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어제 그거 봤어?
|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한 드라마는 “어차피 세상은 냉정”하다며 까칠한 사랑의 공기를 보여준다. 또다른 드라마에서 사랑의 공기는 초여름처럼 상쾌하다. 월화 미니시리즈 <결혼 못하는 남자>(한국방송)와 수목 미니시리즈 <트리플>(문화방송)은 다른 현실감각으로 사랑을 대하는 방법을 그린다.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왼쪽)과 최지은 기자가 두 드라마 속 인물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원작 부담 털고 억지 없이 현실 보여주는 ‘결혼 못하는 남자’
청춘의 감정에 집중하는 ‘트리플’, 90년대 추억이 방울방울
백은하(이하 백) 같은 시대에 만들어지고 있는 <트리플>과 <결못남>은 극단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윤정 감독은 가장 푸릇푸릇한 시기인 청춘의 감정에 집중하는 걸 잘한다. <트리플>에서도 그 부분이 너무 잘 드러나서 팬시(fancy)할 정도로 깔끔한, 현실을 잊고 보게 되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반면 <결못남>을 보고 있으면 집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는 바로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드라마 안에 나 있다
|
결혼에 대한 새로운 현실감각을 보여주는 <결혼 못하는 남자>. 사진 한국방송 제공
|
최지은(이하 최) <결못남>의 노총각·노처녀 캐릭터는 스테레오타입 같으면서도 한국 드라마에선 새로운 면이 있다. 이제껏 노총각은 돈 없고 외모도 별로고 성격도 촌스럽기만 한 이들이 다수였다. 지진희는 능력 있고 멀쩡하다. 정리벽 있고 쫌 독특하긴 하지만.(웃음) 엄정화, 양정아도 노처녀들이 세상 모든 것에 화가 나 있던 것과 달리 어느 정도 아줌마 같은 여유가 있다. 나이 들었고 애인도 없고, 심지어 저녁 같이 먹을 사람도 없지만 자신과 밥 먹기 부담스러운 아랫사람들을 위해 거짓 약속까지 만든다.
백 나이가 든다고 꼭 히스테리컬해지는 건 아니다. <결못남>은 40대로 넘어가는 미혼 남녀들의 명확한 초상을 보여준다. 반가운 건 엄정화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분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나이 때 만들어진 체념, 나이 들어 너그러워진 부분이 보인다.
최 내 주변을 보면 연애를 안 하면 히스테리컬해지는 것 같긴 하다.(웃음) <결못남>은 초반 캐스팅에 대한 우려를 깨면서 순조롭게 가고 있다.
백 지진희 캐릭터는 ‘사람이 꼭 누구랑 같이 뭔가 해야 하는 건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연애 결핍이라기보다, 본인이 지키고 싶어하는 사생활의 각이 훨씬 중요한 거다. 한국 가족 공동체에선 개인이 완전한 독립을 하는 기회가 적다. 독립이라는 표현을 쓰며 결혼으로 새 가족을 만들고, 모든 게 결혼으로 재편되잖아. 이젠 드라마 안팎에서 결혼이란 관습을 두고 새로운 유형들이 생겨나고 있다. 강박적으로 연애하지 않아도 되는 세대가 등장한 것 같다.
최 이젠 개인화된 인물이 드라마 주인공이 되는 것도 “뭐야! 이상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연애에 관심 없는 남자가 주인공인 드라마도 거의 성립 불가능했지. 결혼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는 건 <결못남>뿐 아니라 <트리플>도 보여준다. 이하나와 이정재가 결혼했던 사이인데 이건 <연애시대> 나왔을 때만 해도 “어!” 했던 설정이다.
백 <결못남>은 섬세한 디테일 설정으로 인물의 차이를 보여주는 게 좋다. 김소은 캐릭터는 엄정화가 겪었을 법한 과거를 보여준다. 혼자 밥 먹으러 온 김소은이 이어폰부터 책까지 혼자 할 수 있는 모든 걸로 어색하게 세팅되어 있다면 엄정화는 그 단계를 지나 혼자 있는 게 어색해지지 않은 인물을 그린다. 남자 주인공인 지진희가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개성파 배우 아베 히로시를 따라갈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들었는데 볼수록 그 연기에 관심이 간다.
최 반듯한 얼굴에 발성이 정말 좋은 배우다. 지진희에게 <대장금>과 <스포트라이트>의 정의감 넘치는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뭔가를 기대하진 않았던 것 같다. <결못남>에서 지진희의 역량을 다시 보게 된다.
백 엄정화는 늘 평가절하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쇼 무대에서의 디바와 현실적인 여배우의 두 정체성을 다 갖고 가기 때문인 것 같다. 헌데 엄정화만큼 한국 여자 같은 여자가 어디 있나? 가장 표준적인 한국의 장녀 이미지가 있다. 이전 세대의 모든 걸 희생하는 장녀가 아니라 적당히 양보하면서 또 적당히 거기서 결핍을 느끼는 초상으로서.
최 엄정화의 좋은 점은 여배우이면서 생활인으로서도 낯설지 않은 거다. 양정아도 자기에게 잘 맞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고 김소은과 유아인도 연기 잘하는 젊은 배우들이다.
백 구조가 참 괜찮다. 결혼 못한 여자와 결혼 안 한 남자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는 남녀들을 잘 배치해놓은 느낌이랄까? 각각의 역에 존재의 이유가 있다.
최 3년 전 일본에서 방영한 드라마가 원작인데, 리메이크하는 게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잖아. 정서적으로도 다른 게 많고 원작 팬도 있는 상황에서 한계가 있는데도 잘하고 있다.
|
20~30대 풋풋한 청춘 남녀의 감정에 주목하는 <트리플>. 사진 문화방송 제공
|
백 <트리플>의 30대 남자 주인공들은 소년들처럼 살아간다. 삶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진짜 어렵단 느낌은 들지 않는다. <트리플>은 현실을 반영하는 의도를 가진 드라마가 아니다. 하나의 원덜랜드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가장 부합하는 캐릭터를 보여주는 상황극 같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꿈꿔왔던 세계를 보여주면서 위안을 주는 거지.
최 결국은 이 팬시하고 재밌는 세계를 보여주되, 그런 세계가 아닌 구질구질한 일상에 치이는 시청자와 얼마큼 공감할 것인가가 문제다. 재밌는 건 이 드라마가 2009년 여름을 배경으로 하는 건데 1990년대적인 분위기가 난다는 점이다. 예쁜 정원에서 물장난하는 정서는 90년대 드라마인 <느낌> 이후 오랜만이다.
주연도 조연도 맞춤 캐릭터
백 미국 드라마 붐이 인 이후 장르 드라마나 전문 드라마가 하나의 흐름이었는데 <트리플>과 <결못남>은 오랜만에 감정상태에 집중하는 드라마다. <트리플>에선 다른 여러 조건들보다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윤계상과 이하나의 선택에서 중요한 건 그녀가 친구 이정재의 부인이었던 사실이 아니라 아직 그녀가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감정이다. ‘정말 누군가를 좋아하고 확신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된다!’는 게 이들의 세계관이다. 피겨 드라마란 말을 하지만 실제로 광고나 피겨는 맥거핀(미끼로서의 단서) 같은 거다. 연애 감정이 생길 수 있는 젊은 남녀를 한 공간으로 밀어넣곤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날지 관찰하는 아름답고 풋풋한 실험실 같다. 현태(윤계상) 같은 애가 밀어붙이면 수인이(이하나) 같은 애는 어떻게 반응할까?(웃음)
최 인물의 감정이 상황 때문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도 좋다. 한동안 드라마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는 등의 억지 상황이 튀어나왔던 것과는 다르다.
백 <트리플>은 구조적으로는 이윤정 드라마의 반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좋게 보면 이윤정 감독은 자기의 세계 안으로 더 들어가고 있고 나쁘게 말하면 현실에서 발을 떼고 있는 거다. 이윤정 드라마의 가치를 심각한 방식으로 신격화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젊음과 계절을 둘러싼 이야기를 굉장히 잘 그려내고 있는 아직 젊은 피디니까. 그의 행보에 지나친 무게감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트리플>의 감상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다.
최 근래엔 누가 만들어도 자기 색깔이 안 드러나는 드라마가 많았잖아. 그 와중에 자기 스타일 있는 드라마가 나온다는 건, 어쨌든 보는 사람에게 주위를 환기시켜준다.
백 이윤정 드라마에 계속 등장했던 이선균의 역이 다소 뻔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연기가 가장 편하다. 의외로 배우 본모습에 가장 가까운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웃음) 늘 좋은 사람 이미지의 이선균이 여기선 질투하고 깐죽댄다. 지오디의 막내 김태우보다 어려 보였던, 윤계상 특유의 밝은 얼굴과 느낌도 좋다. 어떤 상황에도 진지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현태가 <트리플>의 느낌과 가장 닮은 것 같다.
최 현태는 서글서글한데 여자에게 대시하는 게 좀 폭력적이도 하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경우 없다는 식의 대시 말이지.
백 헌데 이런 면이 90년대 같은 거 아닐까? 요즘 젊은 친구들은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거 안 하잖아. 여자 캐릭터로는 오래된 신인 같은 느낌의 김희가 매력적이다. 워낙 키가 커서 브라운관에 안 어울리는 인물이었는데, 극중 캐릭터를 배우가 갖고 있는 특성으로 그대로 밀어붙이니까 캐릭터나 배우나 모두 좋다.
이선균, 그거 진짜 성격이지?
최 이윤정 감독 드라마의 큰 장점이 기존 드라마가 소화하지 못했던 캐릭터들을 등용해, 그에게 이런 매력이 있단 걸 대중적으로 보여준다는 거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도 김재욱 같은 독특한 스타일의 배우가 나왔다.
백 <트리플>을 논하면서 이정재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굳어 있는 얼굴을 더 많이 봤는데 6회를 지나오면서 <트리플>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섞여 들어가고 있다. 저력이나 매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니까 10회 전후가 되면 완전히 근육이 풀릴 거란 예감이 든다. <트리플>은 이윤정 감독이 자기의 독특한 스타일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둘째 단계 같다.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
<결혼 못하는 남자> 맞아 맞아! 절대공감
지진희의 독신론 | “지진희가 밥상머리에 앉아서 이런 말을 한다. “수입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얼마냐가 중요하지. 독신이면 버는 족족 다 내 몫이지만 결혼하면 애하고 와이프한테 다 들어가잖아”라고. 나한테 충분히 잘해주자~는 이 생각. 이기적인 게 아니라 현실에 충실한 거란 생각이 들어 공감!”(백은하)
엄정화의 쇼핑론 | “엄정화가 20만원이 넘는 블라우스를 똑같은 디자인으로 두 가지 색을 사면서 “나이가 드니까 나한테 맞는 거 하나 만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나도 얼마 전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세 벌 샀는데. 끼악! 내가 바로 저러고 있구나 싶었다. 현실적으로 나이 듦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말하는 공감 장면 많다!”(최지은)
<트리플> 부럽 부럽! 샘나네
코에 뽀뽀하기 | “술에 취한 김희가 이선균에게 “너 코에 뽀뽀하고 싶었다”고 하면서 뽀뽀하잖아. 술 취해야 하고, 이성도 놓아야 하고, 감정에 솔직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난 철두철미하게 이성적이지만, 저런 사건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뭔가 일어나겠구나 싶더라! 아, 남들은 이렇게 연애 시작한다규!”(최지은)
오빠들과 동거하기 |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오빠들과 한집에 사는 거! 근데 친오빠는 아니어야 한다! 극 중 하루처럼 집안일하고 싶지는 않다! 핵심은 오빠들과 함께 그런 구조의 집에서 산다는 거! 큰 창문을 열면 마당 풀밭으로 맨발로 뛰어나갈 수 있는, 오빠 많은 공간의 로망스!”(백은하)
|
|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