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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그거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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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보면 볼수록 므훗한 ‘동생’들의 올림픽
금메달보다 윙크하는 여유가 부럽더라
박태환의 넓은 어깨와 긴 팔이 하늘을 향해 활짝 펴지는 순간, 반짝거리는 젊음의 생기에 눈이 부시더니, 이용대가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날리는 순간, 급작스런 현기증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인권탄압으로 얼룩진 중국의 행태를 보나 그 못지않게 심난한 한국의 정세를 보나 올림픽 따위 신경도 쓰고 싶지 않고, 누구 좋으라고 올림픽 관전에 열 올리나 싶었다. 그런데 그만, 눈부신 청춘들의 아름다운 미소가 등돌렸던 텔레비전을 마주 보게 하고야 말았다. 이전의 금메달 소식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었던 서러운 사연이었다면 베이징의 금메달 소식은 다만 신나고 흥겹고 즐겁다. 메달의 색은 바뀌지 않았지만 이 메달을 걸고 흔들고 입에 살짝 물어보는 선수들은 바뀐 것이다. 〈매거진 t〉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보면 볼수록 흐뭇해지는 ‘동생’들의 올림픽을 들여다봤다.
백은하 요즘 가장 큰 낙이었던 <크크섬의 비밀>이 올림픽 때문에 결방됐을 때만 해도 세상 어떻게 살까 싶었는데 젊은 ‘동생’들이 이렇게 큰 재미를 줄 줄 누가 알았겠나?(웃음) 올해는 특히 경기장 밖의 중국 분위기나 올림픽을 시기적으로 이용하는 안 좋은 뉴스들 때문에 영 볼 마음이 안 생겼는데 마음을 확 뺏긴 건 출전 선수들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에게도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최지은 개막식 때만 해도 이런 변화를 감지하지는 못했다. 호주같이 대규모 출전국 선수들은 사진도 찍고 분방하게 즐기면서 나오고, 아프리카처럼 소규모 선수단은 전통의상 입고 춤추며 나오는데 잠깐 비춘 우리 선수단은 88올림픽 때만큼이나 딱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까 달라진 기운 같은 게 느껴지더라.
피땀은 안 흘렸다고 말하는 박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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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에서 빛을 발한 싱그러운 젊음들. 배드민턴의 이용대.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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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아테네 올릭픽 때만 해도 출전 선수들에게 비장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부담감이 보였다. 그런데 스포츠도 오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영웅이라기보다 스타가 필요한 영역이다. 그래야 여성이나 스포츠 마니아가 아닌 사람들도 끌어올 수 있는데, 그런 스타성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 박태환이었다. 박태환이 89년생인데 굳이 경계를 가르자면 88 올림픽 이후 태어난 선수들은 라면 먹고 악으로 깡으로 달리던 시절의 운동선수가 아닌 것이다.
최 기자회견 보면 스포츠에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는데 언론은 그대로라는 생각이 든다. 피땀 흘린 연습 어쩌구 그런 질문 하니까 박태환이 웃으며 농담처럼 피땀을 흘려본 적은 없다는 대답을 한다거나 하는. 그리고 펠프스와 200미터 경기한 뒤에도 박태환은 펠프스와 나란히 경쟁했다는 것을 기뻐하며 마치 평소 좋아하던 아이돌을 실제로 만난 아이처럼 스스럼없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백 이들에게 메달은 이전 세대의 한풀이나 거창한 의미 부여가 아니라 본인의 기쁨이고 운동 역시 자신을 위한 운동이 된 거다. 고생했다는 동정심이나 격려만으로는 스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친근하면서도 어떤 경외심이 생겨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며 비로소 스포츠 영역에도 스타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른바 비인기 종목 스포츠가 관심을 일으키는 데도 스타만한 파워가 없지 않나. 배드민턴의 이용대를 봐라. 하룻밤 사이에 난리가 나서 다들 배드민턴 치겠다고 하더라.(웃음) 윙크 장면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나도 오늘 하루종일 계속 봤다. 옛날 같으면 승리하고 난 다음에 아버지, 대한민국 외치면서 감동의 배경음악이 깔렸을텐데, 어떻게 카메라 앞에 가서 윙크 날릴 생각을 했을까? 정말 얘네들은 즐기는구나 싶고, 금메달이 아니라 그 여유가 진짜 부럽더라.
최 코치는 또 왜 그렇게 잘생겼대?
백 이동수 코치, 74년생. 이미 다 조사했다.(웃음) 기자회견 때보니까 이효정이 조인성 좋아한다고 하고, 이용대는 김하늘 좋아한다고 하고, 이런 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국민이 준 세금으로 나가서 할 이야기냐 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 그 나이니까 보여줄 수 있는 건강함이고 에너지 아니겠나. 그런 건강함이야말로 대국민 서비스가 아니고 무엇이겠냐 말이지. (웃음)
만약 양궁 선수들이 귀화를 한다면?
최 내가 80년생인데도 정말 세대차이가 느껴진다. 최민호 선수가 나랑 동갑인데 경기 다 끝나고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먹는 모습 보면서 공감이 됐다. 우리만 해도 뭔가를 이루기 위해 많이 참고 또 힘든 일을 한 나를 위해서 상을 주고 이런 게 익숙한데, 불과 10년도 차이가 안 나는 아이들이 우리와 다른 거다.
백 빅뱅 이야기 몇 번 했지만 빅뱅이 아이돌 계보를 새로 그린 것도 시키는 대로 훈련받은 아이돌이 아니라서 그렇다. 스스로 자신이 잘하는 걸 알고 그걸 즐기는 모습이 이전의 아이돌 스타들과 가장 다른 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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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의 최민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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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애들은 그렇게 바뀌고 있는데 기성세대나 제도권이 그대로인 게 문제다. 사실 박태환이나 김연아가 가장 먼저 신세대 스타로 부각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에서 불모지와 같았던 종목에서 뛰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협회나 단체에서 만날 잡음 생기고, 선수 놓고 권력 싸움 하고 이런 판이었다면 그들이 순수하게 스포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겠나.
백 메달을 따도 회장님 찾고, 지역민 찾고 이러느라 신선함이 반감됐겠지. 한국에서는 스포츠가 개인의 스포츠였던 적이 없다. 지역의 것이거나, 나라의 것이거나 그랬지. 외국은 연예인 에이전시보다 스포츠 에이전시의 역사도 길고 더 규모도 큰데, 한국에서 영광은 내가 아니라 지역이나 나라, 협회에 돌려져야만 했다.
최 맞다. 스포츠 스타가 할 일이 국위선양이 아니지 않나. 이들은 스포츠를 잘하는 유명인일 뿐인데 말이다. 이번에 동메달 딴 당예서 선수도 있지만. 그래서 스포츠 선수들의 귀화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양궁이나 뛰어난 종목들의 선수들에게 외국에서 귀화 제안이 있었다던데, 개인의 선택에 대해서 나라의 잣대를 들이대 욕할 게 아니다.
백 아까 잠깐 말했지만 스포츠 선수를 국민 영웅이 아니라 스타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스타가 탄생해야 그 종목에 대한 관심도 지원도 늘어나고, 그래야 좀더 과학적인 훈련도 받아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박태환이나 김연아가 시에프나 화보를 찍는 것도 그런 홍보의 일환이다. 이걸 외도라는 둥, 연예인으로 변질했나라고 말하는 건 낡은 생각이다.
최 궁극적으로는 이런 인기가 생활의 영역으로 확산되는 거 아니겠나. 엄마가 어릴 때 탁구를 해서 탁구 경기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경기를 보는데, 보기 좋았다. 탁구고 배드민턴이고 핸드볼이고, 선수들이 국위선양에 대한 부담을 떨치고 본인이 즐기는 스포츠를 하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건 보는 우리들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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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의 박태환. 사진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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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 끄고 나면 한숨만 나오는 현실
백 근데 역시 티브이를 끄면 마음이 무겁다. 공부고 운동이고 노래고 이제 재능 있는 애들이 자기의 실력을 일찍 알아보고 그걸 개발하면서 즐기는 환경은 된 것 같은데, 그런 아이들은 그야말로 상위 0.001% 아니겠나. 공부 못하고, 못생기고, 운동 못하는 그런 친구들의 허탈감은 오히려 우리 때보다 더 클 거다. 우리 때는 튀는 것도 겁났지만 다들 고만고만하게 머리 쥐어뜯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자랐는데 말이다.
최 맞다. 요즘 아이들이 부러우면서도 그 세대에 섞이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얘네들보다는 입시 경쟁이 덜했을 때 대학에 들어갔으니까. 올림픽에 나간 애들은 선택받은 소수의 아이들이고 앉아서 보는 아이들은 우리 때보다 더 지옥 같은 사회로 나갈 텐데, 그 갭이 어떻게 메워질 수 있을까. 환호성 지르고 즐겁게 봤지만 역시 티브이 끄고 나면 한숨만 나오는 요즘이다.(웃음)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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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올림픽 환상의 순간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금메달 딴 이용대의 윙크 뒤풀이
“엄마한테는 무슨 엄마한테! 이 녀석 잘 빠져 나가는데 싶으면서 진짜 그 윙크를 선물받았을 누군가~정말 부럽고, 스캔들이 나도 너무 예쁠 것만 같다.”(백은하)
“스포츠 스타에게 이제 무리한 겸손 강요는 그만. 자기 잘난 거 알고, 자기 멋진 거 즐기고, 쇼맨십으로 관중들을 한번 더 열광시키는 신인류 스타들에게 박수를!”(최지은)
■ 베이징 올림픽 진상의 순간
메달리스트들과 연예인들을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마케팅과 기사들
“평소 그 종목에도 관심없고 그 선수가 누군지도 몰랐던 게 뻔히 보이는데 어따 대고 오랜 팬임을 강조하시나요? 뜨고 싶으면 선수들에게 빌붙지 말고 직접 주목받으시길.” (백은하)
“박정희가 있어서 박태환이 탄생했다구요? 박태환 좋아하냐고 물은 다음에 그렇다는 대답 듣고, ‘누구누구 박태환 열혈 팬’ 요따우 제목도 이제 그만!”(최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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