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6.13 17:35 수정 : 2007.06.13 18:49

박해미의 오케이클리닉 /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박해미의 오케이클리닉

“어린 시절 상처로 사랑 따윈 필요 없어요”

Q 23살의 약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입니다. 어렸을 적 엄격한 아빠와 자신의 일만 중요시하셨던 엄마 밑에서 외동딸로 자랐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많이 외롭고 냉정한 부모님에게 분노도 느꼈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 부모님과는 편해졌어요. 재수 시절 저의 힘든 상황을 부모님과 대화로 많이 풀었거든요. 그래서 마음의 상처도 아물어진 줄 알았어요. 문제는 제가 이성을 만날 때 나오더라구요.

전 아빠와 반대인 자상하고 따뜻한 남자한테 이끌렸어요. 몇년 전 6살 차이나는 사람을 만나 2년 동안 사귀었어요. 그 오빠 앞에선 마냥 애기처럼 굴었어요. 어렸을 때 못부린 어리광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것처럼요. 그런데 어느 날 심하게 싸운 뒤 오빠가 저에게 이별을 통보하더라구요. “실은 너랑 사귀면서 정말 힘들었다. 가끔은 나도 힘들 때가 있는데, 넌 이런 날 단 한 번도 이해해 주려 하지 않는다”면서요.

그리고 1년 후 동갑내기 남학생이랑 사귀면서 이번엔 절대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성숙하게 이 친구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내 힘과 용기를 줘야겠다, 이런 생각을 노이로제처럼 갖고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젠 내 감정보다는 남의 감정을 살피는 습관을 가진 내 자신이 너무나 피곤한 거예요. 결국 제가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했어요.

이제 전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깟 사랑이 뭔데, 남자 없어도 혼자서 잘 살 거야 다짐을 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랑에 상처받고 움츠려 있는 제 모습이 보이면 서글퍼져요. 어떻게 하면 제 내면의 상처가 온전히 치유되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어린 시절 상처로 사랑 따윈 필요 없어요”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A 지금 님이 겪고 있는 고민의 실체가 무엇인지 맞혀 볼까요? ‘성장 과정’입니다. 허탈하죠? 당사자야 괴롭고 힘들지만 어른이 되고 연애를 하면서 이런 고민을 안 해 본 사람은 없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완벽한 사랑을 하리라 꿈꾸죠. 그래서 연애를 하게 되면 온갖 환상이 머릿속에 펼쳐지지만 사랑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것이면서 온전하게 키워내기 힘든 것입니다. 님에게 지금의 고민은 당장 절박하고 고통스럽겠지만 사십대의 내가 보기엔 그저 귀엽고 순수해 보입니다.

연애 경험이 많지 않으니 서툴고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게다가 님은 두 번의 사랑이 깨진 게 다 자기 탓이라 여기는데, 사랑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는 면에서 볼 때 절대 자책할 일도 아닙니다. 님의 전 남자친구들도 님처럼 뭔가 온전치 못하다고 느끼고 있어서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을 수 있거든요. 상대가 네 탓이라 해도 주눅들 필요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내 짝이 아닌 경우이거나 양쪽 누구든 사랑할 준비가 덜 된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님에게 필요한 건 연애를 포기하거나 성격을 고치는 게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훌훌 털어 버리는 겁니다.

님은 반복되는 연애 실패의 원인이 어릴 적 마음의 상처에 있다고 보는데, 그건 이미 부모님과 충분한 대화로 풀린 듯합니다. 한번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봅시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라는 건 혹시 자신이 쥐고 놓지 않는 도피처는 아닐까요? 어찌 자식이 부모님 사랑을 잴 수 있겠습니까? 님의 방식으로 느끼기엔 부모님의 살가운 정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부모님은 하나뿐인 자식에게 나름대로 최선의 사랑을 주셨을 겁니다. 설사 그 사랑을 충만하게 느끼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다 자란 성인이 자신의 모든 결점이나 단점을 부모님이나 가정 환경 탓으로 돌리는 건 그것이야말로 어린 양하는 게 아닐까요?

이제 스물세 살이면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궁금하고 설레는 나이죠. 그런데 뒤를 돌아다보면서 동시에 앞으로 걸어 나아갈 수는 없잖아요? 님에게 남아있는 삶은 지금까지의 삶보다 훨씬 길고 값질 것인데, 님이 주인공인 연극의 1막에서 누군가 실수했다고 생각해 그것에 마음이 쓰여 2, 3막까지 전전긍긍한다면 어떨까요? 그 작품을 보고 있는 관객에겐 고문이 됩니다. 이젠 님이 지나간 시간을 털어 버리고 박차고 나서야 할 때입니다. 지난 일들은 이미 끝난 연극의 배경일 뿐입니다. 화창한 미래에 마음을 두고 당당하게 주도적인 삶을 사십시오.

님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십대 혹은 삼십대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사랑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애에 실패해서 죽을 것 같고, 다시는 좋은 사람을 못 만날 것 같아도 사랑은 다시 시작되는 게 만고의 진리예요. 그러니까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문제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외치세요 “나는 열렬히 사랑하고 또 사랑받을 것이다!”

이제 자책은 그만 털고 일어나 나만의 방에서 나오세요. 전공 공부든, 동아리 활동이든, 취업 준비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열중하면서 꿈을 키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성숙해 가는 만큼 사랑도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화이팅!

배우·뮤지컬 제작자 박해미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박해미의 오케이클리닉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