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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29 20:26 수정 : 2009.05.02 14:32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esc] 너 어제 그거봤어?





유희열이 ‘아, 지금 저 너무 떨려요’라고 티브이에서 말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지난주 첫방송한 음악프로 <유희열의 스케치북>(한국방송)에서 그는 농익은 입담과 뮤지션으로서의 깊이를 동시에 보여줬다. <음악여행 라라라>(문화방송)의 새 엠시 김창완 또한 뮤지션들의 작업실에 앉아 익숙한 듯 새로운 얼굴로 대화를 이끌었다. ‘보는 음악’의 매력을 만들어 가는 이 두 프로.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음악여행 라라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련한 노장의 귀환이 기대되는 <유희열의 스케치북>
<음악여행 라라라>의 게스트여 전설 앞에 기죽지 말길

백은하(이하 백) 작년엔 새로운 티브이 음악프로그램들이 여럿 등장했다. 9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이나 인디음악처럼 다양한 장르가 수면 위로 많이 올라왔다. 새로운 뮤지션들의 활동이 새 음악프로를 만드는 촉매 구실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이하나의 페퍼민트>는 풋풋한 이하나의 매력만으로는 까탈스러운 음악팬들을 잡기엔 역부족이었고 그 시간대의 장점을 십분 살리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유희열이라는 노련한 ‘노장’의 귀환은 반갑다.

최지은(이하 최) <스케치북> 첫방 후 ‘유희열의 스케치북, 시청률 저조’라는 식의 기사를 봤다. 첫방 나간 후 기다렸다는 듯 시청률 운운하는 건 아니지~ 싶었다.

지난 24일 첫 방송을 시작한 <유희열의 스케치북>. 한국방송 제공


<스케치북>에 카라가 나와도 놀라지 않아

유희열이 방송에서 얼굴을 적극 들이밀며 등장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팬들이 많은 건 공백이 있었지만 쉼없이 라디오 디제이를 했기 때문이다. 실력 있는 라디오 디제이로서 지금의 문화 소비층이 된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음악동네에서 보자면 뮤지션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윤하 같은 어린 가수들과도 계속적으로 작업을 함께 하니까. 유연한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첫회 게스트 섭외도 이승환, 이소라, 언니네이발관처럼 화려한 출연진으로 잡힌 것 같다.

애정을 갖고 음악프로를 보는 시청자들은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같은 심야 라디오 애청자들과 겹친다. 심야 음악프로를 보는 이들에게 유희열은 생각보다 ‘대중적으로’ 어필한다. 음악을 잘하는 사람인데 재밌기까지 하니까. ‘아이돌의 임금님’이라 불릴 정도로 아이돌에 대해서도 편견이 없는 사람이다.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음악을 말하는 것과 음악팬이 음악을 말하는 건 상당히 다르다. 유희열은 홀로 고독한 뮤지션 스타일도 아니라서, 시청자들과 뮤지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데도 적절하다. 그룹 카라의 ‘락유’를 얼마나 좋아하는가에 대해서 라디오에서 신나게 떠들던 유희열, 난 카라가 나온다 해도 놀라지 않겠어.

카라가 나와도 재밌게 소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웃음) 유희열은 제작진이 자기 섭외한 게 <꽃보다 남자>의 미남 마케팅의 연장이라고 말하더라. 즐겨 하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는데, 이승환이 “라이브계의 버라이어티”라고 말한 게 딱 와닿았다. <스케치북>이 그런 역할을 하는 프로라는 걸 유희열도 아는 것 같다. 심야 음악프로가 시청률도 낮고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기 쉽지 않나. 음악프로라는 틀 안에서 재밌는 방식들을 고민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삐쩍 마른 군대 사진도 보여줬고, 자타 공인 유희열의 엄청난 팬인 박지선이 관객을 대상으로 한 ‘수질검사 하러 왔어요’란 코너도 진행했고.

<스케치북>에서 유희열을 선택한 건 90년대 뮤지션들과 그때 노래가 21세기와 어떻게 만나나를 보여주려는 측면도 있다. 90년대 가요와 2000년대를 넘어온 노래 사이의 가교 구실도 하는 거다. 그 세대 추억이 없는 이들도 <내조의 여왕> 보면서 ‘너에게 원한 건’이란 음악을 흥얼거린다. 그때 그 가수를 몰랐던 세대도 정서적으로 소통한다.

음악프로에서 중요한 건 이 사람이 뮤지션과 얼마나 소통을 잘하느냐다. 누가 나와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건 유희열이 라디오를 오래 하면서 쌓은 거다. 특히 인디 뮤지션들은 방송에서 수줍어하는 이들이 많다. <스케치북>에 언니네이발관이 출연했는데 리더 이석원이 말하길 “유희열이 그동안 라디오 하면서 다른 어떤 프로보다 밴드 음악을 많이 소개해줬기 때문에 나왔다”고 하더라. 같이 음악 하는 사람들으로서 고마움이나 존중을 보여줬기 때문에 좋은 라인업이 만들어진 거다.

최근 <음악여행 라라라> 엠시도 김창완으로 교체됐다. <라디오 스타> 진행자들과 모델 장윤주가 결합하고 다시 윤건, 장윤주가 진행했다가 결국은 김창완이라는 뮤지션으로 바뀌었다. <스케치북>이 토크쇼나 뮤직버라이어티 느낌이라면 <라라라>는 전통적인 음악 듣기, ‘듣는 쇼’에 가깝다. 한 뮤지션이 서너 곡 이상의 자기 레퍼토리를 부르면서 자기 음악에 대해 대화한다. 김창완은 70년대에도 가장 ‘핫’한 뮤지션이었고 2009년에도 가장 ‘핫’한 뮤지션이다. 단순히 젊게 산다는 느낌이 아니라, 한 번도 늙어본 적이 없는 뮤지션으로 유연하게 소통하고 격려를 건네는 진귀한 풍경을 연출한다.

뮤지션 김창완이 새 엠시를 맡아 개편된 <음악여행 라라라>. 문화방송 제공

70년대, 2009년에도 ‘핫’한 그분

<라라라>는 20회로 오기까지 혼란과 다양한 시도가 혼재했다. <라디오 스타> 엠시 여러 명을 음악프로로 끌어왔는데 성공했으면 좋았을 야심찬 시도였다. 신선하긴 했지만 1회 게스트였던 이승열만 봐도 ‘아, 이게 약간 안 맞는구나’라는 게 보였다. 이승열은 근래 예능인으로 뜬 김태원처럼 말을 재밌게, 잘하는 사람도 아니잖아.

지난주 <라라라>에선 ‘소년 소녀, 봄을 만나다’라는 기획으로 인디쪽 가수들이 나왔다. 시선을 모으는 기획이긴 했는데, 인디음악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이 보면 ‘홍대 신은 샤방하다’는 편견이 생기겠더라. 사실 홍대에는 거칠고 괴상한 음악도 많은데. 좀더 어리고, 이쁘고, 자꾸 티브이에 적합한 연예인 만들기 느낌이 있다. 솜사탕 같은 모습을 가진 요정 같은 인디가 주로 방송에 나오는 거다. 홍대 인디쪽을 지상파에 딱 잡아 이식시켜 오는 게 아니라, 공평하게 보고 골라내고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어떤 음악 하는 인디인지는 모르는데, 예쁘고 요정인 건 아는 거지.(웃음)

<스케치북>과 <라라라>뿐 아니라 <콘서트 7080>, <이소라의 프로포즈> 등 그간 공중파는 엠시를 내세워서 하는 음악쇼에 여러 시도를 보여줬다. 한편 꿋꿋하게 라이브쇼를 하면서 새로운 뮤지션들을 발굴해내는 노력을 했던 건 <스페이스 공감>(이비에스)이다. 보여주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음악동네의 발전을 위해 사운드나 공연장의 테크닉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신경쓴다. ‘헬로 루키’라는 신인 발굴의 장을 만들면서, 지금 인디계의 서태지라고 불리는 장기하 같은 사람도 대중과 만나게 했다. 이런 시도들이 공중파에 영향을 끼친 거다.

실은 음악프로가 방송사마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구색 맞추기의 느낌도 있다. <라라라>는 수요일 밤 12시35분에 나오는데 시청자들이 다 백수임을 전제로 한 건가?(웃음) 다음날 회사 가거나 정해진 아침 일과가 있는 사람들이 본방을 보기란 쉽지 않다. 음악프로 편성이 좀더 과감해졌으면 좋겠다. 기왕 음악프로 하나를 잡아서 가는 거면 자신의 브랜드를 확실히 보여주면 좋겠다. 김장훈이 게스트로 나와선 유희열에게 개편되면 잘릴 위험 있으니, 6개월 동안 열심히 하라고 말하더라고.(웃음) 장기적인 비전이 없으면 방송국도 이득이 없을 거다.

<라라라>는 <라라라>대로, <스케치북>은 또 그 매력대로 차이를 두고 존재하는 게 시청자들에겐 가장 이득이다. <스케치북>이 누구나 입고 싶어하는 세련된 기성복 느낌이라면 <라라라>는 또 자신만의 차별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여전히 음악프로는 주말 저녁 순위 프로와 콘서트형의 심야 음악프로로 나눠지는데 결국은 다른 성격들이 서로 뒤섞이게 되지 싶다. 실로 순위 프로형 가수와 콘서트형 가수 사이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사실 장기하 같은 사람은 순위 프로 1위는 아니어도, 인기는 그에 못지않단 느낌도 들잖아.

쇼의 재미는 계속되어야 한다

<라라라>를 보면서 좀 아쉬웠던 건 김창완이 살아 있는 전설이니까 젊은 뮤지션들이 지레 기가 눌린다는 거다. 김창완은 대화를 원하고 권위를 세우지 않는데, 젊은 음악인들이 “선배님 너무 존경한다”는 모드로 말하더라.(웃음) 음악 선배면서 다양한 경험을 한 윗세대로서 소통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있을 텐데, 정자세 한 선생님과 학생의 느낌이 났다. 반대로 <스케치북>은 서로 워낙 친하다 보니까, 음악 이야기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유희열, 이소라, 이승환이 서로 오래 알아왔지만, 그들의 음악적인 고민도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주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엠시의 톡톡 튀는 재치나 입담, 순발력만으로 끌고 가선 안 되고 새로운 이슈거리를 계속 만들어줘야 한다. 음악프로는 교감할 수 있는 쇼!로서의 재미가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나는 기대한다, 이런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 아이돌과의 샤방한 만남

“유희열과 그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결합해 대중성과 의외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좋아하는 카라도 나오고!”(백은하)

“베테랑 뮤지션인 유희열은 유재석처럼 겸손한 자세가 있다. 이런 유희열이라면 아이돌에게 ‘넌 정말 어떤 음악 좋아했니?’ 하고 진심으로 물어볼 수 있을 거다. 샤방한 샤이니 나와도 너무 재밌을 것 같아!”(최지은)

■ 어제 말고~ 오늘의 이야기

“첫 회엔 심야 음악 프로그램의 출연에 익숙하고, 유희열과도 친분 있는 뮤지션들이 출연했다. 어제 했던 이야기를 다시 보는 듯한 기분! 이젠 우리가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 뮤지션들이여 이야기해 달라~”(최지은)

“김장훈이 발차기하고, 이승환이 농담하고, 이소라가 앉아서 노래 부르는 익숙함이여. 사회자만 바뀐 한국방송의 전형적인 음악 프로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백은하)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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