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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25 19:59 수정 : 2009.03.28 10:14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상황이 뭐든 빨리 부장님께 사과드려!” 이렇게 남편에게 말해놓고 고민하는 아내 김남주의 마음! “나 잘사는 거 같애? 회사 사장이 내 남편이야~”라고 말하는 여자 후배를 고즈넉이 바라보는 남편 오지호의 마음! 이 두 부부의 코믹발랄한 인생역전 프로젝트는 뭘까?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씨(사진 오른쪽)와 시나리오 작가 신광호씨가 모처럼 가볍고 명랑하게 시작된 월화 미니시리즈 <내조의 여왕>(문화방송)에 주목했다.

환상의 캐스팅, 뛰어난 연기 앙상블 <내조의 여왕>
신선하고 현실적인 에피소드들 빵빵 터뜨려 주길

정석희(이하 정) 요즘엔 초반에 좋았는데 뒤로 가면서 ‘배가 산으로’ 가는 듯한 드라마가 많았다. <내조의 여왕>의 첫 느낌은 상당히 좋다. 이런 호감엔 갖가지 논란을 피해갈 수 있는 코미디 장르라는 게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정극이라면 이런 소재, 또 얼마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을까?

남편 사랑과 신분 상승 욕구의 한끗 차이


신광호(이하 신) 가정을 다루는 이전 드라마들을 보면 엄마는 항상 누군가를 보살피는 존재였다. 엄마를 주축으로 한 이야기에서 돈 버는 사람으로서의 아빠 이야기는 가족 외 영역으로 다뤄지곤 했다. 드라마 <강남 엄마 따라잡기>에서 엄마의 정보력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지는 내용은 봤지만, 여자들의 외교력에 따라서 남편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내조>를 보니 <에덴의 동쪽>을 보며 울고불고했던 무거운 감정이 가시고 <환상의 커플>을 즐겁게 보던 때가 생각난다.

미흡한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의 흥미진진한 고군분투를 보여주는 <내조의 여왕>. 사진 문화방송 제공
정극으로 하면 비현실적이란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더라. ‘아내들이 그렇게 해서 남편 출세하는 게 말이 되냐’, ‘여자들이 그렇게 한심하냐’ 등의 의아함이 있을 수 있는데 코미디로 바꾸니까, 접근이 자유로워진 거다. 의외로 손창민이 주연했던 <불량주부>처럼 남자가 여자를 외조하는 드라마나 여자들이 사회적으로 자아실현하는 드라마는 많았다. 하지만 부부의 관계망 속에서 사회 부조리 등의 문제를 제대로 드러내는 게 쉽지 않았지. 사실 가족 중 하나가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집안 전체의 사회적 지위가 바뀌는 게 현실이다. 자기 신분 상승을 위해서 같이 뛴다는 설정이 현실의 절묘한 반영이다.

그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족에 대해 갖고 있는 대표적인 선입견이다. 집안을 잘 유지하기 위해 “너의 몫을 잘해 줘야 해”라는 강박관념 같은 거지. 가족 구성원의 성공이라는 게 결국 ‘우리 가족’, ‘그 안의 나’의 명예가 서는 거란 관념이 박혀 있다. 이 현실을 반영한 <내조>를 외국인이 본다면 남편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아내가 이해 안 될 수도 있겠다.

미국 드라마인 <위기의 주부들>이나 <가십걸> 같은 드라마들을 봐도 근본적으로는 똑같던데?

그래도 <가십걸>은 동시대를 사는 ‘미국 부유층’이라는 정확한 지칭 대상을 두고 있었다.

우리에게 다양한 문화적 차이보다 다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큰 건 사실이다. 가정사와 사회사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김남주의 연기는 정말 탁월하다.

오랜 연기 공백을 갖고도 감을 안 잃은 건 놀랄 정도였다. 무능력한 남편을 향한 대사를 온전히 담아내는데, 말과 표정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버무러져서 맛깔스럽다.

2% 부족한 남편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는 김남주(천지애 역)는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여자 같다.(웃음)

의욕 갖고 덤비는 김남주에 집중하다 보니까 이혜영(양봉순 역)의 연기가 초반 모자라나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이혜영 모습’을 다르게 보여주면서 영리한 연기자라는 걸 느끼게 했다. 코믹드라마에서 코믹함에 몰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극 같은 진지한 연기를 보여주니까 색다르다.

김창완-나영희 커플의 연기도 일품

캐릭터에 따른 캐스팅을 참 잘한 드라마다. 요새 잘나가는 한류 스타들 안 쓰고도 눈에 번쩍 뜨이는 드라마 어디 흔한가. 김남주가 시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받는 장면, 내가 딱 시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받는 느낌을 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도 뭔가 먹을 거 가지고 감정 상하거든. 지극히 사소한 순간인데, 죽을 때까지 못 잊을 듯한 사건들을 곳곳에 담아내 “내 이야기다” 싶은 부분이 많다. 취재를 잘한 거 같다.

제작 의도에 따라 캐스팅만 잘해도 된다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다.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배우가 들어오면 같은 대사라도 뻥뻥 터질 수 있다. 조연들의 조합도 좋다.

김남주야말로 자기에게 딱 맞는 역할이다. 이번엔 능청맞게 너무 잘하는 거지. 고딩 때 퀸카였던 김남주가 이제는 퀸카가 된 이혜영을 본 순간 “아니~ 제 친구랑 너무 닮아서요”라고 말하다가 “흐웅…” 뒤로 갸우뚱하는데 디테일한 표현이 대박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할 말을 준비하면서도 톤을 가다듬으며 “사모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연습하는 거 작가가 다 써준 거라면 정말 완벽주의 작가고, 아니라면 김남주의 센스 대박이다. 자기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었을 때 보여주는 경지다.

스토리 진전도 빠르고 과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코믹하게 보여주는 것도 흥미롭더라. 김남주 남편인 김승우가 자살하려는 극 중 남편 오지호를 상대하는 경찰로도 나오고.(웃음)

연기자들의 센스와 여유가 느껴진다. 여고 동창인 양봉순 역을 두고도 캐스팅 번복이 많았다더라. 오현경, 박주미가 거론됐다고 들었다. 주인공 천지애라면 모를까, 주인공도 아니고 망가지는 것도 불사해야 하는 양봉순 역과는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 같다. 이혜영은 사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연기와 오락프로에 출연했을 때 차이가 참 크다. 오락프로에서는 4차원으로 보이는 것에 반해 연기할 때만은 진지하다. <내조>에선 남편의 마음을 온전히 갖지 못한 여자의 슬픔을 보여주더라.

<내조의 여왕>. 사진 문화방송 제공

극 중에선 이혜영의 남편인, 성공에 대한 야망이 큰 최철호가 부인을 사랑하지 않잖아. 그런데도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대목의 플롯이 약하다. 사랑하지 않는 부부가 결혼했다고 시청자들에게 상황을 주입했지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회사 이사 부부인 김창완-나영희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일품이다. 풋풋하던 시절, 종로2가 카페에서 나영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배우다. 1회 엔딩에서 김남주가 100% 변신에 성공한 이혜영을 마주쳤을 때 “여자라면 일생에 한번쯤 여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녀라면 지금이 바로 그때인지 모른다”는 대사가 있었는데 내겐 이혜영이 아니라 나영희가 늘 여왕 같다.

뒤를 돌아서 생각해보면 화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외모다. 이사 부인 역에 딱이다. 그가 내뿜는 카리스마의 베이스에는 매력적인 차가움이 있다.

열연이라는 느낌이 과도하게 들지는 않지만, 열심히 하는 남자배우들도 돋보인다. 오지호나 윤상현을 보면 워낙 코믹물에 강하던 이들이다. 특히 오지호는 착한데 맥없고, 원래 딱 그럴 거 같은 느낌이다. 실속 없고 모든 사람에게 잘하는 사람? 김남주 같은 똑순이하고 살면 만날 싸울 것 같다.(웃음)

제작진과 배우 모두 준비를 많이 했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초반엔 정말 풍부하고 신선한데 나중에는 제조일자가 지난 상황이나 대사가 툭툭 나올까봐 걱정이다. 신선한 사건이 계속 이어지면 꽤 인기몰이를 할 거 같다.

유머 코드를 잘 잡아내는 사람들이 모였다. 김남주가 “카드 마그네슘이 손상됐네요”라는 말을 하는 것만 봐도 자연스럽게 웃기더라. 면접 중에 회사 시에프를 이야기하면서 <온에어>의 오승아(김하늘)를 기용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기존 유행했던 프로그램들을 응용하는 것도 재치 있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

심각할 수 있는 인물들을 데리고, 밤 10시에 가볍게 볼 수 있는 유쾌한 드라마가 나와줘서 참 좋다. 진지하게 몰입했다가도 만화처럼 탁 환상 속으로 튕겨나와서 냉온탕을 오가는 식이다. 살짝 바람피우는 이야기 같은 것도 이렇게 풀어가면 신선하다.

고민 안 하고 한숨 안 쉬면서 볼 수 있는 드라마다. <꽃보다 남자>를 “말도 안 된다”고 흉보면서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드디어 지상으로 내려온 듯한 <내조>를 만난 거다.

■ 절대공감 이 장면

“김남주가 오지호에게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아무리 찔러도 안 넘어가는 남자 같아’라고 말하던 장면. 여운 넘치는 장면이었다.”(정석희)

“체육대회에서 이혜영이 김남주를 공으로 때릴 때, 달려가는 표정하며 리얼 그 자체였다. 3회 끝에서는 상상 신이었는데, 4회에서 다시 보니 더 공감가더라~”(신광호)

■ 또 보고 싶은 이 장면

“김남주와 이혜영의 독대, 그 긴장감과 그 웃음! 둘이 마주 보고 시선 교차하는 장면이라면 난 언제든 기대 만빵!”(신광호)

“김남주가 ‘이미 (주사위가 아닌) 나침반은 던져졌어’라고 말하던 장면처럼, 패러디 아이템 200퍼센트 활용! 앞으로도 쭉 보고 싶다~”(정석희)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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