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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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해미의 오케이클리닉
거울을 봐요, 표정부터 고쳐요
Q 서른 살의 여자 간호사입니다. 얼마 전 직장을 옮기게 됐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편이죠. 또 여기에 올 때 병원마다 원장님의 스타일이 달라서 같은 과의 경력이 있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주변 이야기를 듣고 저는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을 했는데 사람들이 무시하더라고요. 경력도 있으니까 알아서 잘할 줄 알았는데 제 행동이 좀 느리고 버벅거리니까 실망을 했는지 대놓고 무시하는 데 참 힘듭니다. 성격상 무시를 당해도 가만 있으니까 더 깔보고, 내가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요새는 어떻게든 조금씩 제 의견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데 첫인상이 그렇게 굳어져서인지 여전히 힘드네요. 그런데 이렇게 직장에서는 무시당하고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모르는 제가 집에서는 직장에서와 전혀 다르게 행동합니다. 가끔 내 자신이 무서울 정도로 엄마에게 못되게 굽니다. 예전부터 자꾸 엄마한테 별것도 아닌 일로 심하게 화를 내고 후회하곤 했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오히려 죄송하다는 표현을 못 하겠고, 한번은 지하철에서 엄마랑 대판 싸우고 따로 집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엄마는 속 상해서 많이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왜 저는 사회생활에서는 제 의사 표현도 제대로 못 하면서 집에 돌아오면 엄마한테 못된 딸로 변할까요? 이런 제가 너무 답답하고 싫습니다. 이렇게 이중적인 성격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도와주세요. A
보통 사람들은 가장 편하게 느끼는 사람한테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풉니다. 물론 자신의 스트레스를 남에게 전가하는 행동이 좋은 건 아니겠죠. 하지만 일이나 공적인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그 자리에서 해결하거나 직접적으로 풀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가장 가깝고 의지가 되는 사람에게 풀고 위로 받으면서 힘을 얻지요. 저 역시 결혼 전에는 어머니가, 결혼 뒤에는 남편이 감정적 지지대가 되어줬습니다. 이렇게 들어주고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입니다. 님께 엄마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겠어요. 아마 스트레스로 일을 그만둬야 할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무한대의 사랑을 베푸는 엄마라고 해도 상처받을 수 있는 엄연한 인격체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화풀이를 당할 때 그 상처는 더 크죠. 그런 화풀이는 안 하는 게 가장 좋겠죠.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라는 지키지도 못할 결심을 하느니, 엄마한테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엄마 나 요새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어, 그러니까 내가 화나고 속 상할 때 엄마가 받아줘야 돼,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세요. 엄마도 아무것도 모르고 당하면 속만 상하겠지만 알고 당하면 힘든 딸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들겠죠. ‘엄마가 사회생활을 뭘 알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엄마는 님의 고민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또 엄마에게 화를 많이 낸다는 건 그만큼 엄마에게 정서적으로 많이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기분 좋을 때 본인의 고민에 대해 엄마와 편하게 상의해보세요. 님의 기대보다 훨씬 좋은 대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대화 시간이 늘어날수록 자기 통제력을 잃고 화를 내는 시간은 분명히 줄어들 겁니다. 직장생활에서의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본인한테 다짐하지 말라는 거예요. 소심한 성격을 고쳐야지. 적극적으로 나의 의견을 표시해야지, 억지로 다짐하다가는 더 큰 병 납니다. 수십 년 동안 굳어진 성격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고치겠습니까? 하지만 소심한 성격, 느린 행동이 꼭 나쁜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성격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거죠. 성격 고치려고 괜한 스트레스 받지 말고 본인의 장점을 찾아보세요. 그래 나 느려, 그래도 마무리는 꼼꼼하잖아, 이런 식으로 본인의 장점을 개발하고 어필하는 게 지혜입니다.
한 가지 더. 지금 거울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본인의 표정이 어떤가요? 혹시 뚱하거나, 어둡지는 않은가요? 그렇다면 당장 표정 고치기 연습부터 하세요. 표정은 성격이 아니라 너무나도 중요한 사회생활의 기술입니다. 사람들이 날 봤을 때 내가 어둡거나 못마땅한 표정이면 아무리 장점이 많더라도 그 장점은 보이지 않고 사소한 단점은 부각되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님처럼 많은 사람을 만나고 특히 환자들을 돌봐야 하는 간호사라는 직업에서 밝은 표정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박해미/배우·뮤지컬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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