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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8 16:55 수정 : 2009.03.21 17:01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지명수배, 잠복 취재, 현장 검거로 이뤄진 티브이 프로그램은 뭘까? 사회고발물도 다큐 프로그램도 아니다. 나쁜 남자 잡는 프로그램 <연애불변의 법칙 7-나쁜 남자>(올리브 티브이)다. 20대 초 젊은 연인들의 실제 상황을 따라가는 이 프로는 지금 이 시대 연애가 어떤 모습인지 ‘100% 날것’ 버전으로 보여준다. 시즌 7까지 이어올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문제적 프로 <연애불변의 법칙>에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주목했다.

지고지순 러브 스토리 환상 깬 <연애불변의 법칙>
설정 세지만 우리 안의 강박증 돌아보는 계기도

백은하 지금은 수많은 프로가 리얼리티 쇼를 표방한다. 리얼리티 쇼 안에서도 드라마의 질이 쇼의 성공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사실 시청자들과 정서상으로 가장 공유하기 쉬운 주제는 연애, 결혼, 사랑이다.

최지은 지상파의 <우리 결혼했어요>가 연예인 대 연예인의 로맨스 시뮬레이션이라면,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연예인과 연예인 지망생들의 짝짓기 시뮬레이션이다. 케이블에서는 몇년 전부터 연예인 없이 일반인들의 연애사가 자주 등장했다. 정말 날것 그대로의 연애를 확~ 들이미는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한번 고정하면 돌릴 수가 없어

<계약동거>를 비롯해 <애완남 키우기-나는 펫>, <김시향의 놈놈놈>, <응사마 장가가자!> 같은 식의 남녀들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리얼리티 쇼가 많았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관음증을 불러일으켰지.

이제 연애 리얼리티쇼는 스타성도 필요 없어졌다. 점점 더 독해지면서 힘을 받았다.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는 부부간의 문제를 고발하고 <러브 파이터>는 젊은 커플들이 문제를 들고 나와 서로 붙는 프로다.

출연자인 남녀 커플이 촬영중인 걸 알고 있다면 우리가 보는 건 ‘타인의 연애’다. 하지만 <연애불변의 법칙>은 다르다. 신청을 한 사람은 촬영중이라는 걸 알지만, 실험을 당하는 쪽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연불>에는 극화되거나, 극이라는 걸 인정한 리얼리티 쇼와는 완전히 다른 상태의 흥분, 분노, 공감, 탄식이 가능한 기본적인 장치가 있다. 결국 굉장한 자기이입이 가능하게 만드는 포맷인 거다.

<연불-나쁜 남자>는 이번이 벌써 일곱번째 시즌이다. 매번 ‘커플 브레이킹’, ‘핫 서머’ 등의 소제목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건 지난 시즌인 ‘커플 브레이킹’부터다. 이번 소제목은 ‘나쁜 남자’인데 더 자극적이라고 아예 공표했다. 초창기엔 몰래카메라 식의 나름 가벼운 상황 설정이었는데 이번 시즌은 시작부터 쎄더라.


실제 커플들의 연애 스토리가 100% 노출되는 <연애불변의 법칙 7-나쁜 남자>(사진 위). 올리브티브이 제공
시작부터 시청률 1%를 넘었다. 케이블 프로로서는 인기지. 또 상당히 자극적일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프로이기도 하다.

사실 <연불>은 꼭 보려고 해서 보게 되는 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채널을 돌렸을 때 다른 채널로 넘어가기 힘들다. 재방도 워낙 많이 하고.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이 안 갈 수 없다.

<연불>은 시청자들이 티브이를 통해 기대하던 일상, 사랑, 결혼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리얼리티 쇼는 인간의 동물적인 행동들을 지켜보려는 의도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남자와 여자가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이는 행동을 관찰하는 것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외국 프로그램 중에도 그 유명한 <현장고발 치터스>가 있었잖아. 내 배우자나 애인이 바람피우는 걸 의심하고, 바람피우는 사람을 쫓아가서 몰래카메라를 들이대는 프로였다.

<우결>도 결혼이라는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놓고 다른 성격,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본다. <우결>은 공중파라는 제작 조건 안에서 실제 상황을 버리고 갔다면 이런 제약을 확 벗고 시작한 게 <연불>을 비롯한 케이블 프로다.

<연불>은 <우결>보다 몇 배 리얼하고, <치터스>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함정을 판다. 주로 여자 쪽에서 의뢰를 많이 한다. 내 남자친구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서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남친이 ‘수상’하기 때문이다. 남자를 따라 그가 좋아할 법한 스타일의 여자, 소위 작업녀(작업남)를 투입한다. 실제 여자친구와 작업녀의 스타일은 참 많이 다르더라.(웃음) 남친 스타일의 작업녀를 현장 투입해서, 작업을 하면 열에 아홉은 넘어가더라고. 물론 안 넘어가는 경우가 방송에는 안 나오기도 하겠지만. 처음 만난 여자하고 스킨십도 금방, 키스는 기본이더라. 모텔을 가려고도 하는데 그럴 때면 제작진이 황급히 투입되어서 피디가 ‘내가 네 중학교 때 선생님’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정리하곤 한다.

보면서 한숨 쉬는 나, 늙은 거니?


<연애불변의 법칙 6-커플브레이킹>의 사회를 맡았던 황보, 김창렬. 올리브티브이 제공
끊임없이 러브 스토리를 봐 왔음에도 실제 연애의 가치를 써가는 사람들은 이들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이제껏 드라마에서 봤던 20대의 연애라는 건 배우의 몸이라는 껍데기에 러브 스토리를 장착한 거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대한민국 연애 풍속도구나~! 하고 본다.

드라마에선 재벌 2세 정도는 돼야지 나이트에서 죽 치고 놀지만 사실은 보통 청년들도 그런 것들을 꿈꾸고 실천에 옮긴다. 드라마의 ‘원나잇 스탠드’가 아주 특별한 어떤 사람들이나 외롭게 자라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닌 거다.

물론 출연하는 남자들 너무 어리시고, 군대도 갔다 오기 전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될 거다. ‘오늘은 즐길 수 있다’는 판단을 하는 출연자들이 많은데, 그걸 보면서 역으로 유교적인 분위기나 사회적인 학습으로 강요받았던 연애의 법칙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평소 지조 있는 연애에 대한 강박이 모두에게 좀 있는 것 같다.

<연불>은 어떤 큰 결심 없이도 뛰어들 수 있는 연애의 방법을 보여준다. 그게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아 이제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연애법을 보면서 ‘내가 늙었구나~’라는 깨달음이 온다.

나 너무 바보처럼 살았나?(웃음)

그럼 난 조선시대 여인~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유로운 연애가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거다. 조금 굳어져 있는 우리 세대가 잘 모르는, 연애의 다른 이유들이 있는 것 같다. 젊은 친구들 사랑이 ‘잘못됐어, 이건 안 된다!’는 판단을 할 건 아니다. 지금 중장년층이 20대였을 때도, 차이는 있었겠지만 사랑이 영글어가는 갈등 과정은 분명 있었을 테니까.

현실의 연애담을 카메라로 찍어놓으면 <연불>의 상황과 비슷한 경우도 많다. 친구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면 <연불> 보낼 감이 많더라. 수년 동안 뒷바라지했는데, 남자가 취직을 하자 바로 바람을 피웠다는 식의.

죽어라 싸우고 계속 의심하고 집착하는 유혹의 순간들이 존재하는 게 연애다. 그렇기 때문에 갑자기 섣부른 드라마로 실험의 결과를 미화하려는 순간이 가장 어색해진다. 시즌 7까지 오는 동안 여러 가지 형식적인 변화도 있었다. 사회자 성격도 변했고. 시즌 6에선 김창렬과 황보가 진행을 봤고 지금은 홍석천과 김현숙이 따뜻한 멘토 역할이다. ‘나쁜 넘’ 상태는 이번 시즌이 가장 높은데, 진행은 덜 자극적이다.

사회자들이 봉합의 구실을 한다. 사실 <연불>의 성격과는 전 시즌의 김창렬과 황보가 더 잘 맞았다.

김창렬과 황보는 중계와 분노를 동시에 했으니까.(웃음)

의뢰녀는 속상해하는데, 황보는 심드렁하게 ‘다 그런 거지’ 하는 느낌으로 보곤 했다. 홍석천은 다독거리는 역할이고, 김현숙도 “진짜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헤어져”라는 식이다.

프로의 온기가 더 올라가기는 했는데, 가끔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이미 이 연애는 봉합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연불>은 연애라는 게 정말 답이 안 나온다는 걸 보여주는 게 핵심이다. 주말 드라마에선 여자가 남자에게 차이고 나면,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는 로맨스가 펼쳐지잖아. 그런 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다른 채널의 한켠에서는 보여주고 있는 거다. 드라마엔 잘못을 뉘우치는 남자들이 많지만 “너네, 장난하냐?”고 말하는 게 <연불>이다.

케이스 쌓이면 연애학 보고서 될 듯

<연불>이 진짜 우리 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건 분명하다. 당장 눈앞에 보여지는 게 자극과 오락이더라도, 21세기 2009년의 가장 적나라한 연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프로의 목적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하나하나의 실험 케이스가 쌓이면 좋은 보고서가 될 수 있을 거다. 출연 커플들을 향해 도덕적이기만을 바라고 티브이를 끄는 건 아닌 거 같다.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연애불변의 법칙> 어머나!의 순간들

“바람기 있는 남자친구, 작업녀에게 확 넘어가는 모습 보였다가 여자친구 교통사고 냈다니까 단번에 달려가던 장면. ‘이 사고 내가 낸 거라고 말하라’던 남자친구 모습에 한방 맞은 듯했다. 다른 사랑에 대해 개방적이라고 해서 지금 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가치를 불신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이 누나 알았다.”(백은하)“3년 동안 데이트 비용 지불한 여자는 작업녀에 넘어간 남친을 보고 당당하게 이별의 결단을 내리더라. 출연 커플들이 프로그램 말미 서로 용서를 많이 하는데, 떠난 그 여자 멋졌다.”(최지은)

<연애불변의 법칙> 역시나~의 순간들

“작업녀에게 반해 새로운 사랑이 왔다는 착각하던 남자친구, 여자친구에겐 그리 대충 하더니 작업녀에겐 ‘사랑한다, 예쁘다’ 온갖 찬사를 늘어놓더라. 그래도 이런 남자 결국 용서하던 여자친구, 내 마음까지 찜찜하던 순간.” (최지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작업녀를 보고, 남자친구가 ‘2주 만에 애인 정리하겠다’고 말하던 순간. 그리고 작업녀가 돈이 많은 사람인지 아닌지 곁눈질 하던 그 남자, 드라마보다 더 상투적이야!”(백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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