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인공과 성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는 영화 〈세븐 데이즈〉의 김형사역 박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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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영화를 보고 나면 꽤 자주, 그 속의 인물에게 매료되곤 한다. (물론, 주로 남자다) 매혹되는 이유가, 배우 때문인지 캐릭터 때문인지 아니면 배우나 캐릭터의 어느 한 구석을 닮은 현실의 누군가가 연상되었기 때문인지 모호할 때가 있다. 이 남자에 대한 감정 역시 그렇다. 먼저 배우인 박희순. 이런저런 곳에서 스치듯 보아 와서 얼굴이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영화배우치고는 평범한(?) 외모 탓인지 별다른 감상 없이 그냥 쓱 지나치곤 했다. 이 영화가 시작되고 꽤 한참 동안, ‘우와, 누구지?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기만 했다. 살짝 비열하면서도 살짝 우직하고 또 살짝 선량한가 하면 살짝 껄렁한 ‘김 형사’라는 인물을 정말 내 옆에 살고 있는 듯 표현해낸 박희순이 <세븐데이즈> 인기의 중요한 견인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 형사라는 인물이 내 마음을 끈 것은, 그가 여주인공 지연의 ‘남자’가 아니라 ‘친구’ 라는 사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사이에 있는 건, ‘언젠가 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야릇한 여지를 남기는 눈빛’이 아니라, 언제 만났다 헤어져도 서로의 어깨를 그저 한번 툭 치는 걸로 충분한 무덤덤한 우정이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위기 상황에 빠진 여주인공 곁을 묵묵히 지키며 힘이 되는 남자들이, 알고 보면 그 여자를 오랜 세월 속으로만 몰래 흠모해 왔다는 설정은 참 흔하다. 아니면 처음에 단지 동료로만 여겼던 이성과 함께 각종 위기 상황을 극복하다보니 저도 모를 애정이 새록새록 싹튼다는 설정이거나.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한가’라는 해묵은 논쟁이 벌어질 때 보수파들이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게 만드는 바로 그 예시일 것이다. 그렇지만 김 형사와 지연의 관계는 좀 다르다. 지연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그는 제 일처럼 발 벗고 달려오긴 하지만, 그건 지연이라는 여자를 그림자처럼 보필하다가 때가 되면 확 어떻게 해보려는 흑심이 발동해서가 아니다. 그럼, 왜? 친구이기 때문이다. 내 친구가 아프고 힘들고 내 친구가 죽을 것 같아서 돕겠다는데,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그건 이미 성별을 초월한, 맨밥처럼 덤덤해서 더 소중한 우정이다.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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