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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17 18:49 수정 : 2009.06.20 20:03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일년의 한가운데,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다. 이젠 현실과 드라마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도 헷갈리는 일이다. <아내의 유혹>(에스비에스)의 ‘애리분노 3종세트’가 더 현실 같고, <꽃보다 남자>(한국방송)의 금잔디가 의사가 된 결말도 그럴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기는 이르다. 아직 절반이 남았으니까.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왼쪽)과 위근우 기자가 올해 상반기 우리를 기쁘게 하고 또 실망시켰던 드라마들을 총결산했다.

전체 성적 초라한 2009년 상반기 드라마 결산
현실을 직시하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해

백은하(이하 백) 상반기 드라마에선 복고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퇴행들이 보였다. 작년 말, 이런 방식은 걱정된다 말했던 것들이 초라한 성적표로 여실하게 드러났다.

위근우(이하 위) 더 큰 문제는 올해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는 거다. 2008년에도 2007년 <하얀 거탑>과 <커피 프린스 1호점>에 비해서 왜 이렇게 포커스 할 게 없지? 고심했었다. 하향 곡선의 연장선에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제작시스템의 총체적 부실 보여준 ‘꽃남’

현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풀어낸 <내조의 여왕>과 ‘F4’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꽃보다 남자>. 문화방송·한국방송 제공

위축된 제작진의 심리가 안전한 걸 제작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과거에 히트했던 콘텐츠를 이용하거나 원작 중심의 이야기에 묻어가려는 기획이 많았다. 올해 상반기 히트작으로 치면, <꽃보다 남자>다.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동시에 아주 문제 많은 텍스트의 전형을 보여준 드라마다. 수출이 거론될 때도 시청자들이 먼저 나서 “이거 재편집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할 정도였으니.(웃음) <아내의 유혹>(에스비에스)처럼 사회적 징후를 보여주는 드라마도 있었지만 상반기 무슨 드라마가 있었나 자문하니 멍~해지더라.

<꽃남>은 창작자의 능력 부재보다는 생방송에 가까운 진행의 문제가 컸다. <꽃남>은 왜 여기서 이 장면이 나왔나 싶은 장면들이 많았다. 제작 시스템의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났지.

프로덕션에서 제작된 드라마를 방송사가 졸속 편성하면서 오래 공들인 드라마를 보기 힘들어졌다. <꽃남>은 대본이 없어도 드라마가 굴러갈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거의 기억이 없다. 내게 남은 건 캐릭터!

수영장 물 위에 둥둥 떠 있던 오리 시지(CG)도 기억나는데?

한류 스타를 둘러싼 시스템 문제를 드러낸 작품도 많았다. 최지우를 내세웠던 <스타의 연인>(에스비에스)은 일본에서 제작비를 댔고 출발 자체가 한류 스타를 이용한 기획 상품이었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신데렐라맨>(문화방송)도 내용에 대한 고려보다는 권상우라는 이름값 때문에 만들어졌고. 결국 이런 식의 기획이 안 된다는 경종을 울렸지.

한류 관련 연구자들을 만나면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한국에서의 반응이다. 권상우 좋아하는 아줌마들이 보시겠지~ 싶지만 작품 콘텐츠가 살아 있어야 한다. 한류 스타의 매력을 뽑아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안이한 기획은 가능성이 없다.

편성에 대해 말하자면, <2009 외인구단>(문화방송)이 최고봉이다. 기획된 후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문화방송에서 주말 특별기획을 부활시키면서 무리한 편성을 잡았다. 결과는 참패 수준이다. 급하게 이뤄진 편성도 문제지만, 80년대 이야기를 2009년에 그 시절과 똑같이 풀어냈다는 게 거의 놀라운 수준이더라.

수준 미달의 드라마가 편성되는 건 비극이다. <2009 외인구단>은 1980년대 만화가 원작이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엔 시대 안에서 각 인물들이 왜 루저인가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강해지고 싶은 구체적인 열망의 목표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보여 결혼하고 싶다든지 자기를 버린 흑인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한데 <2009 외인구단>은 이런 걸 다 지우고, 손병호 감독이 “너희는 강해져야 한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구호를 외칠 뿐이다.

실미도 훈련 시키고 말이야.

기호만 있는 거다. 대사만 있지, 지시체는 없다. 이건 복고도 아닌 거지. 원작 텍스트를 무의미하게 가져다 쓰는 거다.

80년대 인기 있던 걸 불러내려면 시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때 유행했다고 해서 나열하듯 과거의 영광을 가져오는 건 아쉽다. 이상한 방식으로 리메이크된 가요는 재미없잖어.

리메이크도 아니고 메이크도 아니다.

왜 이것을 재현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다. 2009년에 왜 외인구단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하나?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볼수록 궁금하다.

시대 배경을 차라리 80년대로 잡았어도 괜찮을 것 같더라. 팬들이 그리워하는 지점을 그나마 보여줄 수 있으니까. 시청자들은 그래도 결국 웰메이드 드라마에 마음을 준다. <꽃남> 종영 이후 <내조의 여왕>(문화방송)이 확 떴는데 그걸 보면서 누가 봐도 재밌는 프로는 시청자들이 외면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내조>가 좋았던 이유는 현실의 모든 걸 직시하면서 그 안에서 작은 해결점들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해결점보다는 삶의 행동요령·방향성 같은 걸 크게 욕심내지 않고 보여줬다. 큰 구호를 제시하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적으로 작게,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사려 깊은 방식으로 드라마를 끝냈다. <내조>는 최근에 봤던 어떤 드라마보다 마지막회가 좋았다. 시청률이 좋았으니 자축연의 느낌을 내보내기 쉬운데, 마지막까지 자기가 할 이야기를 하고 끝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카메오로 등장한 방식도 잔꾀 부린 카메오가 아니었지. 유재석을 제2의 오지호로 만들어낸 설정은, 드라마에서 하고자 했던 중심 이야기가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조>가 작은 해결점을 보여줬던 데 반해 대척점에 있었던 작품은 <남자 이야기>(한국방송)다. 사회에 문제라는 게 분명히 있고, 그대로 살긴 어려운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문제 삼았다. <남자>는 김신이라는 영웅적인 캐릭터가 자신이 계도하려고 했던 인물들과 어색하게 소통하면서 이야기가 흔들렸다.

‘외인구단’, 리메이크도 아니고 메이크도 아니여

송지나 작가의 예전 작품도 한 개인이 커다란 사회 문제를 상대로 싸우거나 그 소용돌이 안에 휘말리는 내용이었다. 한데 현재의 세상이라는 건 결국 모든 것이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잖아. <내조>가 우리 사회 문제 중 구체적 이야기를 하나씩 보여줬다면, <남자>는 이 수만 가지 이야기를 한꺼번에 바꿀 수 있다는 식의 굉장히 혁명적인 기운이 보태졌다. 개인적인 분노를 이 시대 영웅이 되는 방식으로 풀면서 무리가 있었다. 뉴스의 헤드라인 같은 느낌도 있었고. 세상을 지배하는 논리나 가치가 변화했는데, <남자>나 <2009 외인구단>은 적을 깨부수는 옛날 방식이 여전히 통용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과거의 적을 소환하잖아. <남자>에서 기대했던 건 김신과 채도우의 싸움이 아니라 돈과의 싸움이었다. 이건 시스템적인 것과 미시적인 걸 말하는 거잖아. 그런데 <남자>는 시스템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 다양한 상황보다는 선과 악의 두 축으로 끌고 갔다.

<내조>에서 등장했던 적은 적이기도 했고 동지이기도 했다. 악인으로 나온 김창완도 생각할 거리를 주잖아. 애정이면 애정, 연민이면 연민에 관해서. <남자>나 <2009 외인구단>은 절대적으로 악이 있다고 믿고 그것과 계속해서 싸우는 방식을 취했다.

분명히 악다구니고 막장이고 말이 많았지만 <아내의 유혹>도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욕망을 극대화해 보여준 측면이 있었다. 아예 없던 걸 끌고 오진 않은 거다. <남자>와 비교하면,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 문제라고 들이대는 것보다는 애리가 안정적인 집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에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세상이 다양하게 구체적으로 돌아가고 있단 걸 보여주는 드라마가 작지만 큰 울림을 준다. <시티홀>(에스비에스)도 현 정국이 돌아가는 상황에 상징적으로 이 자는 누구 같다는 대입을 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정치적인 상식이 계속 침해당하는 시대를 목격하다 보니, 현재의 정국에선 신미래 같은 인물이 너무 단 느낌도 있다. 실감 나지 않는 커다란 대의명분이나, 존재가 부정확한 적들과 싸우기보다는 내가 체감하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에 결국 마음을 연다. 그런 면에서 <선덕여왕>(문화방송)은 1300년 전 이야기인데 묘하게 요즘과 맞아떨어진다. 몇 가지 패를 놓는 미실과 선덕의 게임을 관찰하게 된다. <트리플>(문화방송)도 이윤정 감독의 새로운 실험을 보여줄 거라 기대한다. 민효린을 잘 자리잡게 한다면 또 하나의 배우가 탄생하겠지.

‘트리플’ 하반기 역전 이끌 수 있을까

이정재를 살리는 게 더 어려울 거 같은데?

청춘물의 대표 주자였던 이정재에게 그간의 실패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해줘서, 우리가 좋아했던 그를 소생시켜 주면 좋겠다!

<트리플>은 세 남자 세 여자의 관계의 결이 어떻게 풀릴지 관건이다. 스타일만 남을지 아닐지가 결판나겠지.

드라마는 천년 전 이야기를 하든, 백년 후 이야기를 하든 현재를 파악하는 게 기본이다. 특히나 요즘 같을 때, 상반기 고생한 레슨비를 까먹지 말고 좋은 드라마들이 나와주면 좋겠다.

■ 잘 알고 만든 베스트 드라마 | <내조의 여왕>(문화방송)

“아는 것만 안다고 말했던 드라마. 큰 욕심 부리지 않고도 뭔가 할 수 있단 걸 보여줬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유토피아가 아니라니까. 당장 이 상황에서 어떤 게 가장 현명한 자세인지가 알고 싶으니, 부디 아는 것만 안다고 좀 해줘요~!”(백은하)

“매회 대본을 한 회 한 회 이어간다는 느낌보다는 처음과 끝이 있는 하나의 그림을 보여준 드라마다. 2007년 <하얀 거탑> 이후 인간의 정치적인 속성을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서 풀어냈다. 모처럼 나타난, 잘 알고 만든 드라마~!”(위근우)

■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만든 워스트 드라마 | <2009 외인구단>(문화방송)

“80년대에 나왔던 대사 이유 없이 반복하지 말아달라! 이들이 왜 야구하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극 중 오혜성이 “감정은 변하지만, 기록은 영원하다”고 말하던데 그 근거 없는 비장함은 뭘까?~”(위근우)

“스포츠 특유의 쾌감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면서, 스포츠를 둘러싼 철학적인 고민들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면서, 승부의 세계로 인간 사회의 어떤 지점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면서, 기억나는 스포츠도 인물도 대사도 없는 드라마.”(백은하)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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