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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7 17:23 수정 : 2007.06.28 14:42

“오빠동생 하자는 훈남, 멀리 있지만 꼭 연애하고픈데…”

[매거진 Esc] 박해미의 오케이클리닉

‘능동적 굴욕’은 안돼요

Q 눈에 들어온 훈남이 있습니다. 끙끙 앓다가 고백했는데 최악의 반응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문제는, 훈남이 너무 멀리 가 있습니다. 독일에서 성악 공부를 합니다. 올해로 유학 4년째랍니다. 그는 절 잘 모르고 서로를 알아갈 기회도 없고, 연인과 떨어져 있는 게 싫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 고백에 갈팡질팡하다가 오빠 동생으로 지내자 했습니다.

1. 정말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 인가요? (제 마음은 대서양을 건널 수 있는데 말이죠)
훈남은 제 큰오라버니 친구입니다. 그래서 더 부담을 느낀다고 합니다.
2. 우리 둘이 연애하는 게 저희 큰오빠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혹시 나중에 헤어지게 되더라도요) 훈남은 서른 살이고 전 스물여섯입니다. 지금 절 만난다면 그건 결혼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나이인가요?
3. 훈남 입장에서는 그래서 이런저런 것까지 다 재면서 갈팡질팡했던 것일까요?
저희 집안이나 지인 중에 음악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공부하는 분야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4. 음악이나 예술하시는 분들은 끼리끼리 만난다던데 저 훈남도 그럴까요? 그러고 싶어서 절 거절하는 걸까요?
5. 훈남이 절 전혀 여자로 안 보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네가 누구 동생만 아니면, 이쁘고 착하고 똑똑한데 왜 늙은 아저씨를 좋아하냐라는 입발린 소리도 하고. 고백을 들었을 때 바로 거절 못하고 한참을 고민하다 말을 한 걸 보면 말입니다. 이거 제 착각일까요? 저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습니다. 정말 맘 접는 게 현명한 겁니까? 방법이 아주 없을까요?

박해미/배우·뮤지컬 제작자
A 에휴, 님의 답답한 마음이 장마철 하늘의 먹구름만큼이나 무겁고 두껍게 다가오네요. 일단 품고 있는 습기를 다 쏟아 부어야 뭔가 홀가분해지고 기분도 덩달아 청명해질 텐데, 그러질 못하니 님의 총명함도 빛을 발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주변의 채도를 높여 보세요. 가지고 있는 속성들이 다 드러나게. 이제 보이시나요? 님의 눈에 넣어 두었던 그 훈남이 예의를 갖춰서 명확히 의사 표현했다는 것을.

서로 잘 모르면 이제 시작하면 될 터이고 기회는 관심만 있다면 지구 반대쪽이 아니라 밖에 있을지라도 어떻게든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냥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자는 것은 님에게 그가 반응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1)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 물론이죠. 서로에 대한 사랑이 이미 충분히 깊어 눈에서 비록 멀어져도 상대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면, 그래서 눈을 뜨나 감으나 그 모습을 떠올릴 정도의 뜨거운 단계라면 모를까 두 분의 사랑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서로의 자극도 없이 뭔가를 이루어 간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겠죠. 한쪽 마음이 천리만리를 가야 뭐 합니까? 가서 닿을 곳이 없는 것을.

2) 두 분이 연애한다는데 유엔에서 막겠습니까, 화성에서 외계인이 와서 막겠습니까? 시작하기가 꺼려진다는 것은 그 이유가 님의 큰오빠든 대륙 사이의 거리든 그 훈남이 이건 아니다 싶기 때문이겠죠. 님과 사랑을 시도하기보단 님의 오빠와 우정을 굳건히 하는 안전한 길을 택한 걸로 보아 그 훈남에겐 여러 모로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3) 님이 보기에 훈남이 갈팡질팡해 보인 건 님의 생각대로 이리저리 재느라 그럴 수도 있겠으나 이미 4년째 외국 유학 생활을 하면서 공부하고 생활하느라 님이 바라는 그런 감정적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기존의 편의를 다 털어내고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하고 있는 그에겐 외국 학생들과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고 현실적인 과제인지라, 모든 에너지를 학업에 쏟아 붓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하는 사람에겐 결혼 적령기란 의미가 없어 보이네요.

4) 분야가 음악이든 법이든 공부란 모두 한 방향에 있습니다. 그 분야를 잘 알지 못해 낯설 뿐이지 음악 그 자체가 신비롭거나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죠. 천재적 재능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독한 연습과 오기가 없으면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게 음악입니다. 그러니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다른 데 신경 쓸 시간과 환경이 제한되게 마련이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공감하기도 쉽겠죠. 허나, 그래서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 끌리는 경우도 만만치 않으니 ‘끼리끼리’ 만난다는 설은 아무 근거 없어 보입니다.

5) 훈남의 예의에 님의 마음이 오히려 갈팡질팡하는데, 일단은 마음 ‘팍’ 접으세요. 남자는 이성에 대해선 즉각적이고도 직선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그는 님이 맘 상하지 않도록 이미 충분한 예의를 보였으니 이젠 님이 그를 존중해 줄 때입니다. 혹시나 하는 미련으로 그를 향한 해바라기가 된다면 이는 능동적 굴욕입니다.

그래도 도저히 짝사랑의 열병을 식히지 못하겠다면 님이 공부를 시작하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모든 파워를 동원해 그에 대해 공부해 보세요. 어떤 취향이지, 스트레스는 어찌 푸는지, 뭐에 약한지 등, 큰오빠도 있겠다 그의 근황까지 알 수 있으니 그에 대해 꼼꼼히 알아본 뒤 이번엔 그가 님께 반응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의 눈뿐 아니라 맘에까지 꽉 차는 여자가 되는 거죠. 님 자신을 버리고 그에게 딱 맞는 맞춤형 여자가 되라는 게 아니고 자신의 또 다른 능력을 찾아 키우란 거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분명 보람은 있게 마련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 장마 끄트머리엔 창창한 하늘이 님을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마시길!

배우·뮤지컬 제작자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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