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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7 16:19 수정 : 2007.06.27 19:28

사진 에스비에스, 한국방송 제공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경쾌한 역사물 <경성 스캔들>을 보다가 확 깬 이유는?

텔레비전은 현재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나간 시절을 호출해 어린 시절 먹던 뽑기나 달고나처럼 추억의 입맛을 자극한다. 1930년대의 발칙한 연애담을 그린 한국방송의 <경성 스캔들>과 70~8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에스비에스의 <옛날 티브이>의 차진 맛을 <매거진t>의 백은하 편집장과 차우진 기자가 곱씹어봤다. 현란한 말발로 부흥기를 맞이한 <개그 콘서트>의 새 코너들도 짚어봤다.

백은하 <경성 스캔들>이 시청률도 괜찮게 나오면서 젊은 시청자들에게 인기 있는 드라마로 부상하고 있다.

차우진 요새 영화 <모던 보이>나 <경성 스캔들>처럼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서 기대가 컸는데 방영 초반에는 적응이 안 된다고 할까, 호감이 가지 않더라.

세대적 차이도 있을 거다. 민족, 국가, 역사 같은 것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불편할 수 있다. 드라마 첫부분에 선우완(강지환)이 “조국, 해방, 독립, 자유, 투쟁, 그딴 거 개나 줘버려”라고 말하고 클럽에 들어가서 스윙 음악에 맞춰 미친 듯이 춤추는 장면이 나온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는 시절에도 여전히 청춘과 연애는 꿈틀거렸다는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발랄한데 만듦새가 좀 너무 쉽게 갔다.

1930년대에 “쪽팔린다”고 말하다니…


그 시대를 그런 식으로 다룬 건 용기 있기도 하고 나름 기념비적인 작품인데 말투 같은 데서 시대적인 멋스러움을 살리지 못한 건 아쉽다.

<대장금> <주몽>처럼 최근 히트 친 사극이나 시대극들이 현대어를 과감하게 사용해서 이 드라마도 그런 방식을 가져온 건데, 이 경우는 그 시대의 말을 쓰는 게 더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처럼 시대극이나 시대를 다룬 소설이 무거운 주제나 역사성을 벗어나기 시작한 건 2000년대부터다. <경성 스캔들>의 원작인 <경성애사>를 쓴 이선미 작가를 비롯해 이런 걸 창작한 세대는 주로 7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80년대의 시대적 아우라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역사를 바라볼 때도 이데올로기 대신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흐름이 이제는 대세가 되다 보니 역사를 꼬거나 비틀어 보는 게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경성 스캔들>은 기획 의도가 너무 명백하게 보인다는 게 드라마를 다소 싱겁게 만드는 요인인 것 같다.

연기도 만화 같은 재미가 있고 음악도, 옷도 괜찮다 이런 식으로 보다가 어느 순간 확 깨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쪽팔리다’ ‘쌩깐다’ 이런 말들이 툭툭 나올 때다. 또 30년대는 어떤 면에서 현대사 가운데 가장 개방적이면서도 혁명적인 기운 같은 게 있었는데 이런 걸 사실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니까 너무 단순하기도 하고.

나름 ‘연애혁명’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일 텐데. 일제시대라면 유관순이 나와야 한다는 식의 역사의 무게에 짓눌릴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한 시대에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려면 시대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그게 빠져 있으니까 재밌게 보다가도 씁쓸한 느낌이 든다.

코미디를 보다가도 감동 받을 때가 있고 눈물 날 때가 있지 않나.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경우가 그런데 <경성 스캔들>도 그처럼 시대적인 공기를 좀 더 사실적으로 잡아내면 더 재밌을 것 같다.

<경성 스캔들>처럼 최근 시작한 에스비에스 <옛날 티브이>도 과거를 소재로 삼는 코미디 쇼다. 블로깅하다 보면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리는 콘텐츠가 ‘다시 보고 싶은 추억의 외화 시리즈’ 같은 건데 <옛날 티브이>가 이처럼 유년의 추억을 다시 즐겼으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본격적으로 끌어왔다.

<옛날 티브이>에서 왕영은·배철수 보고파

형식적으로 리얼리티 쇼인데다가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아이템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옛날에 열악했던 방송이나 매체 환경을 세트에서 라이브로 재현한다.

옛날에 우리가 봤던 게 세트 위라면 세트 밖은 이런 풍경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눈앞에 펼쳐준다. ‘스리랑 부부’를 재현하는데 김미화가 나오고 기상캐스터 김동완이 나와서 옛날에 했던 일기예보를 재현하는 것도 재미있다.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만 알아보는 표지 같은 걸 만들려 하는 것 같다.

요새 오락프로그램이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만 보다가 뭐랄까 예의바른 프로그램을 보니까 나름 신선하더라. <느낌표>류의 건전함은 닭살이고, 또 케이블 오락프로처럼 독해지려니 답이 안 나오고,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나온 작품이 아닐까 싶다. 향수와 예의바름을 적절하게 조합한 건데 그런 면에서 유재석이라는 진행자가 딱이다.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에서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명화극장의 예고해설을 하던 정영일 선생인데 세상을 떠서 안타까울 뿐이다.

<젊음의 행진>의 왕영은을 다시 보고 싶다. 그 뒤에서 연주하던 송골매도. 그때 배철수가 연주하다 감전돼서 쓰러지지 않았나.

기억난다.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고 해프닝으로 끝났으니 재현을 해도 재밌을 거 같고. 그런 걸 기억하는 사람들이 보면 그 시대와 티브이를 둘러싼 개인적 소사까지 떠올리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호랑이 선생님>의 배우들도 보고 싶고, 미사리의 가수들만 불러올 게 아니라 그 시대의 티브이 아이콘이었던 사람들을 끌어냈으면 좋겠다.

개그 프로그램이 다시 재미있어졌다. 요새 <개그 콘서트>를 보면 오래된 시스템의 힘이 탄탄한 연기력과 말발을 갖춘 스타를 만들어낸다는 느낌이 든다. ‘까다로운 변선생’ 좋아 죽는다(웃음). 또 ‘내 인생 내기 걸었어’의 김형사도 예술이다.

<개그 콘서트>는 탄탄하게 잘 쌓아올린 탑 같은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개콘>보다 <웃찾사>를 좋아하지만 <웃찾사>가 치고 빠지는 스피드감이라면 <개콘>은 꽉 차인 어떤 것들이 무대 뒤에서 원활하게 돌아가는 거 같다.

요새 <개콘>이 내세우는 건 청산유수의 말발인 거 같다. 새로 등장한 ‘말발의 청춘’도 그렇고. 그렇게 정돈돼 있으면서도 속사포 같은 말발을 들으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유행어보다 한 차원 높은 말의 향연이다. 역시 스탠드업 개그의 원조는 다르다는 감탄을 한다.

그 개그맨들에게 미안합니다

잘 짜인 코미디, 구조의 코미디란 이런 거구나 하는 거지. 그에 비하면 <개그야>는 사모님, 죄민수 같은 스타를 탄생시켰지만 아직 아마추어적인 느낌을 못 벗어났다.

‘내 인생…’의 김형사는 경상도 사투리의 무뚝뚝함과 무심함을 탁월하게 연기한다. 그렇게 자연스런 연기력을 보이려면 소극장에서 얼마나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갔겠나라는 생각도 들고.

<개콘>이나 <웃찾사> 모두 소극장 중심으로 신인들을 키우는데 직접 만나서 들어보면 거기서 먹고 자고 매일 12시간씩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시청자들에게는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개그맨 같지만 몇 년씩 고생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야말로 ‘내 인생에 내기 걸고’ 치열하게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고생 고생 해서 준비한 걸 5분, 10분 보고 즐거워하는 게 미안할 정도지만 그게 없으면 일주일을 어떻게 살까 싶다. 그것에 길들여져 가는 거 같다.

정리 김은형 기자

백은하 / 차우진. 사진 박미향 기자

■ 최고의 발견

<개그 콘서트>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의 김형사(김원효)

“넌 어디 별에서 왔니” 묻고 싶을 정도로 어디선가 뚝 떨어져 나온 듯한 신인 개그맨, 너무 노련해서 신인 같지가 않다.”(백은하)

“노련해 보이지만 연기할 때 땀이 번진 얼굴을 봤다. 열심히 하는 신인의 풋풋함이 보여서 응원해 주고 싶더라.”(차우진)

■ 최악의 선택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의 엄홍길 편

“무릎팍 도사가 도사 옷 벗고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것 같았다. 엄홍길이 훌륭한 인물이라는 건 공감하지만 이번 게스트는 까칠하고 마이너적인 무릎팍 정신에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었다.”(백은하)

“나이트클럽에서 어르신 만나는 분위기랄까. 억지로 맞춘 자리 같고, 난데없는 <인간극장>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았다.”(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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