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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15 18:47 수정 : 2007.08.18 16:04

티브이 엔 제공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본능이 춤추는 동물의 왕국, 춘추전국시대 맞은 케이블TV 이야기

<빤따스틱 핫바디> <늑대들의 본능토크>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 이런 제목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외국 리얼리티쇼 아니냐고요? 케이블 텔레비전을 안 보시는군요. 당신이 공중파 채널을 돌리며 “왜 이렇게 볼 게 없어?” 투덜거리는 동안 한국의 케이블 티브이는 안방극장의 신천지를 개발했습니다. 물론 욕도 많이 먹습니다. <매거진 t>의 백은하 편집장과 최지은 기자가 이 자극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신천지를 산책했습니다.

백은하 최근 6개월 동안 공중파에서는 볼 수 없는 파격적인 형식이나 콘셉트의 케이블 자체 제작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티브이엔의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은 케이블에서는 대박이라는 시청률 3퍼센트에 안착했고, 채널마다 경쟁적으로 센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지은 새롭다기보다는 공중파에서 하는 것들의 수위를 높여서 차별성을 부각하는 전략이 유행이다. 예를 들어 <사랑과 전쟁>에서 부부가 서로 이해하도록 노력하자고 하면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소송>(티브이엔)은 비 오는 날이면 부인이 발정난다 식의 야한 소재를 도입하고 위자료 계산에 들어간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티브이쇼 진품명품> 판정단처럼 위자료 적정가를 판정한다.


여자들도 자연스레 첫 경험 털어놓고…

공중파의 이름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거다. 사실 이런 걸 저질, 고질로 나누기는 어렵다. 그 공중파 프로그램은 고질인가, 그렇게 볼 수는 없기 때문인다. 다만 이런 방식이 케이블 채널이 찾아가는 서바이벌 방법이구나라는 느낌은 든다. 지난해 10월 티브이엔이 개국하면서 이런 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케이블의 토크쇼들은 진행자의 성향이 프로그램의 색깔과 직결된다는 것도 공중파와 다르다. 이를테면 <김구라의…>는 상담을 매개로 개인적인 이야기나 농담을 거침없이 내뱉지만, 이경실의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스토리온)는 코믹함이 첨부되기는 하지만 좀 더 진짜 상담프로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경실이 겪었던 상처나 고충을 알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야기할 수 있는 톤이나 폭이 김구라의 쇼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진행자가 개인사나 사적인 경험을 끌어들여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면도 크다. <서세원의 생쇼>(와이티엔스타)에서 서세원이 비키니 입은 여자 사진 보고 좋아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다음에 부인한테 새벽까지 혼났다면서 검찰 조사 받을 때도 그렇게 야단맞지는 않았는데 식으로 개인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게 셀링 포인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티브이 엔 제공

토크쇼에 나오는 패널들의 솔직함도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늑대들의 본능토크 그녀를 원해요>(올리브)는 <미녀들의 수다>의 남자 버전 같은 건데 정말 그런 이야기 해도 되나 싶을 정도까지 출연자들이 솔직하고 이들은 또 그것을 자기피아르(PR)로 여기는 것 같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첫 경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놓는데 한국인들의 유교적인 사고가 기본부터 깨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세태를 방송이 제대로 못 따라가는 건지, 아니면 너무 앞서나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과정 중에 필요한 당연한 진통이다.

난립하는 유사 프로그램들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시하는 게 자극적인 소재 찾아내기 같다. 그만큼 튀어야 산다는 거다. <티브이엔젤스>(티브이엔)나 <빤따스틱 핫바디>(엠넷)는 아예 비키니 걸들을 등장시키면서 공중파가 하지 못했던 육체의 향연을 마구 펼치고 있지 않나.

<프리챌 레이싱모델 빌리어드 챔피언십>(엑스포츠) 제목은 얼마나 진지하고 비장한가. 그런데 출연자들이 가슴으로 공을 맞히거나 남성 중계자가 “컴비네이션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면 헐벗은 여성 해설자가 “컴비네이션 하니까 피자가 생각나네요” 하는 식이다.(웃음) 시청자를 잡기 위해 정말이지 모든 걸 다 동원하는 거지.

<조민기의 데미지>는 잘 못 보겠더라

공중파처럼 스타 중심의 게스트 선정을 할 수 없다는 게 케이블 프로그램을 더 대담하고 솔직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같은 이야기를 스타가 하면 난리가 나겠지만 케이블 출연자들은 유명인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막갈 수 있다. 시청자들 역시 공중파를 볼 때와 케이블을 볼 때의 기대치나 판단의 잣대가 다르다. 패널들이 박학다식하다거나 반듯하다거나 이런 게 아니라 자기가 놀았던 걸 솔직히 이야기하는 데 관심을 둔다.

케이엠티브이 제공

그러고 보면 <재용이의 순결한 19>(엠넷)는 이른바 ‘막장 취향’이 대중에게 먹혀든다는 희망을 알렸던 첫 프로그램인 거 같고, 강도로 따져 요즘과 비교하면 귀여울 정도다. 옛날 같으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이런 이야기를 해도 돼요 했던 연예인 스캔들이나 굴욕 같은 걸 여기서 꺼내고 나니까 다른 데서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나름 고전인 거다.(웃음) 그런데 여기에는 유희정신이랄까, 놀자 정신 같은 짜릿한 건강함 같은 게 있었는데 솔직히 <조민기의 데미지>(코미디티브이) 같은 건 솔직히 난 잘 못 보겠다. 뒷담화도 좋고 솔직함도 좋지만 머리채 잡아당기는 것까지 보고 싶지는 않다.

케이블 텔레비전은 판단력과 감성을 스스로 분리시켜서 볼 수밖에 없는 거 같다. 그야말로 거슬리면 채널 돌리고 재밌으면 보는 거다. 하지만 내가 부모라도 아이들이 볼까봐 겁날 거 같다.(웃음)

전체적으로 조망하면 케이블 프로그램들은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다.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예절이나 매너 등을 훌훌 털어버리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가치 판단의 문제를 벗어나 지금까지 닫혀 있던 옆집 안방 문을 열고 그 속을 다 까발리는 거다. 홍상수 영화의 다른 버전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홍상수 감독이 기분 나빠하시려나.(웃음)

자기 브랜드 구축하면 살아남겠지

몇년 전만 해도 외국산 리얼리티 쇼를 보면서 저런 것들이 한국에서 자체 제작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거나 남을 대놓고 비난하는 풍토가 아니니까. 그런데 불과 1, 2년 사이에 <아찔한 소개팅>(엠넷) 같은 연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등장하지 않았나.

백은하 <매거진 t > 편집장(사진 오른쪽 ) · 최지은 기자
<추적! 엑스보이프렌드>(엠넷) 보면서도 쟤 시집은 다 갔네, 이랬는데 이제 그런 시대가 아닌 것 같다. 특히 최근에 <아찔소>가 매칭을 고등학생으로 내리면서 정말 대놓고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아이들을 보여준 것처럼 어린 세대들일수록 텔레비전 매체를 대한 태도도 바뀌고 일반인과 스타들의 경계도 허물어진다. <아찔소> 출연자들을 보면 이미 연예인을 닮아가고 있지 않나.

공중파들은 좋은 콘텐츠로 승부하겠다고 하는데 참 쉽지 않을 거다. 사람들은 좋은 콘텐츠를 기다리기 전에 재미있는 걸 찾아다니니 말이다.

지금 케이블은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인데 결국 자기만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채널들이 살아남겠지. 어쨌든 투자가 늘어나니 개개 프로그램의 만듦새는 지금보다 좋아질 거다. 이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정리 김은형 기자

■ 최고의 바람직한 파격

영애씨와 ‘도련님’이 결국 이별한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 엔딩.

“텔레비전에 수많은 삼순이의 후예가 나왔지만 사실은 예쁜 김선아였고, 결국엔 왕자님의 사랑을 받았다. 영애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지는 진짜 우리들의 삼순이가 아닐까.”(백은하)

“보통 16부작 드라마는 후다닥 마무리되는 느낌인데 <막돼먹은 영애씨>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말을 보여줬다. 진정한 의미의 첫 시즌제 드라마로 2부가 기대된다.”(최지은)

■ 최악의 막돼먹은 파격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소송> 김구라가 꺼내놓은 트랜스젠더 클럽 출입 경험담과 욕설.

“정작 위자료 이야기는 빈약하기만. 정치적 올바름을 떠나 타인에 대한 근거 없는 악의와 편견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게 무섭기까지 했다.”(최지은)

“신선할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와서는 엉뚱하게 진행자의 개인 이야기로만 시간을 때우다니. 변선생 흉내내자면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아니까 혼나야겠어요.”(백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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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esc : 티브이로 사우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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