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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12 21:42 수정 : 2008.11.16 14:32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게 해주는 〈W〉에 감사함
대대적인 엠시 물갈이 실력과 성실의 진검승부를 기대

엘살바도르에 살고 있는 아홉살 어린이 마누엘을 위한 작은 후원회가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결성된 이유는? 지구촌 이슈를 다루는〈W〉(문화방송)를 통해 마누엘에 대한 소식이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처럼 팡! 터지는 프로그램은 아니어도 시청자들의 마음과 몸마저 움직이게 하는 프로그램을 향해, 대담자들은 눈을 반짝였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씨(사진 오른쪽)와 시나리오 작가 신광호씨가 〈W〉와 최근 잇달아 이름이 오르내리는 방송 엠시들의 기용과 퇴청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신광호 〈W〉는 세련된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이 시각 세계 뉴스’들은 몇 분 안에 끝나잖나. 심도 있게 세계 정세를 볼 수 있는 프로는 〈W〉가 독보적이다.

정석희 해외 뉴스는 미국, 일본, 유럽 중심이다.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는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악재일 때 주로 등장하지. 〈W〉는 지구촌 다양한 삶을 다큐 형식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깊이 있다. 그런 소재들을 찾아내는 제작진이 존경스럽다.

말로만 지구촌이 아니라 이제는 동반자구나


세계 정세뿐 아니라 정서를 볼 수 있게 ‘작정하고’ 만든 프로다. 가십거리, ‘어머나 이런 일이’류의 토막뉴스가 아니라 관점을 갖고 이야기한다. 세계를 보는 방법에 대한 거지.

<세계는 지금>과 같은 프로가 있긴 했지만 〈W〉는 확실히 깊이있게 들어가더라.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나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의 지구온난화 문제 같은 경우는 이슈를 다루는 제작진의 시각이 잘 보였다. 파푸아뉴기니가 지구온난화로 제일 먼저 물에 잠기게 된다는 사실도 이 프로에서 알게 됐다. 그때 내레이션이 “위기는 가장 약한 자에게 먼저 찾아온다”였다는. 진짜 뭉클하더라.


지구촌 곳곳의 이야기를 심도있게 보여주는 〈W〉(문화방송). 문화방송 제공
이제 우리나라도 제대로 밖에 대해서, 우리 시선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때인 것 같다. 신규 시청자들을 모셔 오기 어려운 점은 있겠지만 고정팬이 있다. 한번 보면 자꾸 되새김질하면서 생각난다.(웃음) 한국 안에서 아등바등했던 시선을 조금 넓게 가질 수 있는 거다.

예전에는 우리 허리띠 조르기에만 바빴다면 이제 남의 나라 시사를 고발할 정도가 되었단 거다. 지구촌! 지구촌 말만 하지 말고, 이 프로를 보면 비로소 동반자구나, 같이 가는 거구나 싶다. 〈W〉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자기 성찰 많이 한다.(웃음) 티브이가 소외된 자들을 다루면서 ‘불쌍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게 아니라는 점도 좋다. 각성하게 하고, 기부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서 귀한 프로그램이다. 지난주 역사상 최초의 미국 흑인 대통령 편을 봤다. 한국에 살면서는 못 느끼는데, 나도 인종적 소수자라는 걸 세계를 비추는 〈W〉를 통해서 모처럼 느꼈다.

오바마가 당선되고 환호하는 장면을 볼 때 거의 처음~미국이 부러웠다! 진짜 뭔가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이겠구나 싶은 거지. 영어만 잘한다고 국제인이 되는 게 아니잖나. ‘오륀지’는 안 중요하잖나. 세계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부분에서만은 절대강자인데 혹 시청률이 안 된다고 잘리지는 않을까 걱정된다.(웃음)

요새 경제 혹풍을 맞아 대폭적인 엠시 개편이 이뤄지고 있다. 박미선, 윤도현, 김구라, 강병규 등이 대폭 교체됐다. 일부에선 한국방송 경영진이 바뀐 후 일어난 정치적 의도라는 논란도 있지만 나는 프로그램의 질적 측면에서 보고 싶다.

김제동의 <연예가 중계> 엠시 하차가 빅 뉴스였다. 연예정보 프로는 뉴스와 버라이어티를 접목한 거라 역대 엠시들이 대부분 아나운서였다. 뉴스와 버라이어티를 접목하는 프로를 반드시 연예인이 진행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손범수는 <아침마당>에 적합한 엠시였다. 프리랜서여서 그만둔다고 하더라.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데 꼭 필요한 엠시들은 계속 해야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 효율 대신 스타 엠시를 기용하는 데만 집중했던 이전의 관습을 반성하는 기회는 됐다고 본다.

<무한도전> 이후 집단 엠시 체제가 확연히 늘었지. 불필요한 엠시도 많이 투입됐다. <우리 결혼했어요>엔 강수정·이혁재·박명수가 나와서 뭐 뚜렷하게 하는 일이 없잖나. 추임새를 넣는 정도? 오히려 엠시들 때문에 출연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듯 보인다. 박명수의 역할은 계속 지적받아 왔지만 변화가 없다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 엠시 뭥미?’ 이런 기분이 들기도 하는 거지.

 

‘우결’ 세 엠시 도대체 뭘 하는 거임?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재밌게 살려내는 <세바퀴>(문화방송)의 이휘재. 문화방송 제공
언젠가부터 엠시 기용의 효율성 기준이 애매해진 거다. 엠시들에게만 의존하면 아이템 등 아이디어 개발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거다.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서도 엠시들은 180도 달라지더라. 이휘재는 지금 <세바퀴>에서 잘한다. 한물간 예능 스타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새 길을 여는 기분이다.

각자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게 있다. <세바퀴>가 이휘재가 없으면 이만큼 재밌었을까. 말 그대로 제7의 전성기쯤 아닌지! 반면 신정환은 요새 부진이다. 한때 유재석과 환상의 복식조였는데. 신정환은 누가 받쳐줘야 확~ 산다. 신정환 개그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사람도 있다! <세바퀴>의 이휘재처럼 누굴 잘 받쳐 주는 사람을 못 봤다. 게스트인 임예진·이경실의 캐릭터를 다 만들어주고, 띄운다.

김구라도 어떤 곳에 가면 재미없는 사람, 묻히는 사람이 된다. 궁합이 맞는 프로가 있는 거지. 엠시들이 잘나간다 해서 겹치기 출연을 하면 보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괴롭다. 이제 ‘전공’을 살려서 각자 맡은 바 잘 놀아 주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이휘재가 <우결>에서 빠지고 <세바퀴>에 전념하겠다 한 건 잘한 일 같다. <우결>에선 없어도 될 분위기였잖나.

엠시 역량이 절대적인 프로가 아닌 이상 이번 엠시 교체는 새 변화를 몰고 올 거라 본다.

그래도 이금희는 <아침마당>에 계속 나오면 좋지 않을까. 누구는 출연자들 말 탁탁 끊지만, 그는 정말 열심히 들어주잖아.

여러 이유에서 한국방송 직원인 아나운서들이 이제 프로그램에 대거 기용됐다. 좀더 사회 잘 보려나?

윤도현의 하차, 어린 시절 <뽀뽀뽀> 빼앗긴 느낌

그런데 궁금한 건, 박명수는 왜 참고 봐야 하는 걸까.(웃음)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못 이끌어내잖나. 개그맨에서는 경지를 구축한 유머를 쏘지만 진행 능력은 아직 미흡한 게 사실이다. 개그 감각은 있지만 그것과는 다르니까. 엠시로서 자질이 있는지 평가가 먼저 아닐까.

제작진의 문제도 있다. 몸값이 비싼 스타들이어도 자기들끼리 나와서 놀고 가는 분위기를 쇄신하진 못했다. 이런 분위기가 방송 프로그램 제작 단가를 높이는 원인이 됐던 것 아닌가. 시청자들은 결과가 나쁘더라도 성실하다면 그걸 봐주는 관대함이 있다. 리얼 프로그램은 본의 아니게 그들의 성격이 다 보이는 거다. 인간관계가 어떤지도 다 보이는 거지. 진면목, 인간됨이랄까. 엠시에겐 성실함이 최고의 미덕인 거 같다.

성실한 엠시가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맡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외국에선 한 엠시가 프로를 맡으면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송해가 진행하는 <전국 노래자랑>이 있지. 시청자들도 방송국도 이 엠시에겐 뭔가 할애하겠단 각오를 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윤도현의 하차는 아까운 면이 있다. 배철수의 진행처럼 오래 정서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건데 말이다. 내가 어릴 때 봤던 프로그램을 나이 먹어서도 볼 수 있고 엠시하고도 같이 늙어 가면 참 좋을 것 같다.

골수팬들에게 윤도현의 하차란 어릴 때 보던 <뽀뽀뽀>가 하루아침에 없어진 느낌! 사실 엠시 역할은 게스트나 시청자와 관계를 맺는 게 기본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로 진행하거나 상대방을 힘으로 누르려 하면 금방 티가 난다. 누구는 한결같다, 누구는 변했다 말이 많지만 한 엠시가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건 흥미롭다. 이를테면 어느 날 갑자기 빛이 나던 유재석처럼 말이다.

■ 좋다, 그 엠시

정석희 <김정은의 초콜릿>(에스비에스)에서 김정은은 기대 이상이다! 단독 엠시로 이렇게 센스 있게 음악 프로를 진행해낼 줄은 몰랐다. 출연자·관객·시청자를 아우르는 진행 역량을 가진 그녀를 응원한다.

신광호 <아침마당>(한국방송)의 이금희는 언제나 상대방의 말을 몰입해 듣는다. “어우, 그러셨어요~ 진짜 그렇네요.” 말을 중간에 탁 끊는 엠시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 못할 과거가 내게 있다면, 다른 엠시가 아닌 이금희 앞에서 말하련다~!

■ 아쉽다, 그 엠시

신광호 최근엔 <비타민>(한국방송)의 강병규였다. 진짜 국민 정서가 뭔지 생각해봐야 했던 것 아닐까. 지금 하차가 결정됐지만 시청자들이 뭘 원할지 좀더 고려했어야지잉!

정석희 <브레인 서바이벌>(문화방송)의 김용만. 유독 그 프로에서는 참 재치 있었는데! 지금 그런 활약을 못 봐서 아쉽다. 프로그램 출연자 전반을 꿰뚫어 보는 통솔력이 대단했다. ‘용라인’보다 훨 재밌었지. 그에게 꼭 맞는 프로그램에서 새 활약을 기대한다!

현시원 기자 qq@hani.co.kr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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