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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25 19:55 수정 : 2009.02.26 10:00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복수하고 싶은 사람 모여라! 최근의 드라마는 마치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찰싹찰싹 뺨 때리는 소리는 기본, 신생아를 바꿔치기하고, 위장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2월 초 첫 방영한 <미워도 다시 한번>(한국방송)과 <아내의 유혹>(에스비에스)은 모두 복수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씨(사진 오른쪽)와 시나리오 작가 신광호씨가 드라마의 복수극 열풍에 대해 짚어봤다.

매일매일 복수 콤보 패키지 <아내의 유혹>
따귀 때리기 풀코스 <미워도 다시 한번>

정석희(이하 정) 현실에선 용서와 화합이 강조되는데 드라마에서 복수가 넘쳐난다.

신광호(이하 신) 요새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웃음)

대신 복수하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


드라마 속 복수를 보며 위로(?)받는 게 트렌드 같기도 하다. 드라마를 보는 누군가는 가해자일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는 순간만큼은 시청자들 대부분 피해자 입장에 서게 된다. 감정의 깊은 바닥에 깔려 있는 걸 드라마가 속시원히 말해준다. 그래서인가. 복수를 다룬 드라마들의 시청률이 꽤 높다.

차화연이 팜파탈로 나왔더라면

요샌 아침드라마의 화두도 불륜이 아니라 복수다. <그 여자가 무서워>(에스비에스)가 복수극의 전초전이었다. 말도 안 되는 복수 이야기를 저녁 7시40분 일일극으로 내보냈다. 시청률도 좋았고 반응도 나름 괜찮았다. 후속 타자는 <애자언니 민자>. 돌아온 스타 차화연의 복귀작이었다. 비교적 정상적인 가족극이어서 그랬나, 반응이 시큰둥했다.

10~30대 시청자들은 그녀를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아니~ 그보다 시청률을 주도하는 중장년층 여성에겐 차화연의 복귀는 적잖은 화제였다. 그런데 어필을 못한 건 기억 속 차화연은 팜파탈 이미지였는데 현모양처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유혹> 여장부 민 여사(정애리 분) 같은 역을 했으면 반응이 뜨겁지 않았을까.

악역이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좋기도 하고.

중년 여자의 피맺힌 복수와 사랑을 그리는 <미워도 다시 한번>(한국방송).

현모양처 캐릭터도 설득력 있는 복수극을 만들 수 있다. 여자의 복수~ 하면 <청춘의 덫>을 빼놓을 수 없다. 복수에 대한 개연성이 분명히 있었다. 여성 캐릭터 이해되고.

그에 비하면 <아내의 유혹>은 남자에게 배신당해 죽음의 위기에 놓이면서까지 다시 돌아오는 복수극이다. 막장에 업그레이드를 한 게 이 드라마란 생각이 든다.

최근 복수극의 특성은 <청춘의 덫>과는 다르다. 말도 안 되는 피해자가 너무도 쉽게 생긴다. ‘너 죽고 나 죽자’로 둘이 복수하면 되는데, 생뚱맞게 다른 피해자가 생긴다. 자기 복수하느라 바쁜 <아내의 유혹> 장서희가 자식이 먼저 죽는 부모의 슬픔을 어떻게 알겠나. 자기 부모님은 그렇게 놔두고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이건 독한 것도 차원을 넘는다.

난 <아내의 유혹> 보고 있음 버라이어티쇼 <헤이헤이헤이>를 보는 느낌이다. 예능 프로처럼 스피드가 너무 빠르고 화제성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 같다.

최근엔 신애리가 양은냄비로 머리를 내려쳐서 강재가 쓰러졌잖아. 진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쇼가 계속되고 있지. 말도 안 되는 피해자를 만드는 인물은 <에덴의 동쪽>(문화방송)의 간호사 유미애가 최고다. <에덴>은 신태환(조민기)이 사고로 위장해서 기철(이종원)을 죽이고 난 뒤 피해를 입은 인물들이 원한을 되갚고자 절치부심하는 거다. 한데 유미애 간호사가 신생아 둘을 바꾸는 바람에 얽히고설키고 난리가 났다. 결국 꼬이고 꼬여 원수의 칼을 갈아준 격이잖아.

아무리 드라마라 해도, 복수에도 윤리의식이 필요한데.

복수는 사실 둘이 해결할 문제다. 왜 제3자에게 피해를 주냐고. 저주받은 부자 관계인 신태환과 동욱이의 꼬인 복수극이라니.

상황을 좀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인물들을 기구하게 몰아가는 거다. 시청자들의 동정심도 유도하고. 드라마 속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걸 많이 발견한다는 거. 그런데도 중독성 있는 음식인 거다. 불량식품처럼. 최근에 본 <미워도 다시 한번>(한국방송)은 소재는 아침드라마에서 반복되는 거였지만 스케일이 커서 흥미롭게 봤다. 팜파탈을 연기하는 전인화의 등장도 새로웠고.

복수 드라마의 고전 <청춘의 덫>

전인화 캐릭터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다. 배우를 하면서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철부지처럼 살아오다 딸아이 펑펑 쓰는 카드값 막아주는 걸로 엄마 노릇 한다.(웃음) 이 드라마의 전인화, 최명길, 박예진 3명의 여자는 너무 무섭다. 뭔 일만 생기면, 다 밟아 죽이겠다고 하는 식인데. 충격과 공포다.

최명길이 박예진을 굴복시키는 장면에서 최명길의 포스는 놀라웠다. 정말 한마디 한마디를 씹어서 제대로 표현하던걸.

그다음, 박예진이 다시 붙는 포스도 장난 아니던데. 그나마 맞더라도 어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조금은 지켜주더라. 하지만 시청자들은 예의에 실망하기도 한다. <아내의 유혹>에서 장서희가 집으로 들어가서 시어머니한테 생각보다 대차게 못해서 시청자들이 실망했대잖아. 그다지 큰 사건도 못 벌이고, 왜 굳이 들어갔는지 모르겠다는.

드라마 속에서 복수는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하려고 한다. 포기는 없다. 지구 끝까지 가는 복수의 에너지.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의 복수를 주제로 한 <아내의 유혹>(에스비에스).

드라마는 도덕과 윤리로 포장된 현실의 기준을 확확 깨버린다. 그런데 <에덴의 동쪽>에서는 정말 복수심에 불탈 법한 인물들이 등장했잖아. 이다해가 시놉시스상에서는 애초 정말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다해와 그 가족들 비중이 줄어들면서 단체로 증발해 버렸다. 이 연기자들은 정말 작가하고 감독에게 복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웃음)

그런 걸 보면 누구나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 그런데 걱정되는 건, 이런 자극적인 드라마들에 열광을 하면서 또 복수 가지고 안 되고, 복수의 따따블이어야 만족할 듯하다는 거다.

난 시청자들은 자정 능력 있다고 본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까 걱정하진 않지. 더이상의 막장으로 갈 것 같진 않다. 지금은 이런 드라마들이 유행이지만, 다시 청춘 멜로 드라마가 유행하는 시절이 오겠지. 언제까지 악만 지를까?

연기자들은 자기가 맡은 역에 몰입을 하는데, 작가들은 극 전체의 캐릭터에 대해서 작두를 타야 한다.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면에서 작가가 생뚱맞게 어디서 끌어오는 게 아니라 자기의 경험을 반영하게 된다.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작가가 돼, 자기 가치관을 작품 속에 표출시키면 정말 너무 이상한 결과를 낳곤 한다. <인어아가씨> 속 전지전능했던 작가 캐릭터가 떠오른다.

대본도 시청자들의 공감대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 대본 필터링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쪽대본 쓰고 급히 막는 상황이니, 대본이 좋다 아니다 하기 전에 필터링이 안 되는 건 시청자에게 피해다.

악쓰고 싸우는 장면을 보면 난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 하는 교훈을 얻기도 한다. 너무 긍정적인가?(웃음) 단순하게 드라마가 실제 생활에 악영향을 준다고 단정짓는 건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의 경우엔 캐시백 적립 쌓이듯이 무의식중에 보고 배우는 게 있다.

제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들여 만든 <그들이 사는 세상>도 시청률이 안 나오니, 트렌드를 무시 못 할 거다.

시청자들이 절반의 작가, 절반의 연출가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복수 드라마는 누리집에 나온 시놉시스를 보면 결말이 예상되잖아.

싸움구경, 불구경 다음으로 재미있는 건

그런데도 보는 건, 한국 사람들이 남 일에 관심이 많다는 거다. 이웃이 극적인 일이 생겼을 때는 온 국민이 기자정신을 발휘하는 듯 보이니까. 그런 성향이 극단적으로 달리는 복수 드라마와 맞아떨어진 거다.

<아내의 유혹>엔 하루에 수백 가지 일이 일어나더니, <미워도 다시 한번>은 웬 따귀를 이렇게 많이 때리는 건지. 참 요란하게 때리더라!

지금 우리가 분한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가 대신 풀어주는 것 같아서 열광하는 것 아닐까. 한데 푹 빠지기에는 답답함과 울분이 있는 것 같아. 일종의 싸움구경, 불구경인 거지. 어떡해 어떡해 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거 정도다.

■ 이 사람, 이해할 수 없어

<미워도 다시 한번>의 이정훈(박상원 분)

“왜 그가 두 여자 사이에서 수수방관하는지 모르겠다. 정리정돈 못 하는 한 남자 때문에 생겨난 일, 이제 와서 모든 걸 정리하고 싶다는 건 뭐니?”(정석희)

“이 세상에서 가장 점잖은 얼굴을 하고 이제 와서 변덕을 부리는 건 뭔가? 고민하는 표정이지만, 누릴 건 다 누린다. 여자들의 치열한 복수 속에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겠다는 태도. 이해 안 된다!”(신광호)

■ 이 사람, 죄질이 저질~이야

<에덴의 동쪽>의 간호사 유미애(신은정 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어려운 복수야 수없이 많지만, 유미애의 행동은 죄질이 저질이다. 누구 보라고 이런 짓을!”(신광호)

“애를 바꿔치기하는 씻지 못할 죄를 지어 놓고, 반성도 안 한다. 왜 이 사람만 또 응징에서 자유로운 건가? 악의 화신 신태환과 막상막하라지만 이건 분명 아니야.”(정석희)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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