 한번 해보고 싶더라.

<닥터스>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영된다면 마음 아파 보기 힘들 것 같은데 <인간극장>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오락 프로에서 배꼽 잡고 웃고, 막장 드라마 보면서 울며 웃다가도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일본 지바시의 최연소 꽃미남 시장 구마가이의 행보를 다룬 〈W〉(문화방송).

굳이 티브이가 교육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여운이 남는 프로라서 참 좋다. <인간극장>을 보다 보면 보통 사람들의 삶이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더 재밌고 더 유익하다는 사실에 종종 놀란다.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 힘들게 당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큰일이 난 것처럼 그리지 않고, 잔잔하게 그리는 점이 큰 장점이다.

<인간극장>에선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 자체가 리얼이다.

‘나의 소중한 당신’을 봐도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참 돈독하더라. 딸이 너무 애교 넘치고. 미세한 감정들을 잡아내는 제작진의 기술이 상당하다.

<인간극장>은 결국 사람 사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 안에서 핵심은 가족관계인 경우가 많다. 등장인물들의 부모관계나 형제관계를 볼 때마다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다랄까. ‘나의 소중한 당신’의 유미씨처럼 통 큰, 매력적인 인물도 보게 되고. 특히 사이좋게 매우 잘 통하는 젊은 부부를 보는 게 참 부럽더라.

이제 <인간극장>의 시그널 음악이라든지, 특유의 5부작 구성 등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패러디 될 만큼 익숙하다.

이 프로그램이 있다는 거 거의 전 국민은 다 알걸. 이런 프로의 원조는 인간시대였지만, 지금 <인간극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아침 시간대로 옮겨서 조금 방치되는 느낌이 든다는 게 아쉽다.

그치. 특히 인물 다큐멘터리는 볼 때마다 감동이다. 지난 주말엔 〈MBC 스페셜〉에서 김명민 재방송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다시 봐도 이분 참 존경스럽더라.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고

그럼~. 지난주 〈W〉엔 일본 지바시 시장으로 당선된 31살 꽃미남 구마가이의 이야기가 나왔다. 내용이 정말이지 종영된 드라마 <시티홀>의 신미래하고 똑같더라. 보궐선거에 첫 민간시장에 혁신적인 부채 해소 방안을 내놓고 있는 것도 그렇고, 자진 임금 삭감까지 신미래하고 똑같아서 놀랐다. 블로그로 시민과 소통한다거나 하는 것까지도 드라마에 있을 법한 인물이 실제 다큐멘터리로 그려진 거였다. 너무 웃긴 건 자민당 쪽에서는 정치노선이 불분명한 여성들이 구마가이 시장의 외모에 홀려서 뽑아준 거라는 평가를 하더라. 그런데 그 정도로 꽃미남은 아니던데?(웃음)

타이틀 그래픽까지도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패러디했더라. 일본 젊은 층에는 정말 정치에 관심없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또 독도 문제 등의 이슈가 터지면 나와서 싸울 이들이 일본 사람들이다. 보수적인 사회지만 또 새롭고 신선한 인물에 표를 던져주고 시장으로 당선시켰다는 점이 부럽더라.

‘꽃남’이라기엔 2% 부족하지만

인구 100만명에서 민간시장이 나온 건 참 대단한 일이다. 전 시장이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한 거지.

시 회의를 하는데 아줌마들이 참가 신청을 해서 쭉 앉아 있는 것도 참 재밌는 장면이었다.

시장 하나 때문에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늘어나고 있더라. 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한 편의 <인간극장>을 보는 듯했다. 구마가이 시장도 권위적이지 않은, 편안한 인터뷰를 보여줬다.

그동안 〈W〉 하면 세계 지구촌의 빅이슈, 빈민층 이야기 등을 보여줬는데 이번 ‘꽃보다 시장’의 구마가이 시장 같은, 캐주얼한 꼭지가 〈W〉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무겁고 진지한 태도도 중요하지만, 때론 세계 이슈를 흥미진진하게 다루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어디 가나 인간의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다르지만 또 나하고 닮아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를 감동시키기도 하고 반성하게도 한다.

사람은 늘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특히나 타인의 삶에서 감동을 받을 때 변하는 거 같다. 또다른 리얼함,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변화의 계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힘이다.

스타가 안 부러운 캐릭터 진선미

<인간극장-나의 소중한 당신>의 아내 유미씨

“젊은 여자들을 보면서 가끔 내 딸이 저런 느낌을 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유미씨처럼 시장 사람들과 가족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정석희)

“유미씨가 빨리 음식점 점포 얻었으면 좋겠다. 전라도에서 6형제가 만든 천일염 사고, 경상도 유미씨네 가서 매운 어묵 맛 봐야지!”(신광호)

<인간극장-6형제 소금밭, 소금꽃 폈네>의 막내 주일씨

“소금밭에서도 포스가 팍팍 느껴지는데, 꾸미면 정말 장난 아닐 것 같은 매력남이다. 소개팅 하러 나가는 게 순진해 보이고. 요즘 보기 힘~든 남자다.”(신광호)

“28살 그 총각, 너무 착하고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지만, 지금도 주문이 쇄도하고 있는 소금밭일 하느라 급 바쁠듯!”(정석희)

〈W〉의 일본 최연소 구마가이 시장

“일본 지바시의 꽃미남으로 알려진 새로운 시장. 사실 꽃미남이라고 하기엔 2% 부족하지만, 우리 동네 나오면 나도 찍을 의향이 있다.”(정석희)

“내 나이에 인구 100만 도시의 시장이 된 당신! 인기 비결 좀.”(신광호)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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