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1.14 17:30 수정 : 2009.01.16 16:08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배신이야, 배신?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에스비에스)의 자세한 대본이 공개되면서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진위 공방이 뜨겁다. 일 바지(몸뻬)와 떡진 머리는 설정이었다고 쳐도, 천적 관계·남매 관계·덤앤더머 형제를 꾸렸던 이들의 야생스러운 모습은 그럼 다 거짓이었단 말인가?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패떴〉과 〈해피선데이 1박2일〉(한국방송)을 중심으로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보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제 상황과 연출의 화학반응이야말로 리얼리티쇼의 매력
드라마는 갈수록 안드로메다로, 쇼는 현실로 이합집산하네

최지은 잡지 〈방송문예〉에 리얼리티 쇼 〈패떴〉의 대본이 공개되면서 연일 화제가 됐다. 인터넷에 곧 〈1박2일〉, 〈무한도전〉 대본도 퍼졌다. 팬들이 쓴 걸 거라며 내심 실망하는 이들도 많았다. 일부 언론에선 시청자에 대한 배신이라 질타하기도 했고.

백은하 시청자들은 모든 상황이 출연자들의 자유의지를 통해 만들어졌길 기대한다. 〈무한도전〉(문화방송)의 기본 콘셉트도 도전을 하는 실제 상황에 초점을 맞춘 거였다. 하지만 도전하기까지의 과정은 분명한 연출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지.

무인도 가서 진짜 처참해지는 거 보고 싶니?


하지만 리얼리티 쇼가 꼭 대본대로 완성되는 건 아니다. 대본은 상황에 맞는 분량과 기본적인 그림을 놓치지 않으려는 제작진과 출연진의 기본적인 합의다. 촬영 구성안 구실을 하는 가이드라인이지.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이제 하나의 갈래다. 다양한 스타가 등장하고 한국적 방송 환경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쇼가 됐다. 재밌게 보다가 갑자기 실망했다는 식의 반응은 아쉽다.

<1박2일>에서 이승기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강호동과 은근히 뺀질거리는 이승기를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작가와 대본이 있기 때문이다. 출연하는 이들의 머릿속에서만 나온 게 아닌 거지. 대본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 우리가 즐기는 리얼리티를 잘못 이해하는 거다. 결국은 쇼인데 말야.

물론 쇼가 다 거짓은 아니다. <1박2일>에서 그들이 까나리액젓을 먹고, <패떴>에서 뻘밭을 구르는 건 실제 일어난 일이다. 스턴트맨이 대신 굴러주거나 100% 꾸며진 픽션은 아니니까. 하지만 ‘쇼적인’ 리얼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미 그들 앞에 카메라가 돌아가는데 무인도에 혼자 떨어진 100% 리얼일 수 없잖아. 무인도에서 누군가 처참하고 지저분하기만 한 리얼 버라이어티를 찍는다면 재미있겠나.(웃음) 100% 진짜가 아니었다고 토라지는 건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같은 느낌이다.


전국을 돌며 촬영하는 ‘야생 로드 버라이어티’ 〈1박2일〉(한국방송). 한국방송 제공
대본과 실제 캐릭터가 붙어서 쇼적인 캐릭터를 어떻게 잘 꾸리느냐가 중요하다. <1박2일>은 강호동 덕에 중장년층에게도 인기가 많다. 지역 어르신들을 만날 때 엄청 자신을 낮추고 분위기를 잘 띄우더라고.

이미 드라마는 안드로메다의 사돈에 팔촌까지 가버렸잖아. 불치병에, 골수이식을 두 명의 엄마에게 해줘야 하는 드라마에 비해서 현실적인 이야기는 리얼리티 프로에 존재한다. 드라마는 픽션의 영역을 지향하고 있으니 소소하고 실질적인 재미는 리얼리티 쇼에서 기대하게 된 거지.

재밌는 시트콤을 본 지도 꽤 됐다. 요새 리얼 버라이어티는 시트콤에 가까운 재미를 준다. 근래의 막장 드라마들은 당분간 더욱 가상의 세계에 가까워질 것 같고.(한숨) 한류를 중심으로 한, 리얼리티와 거리를 둔 드라마가 많아질 거다. 그러다 보니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 소소하고 일상적인 공감의 지점을 찾게 된다.

드라마 보면서 우리는 만날 왜 잘 때 화장하고 자? 하면서 굉장히 분노했잖아.(웃음) 어찌 보면 아침마다 심하게 떡진 머리로 나타나는 부스스한 유재석이 더 쇼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는 더 곱게 일어날 수도 있다. 리얼리티라는 걸 강조하려고 일부러 험난한 걸 택하는 거다. 텐트 치고 자고 음식 하나 얻기 위해서 온갖 싸움하고 그야말로 쇼를 하잖아.

리얼리티 판박이(클리셰)도 있다. 특히 <1박2일>에서 아침이면 강호동 얼굴은 항상 부어 있더라. 그래도 고기잡이배도 타고 이승기 쓰러져서 촬영 못하고 중간에 다쳐서 병원 갔다 오는 것들은 대본에는 미처 없었던 실제 상황이 섞인 거다. 이런 것들이 리얼리티 쇼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박찬호가 나왔을 때 사인받고 사진을 찍고 싶어 했던 그들의 모습 좀 봐.(웃음)

박찬호 이승기의 냉수 입수는 연출이라도 반응은 리얼이지

박찬호와 함께 이승기가 물속에 들어간다! 여기까지는 연출일 수 있다. 그런데 물에 들어간 뒤 그들의 반응 같은 건 진짜인 거지. 실제 상황과 만들어진 것이 혼합되었을 때의 화학반응이 리얼리티 쇼의 매력이다.

여기에도 제작진의 계산과 예측이 작용한다. 인물 선정도 그렇지. <1박2일>의 김씨 같은 경우 개그맨도 아니고 엠시도 아니지만 점점 더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이수근도 운전만 하고 그렇게 구박받는 사람이었다가 농사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

게다가 베팅의 달인이잖아.

막 튀지 않아도 수더분한 사람을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지. 누구와 누구를 어떻게 조합을 하느냐도 중요하다.


〈패밀리가 떴다〉(에스비에스)에는 덤앤더머 맏형 유재석을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들이 맹활약한다. 에스비에스 제공
실질적으로 대성과 재석이 친한 형 동생처럼 지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러한 캐릭터들이 서로 상승효과를 내면서 운동을 한다는 게 중요하다. 유재석만 봐도 <무한도전>에서 그는 모든 인간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더라도 중심을 잡고 사회를 보는 반장이었다. <패떴>에서는 뭔가 나사 하나가 빠져 있지. 이효리와 김수로와 대성이 사이에서 되게 소심하고 무엇 하나 결정 잘 못하잖아. 깻잎을 따오라고 하면 몇 개를 딸까 고민하고 있더라. 대충 몇 개를 먹어? 한 사람이 열 개씩 먹는다 치고 한 80장쯤 딸까? 하는 이상한 고민.(웃음)

제작진은 한 인물이 가진 수많은 성질 중 어디에 돋보기를 들이밀고 균형을 맞춰갈 것인지를 찾아간다.

그래서 제작진과 대본이 필요하다. 리얼리티 쇼라는 게 정말 365일 ‘줄구장장’ 카메라 들이대고 있는 것만큼 재미없는 게 없다. 인간의 일상에도 나름의 드라마와 갈등이 필요하고, 새로운 캐릭터들이 문득 들어와 움직이곤 하니까.

<패떴>에서 누구보다 다시 본 사람은 이효리다. 어떻게 보면 막나가는 캐릭터인데 화장도 안 하고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도 ‘나 이효리잖아’란 말을 망설임 없이 한다. 자신만만한 모습이 무대 위의 이효리와는 다르게 보인다. 그래도 꽤 재밌는 사람이다 싶다.

유재석에게 ‘똥침’하는 것도 대본에 있었지만 잘하더라.

이유 없이 진상을 부리는 게 아니다. 리얼리티 쇼에서 그가 맡아 줘야 하는 캐릭터가 있다. 박예진이 약간 멍하면서도 힘세고 일 잘하는 캐릭터를 맡았다면, 이효리는 성격 있는 누나를 책임진다. 본인이 많이 활용하면서 이미지가 격상됐다. 악역으로 욕먹기도 하지만.(웃음)

그게 이효리의 실제 성격이든 아니든 그 캐릭터를 잘 연기했기에 하나의 성격을 잘 구축했지. 작년 초 <오프 더 레코드 효리>(엠넷)에선 24시간 따라다니면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이게 ‘리얼리다, 리얼이다’ 강조했지만 시청자들은 그런 효리를 원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진 효리를 보고 좋아한다.

박예진도 <패떴> 이전에는 그저 조신한 부잣집 아가씨 이미지였지. 예상치 못한 출연진을 투입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는 재미가 컸다.

그런 면에서 나는 방송 대본이 눈앞에 있어도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카메라 꺼졌을 때 윤종신이 훨씬 더 팔팔하고 카리스마 있는 남자라면 난 별로다. 사실 수완 좋은 뮤지션이고, 훨씬 더 재빠른 사람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패떴>에 나오는, 약간은 신체적으로 노쇠하고, 세상 사는 것 조금은 귀찮은 사람을 보는 게 재밌다. 이건 <패떴>뿐 아니라 윤종신이 티브이에서 움직이는 방식이다. 윤종신에게 부여된 생계형 캐릭터다. 굳이 대본을 확인해서 원래 그렇지 않은 윤종신이 ‘아픈 척 뒷방에 가서 쭈그려 앉는다’를 연기했다고 실망하진 않을 거다.

그치. 리얼리티에서 이거 연출일 거야 하고 보기 시작하면 몰입도가 떨어진다. 김빠지는 거지.

점점 더 섞이는 쇼와 시트콤, 드라마 장르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쇼가 실제 상황처럼 보이는 것을 ‘버추얼 지수’라고 말한다면, 어떤 프로그램은 대놓고 버추얼 지수를 포기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 결혼했어요>(문화방송)는 강인과 이윤지에게 너네는 대학생 커플이야, 너네는 돈이 없어! 라는 설정을 시청자들에게 대놓고 드러내잖아. 세련되진 않았지만 솔직하긴 하다.

점점 리얼리티 쇼, 시트콤, 드라마 갈래 서로 섞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이 쇼가 드라마 같아? 뭐야? 하면서 기존 장르를 고집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란 거 은근히 <매트릭스>처럼 철학적인 거다. <꽃보다 남자>(한국방송)에선 4명의 꽃미남들 뒤로 진짜 후광이 비치던데.(웃음) 그래도 우리가 생활에서 건져올린 리얼리티를 기대하는 건 지금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다 싶다. 어느 게 진짜이고 가짜인지 헷갈리는 이 마당에 그래도 재밌는 쇼를 기대한다.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 리얼리티 쇼 최대 희생양 | <우결>의 정형돈

“어디 가도 꽤 웃긴 정형돈이 <우결>에선 이상한 방식으로 재활용된다. 사오리의 권위적인 남편이었다가 서인영-크라운제이 커플에 노총각 아주버니처럼 끼어들더니, 이젠 소녀시대 태연과 커플로 나온단다!”(백은하)

“왜 소녀시대 태연과 나와서 나이 많은 삼촌뻘 이미지로 가는 걸까? 엠시였다가 갑자기 커플이 되곤 하는데 가상세계라지만 명확하게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 정형돈이 들어가고 빠지는 순간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것만 같다.”(최지은)

■ 리얼리티 쇼 최대 수혜자 | <패떴>의 이효리

“오빠 남동생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오누이의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초 방영된 <오프 더 레코드 효리>에선 일거수일투족을 다 드러냈는데도 큰 반향이 없었다. 서른 살을 <패떴>과 함께 잘 넘겼다.”(최지은)

“언제든 술 먹고 싶은 누나, 화장기 없는 귀여운 여동생, 여자가 봐도 재밌고 섹시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리얼리티 쇼가 한 사람의 스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점들을 보여줬다. 엄정화에게 바랐지만 조금 부족했던 걸 이효리가 채워주고 있는 느낌.”(백은하)


[한겨레 주요기사]
▶ [한겨레21] 청와대 지하벙커 워룸의 ‘작전명령’
▶ 예비 중·고생들 ‘교복 알바’에 내몰리다
▶ ‘패떴’, 대본 있어 실망? 왜 이래, 아마츄어같이
▶ 표현 모호한 그녀, 날 좋아하는지 확신 없어요
▶ 지천에 깔린 고기와 와인, 여기 천국이야?
▶ “성매매 수익뿐 아니라 업소건물까지 몰수”
▶ ‘법보다 밥’…일탈의 ‘유혹’받는 사법연수원생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티브이로 사우루스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