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브이 엔 제공
|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본능이 춤추는 동물의 왕국, 춘추전국시대 맞은 케이블TV 이야기
<빤따스틱 핫바디> <늑대들의 본능토크>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 이런 제목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외국 리얼리티쇼 아니냐고요? 케이블 텔레비전을 안 보시는군요. 당신이 공중파 채널을 돌리며 “왜 이렇게 볼 게 없어?” 투덜거리는 동안 한국의 케이블 티브이는 안방극장의 신천지를 개발했습니다. 물론 욕도 많이 먹습니다. <매거진 t>의 백은하 편집장과 최지은 기자가 이 자극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신천지를 산책했습니다.
백은하 최근 6개월 동안 공중파에서는 볼 수 없는 파격적인 형식이나 콘셉트의 케이블 자체 제작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티브이엔의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은 케이블에서는 대박이라는 시청률 3퍼센트에 안착했고, 채널마다 경쟁적으로 센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지은 새롭다기보다는 공중파에서 하는 것들의 수위를 높여서 차별성을 부각하는 전략이 유행이다. 예를 들어 <사랑과 전쟁>에서 부부가 서로 이해하도록 노력하자고 하면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소송>(티브이엔)은 비 오는 날이면 부인이 발정난다 식의 야한 소재를 도입하고 위자료 계산에 들어간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티브이쇼 진품명품> 판정단처럼 위자료 적정가를 판정한다.
여자들도 자연스레 첫 경험 털어놓고…
백 공중파의 이름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거다. 사실 이런 걸 저질, 고질로 나누기는 어렵다. 그 공중파 프로그램은 고질인가, 그렇게 볼 수는 없기 때문인다. 다만 이런 방식이 케이블 채널이 찾아가는 서바이벌 방법이구나라는 느낌은 든다. 지난해 10월 티브이엔이 개국하면서 이런 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최 케이블의 토크쇼들은 진행자의 성향이 프로그램의 색깔과 직결된다는 것도 공중파와 다르다. 이를테면 <김구라의…>는 상담을 매개로 개인적인 이야기나 농담을 거침없이 내뱉지만, 이경실의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스토리온)는 코믹함이 첨부되기는 하지만 좀 더 진짜 상담프로처럼 보인다.
백 많은 사람들이 이경실이 겪었던 상처나 고충을 알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야기할 수 있는 톤이나 폭이 김구라의 쇼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진행자가 개인사나 사적인 경험을 끌어들여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면도 크다. <서세원의 생쇼>(와이티엔스타)에서 서세원이 비키니 입은 여자 사진 보고 좋아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다음에 부인한테 새벽까지 혼났다면서 검찰 조사 받을 때도 그렇게 야단맞지는 않았는데 식으로 개인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게 셀링 포인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
티브이 엔 제공
|
최 토크쇼에 나오는 패널들의 솔직함도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늑대들의 본능토크 그녀를 원해요>(올리브)는 <미녀들의 수다>의 남자 버전 같은 건데 정말 그런 이야기 해도 되나 싶을 정도까지 출연자들이 솔직하고 이들은 또 그것을 자기피아르(PR)로 여기는 것 같다.
백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첫 경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놓는데 한국인들의 유교적인 사고가 기본부터 깨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세태를 방송이 제대로 못 따라가는 건지, 아니면 너무 앞서나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과정 중에 필요한 당연한 진통이다.
최 난립하는 유사 프로그램들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시하는 게 자극적인 소재 찾아내기 같다. 그만큼 튀어야 산다는 거다. <티브이엔젤스>(티브이엔)나 <빤따스틱 핫바디>(엠넷)는 아예 비키니 걸들을 등장시키면서 공중파가 하지 못했던 육체의 향연을 마구 펼치고 있지 않나.
백 <프리챌 레이싱모델 빌리어드 챔피언십>(엑스포츠) 제목은 얼마나 진지하고 비장한가. 그런데 출연자들이 가슴으로 공을 맞히거나 남성 중계자가 “컴비네이션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면 헐벗은 여성 해설자가 “컴비네이션 하니까 피자가 생각나네요” 하는 식이다.(웃음) 시청자를 잡기 위해 정말이지 모든 걸 다 동원하는 거지.
<조민기의 데미지>는 잘 못 보겠더라
최 공중파처럼 스타 중심의 게스트 선정을 할 수 없다는 게 케이블 프로그램을 더 대담하고 솔직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같은 이야기를 스타가 하면 난리가 나겠지만 케이블 출연자들은 유명인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막갈 수 있다. 시청자들 역시 공중파를 볼 때와 케이블을 볼 때의 기대치나 판단의 잣대가 다르다. 패널들이 박학다식하다거나 반듯하다거나 이런 게 아니라 자기가 놀았던 걸 솔직히 이야기하는 데 관심을 둔다.
|
케이엠티브이 제공
|
백 그러고 보면 <재용이의 순결한 19>(엠넷)는 이른바 ‘막장 취향’이 대중에게 먹혀든다는 희망을 알렸던 첫 프로그램인 거 같고, 강도로 따져 요즘과 비교하면 귀여울 정도다. 옛날 같으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이런 이야기를 해도 돼요 했던 연예인 스캔들이나 굴욕 같은 걸 여기서 꺼내고 나니까 다른 데서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나름 고전인 거다.(웃음) 그런데 여기에는 유희정신이랄까, 놀자 정신 같은 짜릿한 건강함 같은 게 있었는데 솔직히 <조민기의 데미지>(코미디티브이) 같은 건 솔직히 난 잘 못 보겠다. 뒷담화도 좋고 솔직함도 좋지만 머리채 잡아당기는 것까지 보고 싶지는 않다.
최 케이블 텔레비전은 판단력과 감성을 스스로 분리시켜서 볼 수밖에 없는 거 같다. 그야말로 거슬리면 채널 돌리고 재밌으면 보는 거다. 하지만 내가 부모라도 아이들이 볼까봐 겁날 거 같다.(웃음)
백 전체적으로 조망하면 케이블 프로그램들은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다.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예절이나 매너 등을 훌훌 털어버리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가치 판단의 문제를 벗어나 지금까지 닫혀 있던 옆집 안방 문을 열고 그 속을 다 까발리는 거다. 홍상수 영화의 다른 버전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홍상수 감독이 기분 나빠하시려나.(웃음)
자기 브랜드 구축하면 살아남겠지
최 몇년 전만 해도 외국산 리얼리티 쇼를 보면서 저런 것들이 한국에서 자체 제작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거나 남을 대놓고 비난하는 풍토가 아니니까. 그런데 불과 1, 2년 사이에 <아찔한 소개팅>(엠넷) 같은 연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등장하지 않았나.
|
백은하 <매거진 t > 편집장(사진 오른쪽 ) · 최지은 기자
|
백 <추적! 엑스보이프렌드>(엠넷) 보면서도 쟤 시집은 다 갔네, 이랬는데 이제 그런 시대가 아닌 것 같다. 특히 최근에 <아찔소>가 매칭을 고등학생으로 내리면서 정말 대놓고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아이들을 보여준 것처럼 어린 세대들일수록 텔레비전 매체를 대한 태도도 바뀌고 일반인과 스타들의 경계도 허물어진다. <아찔소> 출연자들을 보면 이미 연예인을 닮아가고 있지 않나.
최 공중파들은 좋은 콘텐츠로 승부하겠다고 하는데 참 쉽지 않을 거다. 사람들은 좋은 콘텐츠를 기다리기 전에 재미있는 걸 찾아다니니 말이다.
백 지금 케이블은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인데 결국 자기만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채널들이 살아남겠지. 어쨌든 투자가 늘어나니 개개 프로그램의 만듦새는 지금보다 좋아질 거다. 이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정리 김은형 기자
■ 최고의 바람직한 파격
영애씨와 ‘도련님’이 결국 이별한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 엔딩.
“텔레비전에 수많은 삼순이의 후예가 나왔지만 사실은 예쁜 김선아였고, 결국엔 왕자님의 사랑을 받았다. 영애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지는 진짜 우리들의 삼순이가 아닐까.”(백은하)
“보통 16부작 드라마는 후다닥 마무리되는 느낌인데 <막돼먹은 영애씨>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말을 보여줬다. 진정한 의미의 첫 시즌제 드라마로 2부가 기대된다.”(최지은)
■ 최악의 막돼먹은 파격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소송> 김구라가 꺼내놓은 트랜스젠더 클럽 출입 경험담과 욕설.
“정작 위자료 이야기는 빈약하기만. 정치적 올바름을 떠나 타인에 대한 근거 없는 악의와 편견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게 무섭기까지 했다.”(최지은)
“신선할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와서는 엉뚱하게 진행자의 개인 이야기로만 시간을 때우다니. 변선생 흉내내자면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아니까 혼나야겠어요.”(백은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