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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그거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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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주말밤 8시 가족드라마 풍경을 바꾸는〈엄마가 뿔났다〉와 〈천하일색 박정금〉
어머니만 텔레비전 앞에 남고 다른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던 주말 밤 8시의 거실 풍경이 바뀌고 있다. 어떤 집은 리모컨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분위기를 180도 바꾼 가족드라마로 귀환한 김수현의 한국방송의 <엄마가 뿔났다>가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주역이다. 같은 시간대 문화방송의 <천하일색 박정금>은 가족드라마 안에서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첨가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매거진t>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차우진 기자가 두 작품을 뜯어보며 ‘주말이라서 행복해요’를 연발했다.
백은하 요즘 <엄마가 뿔났다> 기다리느라 한 주 가는 재미가 있다고 말한다. 김수현 드라마는 크게 나누면 <내 남자의 여자>처럼 센 설정으로 인간 심리의 극한에 집중하는 작품과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같은 가족드라마로 나뉘는데, 이번에는 후자다. 반면 <천하일색 박정금>(이하 박정금)은 같은 시간대 붙은 드라마지만 성격은 많이 다르다. 중년 트렌디 드라마랄까.
차우진 <박정금> 첫 장면은 자동차 추격전이다. 헬기 뜨고 난리 날 때 여형사 배종옥은 전화로 애한테 밥 먹었냐, 숙제했냐, 잔소리하다가 다시 액션 장면으로 뛰어든다. 액션 장르적 변형을 첨가했고 배종옥 캐릭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자들이 종종 보여주던 생활인이면서 입체적인 캐릭터다. 김민종, 손창민이 왕자님으로 나오는 것도 10년 전 트렌디 드라마를 보던 세대를 겨냥한 캐스팅 같다. 언제적 김민종인데 지금 봐도 멋있더라.
‘아직도 남자 느낌’ 김민종의 관리능력
백 지금도 멜로가 가능할 정도로 자기관리를 잘한 듯하다. 아저씨가 아니라 남자 느낌이 난다. <박정금>은 40대 캔디 드라마이기도 하다. 집안은 엉망이고, 개인사도 복잡하고, 이 캔디는 애까지 딸려 있다.(웃음) 반면 그녀를 두고 갈등하는 두 남자는 의사(손창민)에 변호사(김민종)다.
차 트렌디함에 장르 비틀기를 하니까 느끼함이 사라졌다. 왕자님 손창민이 있어 보이려고 애쓰면서도 정작 허술한 사람으로 나오는 것도 그렇고. 김민종은 입양아이면서 반듯하고, 속물적인 부모 세대와 다르다. 이런 캐릭터들의 연애 이야기라 설정의 상투성이 반감된다. 코믹 코드도 확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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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주말 드라마에 활기를 가져온 〈엄마가 뿔났다〉.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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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월화나 수목이 아니라 주말 드라마이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가족드라마의 구도가 있으면서도 트렌디한 러브라인이 여성 주부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다. <박정금>은 장면 하나하나의 아이디어나 설정은 많은 재미를 주는데, 전체적으로 굉장히 불균질하다. 반면 <엄마가 뿔났다>는 드라마를 끌고가는 유려한 힘이 느껴진다. 이래서 김수현이다 싶은.
차 이번 드라마는 잘 써진 소설을 보는 느낌이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같은 느낌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탈 만한 소설 말이다.
백 보면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떠오른다. 확성기를 든 오즈 야스지로라고 할까. 조용한 오즈의 캐릭터들과 달리 이쪽 사람들은 끊임없이 수다를 떨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밥은 먹었냐, 오늘은 뭘 해 먹을까, 날씨는 어떤지, 이런 반복된 일상들을 재구성하면서 삶을 통찰한다. 오즈 영화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박물관처럼 보여주는데 100년, 200년 뒤에 2000년대의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나 알려주려면 김수현 드라마를 보여주면 될 것 같다.
차 사실 요새 이 드라마처럼 3대가 같이 사는 집은 거의 없는데도 여기에는 진짜 가족 이야기 같은 현실감이 느껴진다. 주말 드라마들이 대체로 보수적이라 안 보게 되는데 이 드라마는 젊은 사람들도 찾아보게 된다. 세대를 관통하는 감수성이 있다기보다 가족의 사회학이나 인류학적인 측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백 보통 주말 가족드라마의 온도는 너무 뜨겁다. 끌어안고 다 용서하고 우리는 가족이다 부르짖으니 보는 사람이 너무 덥다. 반면 <엄마가 뿔났다>는 가족끼리 가지고 있는 애증의 온도를 잘 보여준다. 잘 주무셨냐는 문안인사에 “죽지 않고 일어났으니까 잘 잤지?”라고 대답하거나, 깜빡 낮잠 잔 걸 “잠깐 저승 갔다 왔어”라고 말하는 건 그 온도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반어법이다.
김수현과 임성한, 그 ‘말발’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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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일색 박정금〉. 〈엄마가 뿔났다〉가 유려한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면 〈천하일색 박정금〉은 아이디어가 발랄하다.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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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전작 <내 남자의 여자>가 뜨겁다 못해 폭발하는 것이었다면 이 드라마는 적정 실내 온도다. 또 <사랑이 뭐길래> 같은 가족드라마와도 달라진 게, 전에는 결혼을 매개로 두 집안이 충돌한다거나 하는 갈등 구도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게 딱히 큰 사건도 아니다.
백 이유리가 남친 부모한테 선보러 가다가 남친이 부잣집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보통 드라마라면 화내고 나를 가지고 놀았냐면서 박차고 일어나고 이런 순서인데, 이유리는 “화 안 나는 거 보니까 드라마가 아닌가 보다.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한다. “돈 있으면 좋다. 하지만 없다고 꿀릴 것도 없다.” 요즘 세대 생각이다. 40년 쓴 작가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연하다.
차 남친네 집에서 견디다 못해 황망하게 나온 이유리가 남자 때리면서 자기 코트 가져오라고, 언니가 사준 비싼 거라고 하는 장면도 현실감이 살아 있지 않나. 이처럼 트렌디를 잘 잡아내면서도 그 많은 등장인물들이 각각 완결된 개인사를 가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격을 만들어낸다.
백 김수현 드라마를 손쉽게 ‘말발’이라고 하는데, 임성한식 ‘말발’과는 전혀 다르다. 같은 3대가 살아도 임성한 드라마의 가족은 기괴한 구경거리 같은 느낌이 드는데, 김수현 드라마의 3대는 보는 이가 핵가족이든 대가족이든, 가족 관계가 어떻든 각자 자기 가족의 단면을 발견한다.
차 김수현 드라마에는 탄탄하고 쫀쫀한 드라마 보는 재미도 있지만 배우의 재발견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엔 단연 장미희!
백 남자배우에 최민수가 있다면 여자배우에는 장미희가 있었다. 뭔가 다른 세계 사람 같은 거지. ‘아름다운 밤이에요’나 ‘똑 사세요’ 같은 장미희의 말투가 최민수 어록처럼 많이 희화화됐고.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그녀의 말투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김수현이라는 작가는 배우에게 뭘 입히는 게 아니라 배우를 씹어 삼켰다가 다시 뱉어내는 거 같다.
차 가만 뜯어보면 과장하지 않고 멀쩡하게 이야기하는 게 장미희라는 배우가 가져온 아우라와 겹치면서 독특한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거다. 심지어 너무 아름답지 않나? 김용건이 집 안에서 고귀한 꽃은 하나로 충분하다, 이런 대사를 하는데 딱 들어맞는다. 장미희처럼 눈에 띄는 인물이 <박정금>의 한고은이다.
백 은수(<내 남자의 여자>의 배종옥)와 미자(<사랑과 야망>의 한고은)가 그녀들을 탄생시킨 작가와 공교롭게 같은 시간에 만났다. 재미있는 게 한고은이 여기서도 미자 연기를 한다.
올해엔 노장들의 파워 느껴질 듯
차 캐릭터로만 보자면 사실 미자보다 심하게 미쳤지.(웃음) 그런데 카리스마가 있어 보다가 압도당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너무 무섭다고 울부짖을 때, 확 지르는데,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백 사실 발음이 좋다거나 감정 표현이 유려한 배우가 아닌데 <사랑과 야망>에서 김수현의 트레이닝으로 자신의 강점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배우가 됐다. 작년 이맘때 생각하면 새로운 드라마 형식들이 시도되고 신인들이 대거 등장할 거 같은 기운이었는데, 올해는 노장들의 파워가 느껴질 것 같다. 특히 김수현의 영향을 받은 가족극들로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는 2008년이 되지 않을까.
차 안정 속의 변화랄까. 간만에 얻은 주말 드라마의 활력이 계속 갔으면 좋겠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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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드라마를 보는 색다른 즐거움, 이 여배우를 주목하자
<엄마가 뿔났다>의 장미희
“그녀가 하는 모든 대사가 100% 클리셰(진부한 표현)인데 클리셰를 만든 본인이 연기하니까 오히려 새로운 오리지낼리티가 느껴진다.”(차우진)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말하고 싶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걸 꿰뚫고 있는 배우다. 대체 불가능함의 매력이다.”(백은하)
<천하일색 박정금>의 한고은
“꽉 찬 얼굴의 요즘 미인들과 달리 한고은의 얼굴에는 어떤 공허함이 배어 있다. 그러면서도 강인하다. 젊은 배우들에게서 찾기 힘든 아우라다.”(백은하)
“불안증에 시달리는 연기를 이만큼 설득력 있게 연기하는 젊은 여자 배우가 있을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안다는 점에서 선배 장미희와 비견된다.”(차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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