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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29 18:03 수정 : 2007.09.02 13:57

<개와 늑대의 시간> 문화방송 제공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묵직한 드라마들이 화면을 채워갈 가을엔 무엇을 볼 것인가

텔레비전에도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온다. 팔랑팔랑 가볍고, 새콤달콤 부드러운 드라마들이 잦아들면서 진하고 묵직한 드라마들이 가을의 화면을 채워나갈 것이다. 여름과 가을의 중간에서 드라마의 계절 변화를 알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매거진t>의 백은하 편집장과 차우진 기자가 들여다봤다. 또 <미녀들의 수다>가 산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근심의 목소리를 냈다.

백은하 <커피프린스 1호점>이 끝나니까 여름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다. <메리대구 공방전>과 <커프>로 이어지는 밝은 여름의 드라마가 끝나고 이제 심각한 드라마의 계절이 도래한다고 할까.

차우진 청춘의 계절이 끝나고 어른의 계절이 오는 것 같은?

<개늑시>, 외국 범죄물에도 안 꿀린다

<개와 늑대의 시간>도 그런 분위기지 않나. 엇갈린 운명, 기억상실, 형이 사랑했던 여자, 이런 것들이 너무 비장하다 싶었는데 보면서 이렇게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에 대한 갈증도 있지 않았나 싶더라.

처음엔 <무간도>랑 설정이 비슷해서 뭘 베꼈나,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봤는데 6, 7회를 지나면서는 그 자체로 재미있어지더라. 개인적으로는 배우 정경호의 발견도 있었고.

흠, 그 부분은 크게 동의하지 않지만, 삼순이에서 시작된 옆집 여자, 남자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질릴 때가 되니까 반대급부로 <개늑시>처럼 클래식하고 극적인 드라마를 보고 싶은 욕구들이 커진 것 같다. 그래서 자칫하면 <마왕>처럼 마니아적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던 게 시청률도 꽤 나왔다. 기억을 잃은 잠입 경찰이나 마피아의 오른팔이 된다거나, 말 그대로 소설이나 영화스러운 이야기 아닌가.

홍콩 누아르를 보면서 성장한 70년대 태어난 세대에게는 노스탤지어도 있다. 진짜 남자 이야기, 이런 것에 대한. 이런 장르물은 외국 애들이 잘한다고 생각했던 건데 <개늑시>는 총 쏠 때의 자세나 차를 모는 액션 등 범죄물 장르의 디테일이 세련되게 연출됐다. 세트에도 공을 들이고, 이처럼 장르적 디테일들을 강화해서 재미를 주는 게 최근 드라마의 경향이기도 하다.

<개늑시>는 일단 화면의 느낌부터 조악하지 않다. 외국 범죄물과 비교해 봐도 꿀려 보이지가 않는 거다. 거기서부터 장르적 발전이라는 게 시작되는 것 같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형 장르는 이야기에만 너무 집중해 논의돼온 측면이 있다. <시에스아이>를 보면 이야기도 촘촘하지만 조명 쓰는 방식이나 현장 스케일 이런 데서 볼만한 화면을 만들지 않았나. 그런 비주얼 스케일, 사소해 보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소품 같은 것까지 이제 간과하지 않는 거다.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데 파국으로 가는 이야기들이 부활한다는 느낌도 들고. 발랄하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줄 수 없는 강렬함, 주인공을 운명이라는 중앙선에 던져놓고 끝까지 밟고 가는 기분이 확실히 있다.

근데 넓게 보면 비슷한 시기에 다양한 드라마가 나온 거다. <개늑시>와 같은 시간에 에스비에스에서 하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시청률 차이가 크게 나지는 않는데 시청자층은 다르다. <커프> 역시 다르고. 싸운다기보다 취향 따라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보는 거지. 드라마 하나가 시청률 50% 식으로 싹쓸이를 하는 것보다 이렇게 고르게 나눠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면 좋겠다. 그런데 가만 보면 아직까지 올해 주목할 만한 드라마는 다 문화방송에서 나왔다. 한국방송에서는 <마왕>과 <한성별곡> 정도가 있었고 에스비에스는 유감스러울 정도다.

웃기지? 재밌지? 근데 그 다음은?

에스비에스는 트렌드를 잘 잡는다. 싱글맘을 다룬 <불량커플>이나 <쩐의 전쟁>,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이슈는 잡았는데 대본, 스타일, 연출이 다 떨어진다. 내공 부족인 거 같기도 하고 가혹하게 말하면 고민이 안 보인다.

일종의 신문 사회면 아래쪽 기사들을 소재로 가져오는 건데 급조된 기획력을 넘지 못하는 선이다. 재미가 전혀 없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할 말이 없다. 웃기지, 재밌지 한마디면 충분하다. 드라마는 방영 다음날 ‘어제 그거 봤어?’ 하면서 요즘 사람들이 유일하게 공통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꺼리’인데 에스비에스 드라마들은 혼자 보고 끝난다. 반면 <하얀 거탑>에서 <거침없이 하이킥> <커프>까지 엠비시 드라마는 사회적 현상이나 반향을 끌어내는 게 있었다.

90년대 중후반만 해도 에스비에스는 가장 젊은 방송사였는데 그때 했던 이야기나 스타일을 반복하는 것 같다. 방송사 차원의 재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채널 돌리는 재미를 줬으면 좋겠고.

<미녀들의 수다> 한국방송 제공
화요일 아침에 인터넷에 들어가면 <미녀들의 수다>에서 출연자들이 했던 말을 하나하나 기사화한 뉴스가 주르륵 뜬다. 단지 미녀들이라서가 아니라 얘네들이 한국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가 그만큼 궁금한 거다. 왜 그렇게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에 이토록 집착하나 싶다.

<디워> 현상도 비슷한데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인정받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 같다. 이 프로에서는 술자리 문화나 개고기 등 드러내놓고 말하기는 부끄럽거나 껄끄러운 소재를 올려놓는데 우리 입장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라가 아니라 외국인들이 문화적 다양성이라 인정해야 돼요 이런 말을 들으며 안도한다고 할까.

외국인들을 동경하고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한국 남자들의 찌질함이 보인다. 또 여성 출연자들이 한국말이 익숙지 않기 때문인지 남자 패널들이 늘 무언가 가르쳐주듯이 이야기하는데. 어디 한국 여자한테 가서 그럴 수 있나.(웃음)

사실 그녀들이 하는 이야기는 내용을 보면 개방적이고 진보적인데 뭐랄까 듣는 입장에서는 임팩트가 다른 거 같다. 걔네들은 그럴 수 있지만 같은 이야기를 한국 여자가 한다면 어디서 나쁜 걸 배웠어 하겠지. 또 일요일 오전에 방영할 때 <미수다>가 참신했던 건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였는데 월요일 밤으로 오면서 노골적으로 카메라를 의식한다. 농담 치고받는 것도 분위기가 묘하게 성적이고 솔직히 남자 패널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이트나 룸살롱 가서 저렇게 노나 이런 느낌이 든다.

너 어제 그거 봤어?

외국 미녀들께서도 기분 좀 나빠하시지

<커프> 같은 여자들의 판타지는 되고 남자들은 안 된다는 건가?(웃음)

나쁜 방식이어서 안 된다는 거다. <커프>라도 여자들이 남자를 그렇게 대하면 기분 나쁘지. <커프>만 봐도 여자들의 판타지는 배려나 진심, 소통 이런 것들이 중심이 되는데 <미수다>는 동물원 구경하는 분위기 아닌가.

국제화 시대에 국가나 민족에 대한 편견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겠지만 오히려 출연자들을 스테레오타입으로 만들면서 그걸 공고화하고 있다. 이를테면 일본 여자는 귀여운 척하고 베트남 여자는 참하다 식으로. 멀쩡한 여성들인데 이렇게 바보같이 이용당하는 걸 본인들도 기분 나빠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미국이나 프랑스에도 인종차별적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그냥 취향으로 보자고 하는데 걔네들은 그런 취향이 문화로 자리잡기까지의 과정과 역사가 있었다. 과정도 합의도 없이 외국도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식이면 후유증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변명하기 전에 먼저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정리 김은형 기자

■ 최고의 동료
<커피프린스 1호점> 스페셜편의 내레이션 김창완.

“자신이 주연도 아니고 자기 세대의 이야기도 아닌데 드라마의 지향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마지막에 후배들을 위해 최고의 의리를 보여줬다.”(백은하)

“그가 가진 이미지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했던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린 친구들을 보살펴 주는 따뜻한 선배 같은.”(차우진)

■ 최악의 동료
<커피프린스 1호점>의 현장 습격했던 <지피지기>의 이영자.

“나와 별 관계없는 사람이 옛날 학교 선배라고 다짜고짜 찾아와 뭔가 무리한 부탁을 할 때 느끼는 당혹감이나 불쾌감이 확 몰려왔다.”(차우진)

“빤히 한솥밥 먹는 연예인인데 선배라는 이유로 스스럼없이 후배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걸 본인은 소박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여자 마초가 따로 없더라.”(백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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