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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그거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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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그사세〉의 노희경 사단 믿음직하다
송혜교와 주준영의 성장담을 기대함
재기발랄은 한데, 약간은 신경질적인 방송국 피디 주준영(송혜교). “아이, 각도가 안 맞잖아요!”라고 외치며 두 손가락을 세워 그림이 되는지 살핀다. 드라마 속에서 그가 열혈 준비 중인 드라마는 <슬픈 유혹>. 1999년 노희경 작가와 표민수 피디가 의기투합해 만든 바로 그 드라마다. 노희경과 표민수의 새로운 드라마는 방송국을 무대 삼아 적과 동지, 일과 사랑에 대해 말을 건넨다. <매거진 t>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그들이 사는 세상>(한국방송)에 대해 이야기했다.
백은하 새로 시작한 <그사세>는 한류스타 송혜교, 현빈과 작가 노희경의 조합으로 기대가 크다. 이들이 만나면 어떤 시너지가 날까?
최지은 <그사세>는 스토리 중심의 드라마가 아니다. 상황이나 대사 하나하나에 진심이 있더라. 이런 드라마를 오랜만에 본 거지. 근근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부딪히는 작은 순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잡아낸다.
이건 내가 일하면서 하는 짓이구나
백 방송국이 배경이다 보니 <온 에어>나 <스포트라이트>, <유리의 성> 같은 드라마들과 비교된다. 방송국이 배경인지, 아니면 ‘직업’을 주제로 한 드라마인지 하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을 거다. <그사세>는 방송국이 배경인 한 편의 ‘철학서’ 같다. 방송국을 보여주지만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건 특정 공간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거다.
최 사실 그다지 극적인 인물은 없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평범에 가깝다. 송혜교가 맡은 주준영 캐릭터는 촉망받는 젊은 여성 감독이다. 하지만 디테일에서 뭔가 다르다. 촉망받지만, 인간적으로는 아직 덜 성숙해 있고 일밖에 모른다. 아직 다른 사람 내면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그걸 보면서 ‘아 이건 내가 사회에서 하고 있는 짓이구나’ 싶었다.
백 노희경 작가의 인간에 대한 탐구는 사람들 간의 관계로 집약된다. 이번에도 매회 ‘적과 동지’, ‘권력’, ‘아킬레스건’ 같은 주제를 밀고 간다. 주제를 조그만 무대 안으로 확 밀어넣는 거다. 방송국이라는 장소가 크게 중요하진 않다.
최 노희경 드라마를 보면서, 그걸 보는 나 자신을 다시 본다. 드라마에 자극 받아 성찰하는 순간은 정말 자주 오지 않는데 말이다.
백 그래서 참 귀찮았던 것 같기도(웃음). 드라마 보면서 자꾸 나란 사람은 뭐지? 저 순간에 나라면? 저게 윤리야, 불륜이야? 하는 식의 질문을 하게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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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한국방송)은 방송국을 배경으로 관계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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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이번엔 조연 캐릭터들도 눈부시다. 김자옥이 대본 리딩을 하는 배우 중 하나로 등장하더라. 참 바쁠 텐데 ‘이걸 하러 와줬구나’ 싶었다. 표민수와 노희경을 믿는 배우들이 보인다.
백 노희경 사단이 움직이는 거다. 현빈 엄마로 나문희가 나오고. 배종옥, 김갑수, 김창완, 윤여정 등 탄탄한 배우가 등장한다. 보통 메인 배우의 스타성에 기대거나 사각구도로 가지 않나. <그사세>에선 조연이라고 할 수 없는 다양한 이들이 각각 제 인생을 살고 있다. 현빈과 송혜교의 사랑을 도와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런 관계에 깃든 섬세한 결이 기대된다. 각자의 삶을 공평하게 균형 있게 보여주는.
최 난 중견배우 윤여정과 조연출 최다니엘에 몰입해 있다!
백 ‘선생님’이라 불리는 나이 든 배우와 젊은 조연출과의 권력 관계를 보여줬지. 방송국을 둘러싼 헤게모니란 게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다. 평화롭고 즐거워 보이지만 여러 면이 있을 테니까. 무명배우가 유명해지면, 피디와의 구도가 확 바뀔 수 있는 거잖나. 송혜교와 현빈도 사랑했던 관계고 사랑할 관계지만, 직업에 대한 이들의 열정이 긴장감 있게 등장한다. 누군가는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고, 누군가는 고군분투한다. 노희경이 ‘도덕 시리즈’의 연작 장소로 방송국을 택한 게 아닐까 싶다.
최 트렌디한 드라마를 기대하고 본다면 아직 심심할 수 있다. 스타 현빈과 송혜교가 나오는데, 왜 이들은 일만 하고 팍팍하게 사는 거지? 의아할 수도. 조금은 심심하고 거친 면들이 있다. <그사세>의 장점은 인간 구조, 권력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썼단 사실에서 온다. 유기농에 가까운 드라마랄까.
백 궁금한 건 이들이 어떤 고민들을 만들어 낼까 하는 거다. 과거에 실패했던 사랑을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디테일. 장면마다 어떤 말을 내뱉을지 궁금하다.
최 진득하게 앉아서 볼만한 드라마다. 보다 보면 나라도 ‘저때 저랬을 거야’ 싶은 울림이 있다. 김여진이나 윤여정도 이해 가능한 감정들을 터뜨린다. 권위적이고 유별난 멘트만 치고 끝나는 게 아니지.
백 김여진의 작가 캐릭터는 추측하건데 확실한 모델이 있다. 아는 작가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느껴진다.(웃음) 사실 <그사세> 인물들은 다 ‘알고 본’ 사람들 같다. 완벽한 악인도 선인도 없는 실제 우리 현실처럼. 노 작가는 선입견에 뒤통수를 치는 장면을 꼭 만들더라. 김여진이 송혜교에게 “난 배우 누가 좋아!” 하고 전화를 탁 끊었을 때 이 작가는 이렇게 ‘곤조’를 부리는구나 했다. 하지만 “난 누구누구 좋다고 했지 캐스팅하자고 하진 않았다”며 오해를 곧 풀더라는.
최 이제껏 드라마에 등장하는 작가 캐릭터들이 좀 이상했던 거 아닐까.(웃음)
백 클리셰에 우리가 너무나도 잘 교육된 거였던 거다. 그걸 깬다는 측면에서 오! 신선한데, 싶었다. 난 준영의 성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아마 한순간 따뜻한 말투로 변신하는 식의 성장은 아닐 거다. 그 사람에게 가능한 성장을 디테일하게 잡아내는 작가가 어디 흔할까.
최 톱스타인 배우들이 이 작품을 통해서 얻는 게 있겠지만 잃는 것도 있을 거다. 시청률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열심히 연기하고 있단 점에서 배우들에게도 고맙기도 하다.
스타배우가 연애 말고 일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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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한국방송)은 방송국을 배경으로 관계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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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작가나 감독에게도 도전이다. <그사세>는 한 회마다 각 에피소드에 따른 결론을 낸다. 사실 노희경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직언’하는 걸 좋아했다. 내레이션 넣는 것처럼 조금 위험한(?) 짓을 이 정도 되는 작가가 할 수 있다는 걸 높이 산다.
최 이 작가라서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요새 드라마는 물량공세에 스타급 배우들 끌어오는 데 공을 들이잖나. 자기 입지를 구축한 작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해줘야 한다.
백 제작진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게, 작가가 빨리 안 쓰는데 우리가 어떻게 빨리 찍느냐는 거다. <그사세>에서도 쪽대본 고충 이야기가 나오던데,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깨고 있는 게 노희경 드라마다. <그사세>도 대본이 다 나온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다고. 후배 작가들에게 선배로서 귀감이 되는 부분들이 있다.
최 노희경, 표민수는 늘 함께하는 듯 인식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바보 같은 사랑>, <거짓말>, <고독>을 함께한 ‘소울 메이트’ 느낌은 분명 있지만. 서로 같이 있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장점들을 찾아 다시 <그사세>에 반영하는 것 같다.
백 노희경 표민수 드라마 이전과 이후 한국 드라마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 <거짓말> 이후 처음으로 드라마 마니아가 생길 정도였잖나. 노희경 이후 이경희, 인정옥 등 숨어 있는 작가들이 사색하는 드라마를 보여줬다. <그사세>는 두 사람의 다른 작업에 비해 호흡이 조금 빠르다. <그사세>의 시도가 성공인지 실패인지 아직 모르지만, 최소한 그들은 새 주사위를 던지고 있다.
〈그사세〉가 이 겨울 우리를 위로한다
최 <그사세>에선 방송국의 직업군들을 무지 다양하게 보여준다. 다리에서 뛰어내린 스턴트맨의 한순간처럼.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을 퍼즐처럼 꼼꼼하게 채운다.
백 한 명이라도 빠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작은 버팀목들이다. 가족 하나 불치병에 걸리고, 불륜에 명대사 날리면 시청률은 쉽게 오를 수도 있다. 다르고자 한다는 점에서 노희경 이 여자, 참 용감하다 싶다.
최 1, 2회에서 방송국 사람들이 입이 거칠다고 비판받던데. 문화부 장관도 욕을 하는 이 마당에 이 정도면 순결한 거 아닌가. <우리말 나들이>처럼 말하고 있음 얼마나 현실감 없을지!(웃음)
백 그런 방식으로 꼬투리 잡기 보단 드라마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어가서 보면 좋겠다.
최 너무 빨리 ‘마니아 드라마’라는 딱지는 붙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특한 존재감을 갖는 드라마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백 <그사세>는 계절적으로도 맞는 드라마다. 연말에 가까워지면 위로가 필요하니까.
최 한 살 더 먹는 우리에게 필요한 거다(웃음).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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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세〉를 향한 우리의 기대
“노희경은 드라마를 귀 기울여 ‘듣게’ 만든 작가다. <거짓말>의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거야’처럼 액자에 딱 걸어놓고 싶은 대사도 좋았지만 며칠 생각하다 보면 문득 ‘아 그 말이었구나’ 싶은 울림 있는 대사를 기대한다.(백은하)
“노희경의 드라마는 인간이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은, 약하고 이기적인 존재란 걸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보듬고 살아야 한다고 온몸으로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를 여전히 기대한다”(최지은)
■〈그사세〉를 향한 우리의 우려
“감각적인 화면 분할, 시도는 좋지만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데 있어 급작스러운 느낌이 있더라. 너무 ‘드라마틱’하지 않은 드라마, 이게 <그세사>의 매력이 될 순 없을까?” (최지은)
“1, 2회의 내레이션은 스토리 진행에 비하면 조금은 현학적으로 떠 있는 듯했다.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기쁨을 고스란히 하나하나 느낄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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