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너 어제 그거 봤어?
두 엄마의 시선으로 본 〈환상의 짝꿍〉
〈봉숭아학당〉은 출연진들 성장이 흐뭇
한때 잠시 사극의 아역배우가 성인배우보다 각광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텔레비전은 주 시청층 가운데 하나인 어린이들에게 인색하다. 티브이에서 어린이들을 볼 기회가 드문 건 아니지만 그들은 언제나 ‘진짜‘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딸이나 아들일 뿐,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가운데 문화방송의 <환상의 짝꿍>은 요즘 꼬마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십대의 아들딸을 둔 칼럼니스트 정석희(사진 왼쪽)씨와 올해 다섯 살 된 아이를 키우는 <스카이 라이프> 이미경 편집장이, 세대가 다른 엄마의 시선으로 <환상의 짝꿍>을 눈여겨봤다. 또 최근 부활한 봉숭아 학당과 반가운 재회의 악수를 했다.
정석희 일요일 아침마다 <환상의 짝꿍>을 열심히 챙겨 본다. 우리 애들뿐 아니라 주변 조카들까지 다 크니까 정말 요새는 아이들이 어떤지 도통 모르겠는데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란다. 애들이 다들 똑똑하고 창의력도 대단하다. 우리 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내가 아이들 키울 때랑 또 세대가 완전히 변한 걸 느낀다.
이미경 나처럼 한참 부산 떠는 애 키우는 엄마들은 또한 찾아보기 힘든 시간대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웃음) 그런데 프로그램 오디션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라고 하더라. 그러다 보니 평범한 애들보다 튀고 똑똑한 애들이 나와서 그렇지 않을까?
어른들 못하는 직설적 말투가 통쾌하다
정 그런 부분도 없지 않겠고 물론 인사말 같은 건 대본이겠지만, 순간순간 아이들이 거침없이 자신을 표현하거나 받아치는 게 연예인보다 낫다. 그런 걸 되바라졌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굉장히 희망적으로 보이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까지 든다.(웃음)
이 어른 시청자 편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는 어른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을 아이들의 직설적 말투로 들을 때의 통쾌함 같은 거다. 예를 들어 아이의 느닷없는 말에서 저 집은 부부싸움을 많이 한다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나거나, 김제동이 싫다거나 하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입 있어도 차마 못 하는 말을 애들이 해주는 데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지. 그런 점에서 <스타 골든벨>에 고정 출연하는 김구라씨 아들 동현군을 비교하면 <환상의 짝꿍> 아이들보다 확실히 신선함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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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린이들의 당당하고 밝은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환상의 짝꿍〉.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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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처음에는 <환상의 짝꿍>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고정으로 나오면서 어른들이 뭘 원하는지 애가 알아버린 거지. 아이들은 진짜 눈치가 빠르잖아. 그래서 구미에 맞추는 식이 되니까 굳이 아이여야 할 이유도 없어지고.
이 맞다. 보다 보면 얘가 아이인가?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환상의 짝꿍>의 특징은 어른이 아이의 서포터 노릇을 하는 건데, 그런 점에서 진행자인 박신애의 역할이 좀 모호하지 않나? 표정은 뚱하고 아이들하고 잘 섞인다는 느낌도 별로 안 든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 그럴까?
정 그런 점도 있을 수 있지만 김제동 역시 장가도 안 갔는데 아이들의 부정확한 말을 다 알아듣는 게 신기하다. 시청자가 도통 알아들을 수 없게 애가 말을 해도 그걸 다 해석해주고 애와 눈높이를 정확하게 맞춘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힘든 일인데 김제동이야말로 아이들하고 ‘환상의 짝꿍’을 이루는 것 같다.
이 <환상의 짝꿍>의 전신에 해당하는 <전파견문록>도 있었고 <축구왕 슛돌이>는 30대 여성 팬층까지 형성한 초창기 버라이어티쇼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의 세계를 비추지만 또 바꿔 생각하면 아이보다 어른 시청자를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미디어가 아이를 소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정 <환상의 짝꿍>이 애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아닌가? 난 몰랐다. 애들이 뭘 좋아하는지 지금은 전혀 모르니까. 아이들을 어른 중심으로 소비하는 건 드라마 쪽이 훨씬 더 심한 것 같다. 드라마 속에서는 아이가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게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을 보여줄 때다. 이런 마지막 장면만 보면 너무 상투적이라 웃음이 나온다.
김수현 작가의 ‘아이 다루는 솜씨’
이 아이가 중심으로 올 때는 주로 불치병인 경우가 많지.(웃음) <고맙습니다>도 그랬고, <싱글파파는 열애중>도 그랬고, 비중 좀 있다 싶으면 너무 불행해지거나 아프고, 다치고.
정 그나마 드라마에서 아이를 진짜 집 안의 아이처럼 다루는 게 김수현 작가다. 디테일에 강해서 그런지 <엄마가 뿔났다>를 봐도 할아버지든지, 고모든지 누군가는 애를 꼭 보고 있다. 반면 <온에어>에서 송윤아의 아이를 보면 궁금해진다. 엄마는 늘 작업실 가 있고 도우미 아줌마랑 같이 사는 거 같던데 아줌마 퇴근하면 어린애가 혼자 집에서 자는 건지. 난 아이만 나오면 이렇게 드라마 맥락상 중요하지도 않은 게 딱딱 걸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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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캐릭터들과 함께 돌아온 〈개그 콘서트〉의 ‘봉숭아 학당’.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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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쩌다 엄마가 와서 “미안해 아들!” 그러면 엄마 다독이고, 시청률 걱정해주고, 혼자 있을 때는 엄마 대본 보고, 이렇게 희생할 수는 없다 정도인 거다.(웃음) 어른을 위한 프로그램이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아이의 인생을 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근 <개그콘서트>에서 ‘봉숭아 학당’이 부활했는데 어떻게 보셨나?
정 난 시트콤은 좋아하는데 공개 코미디쇼는 이상하게 코드가 안 맞는 것 같다. ‘마빡이’ 같은 것도 적응해 보려고 여러 번 봤는데 어느 지점에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고, ‘달인’이나 ‘닥터피쉬’도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공개 코미디에 둔한 나도 괜찮게 봤으니 좋은 출발인 것 같다. 특히 옛날 봉숭아 학당에서 알프레도를 하던 김인석이 세월이 흘러 선생님이 된 걸 보니까 웬지 감회도 새로웠다.
이 그런데 아직은 대박이 날 것 같은 캐릭터는 잘 안 보인다. 옛날 같으면 영구나 맹구, 아니면 옥동자처럼 난생 처음 보면서 아주 강한 캐릭터들이 꼭 하나씩 있었는데 이번에 다들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다. 전형적인 틀을 만들고 캐릭터들을 하나씩 배치했다는 느낌이랄까?
정 봉숭아 학당은 자기들끼리 왁자지껄하면서 돌발 상황도 벌어지고 애드립도 치고, 그런 재미가 쏠쏠한데 지금은 모든 게 짜여진 느낌이다. 아무래도 김준호 빼놓고 모두 신인급이니까, 신인은 실수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시절 아닌가.(웃음) 시간이 지나면서 풀릴 긴장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그중 성공한 캐릭터는 왕비호(윤형빈)겠지? ‘비호감’으로 뜨는 요즘 트렌드를 잘 포착하기도 했고. 수위조절도 잘하고 있고.
이 사실 난 좀더 달려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도 있는데 게시판 들어가니까 안티 댓글이 장난이 아니더라. 동방신기가 나오면 80만 팬이 움직인다더니,(웃음) 확실히 그냥 나처럼 재미로 보는 시청자랑은 다른 거다. 왕비호가 말한 것 중에 “나한테 욕한 애들 다 초딩이지?”라는 말이 제일 웃겼다. 실제 게시판 들어가면 초딩 같은 댓글이 많은데 방영시간대를 밤 10시로 옮겨서 시청률에 적잖이 영향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안티의 회오리를 불러올 아이돌 그룹은 이제 곧 바닥날 텐데 다음엔 누굴 건드릴지 궁금하다.
양상국과 성현주의 팬심 대결 ‘대박’
정 나는 ‘닥터피쉬’의 양상국이 똑같은 캐릭터를 여기서 연기하는 게 재밌더라.
이 일종의 스핀오프인 셈인데 양상국과 성현주의 팬심 대결이 완전 대박이었다.(웃음)
정 그런데 책상에 앉아 있는 학생들 숫자에 비해 나와서 개그하는 숫자는 적던데 편집도 되는 건가?
이 당연하지. 통편집되는 것에 대해 개그맨들이 비관하는 농담도 종종 하지 않나.
정 공개 코미디쇼를 보면 버라이어티쇼에 나오는 사람들은 날로 먹는 것 같다. 일주일 내내 매달려 5분도 안 되는 작품 하나 완성하는 것 아닌가. 이런 노력을 생각하면 보는 사람도 열심히 봐주고 싶다. 특히 봉숭아 학당은 김인석의 경우처럼 출연진들의 성장과정을 보는 느낌도 있어서 좋다. 앞으로 오랫동안 이어졌으면 좋겠다.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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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숭아 학당’ 최고의 캐릭터 ‘빠돌이’ 양상국
“봉숭아 ‘학당’에 가장 걸맞은 10대 광팬 캐릭터. ‘닥터피쉬’보다 여기서 더 물 만났네.”(정석희)
“상국이 ‘오빠’만 나오면 학교 분위기, 완전 쇄신, 오퐈, 앞으로도 경쟁 ‘빠순이’와 열심히 싸워주세효~!”(이미경)
■ ‘봉숭아 학당’ 최악의 캐릭터 여성학자 박지선
“여자들도 택시 타게 해 달라는 농담은 80년대에도 안 먹힐 유머. 풍자건 조롱이건, 좀더 날렵하고 구체적으로 해주길.”(이미경)
“말투나 연기는 재미있는데 아이디어 자체가 너무 설익었다. 박지선의 진짜 역량을 담아 무르익은 웃음을 던져주세요.”(정석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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