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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1 14:43 수정 : 2007.06.23 16:27

내 남자의 여자.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종영 맞은 <내 남자의 여자>, 그 매력과 의미 총정리

원망하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증오했으며 연민하고 그리워하고 용서하고 지쳐 갔던 세 사람이 각자의 길로 돌아섰다. 19일 38.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린 김수현표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는 크고 작은 논란 속에서도 불륜에 대한 새로운 서술 방식을 보여준 드라마로 평가받았다. 불륜 드라마는 40대 여성 시청자 ‘전용’이라는 통념을 깬 이 드라마에 열광했던 두 남자, <드라마티크>의 조민준 편집장과 노정태 기자가 ‘남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이 작품의 매력과 의미를 총정리했다.

조민준 드라마 초반에는 홍준표(김상중)를 아무리 봐도 매력이 없어서 화영(김희애)이 그에게 왜 미치나 미스터리 같았다. 그러다가 23회까지 보니까 답이 나오더라.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지수(배종옥)와 화영의 관계 또는 그들의 애증이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중요한 건 ‘내’와 ‘여자’이지, 남자는 아니었던 거다.

노정태 지수와 준표의 관계가 정리돼 가는 자연적 과정만큼이나 지수와 화영의 관계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그러면서 우정을 살짝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감정까지 깊숙이 들어갔다.

복수를 넘어 감정의 섬세한 변화까지…

<내 남자의 여자>가 여느 불륜 드라마와 다른 건, 보통 불륜 드라마에서 ‘불륜’은 소재로만 활용되고 불륜의 상대자는 극적인 장치로만 소비된다. 당사자들도 장르적인 처벌을 받거나 마누라 곁으로 돌아오는 식인데 여기서는 불륜 당사자의 감정에 맞춰 불륜의 발생부터 자연소멸까지의 과정을 꽉 차게 보여줬다.


특히 마지막에 화영의 마음이 식어 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잘 그렸다. 사랑이 생활이 되면서 지치는 모습 속에 “오늘 밥해주기 싫어” 이런 대사 치는 건 대단하더라. 불륜 드라마가 지금까지 중요하게 다뤄왔던 건 배신, 복수 같은 장르 변주였는데 감정의 섬세한 변화까지 담아낸 거다.

그래서 단순한 불륜 드라마로 묶기는 아깝고 정통적 의미에서 멜로드라마로 정의되는 게 맞는 거 같다. 문제는 다른 김수현 드라마도 마찬가지지만 실제로 남자와 여자가 싸울 때 보통 남자들은 준표처럼 또박또박 받아치는 능력이 별로 없다. 그냥 씩씩대거나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 식으로 돌려치는데 김수현 드라마의 남자들은 여자처럼 이야기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대사 합의 쾌감은 들지만 리얼리티는 떨어지는 거지(웃음).

화영이 준표의 책장 속에 처박혀 있던 이혼서류를 보고는 준표가 그렇게 좋아하던 밥을 다 쏟아버리는 장면이 너무 통쾌하더라. 준표처럼 순수하게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 드라마는 김병욱 시트콤 말고는 없었다. 냄비가 불에 탔을 때도 그 와중에 감자 익었나 안 익었나를 확인하는 모습이라니(웃음).

이렇게 망가진 준표의 모습을 마지막에 보완하려고 했는지 갑자기 오토바이 취미를 들고 나왔는데 그 정도로 만회가 되나.

오토바이 타고 가서 간장게장 사 먹을 거 같았다(웃음).

남자 캐릭터는 아주 강하지 않으면 ‘준표화’ 될 수밖에 없는 게 김수현 드라마의 숙명인 거 같다. <사랑과 야망>의 조민기나 <청춘의 덫>의 이종원처럼 강한 의지를 가진 남자가 아니면 화법 자체가 여성적이라 남자로 매력 찾기가 힘든 면이 있다.

이종원의 캐릭터는 착한 판타지

이종원이 그 분야에서 마스터였는데 이번에는 그 끼를 잘 통제하더라. 석준으로 처음 등장해서 “우리 허그할까요?” 할 때는 좀 식겁했지만.

김수현 작가에게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요즘 키워드구나 싶으면 고민 없이 적용시키는 난제가 있다(웃음).

한때 유행한 ‘프리허그’를 본 게 아닐까 싶다.

<부모님전상서> 때는 난데없이 <섹스 앤 시티> 이야기가 나오고. 얘들아 나 요즘 이런 것도 안단다, 그런 분위기(웃음).

드라마에서 연애의 생로병사를 이만큼 보여주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감정 몰입의 정도가 크니까 끝까지 보여주면 시청자가 힘들어하는 구석이 있다. 이 드라마에 대한 불만의 기저에는 그런 정서도 있다.

감정의 바닥까지 너무 들어가니까 불편한 거다. 이를테면 해장국을 사오라, 싫다 하는 장면은 너무 감정이 구체적이라 불편하다. 두 사람의 연애의 시작과 마지막뿐 아니라 지수의 정신적 자립을 선명하게 그려낸 것도 평가할 만하다.

이혼 뒤 여성에게 경제적 자립보다 힘든 게 정신적 자립이라는데, 지수는 샌드위치 집을 하면서 주변에서 그 여자의 상황을 다 알고 큰 불화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적응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점에서 이혼에 대한 주변의 인식 변화를 보여준 것도 좋은 모범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적당한 거리에서 지수를 지켜봐줬던 이종원은 판타지 같은 인물이다.

그렇게 가는 게 맞다는 점에선 착한 판타지다. 아침 드라마 <있을 때 잘해>는 작가가 이혼녀의 정신적 자립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새로운 남자와 너무 빨리 사귀는 바람에 정신적 자립을 이뤘다고 보기는 힘든데 오히려 지수에게는 그런 판타지가 긍정적으로 작용해 진짜 정신적 자립의 과정을 보여줬다.

지수와 화영의 관계를 보자면 역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지수가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찾았기 때문에 나중에 화영이 찾아와서 하는 하소연도 들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두 여주인공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사실 두 사람이야말로 김수현 드라마의 대표적 배우 아닌가. 이번 배종옥 캐스팅이 의외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배종옥은 김희애 전에 김수현 사단이었다가 오랜만에 복귀한 것 아닌가.

너 어제 그거 봤어?

대추방망이, 김병세 연기도 흥미로워

배종옥은 김수현 드라마의 조건에 딱 맞는 배우다. 엄청난 대사량을 전달하는 능력이나 쏘아붙이는 말투, 표정 등 김수현 드라마의 ‘또순이’에 최적화된 배우다. 김희애는 여기에 감정을 확 실어버릴 수 있는 파워가 있고.

달삼 역의 김병세 연기도 흥미로웠다. 비유하자면 홍준표를 패기 위해 준비된 대추 방망이 같은 인간이다.

정력이 넘치지만 준표같이 큰 사고는 안 치고, 아내한테 두들겨 맞으면서도 “여보 사랑해” 하면서 애교 떨고. 슬쩍슬쩍 바람을 피워서 오히려 스트레스 안 받고, 돈 잘 벌고, 그것도 실은 일종의 판타지일 수 있다.

판타지라면 위험한 판타지이지. 비교 대상을 홍준표로 놓고 달삼의 태도를 어느 정도 수긍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최악과 차악의 비교라고나 할까.

결론적으로 보면 멜로 안에서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자는 게 이번 작품에서 김수현 작가의 야심이 아니었을까. 김수현 작품 목록 중에서도 이렇게 문체가 연극적이었던 적도 없었는데 감정의 집중을 막는 이런 문체에 보란 듯이 감정을 실어낸 건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하다.

굳이 주제를 따지자면 사랑은 별거 없다? 사랑을 해체했다는 느낌도 든다. 화영이 준표에게 미워 죽을 때도 좋아한다고 말은 했지만 화영의 감정에도 자기기만적인 부분이 있었고 홍준표에게는 말할 것도 없이 진실한 사랑이라고 볼 수 없는 요소들이 많지 않았나.

배신, 모략, 방해 같은 불륜 드라마의 컨벤션(관습화된 요소)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멜로드라마의 정통 문법을 통해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충실히 보여준 게 <내 남자의 여자>다.

정리 김은형 기자
사진 박미향 기자

■ 최고의 장면

23회에서 화영이 사 오라고 한 해장국을 사서 냄비에 담아 들고 가게를 나오는 장면

“보통 사람들이 가진 멜로에 대한 환상이 몰락하는 풍경이라고나 할까.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조민준)

“이기적인 준표에게 인생의 쓴맛을 가르쳐주는 행위였다. 또 생활 속에서 연애하는 게 얼마나 추레해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노정태)

■ 최악의 캐릭터

홍준표

“<대장금>에 등장했던 중종 이후로 이렇게 순수하게 음식에 탐닉하는 캐릭터가 있었던가?”(노정태)

“한 여자가 목맬 정도로 강한 매력을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잘못 만들어진 캐릭터다.”(조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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