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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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묵직한 드라마들이 화면을 채워갈 가을엔 무엇을 볼 것인가
텔레비전에도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온다. 팔랑팔랑 가볍고, 새콤달콤 부드러운 드라마들이 잦아들면서 진하고 묵직한 드라마들이 가을의 화면을 채워나갈 것이다. 여름과 가을의 중간에서 드라마의 계절 변화를 알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매거진t>의 백은하 편집장과 차우진 기자가 들여다봤다. 또 <미녀들의 수다>가 산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근심의 목소리를 냈다.
백은하 <커피프린스 1호점>이 끝나니까 여름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다. <메리대구 공방전>과 <커프>로 이어지는 밝은 여름의 드라마가 끝나고 이제 심각한 드라마의 계절이 도래한다고 할까.
차우진 청춘의 계절이 끝나고 어른의 계절이 오는 것 같은?
<개늑시>, 외국 범죄물에도 안 꿀린다
백 <개와 늑대의 시간>도 그런 분위기지 않나. 엇갈린 운명, 기억상실, 형이 사랑했던 여자, 이런 것들이 너무 비장하다 싶었는데 보면서 이렇게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에 대한 갈증도 있지 않았나 싶더라.
차 처음엔 <무간도>랑 설정이 비슷해서 뭘 베꼈나,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봤는데 6, 7회를 지나면서는 그 자체로 재미있어지더라. 개인적으로는 배우 정경호의 발견도 있었고.
백 흠, 그 부분은 크게 동의하지 않지만, 삼순이에서 시작된 옆집 여자, 남자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질릴 때가 되니까 반대급부로 <개늑시>처럼 클래식하고 극적인 드라마를 보고 싶은 욕구들이 커진 것 같다. 그래서 자칫하면 <마왕>처럼 마니아적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던 게 시청률도 꽤 나왔다. 기억을 잃은 잠입 경찰이나 마피아의 오른팔이 된다거나, 말 그대로 소설이나 영화스러운 이야기 아닌가.
차 홍콩 누아르를 보면서 성장한 70년대 태어난 세대에게는 노스탤지어도 있다. 진짜 남자 이야기, 이런 것에 대한. 이런 장르물은 외국 애들이 잘한다고 생각했던 건데 <개늑시>는 총 쏠 때의 자세나 차를 모는 액션 등 범죄물 장르의 디테일이 세련되게 연출됐다. 세트에도 공을 들이고, 이처럼 장르적 디테일들을 강화해서 재미를 주는 게 최근 드라마의 경향이기도 하다.
백 <개늑시>는 일단 화면의 느낌부터 조악하지 않다. 외국 범죄물과 비교해 봐도 꿀려 보이지가 않는 거다. 거기서부터 장르적 발전이라는 게 시작되는 것 같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형 장르는 이야기에만 너무 집중해 논의돼온 측면이 있다. <시에스아이>를 보면 이야기도 촘촘하지만 조명 쓰는 방식이나 현장 스케일 이런 데서 볼만한 화면을 만들지 않았나. 그런 비주얼 스케일, 사소해 보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소품 같은 것까지 이제 간과하지 않는 거다.
차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데 파국으로 가는 이야기들이 부활한다는 느낌도 들고. 발랄하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줄 수 없는 강렬함, 주인공을 운명이라는 중앙선에 던져놓고 끝까지 밟고 가는 기분이 확실히 있다.
백 근데 넓게 보면 비슷한 시기에 다양한 드라마가 나온 거다. <개늑시>와 같은 시간에 에스비에스에서 하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시청률 차이가 크게 나지는 않는데 시청자층은 다르다. <커프> 역시 다르고. 싸운다기보다 취향 따라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보는 거지. 드라마 하나가 시청률 50% 식으로 싹쓸이를 하는 것보다 이렇게 고르게 나눠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면 좋겠다. 그런데 가만 보면 아직까지 올해 주목할 만한 드라마는 다 문화방송에서 나왔다. 한국방송에서는 <마왕>과 <한성별곡> 정도가 있었고 에스비에스는 유감스러울 정도다.
웃기지? 재밌지? 근데 그 다음은?
차 에스비에스는 트렌드를 잘 잡는다. 싱글맘을 다룬 <불량커플>이나 <쩐의 전쟁>,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이슈는 잡았는데 대본, 스타일, 연출이 다 떨어진다. 내공 부족인 거 같기도 하고 가혹하게 말하면 고민이 안 보인다.
백 일종의 신문 사회면 아래쪽 기사들을 소재로 가져오는 건데 급조된 기획력을 넘지 못하는 선이다. 재미가 전혀 없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할 말이 없다. 웃기지, 재밌지 한마디면 충분하다. 드라마는 방영 다음날 ‘어제 그거 봤어?’ 하면서 요즘 사람들이 유일하게 공통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꺼리’인데 에스비에스 드라마들은 혼자 보고 끝난다. 반면 <하얀 거탑>에서 <거침없이 하이킥> <커프>까지 엠비시 드라마는 사회적 현상이나 반향을 끌어내는 게 있었다.
차 90년대 중후반만 해도 에스비에스는 가장 젊은 방송사였는데 그때 했던 이야기나 스타일을 반복하는 것 같다. 방송사 차원의 재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채널 돌리는 재미를 줬으면 좋겠고.
<미녀들의 수다>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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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그거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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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프린스 1호점> 스페셜편의 내레이션 김창완. “자신이 주연도 아니고 자기 세대의 이야기도 아닌데 드라마의 지향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마지막에 후배들을 위해 최고의 의리를 보여줬다.”(백은하) “그가 가진 이미지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했던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린 친구들을 보살펴 주는 따뜻한 선배 같은.”(차우진) ■ 최악의 동료
<커피프린스 1호점>의 현장 습격했던 <지피지기>의 이영자. “나와 별 관계없는 사람이 옛날 학교 선배라고 다짜고짜 찾아와 뭔가 무리한 부탁을 할 때 느끼는 당혹감이나 불쾌감이 확 몰려왔다.”(차우진) “빤히 한솥밥 먹는 연예인인데 선배라는 이유로 스스럼없이 후배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걸 본인은 소박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여자 마초가 따로 없더라.”(백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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