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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히트>, <쩐의 전쟁>, <에어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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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장르 드라마로 기대되는 <쩐의 전쟁>에서 박신양은 정말 잘 어울렸다
<드라마티크>의 조민준 편집장과 박현정 편집위원이 두번째 타자로 나서 ‘맛있게 보기’ 기술을 전수한다. 지난주 화제의 드라마였던 <쩐의 전쟁>과 <에어시티>, 극적인 결말로 주춤했던 시청률을 껑충 끌어올린 <히트>가 밥상에 올랐다. 드라마의 스타일 구기는 세트 이야기는 가벼운 입가심이다.
박현정 <쩐의 전쟁>이 대박났다. <하얀 거탑>처럼 남자 드라마라서 주목받는 걸까?
조민준 금나라(박신양)처럼 빚에 치인 경험을 한 사람이 많으니 불편할 수 있는 소재인데, 가볍게 풀어 간 게 먹힌 거 같다.
박 요즘 한국 드라마의 화두가 ‘장르’인데 이 드라마 역시 매우 장르적이다. 카드빚이라는 소재는 처절하게 갈 수도 있는데 무협물 같기도 하고 게임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무겁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고, 그에게 어려운 상황이 처해도 정서적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어떻게 풀어 갈까 하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사채업자가 부잣집 도련님 같다니
조 영화 <타짜>에 기댄 구성인데 이 드라마에도 <타짜>의 백윤식처럼 은둔고수가 등장한다. 2회에서 금나라가 은둔고수(신구)에게 미션을 받고 해결하는 과정이 장르적으로 흥미롭게 전개됐다. 또 <시에스아이>(CSI) 같은 에피소드식 전개는 아니지만 금나라가 앞으로 거칠 고비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게 에피소드식 장르 드라마의 효과를 내면서 기대를 불러일으킬 것 같다.
박 박신양의 변신도 흥미롭다. 박신양은 몰입형이 아니라 계산형 연기자다. 정교한 연기 기계 같다고 할까? <파리의 연인> 때도 이야기는 뻔한 측면이 있는데 그가 연기하는 걸 보면 정말 재벌 같았다. 얼굴에 계급성도 보이고. 그런데 <쩐의 전쟁>에서는 정반대인 노숙자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얼굴이 잘받는다.
조 박신양은 연기를 조금 힘줘서 하는 타입이라 과장되게 보일 수도 있는데, 드라마의 분위기가 떠 있으니까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 젊은 배우들의 앙상블은 아직 아쉽다. 신동욱이 연기하는 하우성은 젊지만 노련하고 삶의 굴곡도 있는 사채업계의 뉴 페이스인데, 그냥 부잣집 도련님처럼 보인다.
박 특정배우의 문제가 아니라 요즘 젊은 배우들의 연기 경향이다. 화내야 할 때는 짜증내고, 서러울 때는 징징댄다. 자꾸 그런 모습들을 보다 보면 그것에 정이 들 정도다.(웃음) 연기가 형편없으면 아,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다 그렇게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조 <쩐의 전쟁>에 비하면 <에어 시티>는 장르물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박 일단 이야기가 두서없다는 느낌이 든다. 인천공항 안에 국정원이 들어가 있다는 발상은 참신한데, 범죄 이야기와 공항 운영하는 사람들 이야기, 최지우-이정재의 러브라인이 갈지자로 왔다갔다 한다.
조 이게 범죄드라마가 되려면 멜로 이전에 콤비물이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멀더와 스컬리처럼 두 캐릭터에 특성이 있어야 한다. 그 성격들이 서로 부딪치고 기대면서 극적 대비를 만들어야 둘 사이에서 싹트는 미묘한 감정에 설득력이 생기는데, 난데없이 그냥 사랑에 빠지는 거 같더라.
박 전문직 드라마의 구태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요새는 전문직 드라마의 핵심은 정말 그 일을 하는 사람 같아야 한다는 거다. 만약 고현정이 하이힐 신고 범죄현장에서 뛰면 금방 시청자들은 흥미를 잃는다.
남루한 세트, 연개소문이 합판소문?
조 한도경(최지우)은 바빠 보이지도 않고 꼭 쇼윈도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그냥 아름다운 모습이다. 또 김지성(이정재)은 늘 울분에 차 있는데 이런 캐릭터도 더는 안 먹힌다. 이러다가 공항에서 연애하는 드라마 될라.(웃음).
박 공항이라는 색다른 공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그것이 사실이건 과장이건 패션 필드를 화려하게 보여주면서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그것처럼 뭔가 몰랐던 신세계를 보여줘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공항 안의 국정원이라는 흥미로운 공간이 그저 풍경처럼 지나간다.
조 국정원 세트는 잘 지어놨던데. <은하철도 999> 생각나더라.
박 문화방송이 전통적으로 세트 연출을 잘하는데 아직 초반이라 그런지 활용을 못하는 것 같다.
조 사실 세트는 드라마 전반의 문제인 것 같다. <연개소문>을 보면 천하를 호령하는 당나라 황제 방이 손바닥만 해서 황제와 부인이 한 의자에 바짝 붙어 앉는다. 또 그 앞에서 무희들이 춤을 추면 서로 막 부딪친다.(웃음)
박 세트 연출이 규모만의 문제는 아니다. <케세라세라> 경우 세트가 인물의 정서를 절묘하게 잡아내지 않았나?
조 에스비에스는 세트나 미술에 상대적으로 덜 투자하는 것처럼 보여 아쉽다. <연개소문>은 야외 건물을 그림으로 대체해서 시청자들에게 ‘합판소문’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박 <허준>과 <대장금>을 만들었던 이병훈 감독이 에스비에스로 옮겨서 <서동요>를 만들었는데, 백제의 찬란한 미술이 일개 부족국가의 그것만도 못한 비주얼로 구현됐을 때는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던 걸?
조 좋은 연출가는 처음부터 카메라 앵글까지 고려해서 세트에 대한 고민을 철저히 하고 세트를 만든다. 안판석(<하얀 거탑>), 황인뢰(<궁>), 김윤철(<케세라세라>)등이 세트 연출에 발군이다.
<히트>에선 사이코가 오싹하더라
박 <히트>의 막판 뒤집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중간에 지지부진했는데 작가의 의도가 끝에서 확 펴진 거 같다.
조 지난해 나왔던 일부 드라마들이 장르 드라마의 시도 자체에 의미를 뒀다면 <히트>는 선진화된 장르 드라마로 완성됐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외국 드라마보다 낫다고 할 정도로.
박 디테일은 한국적이고 이야기의 큰 흐름은 서구적인데, 잘 결합됐다. 캐릭터들도 절묘하고.
조 시청자들이 후속편 요구하는데, 이런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는게 이렇게 잘 만든 캐릭터를 버리기는 아깝다. 캐릭터 구축이 잘됐으니 <씨에스아이>처럼 회별 에피소드로 갈 수도 있을 거 같다.
박 발로 뛰는 여자(고현정)와 머리 쓰는 남자(하정우)도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조합이다.
조 은퇴를 앞둔 늙은 형사와 젊고 싸가지 없는 형사의 매치 같은 것도 절묘했고.
박 싸가지 형사(정동진)는 가끔씩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요즘 후배들 보는 거 같더라. 틀린말 하는 건 없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원칙주의자인데다가 자기 것만 챙기는 애들.(웃음)
조 범인이 한국 드라마에서 한 번도 나오지 못한 사이코 연쇄 살인범이라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우리나라 범죄 드라마는 <마왕>에서처럼 연쇄 살인범이라고 해도 깊은 사연이 있는데, 얘는 정말 진짜 사이코였다.(웃음)
박 싸이코 패스형 범인의 신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범인이 선량한 얼굴로 봉사활동을 하다가 차수경에게 전화할 때 목소리 180도 바뀌는 걸 보면 진짜 오싹하더라. 정리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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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그거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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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장면
<히트> 범인의 근거지를 기습한 경찰들이 주검 2구만 발견한 채 넋을 잃고 서 있던 장면.
“한국 드라마 최초의 사이코 패스 등장을 알려주는 기념비적인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 깔리는 헨델의 음악과 막판에 등장하는 범인의 목소리까지 황금률의 장면연출이었다.”(조민준)
“범인이 안 무섭다면 오버일 수 있는 연출이었는데, 범인의 ‘포스’가 장면에 힘을 실어줬다. 섬뜩함이 납량특집을 방불케 하더라.”(박현정)
■ 최악의 앙상블
<에어 시티>의 최지우, 이정재 커플
“이런 장르에서 대립되는 성격의 남녀가 만들어내야 하는 호흡이 없고 연기의 ‘합’도 맞지 않는다. 게다가 인질 구출 한번 해주고 바로 맺어지다니, 대본 상에서 벌써 너무 많은 문제가 노출돼 버렸다.”(박현정)
“두 사람의 감정이 모두 과잉될 때 연기가 무너진다. 극적 감정이 무너진다고 배우의 연기가 무너지는 건 두 연기자의 작품경력이 무색할 만큼 아마추어적이다.”(조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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