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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그거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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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서민들의 품위 지킨 〈엄뿔〉에 박수를
〈에덴〉에서 〈모래시계〉의 환영이 보여
김수현의 <엄마가 뿔났다>(한국방송)가 화제리에 막을 내렸다. 수십년 동안, 그것도 여러 번 안방을 쥐락펴락했던 이 작가는 이번에도 시청자 가슴 한복판에다 명중을 시켰다. 호평받던 가족드라마의 종방 속에 작가에 대한 경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가 하면 <에덴의 동쪽>(문화방송)을 보고 있으면 시대를 뛰어넘어 배달된 그들의 과장된 제스처와, 뜨거운 눈빛 때문에 닭살이 돋으려 한다. <매거진 t>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종영한 <엄뿔>과 요새 한껏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에덴>을 들여다봤다.
백은하 <엄뿔>은 뒤로 갈수록 실제 이웃, 우리 집 이야기라는 느낌을 주더라. 진짜 집중해서 봤다. 김수현이란 작가는 가려운 데를 긁어 주거나, ‘쎈’ 대사를 퍼붓는 데에만 능란한 건 아닌 것 같다. 놓치고 있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디테일한 방식으로 풀어낼 줄 안다. 정말 큰 저력이지.
최지은 <엄뿔>은 연장에도 불구하고 극 전개가 자연스러웠다. 많은 드라마들이 갈등이 완결되고 나면 억지스러워진다. 반면 <엄뿔>은 가족 안에서 있던 일이 자연스레 지속되니까 후반 힘이 안 빠지더라. 가족드라마라고 따뜻한 감성을 담으려거나 고부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면 ‘저 집 이상하다’ ‘남의 집 얘기네’라는 반응만 나온다. <며느리 전성시대>를 보면 ‘저런 집에 시집가면 안 되겠다’는 한숨만 나오는 것처럼.
백 아예 <조강지처 클럽>같이 설정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
발군의 캐릭터 고은아
최 <엄뿔>은 내가 누구의 입장을 취할 것이냐를 고민하게 했다. 마지막회를 보며 ‘내가 지금까지 딸로서 어땠나’. ‘왜 엄마가 저녁을 안 차려줄까 했던’ 걸 떠올리며 스스로 한심해했다. 진짜 넘 미안한 거지.
백 어느 순간부터 주말극은 젊은 사람들의 연애 중심으로 가고 있다. 어른들은 곁다리거나 이를 방해하는 간섭자로 존재한다. 그런데 <엄뿔>은 어른들이 캐릭터를 가지고 충분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런 과정에서 어른이 된다는 게 도대체 뭔지를 보여준 거다. 백일섭, 이순재, 김혜자란 배우가 평생 만들어온 연륜과 젊은 배우들의 연기가 맞아떨어졌다. 아무도 꾸짖지 않는 시대, 꾸짖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 시대에 누군가가 ‘요때 요렇게 갈 수 있다’고 한마디 건네주는 거. 백일섭이 툭툭 던지는 그런 말 한마디가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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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보기 드문 가족드라마의 경지를 구축한 <엄마가 뿔났다>.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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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내 주위 사람들도 애 딸린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모두 <엄뿔>에서 딸을 대하는 엄마의 입장을 취할 거다. 요새 이런 상황은 실제 누구든 마주칠 수 있는 상황 아닌가. 신은경도 너무 따뜻한 척하지 않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지 않아 좋았다. <엄뿔>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만나 노력하면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백 그렇다. 낯 뜨거울 정도로 다정하거나 냉정한 몰인정의 수준으로 가지 않은 거지. 도의와 절제를 통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 <내 남자의 여자>를 보고 김수현이 저런 극단으로 가는구나 했다가 <엄뿔>에선 <사랑이 뭐길래>나 <목욕탕집 남자들> 느낌으로 복귀하는 건가 했다. 그런데 2008년 현재 가족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냈다. 엄마의 위치가 변했고 아빠에겐 내조의 역할이 부과된 거다.
최 작품을 ‘아름답게’ 만들 순 있어도 그걸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건 또다른 분야의 재능이다. 그런 걸 커버하는 작가는 앞으로 정말 쉽게 나오기 힘들 것 같다.
백 <엄뿔>에서 발군의 캐릭터는 고은아였다. 악역일 수 있는 얄미운 캐릭터를 세상없이 귀엽게 만든 거다. 하나의 유행어로 밀어붙인다거나 캐릭터화하지 않아 좋았다.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고은아의 변화를 보여줬다. ‘저런 남편이 어딨어?’ 싶었던 김용건도, 사람이 누군가를 진짜로 이긴다는 게 뭔지 설득의 기술을 보여줬다. 김수현 드라마에서 서민과 부자로 대표되던 극단의 캐릭터들이 <엄뿔>에선 조금씩 섞인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부의 갈등을 놓치지 않았다.
<에덴의 동쪽> 인기 비결 도대체 뭘까
최 마지막회에서 백일섭이 ‘나는 내가 좋다’며 자신을 긍정하는 게 나오더라. 바로 여기서 김수현이야말로 부유하진 않지만 열심히 산 사람들에게 거의 마지막으로 위로를 해주는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김수현 드라마엔 서민 가정이라고 해서 불행하다거나, 상스럽다거나 한 적이 없다.
백 서민의 품위 같은 거랄까.
최 나는 남에게 잘못하고 살지 않았다. 그게 가치 있는 거라는 것을 탁탁 쳐주는 거지. 다른 드라마에서 가난은 벗어나야 하는 거다. 김수현은 가난하더라도 내가 잘못 살지 않았다는 것을 꾸준히 보여준다. 일종의 자부심 같은 거지. 가출한 김혜자가 1년을 채우고 사는 모습을 좀더 바랐다. 그런데 며느리가 몸이 안 좋아지고, 어찌하다 보니 꽤 길게 예정됐던 휴가가 급작스럽게 끝나서 아쉽긴 했다.
백 엄마가 밥 차려 주러 돌아오면 좋긴 하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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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과 신분상승을 둘러싼 갈등을 그리는 <에덴의 동쪽>.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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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좋긴 한데. 가출이라고 하면 극단적으로 들리지만 엄마의 휴가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 파급력 높은 드라마에서 이런 질문을 계속 했으면 싶다. 그런 의미에서 구태를 답습하는 드라마들은 정녕 바뀔 수 없는 걸까?
백 16부작, 24부작의 힘은 확실히 이야기의 갈등 구조가 어떻게 해결되는가에 있다. 최근 <베토벤 바이러스>, <바람의 화원> 등 신선한 드라마들이 많이 보이는데,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시청률이 높은 것은 <에덴의 동쪽>이다. <에덴의 동쪽>의 역주행은 어쩌면 좋을까?
최 <젊은이의 양지>와 <모래시계>로 급회귀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왜 이걸 보고 있나 생각하면 그때보다 현실이 그리 세련되어지지 않은 건가 싶다. 주인공의 패배의식과 성공에 대한 질주, 극단적인 출생의 비밀이 갈등을 조장한다. 조금 버거운 드라마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더라. 진짜로 주인공들이 원하는 게 뭘까? 객관화가 확~! 되니까 편하게 본다.
백 어디 대입시킬 구석이 없잖아? 방송 제작자들을 만났는데 <에덴의 동쪽>의 인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더라. 나도 참 답답하다 싶었는데. 특정 드라마가 이상한 퇴화 같은 걸 가져오는 것 같다. 이건 무려 스타급 배우들이 나오고 돈도 많이 들어간 대작 드라마인데 말이다. 그런 식의 세계관이나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최 대작 드라마야말로 세계관의 전환이 필요하다. 동시대를 다뤄도 해석을 달리하거나 다른 접근이 있어야 한다. 들인 돈을 뽑아야 하는 강박 때문인지 새로운 시도도 없고, 규모만 크다. 예전 <발리에서 생긴 일>은 무늬는 20대 멜로였지만 그 안엔 헤게모니에 대한 고찰이 있지 않았나.
백 반역적인 드라마였지.
잊을 만하면 되살아나는 출생의 비밀 망령
최 지금은 규모나 캐스팅엔 신경을 쓰지만 예전 이야기들을 답습한다. 대부분의 여자 캐릭터들이 상투적으로 소비된다.
백 <모래시계>의 고현정이 나타날 것만 같은 거다. 여기저기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다혜를 ‘혜린이’라고 부르는데, 극중 이름이 혜린이었던 고현정에게 ‘권력을 가지면 세상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던 <모래시계> 장면이 오버랩되더라. <에덴의 동쪽>의 악역 조민기가 말하는 권력과 성공이 이런 거 아닌가. 보고 있자니 음, 그래 어쩌면 이걸 이야기하고 싶은 건가 싶었다. 사실은 초보수적인 드라마인가 싶기도 하고.
최 심지어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아빠가 그 둘을 떼어 놓기 위해 아들을 딴 여자와 자게 만든다. 쇼킹한 설정이지 않나. 이런 걸 못 본 지 오래되니까 ‘헉 이럴 수 있나’ 충격이다.
백 과거의 우스운 법칙을 다시 재현하고 있다. 대작 드라마가 담고 있는 출생의 비밀과 극단적인 갈등 구도는 단순히 시청률이 높고 낮은 것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게 왜 그럴까에 대한 질문을 가슴에 품어야 할 때다.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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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져서’ 최고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김명민)의 지휘
“강마에 지휘의 스펙터클은 헬기 띄우는 고공 장면보다 짜릿했다니까. 흠뻑 빠질 수 있는 이런 장면, 돈 들여가며 찍을 가치가 있다” (백은하)
“클래식의 감동이 이런 것임을 알려준 2008 베스트 장면! 강마에뿐 아니라 이런 그림을 뽑아낸 제작진에게도 칭찬해주고 싶어.” (최지은)
■ ‘빈티 나도’ 최고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박혁권(정석용)이 딸에게 던진 넋두리
“남자에겐 ‘왜 회사 안 갔어?’ 하는 딸의 질문이 가장 근본적으로 다가오는 거다. 멋지게 사표 떡 하니 던지고 나온 게 아니라 여러 가지 트러블이 누적된 상황, 리얼해서 뭉클했다.” (최지은)
“진짜 비굴해지는 찰나의 표정을 포착한 느낌. 짧게 그러나 효과적으로 쳐낸 대사를 듣는데 감동이 밀려왔다. 그 와중에 소극적이고 존재감 없는 캐릭터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다니, 울 뻔했다!” (백은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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