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5.22 13:35 수정 : 2008.05.24 15:17

세상을 톡 쏘면서 아슬아슬 웃기느라 고생 많은 〈명랑 히어로〉의 김유곤 PD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PD열전

세상을 톡 쏘면서 아슬아슬 웃기느라 고생 많은 〈명랑 히어로〉의 김유곤 PD

“비유하자면, 오락 프로그램의 홍상수 영화쯤 될까요?” 물론 문화방송의 <명랑 히어로>는 홍상수 영화처럼 썰렁하지도, 모호하지도 않다. 오히려 산만할 정도로 시끌벅적하고, 때로 시청자가 도리어 출연자의 이미지를 걱정할 만큼 직설적이다. <명랑 히어로>의 김유곤(35) 피디가 이런 비유를 하는 건 이 프로그램이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판타지 대신 고달픈 현실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윤종신이 정부의 생필품 물가 관리정책을 “애드리브로 정한 게 아닐까?” 말하고, 이하늘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두고 “(관료들이 대통령을 따라서 얼리버드로 생활하느라) 너무 졸린 상황에서 비몽사몽간에 협상을 한 것 같다”고 꼬집을 때 나오는 웃음은 맵고 통쾌하다.

2003년 ‘김피디송’ 유행시킨 바로 그 인물

“<명랑 히어로>라는 제목은 일종의 역설이에요. 김구라씨가 방송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본래 기획할 때 제목은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따온 <저수지의 개들>이었거든요. 명랑하지 않은 엠시들이 명랑하지 않은 사회를 향해 명랑하게 태클을 건다는 취지였죠.” 맞다. 명랑한 사회였다면 태클을 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명랑하지 않은 엠시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진행자로 먼저 떠올렸던 인물이 김구라씨와 이하늘씨, 김성주씨였어요. 어떤 이유에서든 세상 쓴맛이나 아픔을 겪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 이야기를 해보자는 거였죠.” 까칠함과 유쾌함의 균형을 위해 캐스팅의 배분을 고민하다가 ‘라디오 스타’ 팀이 옮겨 왔고, 남성중심적 시각에 빠질 우려를 잡아줄 인물로 박미선이 합류했다. 남녀 비율을 맞추고 싶었지만 자기 소신을 편하게 이야기할 여성 연예인을 찾기 어려웠던 게 캐스팅의 유일한 아쉬움이었다고.

<명랑 히어로>는 줄타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독한 토크쇼는 새롭지 않지만, 독한 촉수가 정치·사회적 이슈로 뻗었던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출연진의 뾰족한 발언은 인터넷에서 논란을 낳기도 하지만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차고 넘치는 덕담은 정체성을 흔든다. 또한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음이 프로그램의 개성이지만 이게 한 발짝만 과하게 가도 정치적 색깔로 오해받을 수 있다. “편집이 오래 걸려요. 출연진들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꺼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흐름을 연출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서는 안 돼요. 그러다 보니 잘 안 풀릴 때는 어설픈 <100분 토론>으로 흐르기도 하고, 어설픈 <야심만만>으로 흐를 때도 있죠. 논쟁을 하면서 웃긴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또 팩트가 확실하지 않거나 명예훼손에 걸릴 수 있는 민감한 부분, 출연자들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부분도 걸러야 되니까 아무래도 아슬아슬할 때가 많아요.” 그래도 그는 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도 한다. 옛날 같으면 방송도 되기 전에 걸러질 많은 이야기들에 많은 시청자들이 웃으며 공감을 하니 말이다. “비몽사몽 발언이 나간 다음날에는 친구들한테 전화가 왔어요. 괜찮냐구요.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개방성 척도가 피부로 느껴지죠.”


요즘은 피디도 브랜드가 되는 시대다. 스타가 된 <무한도전>의 김태호 피디를 비롯해 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에서 피디의 이름이 친근하게 언급된다. <명랑 히어로>에서 김유곤 피디도 종종 언급된다. 하지만 사실 김 피디라는 이름은 이미 오래전에 떴다. 2003년 조연출 시절 <코미디하우스>의 ‘노브레인 서바이버’에 출연해 ‘친구도 없어, 애인도 없어, 휴일도 없어, 난 김 피디야’라는 ‘김 피디 송’을 유행시켰던 바로 그 인물이다. “예능국 송년회 때 회식비 상금을 두고 각 팀이 공연을 했어요. 선배의 지도편달로 저도 가발 쓰고 춤을 췄는데, 선배 피디가 다음날 불러서는 대본을 주시는 거예요. 하라니까 하기는 했는데 진짜 부끄러웠어요.”


7명의 진행자가 우리사회의 현안에 대해 솔직하게 발언하는 〈명랑 히어로〉. 문화방송 제공.
2000년 입사한 뒤 2004년 <느낌표>의 ‘산넘고 물건너’로 피디 입봉을 해 <몰래 카메라> <불가능은 없다> 등을 연출했다. ‘산넘고 물건너’도 그랬지만 현실밀착형 웃음이 그의 한결같은 관심사다. 특히나 <명랑 히어로>는 기획 단계부터 본인이 추진했던 독립 프로그램이라 남다른 애착도 있고 긴장도 된다고 한다.

<명랑 히어로>는 오는 24일부터 방영시간을 밤 11시45분으로 옮긴다. 토요일 심야시간의 오락 프로그램은 최근 시작한 에스비에스의 <샴페인> 이후 두번째고 문화방송으로서는 새로운 실험이다. “시청 트렌드가 바뀌면서 토요일 밤 성인 시청자층이 늘어나고 있어요. <명랑 히어로>는 주시청층이 30대 남성이라서 밤 시간을 개척한다는 방향으로 시간대가 바뀌었어요. 그만큼 출연진도 더 편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구요.”

〈피디수첩〉처럼 정색하고 보지 말아주세요

김 피디는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당사자이면서도 “이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궁금하다”고 한다. “<명랑 히어로>에서 나오는 발언의 수위나 그에 대한 반응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풀어졌는지 또는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는 이 프로그램이 대박 시청률보다는 다른 색깔을 통해 존재 의미를 빛내는 프로그램으로 오래 살아남기를 기대한다. “시청자들에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건 제작진의 몫이지만 한가지 바라는 건 <명랑 히어로>를 <100분 토론>이나 <피디수첩>처럼 정색하고 보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 이런 프로그램을 많은 사람들이 가볍고 유쾌한 오락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일 때 정말로 명랑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도대체 누구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