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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05 21:23 수정 : 2007.12.05 21:23

여주인공과 성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는 영화 〈세븐 데이즈〉의 김형사역 박희순.

[매거진 Esc]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영화를 보고 나면 꽤 자주, 그 속의 인물에게 매료되곤 한다. (물론, 주로 남자다) 매혹되는 이유가, 배우 때문인지 캐릭터 때문인지 아니면 배우나 캐릭터의 어느 한 구석을 닮은 현실의 누군가가 연상되었기 때문인지 모호할 때가 있다. 이 남자에 대한 감정 역시 그렇다.

먼저 배우인 박희순. 이런저런 곳에서 스치듯 보아 와서 얼굴이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영화배우치고는 평범한(?) 외모 탓인지 별다른 감상 없이 그냥 쓱 지나치곤 했다. 이 영화가 시작되고 꽤 한참 동안, ‘우와, 누구지?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기만 했다. 살짝 비열하면서도 살짝 우직하고 또 살짝 선량한가 하면 살짝 껄렁한 ‘김 형사’라는 인물을 정말 내 옆에 살고 있는 듯 표현해낸 박희순이 <세븐데이즈> 인기의 중요한 견인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 형사라는 인물이 내 마음을 끈 것은, 그가 여주인공 지연의 ‘남자’가 아니라 ‘친구’ 라는 사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사이에 있는 건, ‘언젠가 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야릇한 여지를 남기는 눈빛’이 아니라, 언제 만났다 헤어져도 서로의 어깨를 그저 한번 툭 치는 걸로 충분한 무덤덤한 우정이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위기 상황에 빠진 여주인공 곁을 묵묵히 지키며 힘이 되는 남자들이, 알고 보면 그 여자를 오랜 세월 속으로만 몰래 흠모해 왔다는 설정은 참 흔하다. 아니면 처음에 단지 동료로만 여겼던 이성과 함께 각종 위기 상황을 극복하다보니 저도 모를 애정이 새록새록 싹튼다는 설정이거나.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한가’라는 해묵은 논쟁이 벌어질 때 보수파들이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게 만드는 바로 그 예시일 것이다.

그렇지만 김 형사와 지연의 관계는 좀 다르다. 지연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그는 제 일처럼 발 벗고 달려오긴 하지만, 그건 지연이라는 여자를 그림자처럼 보필하다가 때가 되면 확 어떻게 해보려는 흑심이 발동해서가 아니다. 그럼, 왜? 친구이기 때문이다. 내 친구가 아프고 힘들고 내 친구가 죽을 것 같아서 돕겠다는데,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그건 이미 성별을 초월한, 맨밥처럼 덤덤해서 더 소중한 우정이다.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나에게도 성별이 남성인 좋은 친구들이 몇 있다. 오랜 시간 ‘삽질’을 지켜봐주고, 기꺼이 훈수를 놔주고, 억울한 일 당하면 대신 펄펄 뛰어주기도 하고, 아무리 수다를 떨어도 지겹지 않은. 한때 친하게 어울려 다녔으나 세월이 흐르며 멀어진 친구도 있지만, 그의 성별이 남성이라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우정이라는 것이, 원래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더라도, 언제라도 다시 웃으며 무람하게 술 한잔 나눌 수 있으리라는 믿음. 그것도 헤어진 연인이 아니라, 옛 친구이기에 가능한 일일 테지.

인생과 친구라는 거창한 주제에 대한 정답은 모른다. 하지만 각별한 친구들이 없었다면 내 삶이 퍽 심심했으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들에게도 내가 다만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김 형사와 지연의 서로를 ‘갈구는’ 우정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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