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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05 17:36 수정 : 2008.11.05 17:54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그사세〉의 노희경 사단 믿음직하다
송혜교와 주준영의 성장담을 기대함

재기발랄은 한데, 약간은 신경질적인 방송국 피디 주준영(송혜교). “아이, 각도가 안 맞잖아요!”라고 외치며 두 손가락을 세워 그림이 되는지 살핀다. 드라마 속에서 그가 열혈 준비 중인 드라마는 <슬픈 유혹>. 1999년 노희경 작가와 표민수 피디가 의기투합해 만든 바로 그 드라마다. 노희경과 표민수의 새로운 드라마는 방송국을 무대 삼아 적과 동지, 일과 사랑에 대해 말을 건넨다. <매거진 t>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그들이 사는 세상>(한국방송)에 대해 이야기했다.

백은하 새로 시작한 <그사세>는 한류스타 송혜교, 현빈과 작가 노희경의 조합으로 기대가 크다. 이들이 만나면 어떤 시너지가 날까?

최지은 <그사세>는 스토리 중심의 드라마가 아니다. 상황이나 대사 하나하나에 진심이 있더라. 이런 드라마를 오랜만에 본 거지. 근근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부딪히는 작은 순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잡아낸다.

이건 내가 일하면서 하는 짓이구나


방송국이 배경이다 보니 <온 에어>나 <스포트라이트>, <유리의 성> 같은 드라마들과 비교된다. 방송국이 배경인지, 아니면 ‘직업’을 주제로 한 드라마인지 하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을 거다. <그사세>는 방송국이 배경인 한 편의 ‘철학서’ 같다. 방송국을 보여주지만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건 특정 공간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거다.

사실 그다지 극적인 인물은 없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평범에 가깝다. 송혜교가 맡은 주준영 캐릭터는 촉망받는 젊은 여성 감독이다. 하지만 디테일에서 뭔가 다르다. 촉망받지만, 인간적으로는 아직 덜 성숙해 있고 일밖에 모른다. 아직 다른 사람 내면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그걸 보면서 ‘아 이건 내가 사회에서 하고 있는 짓이구나’ 싶었다.

노희경 작가의 인간에 대한 탐구는 사람들 간의 관계로 집약된다. 이번에도 매회 ‘적과 동지’, ‘권력’, ‘아킬레스건’ 같은 주제를 밀고 간다. 주제를 조그만 무대 안으로 확 밀어넣는 거다. 방송국이라는 장소가 크게 중요하진 않다.

노희경 드라마를 보면서, 그걸 보는 나 자신을 다시 본다. 드라마에 자극 받아 성찰하는 순간은 정말 자주 오지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참 귀찮았던 것 같기도(웃음). 드라마 보면서 자꾸 나란 사람은 뭐지? 저 순간에 나라면? 저게 윤리야, 불륜이야? 하는 식의 질문을 하게 되는 거다.


〈그들이 사는 세상〉(한국방송)은 방송국을 배경으로 관계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한국방송 제공
이번엔 조연 캐릭터들도 눈부시다. 김자옥이 대본 리딩을 하는 배우 중 하나로 등장하더라. 참 바쁠 텐데 ‘이걸 하러 와줬구나’ 싶었다. 표민수와 노희경을 믿는 배우들이 보인다.

노희경 사단이 움직이는 거다. 현빈 엄마로 나문희가 나오고. 배종옥, 김갑수, 김창완, 윤여정 등 탄탄한 배우가 등장한다. 보통 메인 배우의 스타성에 기대거나 사각구도로 가지 않나. <그사세>에선 조연이라고 할 수 없는 다양한 이들이 각각 제 인생을 살고 있다. 현빈과 송혜교의 사랑을 도와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런 관계에 깃든 섬세한 결이 기대된다. 각자의 삶을 공평하게 균형 있게 보여주는.

난 중견배우 윤여정과 조연출 최다니엘에 몰입해 있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나이 든 배우와 젊은 조연출과의 권력 관계를 보여줬지. 방송국을 둘러싼 헤게모니란 게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다. 평화롭고 즐거워 보이지만 여러 면이 있을 테니까. 무명배우가 유명해지면, 피디와의 구도가 확 바뀔 수 있는 거잖나. 송혜교와 현빈도 사랑했던 관계고 사랑할 관계지만, 직업에 대한 이들의 열정이 긴장감 있게 등장한다. 누군가는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고, 누군가는 고군분투한다. 노희경이 ‘도덕 시리즈’의 연작 장소로 방송국을 택한 게 아닐까 싶다.

트렌디한 드라마를 기대하고 본다면 아직 심심할 수 있다. 스타 현빈과 송혜교가 나오는데, 왜 이들은 일만 하고 팍팍하게 사는 거지? 의아할 수도. 조금은 심심하고 거친 면들이 있다. <그사세>의 장점은 인간 구조, 권력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썼단 사실에서 온다. 유기농에 가까운 드라마랄까.

궁금한 건 이들이 어떤 고민들을 만들어 낼까 하는 거다. 과거에 실패했던 사랑을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디테일. 장면마다 어떤 말을 내뱉을지 궁금하다.

진득하게 앉아서 볼만한 드라마다. 보다 보면 나라도 ‘저때 저랬을 거야’ 싶은 울림이 있다. 김여진이나 윤여정도 이해 가능한 감정들을 터뜨린다. 권위적이고 유별난 멘트만 치고 끝나는 게 아니지.

김여진의 작가 캐릭터는 추측하건데 확실한 모델이 있다. 아는 작가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느껴진다.(웃음) 사실 <그사세> 인물들은 다 ‘알고 본’ 사람들 같다. 완벽한 악인도 선인도 없는 실제 우리 현실처럼. 노 작가는 선입견에 뒤통수를 치는 장면을 꼭 만들더라. 김여진이 송혜교에게 “난 배우 누가 좋아!” 하고 전화를 탁 끊었을 때 이 작가는 이렇게 ‘곤조’를 부리는구나 했다. 하지만 “난 누구누구 좋다고 했지 캐스팅하자고 하진 않았다”며 오해를 곧 풀더라는.

이제껏 드라마에 등장하는 작가 캐릭터들이 좀 이상했던 거 아닐까.(웃음)

클리셰에 우리가 너무나도 잘 교육된 거였던 거다. 그걸 깬다는 측면에서 오! 신선한데, 싶었다. 난 준영의 성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아마 한순간 따뜻한 말투로 변신하는 식의 성장은 아닐 거다. 그 사람에게 가능한 성장을 디테일하게 잡아내는 작가가 어디 흔할까.

톱스타인 배우들이 이 작품을 통해서 얻는 게 있겠지만 잃는 것도 있을 거다. 시청률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열심히 연기하고 있단 점에서 배우들에게도 고맙기도 하다.

스타배우가 연애 말고 일을 하네


〈그들이 사는 세상〉(한국방송)은 방송국을 배경으로 관계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한국방송 제공
작가나 감독에게도 도전이다. <그사세>는 한 회마다 각 에피소드에 따른 결론을 낸다. 사실 노희경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직언’하는 걸 좋아했다. 내레이션 넣는 것처럼 조금 위험한(?) 짓을 이 정도 되는 작가가 할 수 있다는 걸 높이 산다.

이 작가라서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요새 드라마는 물량공세에 스타급 배우들 끌어오는 데 공을 들이잖나. 자기 입지를 구축한 작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해줘야 한다.

제작진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게, 작가가 빨리 안 쓰는데 우리가 어떻게 빨리 찍느냐는 거다. <그사세>에서도 쪽대본 고충 이야기가 나오던데,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깨고 있는 게 노희경 드라마다. <그사세>도 대본이 다 나온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다고. 후배 작가들에게 선배로서 귀감이 되는 부분들이 있다.

노희경, 표민수는 늘 함께하는 듯 인식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바보 같은 사랑>, <거짓말>, <고독>을 함께한 ‘소울 메이트’ 느낌은 분명 있지만. 서로 같이 있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장점들을 찾아 다시 <그사세>에 반영하는 것 같다.

노희경 표민수 드라마 이전과 이후 한국 드라마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 <거짓말> 이후 처음으로 드라마 마니아가 생길 정도였잖나. 노희경 이후 이경희, 인정옥 등 숨어 있는 작가들이 사색하는 드라마를 보여줬다. <그사세>는 두 사람의 다른 작업에 비해 호흡이 조금 빠르다. <그사세>의 시도가 성공인지 실패인지 아직 모르지만, 최소한 그들은 새 주사위를 던지고 있다.

〈그사세〉가 이 겨울 우리를 위로한다

<그사세>에선 방송국의 직업군들을 무지 다양하게 보여준다. 다리에서 뛰어내린 스턴트맨의 한순간처럼.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을 퍼즐처럼 꼼꼼하게 채운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작은 버팀목들이다. 가족 하나 불치병에 걸리고, 불륜에 명대사 날리면 시청률은 쉽게 오를 수도 있다. 다르고자 한다는 점에서 노희경 이 여자, 참 용감하다 싶다.

1, 2회에서 방송국 사람들이 입이 거칠다고 비판받던데. 문화부 장관도 욕을 하는 이 마당에 이 정도면 순결한 거 아닌가. <우리말 나들이>처럼 말하고 있음 얼마나 현실감 없을지!(웃음)

그런 방식으로 꼬투리 잡기 보단 드라마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어가서 보면 좋겠다.

너무 빨리 ‘마니아 드라마’라는 딱지는 붙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특한 존재감을 갖는 드라마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사세>는 계절적으로도 맞는 드라마다. 연말에 가까워지면 위로가 필요하니까.

한 살 더 먹는 우리에게 필요한 거다(웃음).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그사세〉를 향한 우리의 기대

“노희경은 드라마를 귀 기울여 ‘듣게’ 만든 작가다. <거짓말>의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거야’처럼 액자에 딱 걸어놓고 싶은 대사도 좋았지만 며칠 생각하다 보면 문득 ‘아 그 말이었구나’ 싶은 울림 있는 대사를 기대한다.(백은하)

“노희경의 드라마는 인간이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은, 약하고 이기적인 존재란 걸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보듬고 살아야 한다고 온몸으로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를 여전히 기대한다”(최지은)

■〈그사세〉를 향한 우리의 우려

“감각적인 화면 분할, 시도는 좋지만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데 있어 급작스러운 느낌이 있더라. 너무 ‘드라마틱’하지 않은 드라마, 이게 <그세사>의 매력이 될 순 없을까?” (최지은)

“1, 2회의 내레이션은 스토리 진행에 비하면 조금은 현학적으로 떠 있는 듯했다.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기쁨을 고스란히 하나하나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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