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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01 19:41 수정 : 2009.04.04 16:04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극과 극은 통할까? 지난 화요일 종영한 <꽃보다 남자> (한국방송)는 F4 신드롬처럼 눈이 환해지는 신예 스타들을 발견한 반면, 계속되는 사건 사고와 추문이 드라마 한가운데를 관통하기도 했다. <꽃남>은 가장 뜨거운 이슈이자,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쏟아내는 화수분이었다. 극단적인 성공과 극단적인 실패를 동시에 보여주는 드라마로, 2009년 신화가 된 이 드라마의 안팎에 대해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왼쪽)과 최지은 기자가 주목했다.

신드롬 일으킨 <꽃보다 남자> 총정리… 무너진 후반 ‘의리 시청’으로 버텼다

백은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꽃남>이 드디어 끝났다. 이렇게 하나의 드라마를 통해서 제작 환경의 고질적 병폐와 배우를 둘러싼 쇼킹한 뉴스가 쏟아져 나온 예는 앞으로도 없을 거다. 근래 이렇게 인기를 끈 작품도 없었지만 잔혹사에 가까운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다. <꽃남>에서 발생한 문제점 하나하나를 리뷰하는 건 드라마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선명한 바로미터를 보는 거다.

인간 내비게이션 윤지후, 헛웃음 작렬 프린스 송

최지은 24부작이니까 3개월 정도 한 건데, 6개월쯤 한 거 같다. <꽃남>이 공식적으로 만화 판권을 사고 제작한다고 선포한 건 1년이 넘었다.

워낙 범아시아적인 프로젝트였지. 원작 만화에 대한 팬층도 두터웠고 대만·일본 드라마와 비교하면서 보는 즐거움, 차이점들이 있었다. 학원물 드라마가 없었던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그 갈증을 채워주는 몫을 했다. 단순히 막 만든 드라마가 아니라 <꽃남>이 잘 팔린 요인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제작과 편성 측에서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꽃남>의 첫 난항은 판권을 탐내는 국내 제작사들이 많았지만 막상 방송사에선 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거다. 10대가 보는 드라마라는 걸 한계로 들어 문화방송과 에스비에스가 거절했다. 한국방송에서도 편성되기까지 진통이 많았다. 제작진들이 ‘10대는 어리니까 20대로 올리자!’, ‘한류의 힘인 출생의 비밀 코드를 넣자!’는 제안을 했다더라. 이 코드에 시청자들이 느끼는 진부함이 얼마나 큰데!

<꽃보다 남자>. 한국방송 제공
결국 출생 비밀 같은 것 없이, 설정상으론 원작의 나이대나 직업에서 큰 변화 없이 시작됐다. 시청자들의 요구가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꽃남>이 끝나는 시점에서 되새겨볼 교훈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만듦새만은 피해야 할 거다.

제작사에서 편성을 따낸 뒤 구준표 캐스팅, F4와 금잔디의 캐스팅, 스타일링과 로케이션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잘 팔릴까를 고민했다고 하더라. 한데 문제는 이야기와 스타일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치명적으로 부족했다는 거다. 원작이 했던 이야기를 좀더 충실하게 따랐더라면 끝까지 좋았을 거다.

시작점과 캐스팅까지는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초반엔 사실 와!! 하고 확 쏠려서 봤다. 6~7회를 넘어서면서 못 참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중반 넘어서면서 구조적으로 엄청 무너져 내렸다. 인기와는 별도로 많은 참을성을 요구하는 드라마가 된 거지.

뜬금없이 이들이 왜 이 장소에 가 있나 하는 심정! 예를 들어 윤지후는 비상계단에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왜 ‘인간 내비게이션’ 소리를 들으며 여기저기 금잔디 앞에 나타나나 싶은 거다. 그게 스케줄상 비상계단이 있는 계명대까지 못 가서 그런 거라더라. 이렇게 빠지는 장면이 생기니까 개연성도 떨어지게 될 수밖에. 송우빈은 전체 이야기에서 무슨 역할을 하며, 중요한 캐릭터였던 구준희가 왜 자기 동생과 잔디의 사랑을 지지하나에 대한 이야기도 후반에 쏙 빠졌다. 후반부 <꽃남>의 목표는 오로지 잔디와 준표를 이어주는 거! 잔디가 지후 사이에서 조금 고민하다가 가는 심플한 결말뿐이었다.

우리가 옴니버스 드라마가 아닌 24부작을 보는 건 1회에서 나왔던 단서가 16회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가를 보고 싶어서다. <꽃남>은 1회부터 24회까지 사건 터지고 잔디 구해주고, 준표 잔디 둘이 뽀뽀하고!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가 누적되지 않고 병렬식으로 나열됐다. 무슨 ‘공주님 구하기 게임’ 같았잖아.

구준표가 초반에 “오늘부터 금잔디는 내 여자친구다”라고 말한 거에서, 따져보면 달라진 게 없다.

윤지후 삽질은 또 어떻고? 윤지후가 도와줘서 구준표·금잔디가 덕 보는 장면이 계속 반복됐다. 마카오 골목길에서 깡패들에게 시달리는 금잔디를 도와주는 프린스 송(송우빈)이라니(웃음). 이들은 어쩌자고, 여기 와 있나 싶었다.

슬플 지경이다(웃음). 막판에 기억상실증 걸렸을 때도 새로운 여자가 나왔다가 바로 정리되는데 그건 쫌 ….

한 드라마가 16부든 24부든 그 회가 존재하는 구조적인 이유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 한 회 한 회 길어진다는 건 <꽃남>의 인기를 통해 돈을 더 버는 상업적인 이유밖에 안 됐던 거지. 너무도 게을렀거나 아니면 극에 대한 경외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후반부였다.

시청률 30%를 넘으면서 소위 대박이 나니까, 확 폭죽을 터뜨린 거다. 그때부턴 <꽃남>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린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꽃남> 출연진을 등장시키는 예능프로그램이나 무수한 광고, 어떻게 하면 꽃남 효과를 제대로 뽑아먹을까만 생각했던 듯 보인다.

수없이 지적된 쪽대본 이야기라든지 그날 찍어서 그날 방송하는 ‘생방송’ 드라마의 문제가 노출됐다. 배우들 사고가 얼마나 많았나. 김범 교통사고 2번, 구혜선 입원해 버리고. 보통 방송 제작진들이 “그래도 (어떤 상황에서든) 방송은 나간다”고 말하곤 하는데, 정말 방송 1회 죽었잖아.

하루 만에 만든 현영과 F4의 토크쇼가 대신했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건 큰 문제였다. 드라마에 투입되는 돈과 규모는 커지는데 방송이 뜬금없이 죽어 버리는 일만 봐도 방 제작 환경은 나아진 게 없다.

이민호, 김현중, 김범 등 신예 스타들의 F4 신드롬을 일으킨 반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꽃보다 남자>. 한국방송 제공

F4 만나는 기쁨 갈수록 길티 플레저로

시청자들도 이제 방송이 꿈과 열정만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산업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돌아간다는 걸 파악하고 있지. 그런 면에서 <꽃남>의 피피엘(PPL) 문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제작사로부터 제작비가 충당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한 피피엘이 계속됐다. ‘신화 전화기’보다 더 어이없었던 건, 소이정과 추가을 장면에서 아이스크림 비비는 걸 몇 분 정도 보여줬던 거다. 피피엘을 뭐라 할 수만은 없다. 피피엘을 텍스트 안으로 가장 잘 집어넣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엄청난 인기 때문에 드라마가 도구로 전락한 측면도 있다. 6회 이후 광고가 완판되면서 드라마도 5분 이상 줄어들었고, 그러면서 엔딩 점이 달라졌다. 이런 걸 맞추는 테크닉도 중요한데 놓치기 시작한 거지. 광고가 완판된 건 제작사 편에선 잘된 거지만, 작품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배우들도 스타가 되면서, 빡빡한 스케줄에 광고까지 찍으려니 엉킬 수밖에.

10회 언저리부터는 좀더 심화됐다. 초반엔 말 그대로 기쁨을 주는 플레저(오락물), 이어 약간 쫌 그런 길티 플레저(결점 있는 오락물)였다면 나중에는 습관에 가까운 태도로 시청하는 층이 생겼다. 즐거움조차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돌 때문에 보게 되는 심리 상태? 그리고 기획사는 미워하고(웃음) 계속 제작사와 감독, 작가, 한국방송을 향해 “우리 F4를 지키지 못하면 안 된다!” 외치는 굉장히 독특한 팬층을 만들어냈다.

보통 드라마 팬들은 그러지 않아!

감독이나 작가, 작품 자체에 대한 충성도를 보여주곤 하는데, <꽃남>의 인기는 주인공들에 한정됐다. 이런 방식으로 소비되는 드라마를 만드는 기획자라면 제대로 된 백서쯤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사실 어떤 도박판보다 무서운 곳에서 몇십 억 이상의 부채를 끌어안고 가는데, 그러다 보니 방송사에선 손에 피 안 묻히고 유리한 쪽에 서려고 하고 제작사는 무리수를 둔 제작을 한다. 이런 게 <꽃남>의 상황을 만든 거지. 히트작인 건 고마운데 “<꽃남> 우리끼리 보면 괜찮지만 밖에 수출하는 건 좀”이란 댓글이 달린다. 우리만큼 구준표를 따뜻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싶은 거다. 거의 재연드라마 수준의 만듦새를 보여준 부분도 있잖아.

드라마 초기 자본이나 편성이 좀더 안정적이었거나 반 정도 사전제작 하고 들어갔더라면 사고도 문제도 적었을 거다. 사실 이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테마의 드라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물의 세계관이 크게 복잡한 것은 아니었잖아. <꽃남>은 좀더 잘 만들 수 있었던 작품이다. 사실 아주 큰 기대를 가졌던 건 아닌데 점점 실망스러워지면서 막판에는 약간의 충격까지 느꼈다.

우리 준표, 이정이 무럭무럭 잘 크렴

그래도 <꽃남> 같은 판타지 드라마나 학원물, 하이틴 드라마가 가진 순기능은 새로운 배우를 탄생시킨다는 거다. 이민호나 김범은 갑자기 뜬 느낌도 크지만 사실 차근차근 밟아온 배우다. 이 한 편의 드라마가 그들에게 던져준 유명세나 기대에 좌지우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그콘서트>에서 왕비호가 “구준표 <꽃남> 끝나고 뭐할래?” 했는데 그거 사실이거든(웃음). 간만에 나온 좋은 배우들이 어떤 식으로 소비될까? 될 때 뽑아야 한다는 식으로 너무 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 배우가 살린 캐릭터

하재경(이민정): “금잔디가 친구 하잔 적도 없는데, ‘넌 나의 베프’라며 나타난 하재경. 안하무인에 민폐캐릭터인 재경을 이민정이 매력적으로 살렸다.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여자, 사랑스러워!”(백은하)

구준희(김현주): “스타일과 미모는 물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세상의 망나니인 동생 구준표를 손에 쥐고 흔드는, 기 쎈 누나의 전형을 멋지게 뽑아낸 그녀. 비중은 크지 않았지만, 현장에서도 가장 성실하게 뛰었다더라.”(최지은)

■ 배우가 죽인 캐릭터

금잔디(구혜선)

“구혜선 본인은 좀더 코믹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만, 몸개그가 필요한 코믹캐릭터는 아니었잖아. 자존심 세고 진지한 인물 츠쿠시가 한국판에선 1차원적인 인물이 되고 말았으니.”(최지은)

“원작의 츠쿠시는 ‘너란 아이 참 귀여운 아이구나~’라는 말이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금잔디는 넙죽넙죽 받아먹으면서 ‘이건 서민의 자존심’이라고 소리쳤지만, 그녀 한 번도 서민이었던 적 없다. 수동적인 캐릭터였을 뿐. 츠쿠시를 품위 있게 지켜내지 못했다.”(백은하)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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