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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12 17:04 수정 : 2007.09.17 18:00

사진 문화방송 제공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작가의 경험과 포개져 더욱 흥미를 자극하는 <아현동 마님> 집중탐구

생각보다 낮은 수위의 자극성과 기대보다 낮은 수치의 시청률로 ‘임성한 시대도 갔는가’라는 반응을 낳았던 <아현동 마님>(문화방송)이 드디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열두 살 차이의 연상연하 커플 로맨스가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 포개져 더욱 흥미를 자극하는 <아현동 마님>과 작가 임성한의 ‘마력’을 <매거진 t> 백은하 편집장(사진 왼쪽)과 차우진 기자가 따져 봤다.

백은하 <아현동 마님>이 슬슬 몸풀기를 끝내고 본궤도에 올라가는 것 같다. 문화방송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에 따르면 과장이겠지만 시청률이 한 회 1%로씩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사실 처음에는 임성한 드라마답지 않게 너무 평화로워서,(웃음) 의아했는데 이제부터 시작이다.

차우진 <인어 아가씨> <왕꽃 선녀님> <하늘이시여>등 전작들은 처음부터 엄청나게 센 설정으로 질주하면서 초반부터 혐오와 열광으로 반응이 나뉘지 않았나. 그에 비하면 <아현동 마님>은 열두 살 연상연하라는 소재도 별로 세지 않고, 지금까지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들의 결혼 발표를 듣고는 귀여운 중년부인 사비나(이보희)가 나이 많은 아줌마 본연의 자세로 확 바뀌면서 드디어 시작하는구나라는 느낌이 들더라.

일관된 여성 캐릭터 “얌전하면서 독하다”

전작들에 비하면 확실히 유해진 느낌이 있다. 옛날에는 임성한 드라마는 영혼을 갉아먹는 사회악이라고까지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시작할 때 팔 걷어붙이고 그래, 한번 보자 그러면서 티브이 앞에 앉았는데 힘이 빠진다고 할까. 그래도 이게 맞나, 잘 가고 있나를 스스로 반문하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가는 임성한 스타일은 여전한 것 같다. 이를테면 ‘어머니도 열두 살 차이잖아요’ 하는 부길라(김민성)의 말에 ‘남녀 반대로 열두 살 차이가 같냐’는 사비나의 대답은 요즘 드라마 같으면 자기검열할 만한 이야기인데 용감하게 하잖나.


이야기 전개도 진짜 빠르다. 쟤네들 서로 좋아하나 싶으면 사귈 걱정하고, 사귀나 싶으면 결혼 발표로 고민하고, 둘이 힘들겠다 싶으면 이미 마음 정리하고 이 고난을 헤쳐나가자 다짐한다.(웃음) 보는 사람에게 어떤 판단의 틈도 안 주고 감정적 대립만 숨가쁘게 보여주니까 따라가기 정신없다.

임성한 작가는 깔아놓은 캐릭터들로 굉장히 직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를테면 뚱뚱한 여자에 대한 통념, 여자 검사에 대한 통념, 부자나 배운 사람에 대한 갈망 같은 게 여과없이 드러난다. 요즘 드라마는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걸 촌스럽다고 생각하고 한번씩 꼬는데 임성한 드라마는 늘 직격탄이다.

부모 세대를 그려내는 방식이 너무 현실적이다. 만약 내가 열두 살 많은 여자를 데려가도 부모님이 그렇게 반응했겠지. 이렇게 현실적 느낌에다 치고받는 대사의 노골성이나 광기 어린 반응이 덧입혀져 생각하지 않고 날마다 보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말이다. 그러니까 시청률이 높게 나오고 방송사에서 좋아하는 임성한 작가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현동 마님>은 전작들에 비하면 아직 상상 가능한 허용치를 넘어설 만큼 자극적이지는 않다.

옛날에는 대사도 “피고름으로 쓴 대본”(<인어 아가씨>)이니, 얼마나 셌나. 어록도 인터넷에 뜨고 농담할 때 인용하기도 했는데.(웃음) 그런데 임성한 작가가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에는 일관성이 있다. 처음 봤을 때는 얌전하고 여성적인 이미지의 여자들이 진짜 독하고 무섭고 끈질긴 여자라는 걸 보여준다. ‘우리 수석님’(왕희지)도 너무 평범해서 다른 드라마라면 스쳐 지나갈 것 같은 거의 무색무취의 여자 아닌가. 이런 여자들이 결국 독기를 부리게끔 극단으로 몰고 간다.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길티 플레저’

그게 임성한 드라마의 재미 아닌가. 인간이 극단적으로 미친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 심리가 있는 거 같다.

보기엔 착한 년이 진짜 독하네, 그런 결론을 끌어내는 거지.

독한 년들을 미워한다기보다 감정이입을 시키는 거다. 시어머니나 다른 여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악의 축이 세워지고, 남자들은 관망하면서 여자 대 여자의 싸움으로 몰아간다. 어떤 면에서 진화가 안 된 옛날 드라마다.

그러고 보면 고전적 의미의 ‘가정극’에서 가장 재미있어하는 게 여자들끼리의 싸움인 거 같다. 임 작가의 이야기는 모두 대놓고 여자들이 머리채 잡고 싸우는 이야기 아닌가. 욕을 하면서도 재밌게 보는 거다. 임성한 드라마는 진짜 대한민국의 길티 플레저(대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악취미)다.

길라 아버지가 아내 앞에서 밸리 댄스 추는 등 민망한 장면도 많이 등장하고 대사도 유치하지만 오히려 그게 신기하거나 귀엽거나 코믹하게 느껴져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현동 마님> 와서 그런 게 더 강해졌다. <하늘이시여> 때만 해도 너무하다 싶었던 것들이 여기서는 내성이 쌓여서인지 그 자체로 쾌락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사진 문화방송 제공
주부들 못지않게 젊은 애들도 많이 보는데 그런 이유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날마다 보고 흘려버리는 게 일일 드라마의 소비 방식인데 임성한 작가는 이걸 꿰뚫고 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리한 창작자임은 틀림없다. 피피엘도 너무나 노골적이고 그 모든 게 너무 솔직해서 민망할 틈도 안 주고 막 달려가는 거지.

편집이 엉망이라고 해야 할지 창의적이라고 해야 할지, 길라와 시향이 이야기하는데 금녀, 미녀가 텔레비전 보면서 과자 먹는 게 난데없이 등장한다든가 희한한 편집이 한 회에 꼭 한 번씩 등장한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임성한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환기를 해주는 것도 특징이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임성한은 진짜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웃기는 괴물일 수도, 영혼을 병들게 하는 악마일 수도, 아니면 그냥 진짜 허허실실 아줌마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이번엔 순해졌다고 할까, 이전에 욕 먹었던 걸 피해 가는 방법을 깨우친 것 같기도 하다.

전에는 적나라하고 전형적이고 통속적인 캐릭터와 이야기가 모아져 후반에 폭발적으로 터지는 자기파괴적 에너지가 존재했는데 열두 살 차이라는 낭만적 설정 하나가 그런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걱정 마라. 임성한 아닌가. 갑자기 백시향이 누군가의 딸로 밝혀질 수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웃음) 확실히 이번에는 작가 본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편안한 상태에서의 개인사가 보이는 듯하다. 재밌는 건 임성한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작품의 밖으로 나와서 작가의 정신 분석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드라마가 작가의 머릿속을 스캔해서 여과나 변형 없이 보여주는 느낌이다. 보면 볼수록 임성한이라는 사람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을까 더 궁금해진다.

어디까지 갈지, 뭐가 튀어나올지…

신기하고 이상한 임성한 나라라고 할까. <아현동 마님>을 보면서도 내러티브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이게 도대체 어디까지 가나, 도대체 뭐가 튀어나오나 궁금해진다.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보면서도 이대로 끝나진 않을 텐데 계속 이러고 있는 거지.

차 확실히 이상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드라마인데 어쨌든 지지자도 많다. 욕하면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은 그 이유가 더 궁금하다. 임성한 드라마가 만드는 의미나 사회적 반향을 한번 진지하게 연구해볼 만하다.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너 어제 그거 봤어?

■ 최고의 반전
설마했던 <아현동 마님>의 작가 자전 스토리

“드라마 시작 전에 아무런 정보나 제작발표회, 인터뷰도 전혀 없었는데, 열어놓고 보니 자전적 이야기라니…”(차우진)

“임성한 드라마의 유연함이랄까. 설마 자기 이야기를 쓸까, 설마 남편이 연출을 할까, 모든 설마를 현실로 바꿨다.”(백은하)

■ 최악의 캐스팅
<아현동 마님> 백시향 역의 왕희지

“삼십대 얼굴에 삼심대 나이의 여배우를 세워놓고는 마흔두 살이다, 믿으라고 강요한다고 그게 믿기나.”(백은하)

“설정은 모진 풍파 다 겪은 사십대 여자 검사, 실제는 소녀 같은 얼굴로 소녀 같은 대사만 날리는 신데렐라 공주님.”(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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