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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19 18:02 수정 : 2008.05.10 23:57

90년대 트렌디 드라마에서 스타가 돼 최근 30대 연기자로 연륜과 실력을 보여주는 최진실과 송윤아. 왼쪽 사진은 출세작 〈미스터 큐〉(위)에서의 송윤아와 〈질투〉에서의 최진실(아래). 에비스에스제공(위). 문화방송제공(아래).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10년 세월 건넌 트렌디 드라마 1세대들
끼인 나이에도 어떻게 빛을 발하는 걸까

요즘 문화방송의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출연하는 최진실과 에스비에스 <온에어>에서 연기하는 송윤아는 트렌디 드라마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 최진실이 92년 최수종과 출연했던 <질투>는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효시로 꼽혔고, 송윤아는 98년 방영한 <미스터 큐>에서 지적이고 세련된 트렌디 드라마 악녀의 원형을 만들어냈다. 깜찍하고 도도했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 두 드라마에서 그녀들은 주책없고 뻔뻔하고 거칠 것 없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밉지 않다. 10년의 세월을 건너와 나이만큼 쌓인 노련함으로 드라마에서 빛을 발하는 두 배우에 대해 <매거진 t>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이야기를 나눴다.

백은하 드라마가 사극에서 다시 현대극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는데 시청자 연령층이 많이 낮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온에어>도 10대들이 좋아할 내용은 아니고,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하 마지막 스캔들)은 트렌디 드라마이면서도 젊은층보다는 오히려 트렌디 드라마 1세대인 30∼40대 시청자를 겨냥한 기획력의 산물이다. 특히 <마지막 스캔들>은 최진실을 내세운 것 자체가 매우 상징적이다. 한때 가장 젊은 트렌디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가 아줌마로 분투하는 배우 최진실의 모습이 캐릭터와 겹치면서 드라마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예측하게 된다.

최지은 이야기는 중년 버전의 <풀하우스>라고 할 만하다. 평범한 여자가 톱스타의 집에서 동거하며 벌어지는 설정도 그렇고, 정준호와 최진실이 티격태격하는 것도 비와 송혜교의 모습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이 마흔이 다 됐고, 애 딸렸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작가의 장점이 드러나는 것 같다. 문희정 작가는 <발칙한 여자들>을 썼을 때도 아줌마스러움의 엽기발랄한 모습을 잘 그렸다. 또 아저씨들은 한국 드라마를 말할 때 아줌마들이 신데렐라 판타지나 꿈꾼다고 핀잔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라고 반문하는 듯한 적나라함이 있다.

<질투>의 추억, 그녀는 요정이었지


이 드라마는 아예 대놓고 신데렐라로 시작한다. 왕관 쓰고, 드레스 입고, 12시 전에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로. <온에어>에 대사로 나오지만 재벌과 신데렐라가 나오는 상투적인 드라마는 또 재벌에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상투적 비판과 쌍을 이루지 않나. 그런 걸 노골적으로 까놓고 시작하는 거지. 젠체하면서 시청자와 신경전을 벌이는 게 아니라.

내숭이 없는 드라마다. 대단한 내용을 담지 않았다는 걸 숨기지 않고, 시청자는 자기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재밌게 보면서 팍팍한 삶에 도피처를 제공받는다고 해야 할까.

서른아홉 살의 여자가 겪었을 법한 것들을 두루 겪은 홍선희 캐릭터와 최진실은 맞물린다. 홍선희도 어릴 때는 송재빈(정준호)보다 잘나가는 예쁜 여자 아니었나. 90년대 초반 최진실을 생각하면 진짜 국민 요정이었지. <온에어>에서 오승아(김하늘) 같은. 일본 드라마를 베꼈다는 비판은 있었지만 <질투>가 나오면서 드라마의 연령이 팍 줄었다. 된장국 먹는 애들이 아니라 편의점에서 슬러시 마시고, 피자 가게에서 일하는 신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직업군이 대폭 드라마에 등장하게 된 거다. 그 중심에 최진실이 있었고.

최진실은 밝고 귀여운 캔디 캐릭터의 원형이었다. 건강하고 구김살 없고, 또 최수제비니 하는 별명과 함께 힘들게 살아온 캔디 같은 이미지도 그렇고. 김정은, 김지호, 채림 같은 트렌디 드라마 주인공들이 다 최진실의 피를 이어 받았다.

<온에어>로 컴백한 왕년의 악녀 송윤아

그러다가 인기 야구선수와 뻑적지근하게 결혼하고, 또 애들 놓고 지리멸렬하게 싸우다가 뻑적지근하게 헤어지고, 이런 굴곡을 겪고 나서 <장밋빛 인생>의 죽어 가는 아줌마 역을 했다. 그리고 지금 ‘이제 내 인생 마지막 스캔들이야’라고 외치며 다시 트렌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재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우리가 겪은 드라마사와 여인사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거지. 또 변진섭이 이 드라마의 주제곡을 불렀는데, 두 사람이 최고 전성기 때 스캔들이 터지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한 사람은 주인공을 연기하고 한 사람을 주제가를 부르는 거다. 한 시대가 그렇게 가는 거지.(웃음)

주제가 좋던데. 최진실은 톱스타 여배우 가운데 생활력을 보여주는 몇안 되는 배우다. 땅에서 몇 미터 붕 뜬 상태로 ‘저는 연기를 좋아서 해요’이렇게 내려다보며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 남편 때문에, 애들 때문에 열심히 뛰어다니는 여자처럼 일한다.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망가지는 걸 주저하지 않고. 이런 게 드라마 캐릭터와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최진실은 처음부터 예쁘게 웃기만 하는 청순가련형 배우는 아니었다. 시에프에서도 채시라 같은 배우가 아름답게 나왔다면 최진실은 코믹하고 재밌는 방식으로 히트를 쳤고. 뭐랄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자리에서 팔딱거리는 생기와 꾸밈없음으로 톱스타에 올랐다. 억척스럽지만 우악스럽지는 않은 게 대중적 설득력을 가진 거지. 그게 지금까지도 그녀를 톱스타이게 하는 거고. 근데 재미있는 게 최진실이 터뜨린 최초의 유행어인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가 나왔던 브이시아르(VCR) 광고에서 그 제품 이름이 톱스타였다.

보통 여배우들이 나이 들면 사모님 같은 이미지를 갖기 원하는데 최진실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아서 다른 여배우들보다 폭이 넓어졌다. 그래서 그 나이에도 로맨스의 주인공이 가능한 거고. 앞으로도 조연 자리로 밀려나지 않고 생계형 스타의 자리를 꾸준히 유지할 것 같다.

한국의 트렌디 드라마를 구분해 본다면 문화방송의 <질투>나 <사랑을 그대 품안에> <별은 내 가슴에> 같은 계보가 있고, <토마토> 같은 김희선류의 에스비에스 트렌디 드라마가 있었다. 그 서막을 연 게 <미스터 큐>인데, 사실 김희선 트렌디 드라마의 가장 큰 수혜자는 김희선이 아니라 송윤아였다. <미스터 큐>의 송윤아에서부터 세련되고 도시적인 악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 단발머리, 빨간 립스틱, 쏘아붙이는 말투, 오피스 레이디의 정석을 담은 옷차림 등 송윤아가 보여줬던 것들이 아이콘이 됐다. 그 이후로 송윤아는 오히려 착한 여자, 순하고 털털한 장녀 같은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는데 <온에어>에서 옛날 그 언니가 다시 돌아왔다.

사실 여기서는 악녀라기보다는 진상에 가까운 ….(웃음) 처음에는 <미스터 큐>의 90년대 스타일을 다시 가져온 듯한 느낌이 어색했다. 3, 4회로 오면서는 그 어색함이 사라졌지만.

착한 송윤아에 대한 기대가 그런 어색함을 만들었다. 그런데 송윤아를 지우면 제법 개연성 있는 캐릭터로 다가온다. 최진실과 반대인 게, 최진실은 캐릭터와 배우가 겹쳐지면서 상승효과를 내는데, 송윤아는 배우가 지워지면서 캐릭터가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그녀들의 두려움이 사라진 거야


너 어제 그거 봤어?
최진실이나 송윤아나 망가진다기보다는 이 순간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없어진 것 같다. 송윤아의 표정 연기를 보면 몸을 던져서 하는 게 보여서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

두 배우 모두 어떻게 보면 끼인 나이라 젊은 드라마를 찍기도 힘들고 김혜자처럼 다독거리는 인물을 연기하기도 힘든데, 현실적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배역들을 찾아가는 것 같아 보는 사람이 즐겁다. 최지우나 고현정이나 장진영, 이미연 등 지난해 여배우들의 드라마 귀환이 거대하고 요란했던 데 비해 성과는 미약했는데, 최진실과 송윤아는 자세를 확 낮추고 들어와 반겨진다. 실속 있는 귀환이랄까?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 남자 배우들의 극과 극 반전

국회의원에서 초딩으로 <내 생에 마지막 스캔들>의 정준호

“오랫동안 정장을 입지 않은 정준호를 상상하기 힘들었다. 정치인 이미지가 강해서 호감만큼 거부감도 있었는데, 푼수 같고 뻔뻔하고 속 좁은 아저씨 정준호가 좋다.”(백은하)

“양복 속에 숨기고 있을 것 같았던 무언가가 줄어든 쫄티를 입은 그의 초딩스런 모습에서 다 털려나온 것 같다. 그러면서도 톱스타를 연기하는 배우의 존재감이 느껴진다.”(최지은)

바람둥이 건달에서 로맨틱 가이로 <천하일색 박정금>의 김민종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방탕함’의 세계를 떠돌다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로맨틱 가이. 연륜 있는 남자의 근사함이 더해졌다.”(최지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순수 청년이 어느새 망가지고 코믹한 캐릭터로만 달려가 저 사람 원래 저런가 하는 마음이 굳어질 즈음, 문득 돌아온 왕자님. 그래, 그는 왕자님이었던 거야~, 멋,있,구나~(<개그콘서트>의 준교수 버전으로)”(백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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