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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08 19:28 수정 : 2009.04.12 14:50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시즌1에서 서른 살이었던 영애씨가 서른두 살 계약직으로 돌아와 우리 앞에 섰다. 다큐드라마의 새 장을 연 <막돼먹은 영애씨>(tvN)가 지난달 초 시즌5를 시작했다. 재벌도, 출생의 비밀도, 매끈한 한류 스타 없이도 꾸준히 케이블의 시청률 경신을 하고 있다. 서른두 살의 ‘막돼먹은’ 한 여자와 그 주변의 허름한 일상에 대체 어떤 매력이 담겨 있었을까? <막돼먹은 영애씨>(이하 <영애씨>) 시즌5의 열혈 제작진 박준화 피디와 최규식 피디를 초청했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사진 오른쪽)씨와 시나리오 작가 신광호씨가 <영애씨>를 향한 애정을 담아, 예리하고도 흥미진진한 질문들을 던졌다. 영애씨의 고군분투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케이블 국민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5 박준화·최규식 피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영애 동료·가족들, 배우와 캐릭터 구분 안 가네

신광호(이하 신) <영애씨>는 독특한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기획 전에 다큐드라마라든가 6㎜ 촬영이라는 방식이 모두 계산된 건가요?

박준화 피디(이하 박) 서른 살 한국 여성의 삶을 리얼하게 그리는 데는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 요소가 적합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작비 여건보다는 일부러 좀 거칠고 떨리는 화면을 의도했던 측면이 커요.


“처음엔 야한 드라마인 줄 알더라규!”

정석희(이하 정) 저는 조금 서툴러 보이기도 하는 리얼함이 좋아서 처음부터 지켜봤어요. 그게 매력 포인트라 생각했고요. <영애씨>가 오후 1시라는 시간대에서 금요일 밤 11시로 오기까지는, 시청자들의 입소문이 한몫했습니다. 최근에 시청률이 올라가는데 누구 비위를 맞춰야 할지 고민스럽지는 않나요?

초창기엔 6㎜로 찍는 야한 드라마 같다는 말까지 들었어요. 시즌이 거듭될수록 인지도가 올라가고 인기가 생기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이 느껴졌죠. 최근엔 다큐보다 드라마 느낌이 강해지다 보니까 기존 팬들이 “변했다”며 아쉬워하기도 해요. 초반에는 6㎜로 촬영하면서 거친 느낌을 살렸는데, 지금은 에이치디(HD) 6㎜로 촬영하다 보니 제가 집에서 봐도 화질이 너무 좋더라고요(웃음).

최규식 피디(이하 최) 점점 거칠게 안 찍는 이유가 캐릭터가 많아지고, 그 캐릭터별로 커트를 배분하는 것도 큰 이유예요. 요새는 어떤 게 ‘다큐적’인 구성과 소재가 될지 고민을 많이 합니다. 계속하다 보니 조금만 비슷한 소재가 나와도 신선한 느낌이 확 줄어요. 가방으로 때리거나 침 뱉는 짓을 넣으면 “봤던 건데” 하는 시청자들이 많죠. 영애가 어떻게 하면 ‘엣지’ 있게, 거칠게, 초심을 잃지 않고 막돼먹은 짓을 할지가 관건이죠.

<막돼먹은 영애씨>를 이끌어온 최규식(왼쪽), 박준화 피디.

대본회의 할 때 이게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동해안이 아니라) 서해안에 가서 “왜 해가 안 떠?” 말하면서 해 뜨길 기다렸다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상황이 되죠. 촬영하면서는 아무리 재밌어도 오버했다 싶으면 “좀더 자연스럽게 가자”고 재촬영하죠.

에피소드들을 어떻게 수집·가공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템을 발굴하고 방향이 정해지면 신의 기본 설정을 정합니다. 대략적인 이야기의 줄기를 만든 뒤에는 그걸 대본화하면서 웃긴 상황이나 재미에 집중하죠. 대본 수정 후엔 또다시 불필요한 장면을 필터링하고요. 촬영하면서 또 연기자들의 애드리브가 들어가죠. 회의할 땐 1~2시간이 아니라 2시부터 8시까지 계속 가요. 속된 말로 ‘노가리 깐다’고 할까요?(웃음)

홈페이지를 봐도 제작진이 시청자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는 느낌이 듭니다.

시즌5까지 오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그간 쌓아온 등장인물들과 시청자의 유대감이에요. 이 신이 이렇게 가면 “영애가 미워 보일 거 같다”는 식의 의견을 공유하죠. 그렇다고 더 예쁘고 착하게 가자는 게 아니라 인물에게 공감 가는 상황을 만들어보자는 거죠. 시청자 게시판엔 일방적인 욕 형태의 게시글은 없어요. 놀라울 정도로 긴 이야기를 세밀하게 적어주는데, 누가 귀 기울이지 않겠어요?

시즌5에서 기존 상황이나 캐릭터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의아해하는 시청자도 많고요. 이를테면 윤 과장 부인인 은실이가 쪽지 남기고 떠나고, 영애 남동생 영민이가 옛날과 다른 배우가 배역을 맡아 돌아온 거, 성을 유독 밝히는 여자 이사의 등장도 그렇지요.

얼마 전 빠진 은실 캐릭터의 경우는 직장 동료나 가족과 교류 없이 윤 과장과의 에피소드로만 가는 데서 한계가 왔어요. 스토리 진행하면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거죠. 사실 비하인드가 있는데, 시즌5의 2회 대본이 촬영 전날 대폭 수정됐거든요. 그래서 2회에서는 유독 친절한 설명이 빠진 부분이 있어요. 지금도 은실이가 처한 상황을 한 신으로라도 보여주는 게 좋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 파급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캐릭터들이 집에만 있는 경우에는 만들 수 있는 에피소드에 한계가 있죠. 생일, 장례식을 비롯해서 닭 가지고 소동 부리는 것까지 많은 이야기를 이미 다 했죠. 아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남동생 영민을 다시 불러온 것도 그런 이유고요.

스토리 전개 조언하는 열혈 시청자들

<영애씨>의 연기자들은 그 연기자가 아니면 소화 못할 밀착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사님 커피 타면서 영애가 획 침 뱉는 장면처럼 연기도 리얼하더라고요.

<영애씨>를 본 상사들은 실제로 커피 심부름 안 시키려 한다고(웃음). 여자 후배 조심한다고 하더라고요.

작가들의 경험담과 관찰에 기댄 바가 크죠. 영애가 보여줬던 다이어트 프로젝트의 경우도 작가들의 리얼 체험담이 바탕이 된 거죠. 사실 시즌5에서처럼 사장이 팀장이 되고, 회사에서 잘리는 게 지금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시즌5로 돌아온 <막돼먹은 영애씨>. 서른두 살 직장여성 이영애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인기를 끌고 있다. 티브이엔 제공

영애씨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몰랐던 연기자들을 찾아내 그들을 발굴하는 촉각이 남다른 것 같아요. 캐스팅하는 <영애씨> 팀만의 방식이 있나요?

유명 연기자가 아니어도 좋다는 거였죠. 연기는 잘하지만, 주변 이웃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한 이미지를 가진 분들을 캐스팅했어요. 이런 형태의 연기를 해주면 좋겠다란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정말 섭외 1순위로 생각했던 배우들이 다 섭외가 됐어요. 딱딱 맞아떨어진 거죠. 사실 지원이 캐릭터만, 포스터 촬영까지 마쳤던 배우에서 지금으로 변화됐어요. 밝고 귀엽고 약간 돌아이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기대 이상의 성공이죠. 배우들이 “너 평소에도 <영애씨> 안에서처럼 그러니?”라는 질문을 많이 듣습니다. 사실 출연진들 대부분이 그분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죠.

“했다규”라는 말투도 원래 혁규가 쓰는 말투예요.

윤 과장님도 충청도의 약간 느긋하면서 위트 있는 모습이고요. 지순이도 궁상맞은 게(웃음), 많이 비슷하죠.

촬영이 없을 때도 나와서 현장을 지키는 배우예요. 사무적인 전화를 해서, 끊으려면 엄청 애교스럽게 계속 말을 하죠. 실생활에서도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친하게 잘 어울립니다.

전 사실 영애가 뭐 그렇게 떨어지는 여자인가 싶어요. 일 잘하고 성실하고, 엄마가 왜 그렇게 영애를 잡는 건지, 만만해서 그런 것 같아요.

영애를 불편하게 하는 이들의 경우 다 영애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사장님도 “덩어리 덩어리” 하지만, 챙겨주거든요. 영애 없이 밥 먹던 사장은 “아, 이 탕수육, 영애 있으면 잘 먹을 텐데” 하는 식이죠. 헌데 그러다 보니까 시즌4쯤 와서는 악역이 없어졌어요. 시즌5에서 어느 정도 철저한 악역이 있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됐죠. <영애씨>만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속 시원한 속풀이가 있어야 하니까요. 소매치기를 날마다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매회 영애를 둘러싼 갈등이 나옵니다. 교통정리하다가도 싸우고 온천에 가도 탕 안에서 팩하는 여자랑 싸우고요.

욕먹을 짓 하는 사람 너무 많지 않나요? 다 대놓고 말을 못하니까 영애를 보면서 대리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엣지 있게, 거칠게, 처음처럼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 영애랑 김현숙이라는 인물이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예요. 현장에서도 “영애씨 영애씨” 부르거든요. 김현숙이란 연기자도 술 좋아하고, 약간 투덜대고. 안에 영애스러운 게 있죠. 영애씨 어머니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아요. 영애와 어머니도, 점점 서로 닮아가는 걸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김현숙씨 경우는 <개그콘서트>의 ‘출산드라’를 보면서 천상 개그우먼이다 싶었는데, <영애씨>를 보면 눈이 반짝반짝하는 열정을 느낍니다. <영애씨>가 케이블 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하고 싶어요.

■ 박준화 피디가 말하는 ‘내가 봐도 감동했어’

시즌1 마지막회 회별 엔딩신을 모아놓은 장면. “시즌1에 출연했던 모든 사람이 나오다가, 마지막엔 영애가 원준과 헤어지면서 뭔가 다시 해 보겠다는 다짐을 하듯 고개를 싹 드는 장면이 있다. 음악이 깔릴 때부터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봤다. 한 시즌 마감하며 힘들었던 때, 회식 자리에 둘러앉아 티브이를 보면서 “와~ 죽는다” 감동 먹었다. 그때 음악을 지금도 즐겨 듣는다. 서성원 음악감독의 음악을 편집할 때면 사실 날마다 감동이다.”

■ 최규식 피디가 말하는 ‘그때 진짜 힘들었다규’

시즌3 6회 혁규가 2층에서 떨어지는 장면. “높이가 2~3미터일 거라 예상했건만 영애 방 높이가 7~8미터나 되더라. 연기자 혁규씨나 나나 모두 전날 뒤숭숭한 꿈을 꿨던 터라 더 걱정스러웠다. 혁규씨가 한 번에 엔지(NG) 없이 가자고 용기를 내서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힘들고 아찔한 순간, 모든 스태프들이 조마조마했지만 다시 봐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나왔다.”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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